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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649
추천수 :
1,979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12 21:50
조회
2,144
추천
67
글자
13쪽

자(諮)

DUMMY

늦은 밤, 청월루.


‘또 시작이군.’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이연석은 말없이 넌더리를 냈다. 도대체 싸움만 몇 번째 나는 건지 모르겠다.


저 소란이 멎을 때까지 절대 주방에서 나가지 않으리라. 그는 한 차례 두건을 고쳐 쓰며 다짐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화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하긴, 흑도가 세가 놈들하고 쿵짝이 잘 맞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며칠 전.


청월루주 양비혁이 골목길에서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연석 또한 사람들 틈 사이에서 그 현장을 보았다.


얼굴 가죽이 절반으로 찢겨나간 끔찍한 모습. 적사회 본가 독아단(毒牙團) 정도만이 본보기가 필요할 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였다.


시신을 수습한 직후, 적사회는 곧장 사람을 풀었다.


그냥 넘어가서야 면(面)이 서질 않았다. 회주의 점잔 뺀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방식의 도발은 도전이 아닌 모욕’이랄까.


‘허튼소리.’


한낱 기루의 주인이다. 그가 적사회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 건 사실이나, 이 정도로 유난 떨며 대우할 작자는 아니었다.


되려 그 악명을 생각하면 죽을 만한 놈이 죽었다 넘어가는 게 맞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미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


비자금.


‘소문으로는, 작은 마을 하나를 일 년 남짓 먹여 살릴 만한 액수라지.’


그 전부터 알게 모르게 말은 퍼져 있었다. 남궁과의 거래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던가, 일부러 외진 골목길에 있는 집 한 채를 통째로 사들여 비밀 금고로 쓰고 있다던가.


살인범을 쫓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놓고 사람을 풀 명분에 불과했다. 적사회가 진정으로 찾는 것은 양비혁이 숨긴 그 막대한 비자금이었다.


···여기까지는,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흑도(黑道)의 일이라는 것이 보통 그러하듯이.


“···네 이놈! 피붙이의 원수를 갚겠다 모인 의로운 이들에게, 무슨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거 뒤진 건 우리 사람인데 니들이 껴놓고선 뭔 개소리냐? 느이 세가 귀한 자식 죽인 게 여기 루주 죽인 놈하고 같다는 보장이 어딨느냐고?”


문득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쯧, 이연석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자기네끼리 싸우든 말든 솔직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저들이 피운 난리판을 뒤처리할 걸 생각하니 벌써 피로감이 밀려왔다.


루주가 숨긴 돈을 누가 찾아낼 것인가. 그리 흘러갈 듯 보였던 상황은 갑작스러운 정파의 개입으로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연씨세가. 남궁을 보필하는 다섯 방가 중 하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중단된 지난 백무회에서 둘째 공녀를 잃은 후, 그들은 줄곧 현장에서 학살을 저지른 범인을 쫓고 있었다고 한다.


가주까지 나서서 백방으로 수색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었다. 얼굴은 물론 온몸을 빠짐없이 가렸다고 하니 무슨 수로 쫓을 것인가. 그저 괴이한 형태의 낫을 썼다는 증언만을 겨우 확보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낫을 든 흉수가 사파의 루주를 죽였다. 해당 소식을 들은 직후, 연씨세가는 적사회에 협력을 요청했다. 말이 좋아 협력이지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었다.


세가에서 파견한 무사들이 수색 거점으로 삼고자 청월루를 점거했다.


적사회에게 있어선 더없이 불쾌한 일이었다.


대외적인 목적이 같은 만큼 거부할 명분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남궁과의 관계가 발목에 걸렸다.


겉으로는 적대할지언정, 알게 모르게 여러 방면으로 긴밀하게 협업하는 사이다. 애당초 적사회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던 것은, 남궁이 정파로서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를 그간 대신 처리해준 덕이었다.


그 남궁의 방가가, 수긍할 만한 이유를 들고 협조를 요청한다. 함부로 내쫓을 수가 없었다.


연씨세가 또한 이 사실을 아는지 안하무인에 가깝게 굴었다. 둘째 공녀의 죽음이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래서야 양측의 무인들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뭐, 내 알 바 아니지.’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이연석이 느끼는 것은 단지 약간의 귀찮음뿐이었다.


그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자기하곤 관련 없는 이야기라 여겼다.


그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던, 싸움판을 벌이던, 돈을 찾건 흉수를 찾건 간에··· 한낱 점소이인 그로서는 조금도 상관할 바가 아닐 테니까.


이미 수년 전에 싸우지 않기로 결심한 삶이었다.


검을 쥐고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았다.


