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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41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08 12:50
조회
2,831
추천
88
글자
10쪽

하루 전.

DUMMY

바람이 거셌다. 지팡이가 없으면 한 발짝도 떼지 못했으리라.


걸음마다 콜록 하고,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때로는 그 정도가 너무 격해져 기침이 가라앉을 때까지 멈춰 서야만 했다.


분명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공씨세가 대문에 다다를 즈음에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겨우 도착한 노파는 문지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들 보러 왔어요.”


문지기는 침묵한다. 이 노파가 뭐라는 건가.


그러나 곧장 이어진 말에, 그는 이해했다. 동시에 오싹했다.


“우리 아들이 여기 갇혀 있어요.”


근래 공씨세가에 갇힌 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백무회의 연회에서 공자들의 독살을 꾀했던 그 흉수.


“아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성은 강 자에, 이름은 우 자를 써요. 우리 아들 좀 보게 해주세요.”


혹시 몰라 되물었고, 역시 그 이름이 나왔다.


그만한 악적에게도 어머니는 있는 모양이다. 간곡함이 서린 목소리에, 괜히 가슴 한구석이 미어진다.


“죄인은 만나볼 수 없소.”


하지만 문지기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죗값을 치르면 풀려날 거요. 집에 가서 기다리고 계시오.”


“우리 우가 그랬을 리가 없어요. 뭔가 잘못 아신 거예요. 개미 한 마리도 함부로 못 죽이는 아인 걸요.”


“정말 무고하다면 필히 가주께서 밝혀내실 거요. 이 안으로 들여보낼 순 없소.”


이쯤 타이르면 되겠지.


유달리 날이 추웠다. 온몸을 꽁꽁 싸맸음에도 틈새로 파고드는 칼바람에 피부가 따가웠다. 오죽하면 시전에 사람 한 명 안 보일까.


저 노파가 이 엄동설한을 버틸 리 없다.


적당히 기다리면 알아서 돌아가리라. 문지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아들 좀 보게 해주세요. 이 늙은이의 소원이라 생각해줘요.”


노파는 요지부동이었다.


“우리를 믿고 부디 기다려주시오. 한 번만 더 청하면, 공씨세가의 공정성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겠소.”


공씨세가의 공정성이라.


노파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자 없는 도기에 괜한 모함을 붙이던 총관을 기억했다.


주문 끊긴 공방에 구름처럼 불어나던 빚을 기억했다.


버티지 못해 도주할 적, 없는 돈을 긁어모아 관원 뒷주머니에 찔러줬던 때를 기억한다.


얼마 가지도 못하고 들켜 도로 마을로 붙잡혀 오던 순간을 기억했다.


고작 어렸을 때 아들이 비무에서 졌다는 이유로.


단지 그깟 이유로 가세를 깡그리 무너뜨린 세가의 독심을··· 노파는 기억하고 있었다.


도저히 싸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견뎠다.


그저 견디는 것 말곤 길이 없었다.


아들 하나는 지켜내겠다 다짐하며 겨우 키우고, 또 겨우 살았다.


그 다짐을 시험하듯··· 또다시 누명과 함정이 들이닥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절박해야 하는가.

도대체 얼마나 더 견뎌야만 하는가.


해묵은 좌절감에.


“아들을 불러줘요.”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간절함에.


“우를 볼 때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어요.”


노파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넘어갈 수 없는 문 앞에서, 오래된 고목처럼 추위를 버텼다.


황량한 바람 사이에 간간이 기침 소리를 섞으면서.


***


······.


가장 먼저, 목이 무거웠다.


목에 걸린 형틀이 무거웠다. 한기가 스며들어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나는 왜 묶여 있나.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나무 창살, 어둠, 틈 사이로 스며드는 미약한 빛. 지하의 공기가 서늘하다. 흙 위에 몇 줄 깔린 지푸라기가 내게 주어진 전부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


감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왜, 여기에.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빠르게, 정신을 잃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하루 동안 점소이 일을 하면 빚에서 일백 냥을 지워주겠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 백무회에 갔다.


객잔에서 술을 맞고 음식을 맞으며, 몇 번이고 묵묵히 다시 갖다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혹여 내가 누굴 죽이기라도 한 건가?


아니다. 살인의 기억은 없다. 일이 잘못될까 싶어 칼은 잡지도 않았다.


설령 잡았다고 한들 그 칼에 맞아 죽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상대는 대단한 세가의 소협들 아닌가.


누군가를 겁박하거나 위협한 기억도 없다.


그저 목숨을 칼끝에 놓아두고선, 이리저리 날뛰며 피하기 바빴다. 그런 게 죄가 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순간.


끼이이, 하고 감옥 문이 열렸다. 빛을 등지고 누군가가 걸어왔다.


“이거 미안하게 됐어, 강 아우.”


“공헌명···!”


공헌명. 그는 무안한 낯빛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다가가자 쩔그럭, 족쇄가 내 발목을 잡았다.


“진정하게. 자네가 결백한 걸 내가 왜 모르겠나?”


“도대체 나한테 뭔 짓을 한 거요!”


나는 창살을 붙들곤 있는 힘껏 흔들었다. 공헌명은 진정하라는 듯 양팔을 내뻗었다.


“이보라고, 나도 자네만큼이나 답답해. 나 한 번만 믿어줘. 그래야 자넬 도와줄 수 있어.”


