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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52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0 19:20
조회
1,301
추천
39
글자
12쪽

기(起)

DUMMY

“대관절 어찌 이리되었느냔 말이야.”


한탄에 돌아오는 답은 없다.


이룡각 최상층.


두 남자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대작을 벌이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신천후는 이마를 짚은 채 힘없이 뇌까렸다.


“이보라고, 등본건이. 무어라 말 좀 해보게. 응?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느냐고?”


“면목 없습니다, 회주님.”


질책이라기보단 애원에 가까운 그 물음에, 신천후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그저 사무적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독아단주 등본건.


이 판국이 되어서도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평소 같았음 그 침착한 태도가 믿음직스러웠겠지.


하지만 지금의 신천후에게 있어선, 단지 빌어먹을 만큼 무신경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겨우 들려던 술잔을 힘없이 내려놓는다.


기껏 따른 술을 여태껏 한 잔도 비우지 못했다.


씁쓰름한 입맛과 뒤틀리는 속에, 무언가를 들이키긴커녕 계속 한숨만이 게워 나왔다.


- 도대체 어쩌다 일이 이리 흘러가게 되었나.


오직 그 물음만이 머릿속에 질척히 들러붙어 있었다.


‘연씨세가를 지원하여 작금의 합비를 어지럽히는 그 흉수를 처단하라.’


그것은 남궁이 내린 칙령이었다. 그 말은, 그 내용이 절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뜻했다.


이 안휘 땅에서 그 명은 진리가 되어야 했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여름에 매미 소리가 울리며,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과 같은 일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되어 왔다.


그 어떠한 불만과 반발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원함에 혹은 원치 않음에 상관없이 반드시 그리되어 왔다.


지금까지는.


허나··· 현재 벌어진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연도근, 이 멍청한 놈아. 네놈은 죽어서도 어찌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것이냐.’


연씨세가의 토벌대는 몰살당했다.


그것은 곧 남궁의 칙령이 깨졌음을 뜻했다.


현시점에서 적사회는, 남궁이 직접 내린 명령을 어긴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 사실은 존재만으로도 신천후의 숨통을 조여왔다. 한평생을 아니꼽게 여긴 연도근이 죽었음에 조금도 기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대로 남궁이 직접 움직인다면···.’


아니. 가정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남궁은 분명히 움직일 것이다.


혈족이 피를 보는 것도 모자라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이는 곧 또 다른 미래를 예견했다.


설령 흉수가 토벌된다 한들 적사회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죽음보다도 끔찍한 최후가··· 신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포.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력이··· 자신을 찾아오리란 공포가, 신천후의 마음을 파먹고 있었다.


“···사죄는 되었으니, 대답이나 좀 해주게. 자네 생각을 좀 들어야겠어.”


저도 모르게 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연도근이 재수 없는 똥통이긴 했지만, 절대 머리가 덜떨어지는 놈은 아니었단 말이지. 하물며 제 자식새끼의 원수를 치러 갔으니 과했으면 과하지, 덜하진 않았을 텐데.”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신천후는 등본건에게 물었다.


“어떤가? 그놈이 적의 전력을 오판했다고 보나?”


“전혀.”


즉답.


“척살을 위해 출정한 토벌대였습니다. 항쟁, 즉 손실을 각오하고 투입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가주를 잃은 이상, 그 원한을 갚고 방가로서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정예 중의 정예만을 끌어모았음이 분명합니다.”


곧장 돌아오는 말에, 순간 신천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이제 울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며칠 전 합비의 거리를 뒤흔든 그 끔찍한 단말마를 기억했다.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자였으나, 실력만은 자신과 비등했다. 그런 연도근이 작정하고 병력을 끌어모아 만든 토벌대였다.


그럼에도 그는 무사들과 함께 일방적으로 살해당했다.


적사회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요괴가 나타났느니 하는 괴소문은 입에도 담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소문이 퍼져나가지 않게, 부풀려지지 않게 철저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들불처럼 번진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무릇 모든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제 몸집을 부풀리기 마련이다. 대부분 그 실체는 생각보다 보잘것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실체는, 필시 ‘그만한 풍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함을 지녔음이 틀림없었다.


앞과 뒤.


배후와 정면.


양쪽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이었다. 그 둘 모두가, 적사회를 중앙에 놓은 채 에워싸듯 죄어오는 듯했다.