이 강호에서 자기 있을 자리 하나는 따내었고, 작게나마 무리를 꾸리기도 했다. 낭인으로서 제 앞가림은 충분히 해냈다고 자평할 수 있으리라.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면, 저 밖에서 벌어지는 소란의 한 축을 맡았을지도 모르지.


허나 다시금 칼을 들 생각은 없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던 일류의 경지. 더불어 암만 사람을 베어도 벗어날 수 없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


누굴 죽여라. 납치해라. 병신을 만들어 줘라··· 표현이 고상하냐 천박하냐의 차이일 뿐, 하등 다를 바 없는 일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굴레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동했던 걸지도 모른다.


‘칼질로 밥 벌어먹을 생각 말고, 저어기 객잔 점소이 일이나 찾아보쇼.’


시전 바닥에서 걸린 시비. 다른 때 들었담 그냥 넘어가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때는.


넘지 못하는 한계에, 변치 않는 삶에 염증을 느끼던 그 시절에는.


- 부디 이 아비보단 오래 살아다오. 부탁이다.


···왠지 모르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애새끼 뒤진 게 자랑이고 권세냐? 시팔, 내세울 게 얼마나 없어서 그딴 걸로 행패야?”


“뭐, 뭐라···? 감히 무슨, 진정 여기서 사달을 내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유달리 크게 들려오는 고함이 이연석을 상념에서 일깨웠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역시 저런 진흙탕에서 발을 빼는 게 정답이었다.


말리는 시늉이나마 해야 하나, 차라리 슬쩍 빠지는 편이 나으려나. 어느 쪽이든 슬슬 움직이기 위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그때.


- 끼익.


삐걱대는 경첩 소리가 유난히도 컸다.


양비혁의 죽음 이후, 잠정적으로 손님을 받지 않던 청월루였다. 모두의 시선이 대문 맡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막 주방 밖을 살피려던 이연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은···.’


어쩐지 낯익은 모습이었다.


얼굴을 가린 멱리에 짙푸른 장포.


등에 멘 장대, 허리춤에 찬 검 하나.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특히, 자루 대신 슴베만 툭 튀어나온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야, 넌 또 뭐냐?”


이연석이 기억을 더듬는 그 순간, 무사 중 하나가 그 장포 차림의 불청객에게 다가갔다. 건들건들한 태도로 보아 적사회 측 사람인 것 같았다.


“밖에 현판 뗀 거 못 봤냐? 여기 장사 안 한다고. 눈치라는 게 있으면 시팔 당장 안 나가고 뭐-”


쌔액.


짧게 발하는 쟁연(錚然), 그와 더불어 무사의 말이 그쳤다.


잠시, 이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이 어느샌가 저 불청객의 손으로 옮겨져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슴베를 쥐고 있는 꼴에 이연석은 약간의 유쾌함마저 느꼈다.


- 끄르륵


찰나 동안 머무른 그 유쾌함은, 허물어지는 무사의 목에서 쏟아지는 핏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


삽시간에 공기가 뒤바뀌었다.


무사들 전부, 사전에 합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행동을 보였다. 말없이 경악하고, 그보다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일제히 울려 퍼지는 쇳소리. 칼날이 검집과 마찰하며 내는 금속음이, 수십이나 겹치며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었다.


“놈이지?”

“놈이다.”

“틀림없어.”

“조용!”


그제야 산발적으로 새어 나는 목소리들.


무사들 사이에 오간 그 짤막한 웅성거림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연석은 지금, 무사들 앞에서 천천히 쾌검을 거두는 자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양비혁을 죽이고, 백무회를 파했으며, 연씨세가의 둘째 공녀를 죽인 그 흉수.


“이 악적 놈!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당당히 발을 내디뎠느냐!”


묵직한 긴장감이 깔려 든 이 공기 속에서, 이번엔 연씨세가 쪽 무사로 보이는 자가 대갈(大喝)한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멱리가 낯을 가리고 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 얄팍한 천으로는 차마 감출 수 없었다. 깊은 밤, 손님이 없어 딱 어둠이 가실 만큼만 등불을 지폈기에 오히려 뚜렷했다.


혼백조차 꿰뚫어 보는 듯한, 푸르게 발광하는 시선이.


그제야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무(武)를 아는 자라면.”


한 손에는 칼날을, 다른 한 손에는 장대를 든 채 찰칵하고.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자그맣게 난 홈에 슴베를 끼워 넣어 겸(鎌)을 이루고, 선언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즉시, 이연석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난전이 벌어진 것 또한 그때였다.


낭패감, 병장기 맞부딪치는 소리, 고함과 비명.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혼란스럽다.


