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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48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19 21:50
조회
1,377
추천
56
글자
11쪽

집(集)

DUMMY

연씨세가의 토벌대가 궤멸되고, 그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더불어 그 뒤엣날.


이어서··· 그다음 날도.


거리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골목마다 붙었던 방은 바람결에 떨어져 낙엽처럼 나부낀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것일까. 엉망이 된 기자재들은 시전 바닥에 널브러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지겹도록 들러붙던 호객꾼들, 곳곳에서 엎드려 있던 거지들. 심지어 잡아도 잡아도 도통 그치질 않던 소매치기 소년들마저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발 없는 말만이, 멎어버린 사람의 흐름을 대신하여 퍼져나갔다.


‘반로환동한 고수가 나타났다.’


‘사람을 찢어먹는 요괴가 나타났다.’


‘아니다, 진노한 신선께서 내려오신 것이다.’


괴소문.


실체를 아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정확하지 못한 정보와 의심스러운 진위에, 괴이한 소문만이 그저 돌림병처럼 창궐할 뿐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남궁의 방가가 멸문지화를 당했다. 가주가 살해당했다. 흉수를 토벌하러 간 길에,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내용들.


그럼에도··· 그 이야기가 가시는 일은 없었다.


불온한 공기가 이 합비에 흐르고 있었다. 조만간 남궁이 직접 움직이리라 예감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 속에 서린 긴장을 느끼고, 사람들은 집마다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압력이 짙게 깔린 이 거리를··· 망설임 없이 헤쳐 나가는 발걸음이 있었다.


하나둘씩 쌓여가는 그 걸음은, 청월루를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 그 걸음 중에 광철曠綴이라는 자가 있었다.


남루한 차림에 엉겨 붙은 머리칼. 그 꾀죄죄한 몰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부랑자, 거지, 혹은 유민.


하지만 아무리 배가 곪는 신세라 한들, 심하게 움푹 들어간 눈은 유달리 기괴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무엇 하나 제대로 먹지 못했다. 주림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곤 했다.


그에게는, 한때 형이 있었다.


소싯적에 칼질 좀 했다고 으스대면서, 여인조차 들고 다니지 않을 법한 은장도 한 자루만 겨우 갖고 다녔던···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형이 한 명 있었다.


시답잖은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던 그 형은, 어느 날 개방에 들어갔다. 어떤 우여곡절 끝에 돈을 빌어 온 건지 백설기 한 판을 구해왔다.


아껴먹기로 결심하며 잠을 청한 그날, 그들의 집에 강도가 들었다.


뉘일 곳이라도 있으니 훔칠 것 또한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한 분타주가 무리를 이끌고 쳐들어온 것이었다.


‘헤헷, 봤지? 이 형님의 실력은··· 진짜였다고···.’


얼마나 맞았을까. 초주검이 된 형은 동생에게 기어이 지켜낸 떡을 내밀었다.


동생은 받지 못했다. 다만 눈을 감은 형에게서, 끝내 뽑지 못한 은장도만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 은장도를 쥐고서, 광철은 청월루로 향했다.


- 그 걸음 중에 홍선戇愃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광철과 반대로 뚱뚱한 남자였다. 무엇이든 많이 먹었다. 남들의 반 곱절 이상은 먹어야 겨우 성이 찼다.


먹는 만큼 일머리가 좋으면 모를까, 둔하고 덜떨어지기까지 했으니 식충이가 따로 없었다. 무엇이든 쉬이 잊어버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부모조차 어리석을 홍戇 자에 잊을 선愃 자라 이름 지었을까.


하지만 그 어리석은 머리로도, 부모의 사랑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거듭된 흉년 탓에 끝내 세가에 소작료를 내지 못해 쫓겨났음을, 그럼에도 자기들 먹을 걸 아껴가며 어떻게든 아들 배는 주리지 않게 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쌀을 훔친 도적놈들을 잡으러 왔다며, 세가의 무사들이 쳐들어온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 부모가 창고를 털었다고, 기껏 베푼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은 맞아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흠씬 두들겨 맞은 부모님이,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음을 기억했다.


멍은 지워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맞은 자리는 여전히 시큰거렸다. 그 어리석은 머리로도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아픔이, 그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었다.


기억을 일깨우는 그 고통을 움켜쥐며, 홍선은 청월루로 향했다.


- 그 걸음 중에 초태椒泰라는 자가 있었다.


삼을 찾으려 산을 쏘다니니 심마니라 부를 수 있겠지. 하지만 잘 알고 있었다. 그 호칭이 다만, 동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칭하던 것에 불과했음을.


나물을 캐고 들짐승을 잡는다. 그렇게 여름을 견뎌내고 있었다. 가을이 찾아오면, 수확이 끝나 쌀이 넘쳐나는 그때가 되면··· 무어라 일거리가 생기리라 믿었기에.


허나.


‘산적이로구나!’


어느 날 찾아온 한 공자에, 그 믿음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녹림에 속하지 않고서야, 이 산 중에 흉기를 들고 쏘다닐 자가 누가 있더냐? 남궁을 보필하는 연 가의 자식으로써, 네놈을 벌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토끼 잡던 칼을 보고 사람 베는 칼이라 했다.


주린 탓에 들어간 눈을 보고 살기로 번들거린다 했다.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무고를 호소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닿지 않았다.


협명(俠名) 사냥.


없는 무용담을 지어내고자 무고한 자를 베어낸다. 분명 들었던 풍문이다. 그럼에도 왜 몰랐을까.


도망쳤다. 몰려버린 절벽 길에,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불행 중 다행이랴, 강물에 빠져 죽음만은 피할 수 있었다. 간신히 살아서 돌아올 때까지 꼬박 보름이 걸렸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는 무엇이 있었나.