“···제기랄.”


사면초가나 진배없는 상황.


“······.”


그 위기에 초조해하는 신천후의 모습은, 등본건에게 있어 퍽 의외였다.


오죽하면 ‘회주께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번 기회에, 그를 제거하고 적사회를 장악할까’ 이런 고민보다도 앞서 놀라움부터 느끼고 있을까.


그때였다.


“회, 회주님. 손님이 오셨···.”


복도에서 들려오던 사용인의 목소리가, 별안간 뚝 끊긴다. 동시에 홱 젖혀지는 문.


“······!”


“웬 놈이냐!”


신천후는 화들짝 놀란다. 등본건은 곧장 비도(飛刀)를 날린다.


그러나, 턱 하고.


갑작스러운 방문자는 단지 검지와 중지만으로 등본건의 비도를 잡아낸다. 그 가벼운 동작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그 비도를 던진 등본건은 물론이거니와, 신천후나 죽은 연도근조차 그런 묘기를 부릴 순 없을 것이다.


“···이거야 원, 당신 정도 되는 거물이 이리 함부로 걸음해도 되나?”


순식간에 달라지는 공기.


방금까지 전전긍긍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안휘의 밤을 지배하는 사파의 수장. 그에 걸맞은 무게감을 품고서, 신천후는 제 앞의 불청객을 노려보았다.


그는 초록빛이 감도는 흑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영웅건과 견폐(肩蔽), 얼굴을 가리는 철 가면, 더불어 등에 멘 대도(大刀)에 달린 술까지. 그 모든 것을 같은 색으로 맞춤했다.


낭인에게 있어 그런 눈에 띄는 차림은 하등 도움 될 것이 없다.


따라서 그런 차림을 고수한다면··· ‘그깟 고집’ 정돈 얼마든지 부릴 수 있는 실력이 있단 뜻이었다.


“무슨 볼일로 온 건가, 귀영객(鬼影客).”


- 흐으.


신천후의 물음에, 귀영객은 단지 흐느끼는 듯한 숨소리로 답했다.


특유의 행색과 과묵함. 거진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숨기는 신원까지.


안휘에서 제일 이름난 낭인다운 특징이나, 그가 진정으로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절정의 경지.


그만한 힘을 가진 낭인은, 그 외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계약.”


잠시간 뜸을 들이던 귀영객은, 불현듯 그 말을 꺼냈다.


“···지금 우린 자네를 고용할 처지가 아니야.”


쿵, 쿵.


신천후의 대답에, 그는 두어 차례 가슴을 두드리곤.


“뽑아라.”


마치, 자신을 단지 한 자루의 칼로 여기는 것처럼.


억지 부리지 말라고 한마디 하기에 앞서, 귀영객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닳아빠진 종이 쪼가리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길거리에 나뒹굴던, 연씨세가의 방.


흉수의 용모파기와 함께, 다만 죽을 것이란 경고가 적힌 그 방을 귀영객이 내밀었다.


“벤다.”


그 한마디에 묻어나는 감정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신천후는 그에게서 두려움의 흔적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귀영객,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지···


호승심.


기대감.


그리고, 희열.


정체불명에 제멋대로 날뛰는 강자다. 특히나 기묘하게도, 그의 활동은 절묘하게 정파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영향 끼친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과연 무슨 꿍꿍이로 손을 보태고자 하는 것인가. 신천후는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만반의 준비를 한 연씨세가조차 멸문당한 이상, 쓸 수 있는 전력은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야 했다. 그 상황에서 찾아온, 돈으로 살 수 있는 절정 고수라.


이 시점에서, 귀영객의 가치는 특별했다. 도저히 마다할 상황이 아니었다.


“···좋다. 보수는 무엇으로-”


신천후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귀영객은 신기루처럼 자리를 떴다.


짧은 불쾌감, 그러나··· 신천후는 느낀다. 그간 불편했던 속이 잠잠해졌음을.


비로소 잔을 들이킨다. 맑은 맛이 혀를 타고 흘러간다.


“등본건이.”


생각은 재빠르게 흘러간다. 결단은 신속하게 세워졌다.


남궁세가가 움직이기에 앞서 흉수를 토벌한다.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기 전에 일어나, 우리의 도시를 지켜낸다.


자신들의 가치를, 함부로 대해선 안 될 힘이 있음을 증명하리라.