감정과 감각이 소용돌이친다. 이연석은 도무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질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뿐.


하지만 어떻게?


끄아악! 외마디 단말마가 귓전을 때린다. 지금을 노리라 외치는 다급한 고함이 닿았다.


빌어먹을, 환기를 위해 뚫어놓은 창은 도둑을 막고자 나무 창살로 둘러쳐져 있다. 숨이 막힌다. 옥에 갇힌 것과 진배없는 꼴 아닌가.


나갈 수 없다.


불규칙하게 섞인 소리가 한쪽으로 빠르게 기울 무렵, 이연석의 시야 한구석에 중식도 한 자루가 들어왔다.


갈등한다.


저 칼이나마 들어야 하나. 하지만 저걸 든다고 한들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몇 년간 나름대로 흑도에 몸을 담았다. 날붙이를 쓰는 일은 머리를 넘어 몸과 뼈가 기억했다. 허나 그것이 지금 소용 있을까.


놈은 지금, 그만한 힘을 갖춘 무인 수십을 썰어 재끼고 있는데.


절망적인 추론. 그 직후에 깨닫는다. 이제 겨우 일 다경 남짓 지났을까.


밖이 조용했다.


일 층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 속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다만 나지막한 발소리뿐.


그 소리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커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전신이 긴장으로, 극한의 공포로 죄어든다. 이연석은 식칼 따위 포기하고 구석으로 들어가 숨었다.


스륵, 스륵, 그 빌어먹을 발소리는 지푸라기가 나무 바닥에 쓸리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깟 자그마한 소리는 눈치조차 못 챘겠지.


그러나 온 신경이 예민해진 지금, 그것은 굉음보다도 더욱 끔찍했다.


제발 가라.


이쪽으로 오지 마라.


그러나 그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주방 문에 들어선 강우는 이연석의 앞에 나타났다.


두 명의 눈이 마주친다.


확실하다. 며칠 전 만난 사람이다. 이연석의 머릿속에 생각들이 흘러갔다. 합비엔 처음 온 건지, 어쩐지 벙벙해 보이던 게 왠지 신경 쓰여 말 붙인 그 청년.


조용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짙은 정적 탓에 이연석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우렁차다고 느꼈다. 소리를 죽이고 싶어도 오히려 커지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 알았더라면.


이대로 죽는 건가 싶은 예감에, 생각이 잘게 끊어지던 그 순간.


저벅.


강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등을 돌렸다.


당혹감,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저벅, 그 청년이 물러간다.


왜?


뭔데? 바깥 놈들 다 죽여버린 것 아니었어? 이렇게 간다고? 날 알아봐서?


정신이 얼얼하다. 풀어도 되는지 모를 긴장감에 몸이 떨린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말한 자신도 제대로 듣지 못할 만큼 자그마한 목소리. 그럼에도 답이 돌아온다.


“그대는 무(武)를 모르니까.”


더없이 나른한 목소리로 화답한다.


그 해답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무를 모르니까?


아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내가 묻고자 한 건 그것이 아니다. 죽을지도 모르지. 겨우 얻은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묻고 싶었다.


이연석은 질문했다. 묻지 않고선 배길 수 없었다.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요?”


그러자, 걸음이 멈춘다.


멀어지던 발소리가 그친다. 제자리에 우뚝 선다. 뒤늦게 공포심이 되살아난다. 괜한 걸 물었나? 간신히 잡은 구명의 기회를 놓아줄 만큼, 그 질문이 필수불가결 했던가? 그런데도···.


마음속 깊이 쌓인 응어리를 게워낸 듯한, 이 개운함이 느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그러게.”


그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게다.”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절묘한 때에 돌아온 대답.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와중에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에 무엇이 섞여 있는지를.


비웃음.


어쩐지, 대답한 스스로를 향한 듯한··· 짙은 비웃음.


이연석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다시금 들려오는 강우의 발소리가 계단 맡을 향해 멀어져감을 느낄 뿐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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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甦) +2 24.05.18 1,410 51 10쪽
12 경(憬) 24.05.17 1,473 54 13쪽
11 강(降) 24.05.16 1,522 47 11쪽
10 모(侮) +3 24.05.15 1,628 55 13쪽
9 뢰(蕾) +2 24.05.14 1,761 57 12쪽
8 성(惺) +2 24.05.13 1,895 66 13쪽
» 자(諮) +6 24.05.12 2,145 67 13쪽
6 람(爁) +10 24.05.11 2,808 8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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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틀 전. +7 24.05.08 3,123 96 13쪽
1 칠 년, 그리고 사흘 전. +10 24.05.08 4,664 11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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