내가 의심 섞인 시선을 거두지 않자, 그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내게로 다가왔다.


“일주일, 딱 일주일만 기다려주게. 그 뒤엔 곧장 풀어주겠어.”


공헌명은 창살 안으로 손을 뻗어 내 손을 맞잡았다.


“약속대로 일백, 아니. 이백 냥을 주겠네. 믿기 힘들겠지만 나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니라고.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줌세.”


공헌명의 얼굴은 짙은 음영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희미한 윤곽을 꿰뚫어 보려 애썼다.


“잘 듣게. 우린 이제부터 서로 말을 맞춰야 해.”


“···말을 맞춘다고?”


“닷새 후, 재판이 열릴 거야. 그때 자네 뒤에 적사회가 있었다고 해주게. 자네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그들한테 속았을 뿐이라고 말이야. 그럼 반드시 풀려날 수 있어.”


나는 침묵했다. 공헌명은 말을 이었다.


“진짜야. 이건 정말 적사회가 꾸민 짓이라고. 이 안휘에서 산공독을 다룰 자들이 그들 말고 또 누가 있겠나? 증거도 있고, 다 확보해놨어. 자네가 증언 한 번만 보태주면 다 해결되는 일이야.”


적사회(赤蛇會).


그들은 안휘의 지배자 자리를 두고 남궁과 다투는 거대 사파였다.


충분히 백무회를 음해할 만한 세력이었다. 분명 그럴 힘도, 의지도 있을 것이다.


어지러웠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또 무엇이 거짓이란 말인가.


“그 객잔에서 본 도련님들, 다 타향 사람 아닌가? 이 사건 끝나면 다신 볼 일 없는 인간들이라고. 강우라는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풀려났는지, 천하도 모르게 해주겠어. 나 공씨세가 공헌명이야. 그거 하나 못 해주겠나?”


“···참이오?”


“자넬 골려줄 심산이긴 했어도, 죽일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어! 내 말 한 번만 믿어주게.”


붉은빛.


날 향해 휘두르던 공헌명의 검은, 분명 내 목을 노리고 있었다.


피하거나 막지 않았다면 필시 그 자리에서 죽었을 테지.


혓바닥과 칼.


그 둘 중 무엇이 더 무거운지는 뻔했다. 그러나···.


“······.”


발목에 걸린 족쇄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일깨워주었다.


“알겠지? 잊지 말게. 이건 다 적사회 놈들 짓이라고.”


내 침묵을 긍정의 표현이라 생각한 건지, 공헌명은 그리 당부하며 감옥을 떠났다.


나는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무엇 하나 바뀐 것 없이.


다시금 정적이 찾아오자 하나둘 잡념이 떠오른다.


내가 이리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공헌명은 도대체 무엇을 꾀하는가.


그가 짠 음모 속에서 나는 왜 죽어야만 했나.


연회에 독을 푼 자는 누굴까. 그때 내가 객잔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온갖 상념이 거품처럼 피어오르던 그때.


- 곧 다시 만나지.


문득 엊그제 들었던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이유 모를 불길함이 확 치밀어 들었다.


왜 이 상황에서 그와, 그가 남긴 말이 떠오른 건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지금은···.


“······.”


지금은 그저 집이 그리웠다.


“어머니···.”


***


“제발 돌아가시오. 지금은 돌아가고··· 내일, 해 뜨고 난 뒤에 오시오. 응?”


“우리 아들··· 콜록, 우리 아들 데려와요.”


“이제 문 닫았다고! 당신 그러다 죽어!”


날이 졌다.


끼익, 대문이 닫힌다. 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다시 열릴 일은 없으리라.


그러나 문지기가 문을 닫으려는 그 순간까지 노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얼굴도, 팔도, 떨어져 나갈 듯 아프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단 한 발짝도.”


그 희미한 목소리에는 깊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문지기는 흠칫했다.


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창백해진 노파의 안색은 똑똑히 보였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사달이 날지도 모르지.


연민과 걱정이 피어오른다. 그것들은, 문지기를 갈등하도록 만들었다.


“큭···!”


하지만 그는 떠올린다. 얕은 동정 따윈 허락지 않는, 엄정하고 흉흉한 가내의 분위기.


섣불리 들여보냈다간 공범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나, 나는 모르오. 난 모르는 일이라고!”


저 연민에 넘어갔다간 무슨 화가 닥칠지 모른다.


“젠장, 난 분명히! 집으로 돌아가 쉬라고 말했소!”


저 노파의 아들은 흉악범이다.


설령 일이 잘못되어도···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다.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우를 볼 때까지 계속 기다리겠어요.”


“마음대로 하시오! 제기랄···.”


스스로를 애써 설득하며 쿵, 문지기는 문을 닫았다.


닫힌 대문은 장벽과도 같았다. 달빛조차 가로막는 그 앞에서, 노파는 여전히 서 있었다.


밤이 깊도록 계속 기침을 흘렸다. 콜록, 콜록. 그 소리는 일정하게 정적을 두드렸다.


눈앞의 대문을 두드리듯, 아들을 향한 애원처럼. 그러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잦아진다.


미약하고, 짧고, 답답하게. 불규칙하게 끊어지며, 흔들리는 불씨처럼 가늘게 이어지던 그것이···.


어느 순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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