말씀을 받들고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는 등본건에게, 적사회주 신천후는 명을 내렸다.


“전원 소집하라. 안휘의 밤이, 누구의 것인지 알려주러 가자.”


***


그것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했다.


본래라면 단지 참고 넘어갈 만한, 아주 작은 일.


주림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얼어붙은 거리로 동냥을 나섰다. 불운하게도, 그들은 몇 푼 남짓한 동전 대신 모욕을 선물 받았다.


무리 지어 다니던 적사회 패거리에 걸렸다. 한 아이가 견디지 못한 끝에 울음을 터뜨렸고,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주먹과 몽둥이. 그 세례에 끝내 얼굴 뼈가 푹 가라앉았다. 숨이 끊기기 직전에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속한 무리에서, 누군가 말을 꺼냈다.


-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어.


이게 겨우 열 살 남짓 되었다. 그런 아이가 맞아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 간신히 끌어모은 돈, 동냥질로 거둬들인 돈의 반 푼을 내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어.


그 한마디가, 번져간다.


실체 없는 귀신처럼 거리를 떠돈다.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순 없어.


종이에 튄 먹물처럼 퍼져간다. 이렇게 맞고만 살 순 없어.


번져갔다.


청월루로 발을 옮긴 자들. 그곳에 모인 변변찮은 자들이, 달라졌단 말이 번진다. 맥문을 잡는 손에 혈도가 뚫리고, 심장을 파고든 진기에 괴력이 샘솟는다는··· 그런 이야기가.


거듭하여, 번져간다.


귀인이 나타났다고.


연씨세가를 쓸어버렸다고. 적사회의 독아단조차 상대가 안 된다고.


그만한 힘을, 가림없이 베푼다고.


그 기적을, 바라는 자에게 내려준다고.


더욱더 많은 이들이 그 파괴된 기루로 모여들고 있었다. 소용돌이처럼, 이 도시의 유민들을 모조리 끌어들일 것처럼.


그러다.


“그 귀인인지 나발인지 하는 새낀 어디 있어!”


불씨가 피어오른다.


불온한 움직임에 강경히 대처하겠다며, 적사회에 속한 자들은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위협하고, 겁을 주며, 더러는 쥐어팬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누군가 수군댄다. 저놈들, 너무 멀리 왔다고.


누군가 떠올린다. 수는, 우리가 더 많다고.


그리고 누군가는, 되뇌인다. 이를 악물고서.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어.


“씨발놈들아, 저리 안 꺼져?”


독아단.


합비에 똬리를 튼 뱀의 독니라, 그들의 무기는 거치도(鋸齒刀)였다. 톱날이 돋아난 날붙이. 썰어내고, 짓씹으며,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그들은 사파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


그에 반하는 움직임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 또한 그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주위를 둘러본다. 무언가 이상하다. 평소와는 공기가 다르다. 하지만, 무엇이.


본디 발소리만 들어도 도망쳤을 것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마주치는 것만으로 내려 깠을 시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냐, 이 개새끼들아. 좋은 말로 하니 말 같지가 않아?”


도를 겨눈다. 당장이라도 벨 수 있다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흔든다.


그래,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들이 무리 짓는다면 어떠랴. 우리도 머릿수는 여럿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파 여섯과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본 적 없는 유민 패거리. 둘 사이의 우열은 자명한 것 아니겠나.


그러나, 턱 하고.


문득 서로의 등이 맞닿고 있다. 의아함에 돌아보자 당황 섞인 동료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외에는.


사방을 둘러싼, 비쩍 곯은 낯가죽들.


하나 같이 남루한 차림에, 하나 같이 꾀죄죄한 몰골이다. 그들 모두, 같은 얼굴을 한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 광경이···.


“썅, 뭐냐고!”


어째서, 이토록 두려운 것인가.


“제기랄, 슬슬 복귀를-”


알 수 없는 압박감에 그리 운을 떼며, 누구 한 명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인간의 파도가 그들에게 몰아닥쳤다.


작가의말

起: 일어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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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諮) +6 24.05.12 2,145 67 13쪽
6 람(爁) +10 24.05.11 2,808 8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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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틀 전. +7 24.05.08 3,123 96 13쪽
1 칠 년, 그리고 사흘 전. +10 24.05.08 4,664 11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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