동생들은 맏형을 기다리다 숨이 끊겨, 주검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배불리 먹은 적 한번 없어 쇠해버린 기력은, 스쳐 가는 돌림병조차 견뎌내질 못했다.


절뚝이는 몸을 이끌고 시신을 파묻었다.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 피부가 까지고 핏물이 흘러나와도 멈추지 않았다.


그칠 수 없었다.


흉터로 뒤덮인 그 손으로, 초태는 청월루의 대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안대를 쓴 여자였다.


그녀는 계단 맡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을 가로막는 듯한 모양새였다.


차림을 보아하니 의원 같았다. 책을 들여다보며 연신 붓을 놀리고 있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다 망가진 대당에 여러 사람이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홀로, 또는 두세 명가량 모여서.


무언가를, 아니.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그러다 마주친다.


광철이 홍선을.


홍선이 초태를.


초태가 광철을.


세 명의 시선이 서로를 향한다. 행색도, 항렬도, 그 모든 것이 전부 다름에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저 자는 나와 같다고.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고.


가시지 않는 원한.


오래도록 억눌러 온 증오.


그리고··· 기대.


그들 자신도 정확히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음에도, 마음속에 품은 한 조각 기대.


- 악의惡意.


뜻이 모여들고 있었다. 화마를 불러내고자 장작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자그마한 불씨 하나만으로도 겁화를 불사를 수 있게끔.


“······.”


그 모습을, 이연석은 지켜보고 있었다.


위층에서 난간 너머로 곁눈질하고 있었다.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직감이 있었다.


두려움.


스스로를 기만할 순 없었다. 솔직하게, 그는 두려웠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곧 무슨 일이 벌어지리란 예감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단지 피를 보고 사람이 죽어 나가서가 아니다. 단지 그뿐이라면 이토록 몸이 떨릴 리가 있을까.


그가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분명···.


이 끝없는 악의와, 주체하지 못하는 원한이 무엇을 부를지 몰라서.


그래서 무서운 거다. 피부에 소름이 돋아오르고, 다리가 후들대며,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거다.


하지만.


불길한 기운에 몸서리치는 것을, 도통 그만둘 수 없음에도.


‘···이제 와서, 눈을 돌릴 순 없다고.’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기에.


거듭하여 해묵은 끝에 문드러져 가는 원한을.


가슴 깊이 숨겨야만 했던, 끓어오르는 억하심정을.


단지 견뎌야만 했던, 그 비참한 마음을.


지금껏 알지 못했던, 아니. 모른단 핑계 아래 외면했던 세상의 어둠을··· 그는 바라보고 말았다.


어떠한 변명의 여지 하나 없이, 알아차리고 말았다.


한 번 봐 버린 이상 도저히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두려워도.


아무리 꺼려져도.


그렇기에.


‘하다못해··· 그 모든 걸 지켜보리다.’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누구 한 명은 이들 모두를, 이 모든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헛된 일이라고 한들, 품을 이유 따윈 없는··· 어리석은 의무감이라 한들.


상관없었다.


되는대로 어떻게든 흘러갈 삶이라면··· 이런 객기, 한 번쯤은 부려봐도 상관없지 않겠나.


그 사명감을 안고서, 이연석은 강우에게로 향했다.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소.”


본래 루주의 방이었던 그곳에 강우가 있었다.


잘라낸 것일까. 안에서 박살 난 창문을 통해, 강우는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장원.


얼어붙은 시전 위로 우뚝 서 있는 그것은, 여전히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부르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린다.


그저, 강우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멱리를 고쳐 쓰고, 차림새를 정리한다. 겉모습 따윈 원래 신경 쓰지 않았으나, 오늘만은 그에 주의를 기울인다.


느낄 수 있었으니까.


- 때가 왔구나.


그러니··· 응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이윽고.


- 사박.


일 층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


- 사박.


옷자락이 땅에 끌리는 소리.


본디 청각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았을 희미한 소리.


그런데도, 이 순간 그 무엇보다도 선명히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를 듣자, 가장 먼저 계단 맡의 애꾸눈 의원이 움직였다.


그간 책에 머물러 있던 시선이 떨어지고, 서둘러 자리를 옮긴다.


자세를 고치고서 머리를 숙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 사박.


층계참을 따라 한 사람이 내려온다.


짙푸른 색으로도 차마 덮어내지 못한, 붉은 기운이 서린 장포.


그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얼룩 한 점 없는 하얀 멱리.


상한 칼날에, 되려 흉흉한 행색을 갖춘 겸(鎌) 한 자루까지.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여들었다.


한 사람의 시선이 모두를 담아내었다.


그 사이에 언어는 필요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로가 누구인지, 어떠한 존재인지, 더불어··· 무엇을 바라는지를.


똑같은 원한과,


똑같은 증오와,


똑같은 재앙을 바라는, 기대.


자신을 향한 희망, 아니. 기망(冀望)을 담은 그 시선에···.


“그대들은,”


살신(殺神)은, 물음으로 답했다.


“복수를 바라나.”


작가의말

集: 모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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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랑(浪) 24.05.21 1,230 34 11쪽
15 기(起) +2 24.05.20 1,301 39 12쪽
» 집(集) +3 24.05.19 1,378 56 11쪽
13 소(甦) +2 24.05.18 1,410 51 10쪽
12 경(憬) 24.05.17 1,473 54 13쪽
11 강(降) 24.05.16 1,522 47 11쪽
10 모(侮) +3 24.05.15 1,628 55 13쪽
9 뢰(蕾) +2 24.05.14 1,761 57 12쪽
8 성(惺) +2 24.05.13 1,895 66 13쪽
7 자(諮) +6 24.05.12 2,144 6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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