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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5.1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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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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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풍속교화

DUMMY

제주읍성에 도착하여 보니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다행히 한 낮에 벌어진 사건이라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아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곳곳에 담벼락이 무너지거나 집이 기울여져 있었다.


제주목 관아에는 제주목사 노정과 고영후가 관아 밖에 나와 있었는데, 제주목사는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있는지 일사분란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고영후는 많이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별일 없으십니까?”


장군의 물음에 고영후가 대답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다냐?”


“지진이 발생한 것입니다. 땅이 흔들리는 것이지요. 땅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가끔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렇구나. 아주 정신이 없구나.”


“작은 지진이 더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밖으로 나오게 하고 오늘 밤은 집 밖에서 지내도록 해야 합니다. 혹시 지진해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해안가에 가까지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것인지 다른 곳에서 발생한 큰 지진으로 여기까지 흔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일단 주의를 해야 한다. 내일 까지는 조심하게 해야 하겠군.’


“대정현과 서제주에는 제가 사람들을 보내 놓았습니다.

정의현에도 사람을 보내서 피해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해야 하겠구나.”


고영후가 읍성의 군사들을 준비했고 장군이 몇 가지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며 출발시켰다.


“말을 절대로 빨리 달려서는 안됩니다. 빨리 달리다가 땅이 흔들리면 낙마를 할 수 있으니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절한 속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음날 새벽까지 여진이 몇차례 더 발생해 땅이 흔들렸다.


다행히 낮에 발생한 지진이 본진이었던 것인지 더 큰 지진은 오지는 않았다.


제주 서쪽지역이 진앙지가 가까웠는지 그쪽에 피해가 심해 집이 무너져 중상을 입은 사람들도 좀 되었다.


제주의 다른 지역은 담벼락이 무너 지는 등 피해는 있었지만 제주의 담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라 생각보다 심각한 피해는 없었고 물건이 떨어져서 다치거나 넘어져서 다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심하게 다친 사람들은 없었다.


나중에 노정이 말해 주었는데 육지에서는 최근들어 일년에 몇 번씩 지진이 발생하여 피해가 제법 있었다고 하였다.


‘지금 시기가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시기였던가?

내가 살았던 한국에서도 지진이 잦아지고 있긴 했었지.

그래도 일본에서 발생하는 그런 수준의 지진과 지진해일은 발생하지 않겠지?

한반도는 그래도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곳은 아니니까.’


그날 아침에 한번 더 작은 진동이 있은 후부터는 더 이상 지진이 발생하지는 않았고 장군과 제주목사가 적극 대처를 하여 금방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제주에서는 이런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었던 것인지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그런 두려움을 미끼로 혹세무민을 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노해서 폭풍우를 내렸고 땅의 신이 노해서 지진을 보냈다.

큰 굿을 해서 신령님을 달래야 한다.”


“말세가 다가왔다. 가진 것들을 부처님께 바쳐 정성을 보이면 미륵불께서 너희들을 구제할 것이다.”


이런 말에 속아 다음해애 파종하려고 남겨놓았던 곡식들까지 들고가서 굿을 하고 불전에 바치는 사람들이 며칠사이에 확 늘어났고 글 깨나 읽었다는 사대부들도 부화뇌동하기 시작했다.


‘뭐지 이 찜찜한 기분은···’


지진이 일어난 후 밤낮없이 재해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정을 시키던 장군이 뭔가 않좋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산마루 인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즐비하였고 곳곳에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이로구나!”


갑자기 옛 기억이 확 떠올랐다.


한국에 있을 때 어느 작은 교회를 타겟으로 한 적이 있었다.


교회라는 것이 여러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신실하게 성경을 연구하고 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목사님의 말씀을 추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진실된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뭔가 허전함을 느끼게 되어 새로운 것을 바라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주요 타겠이었다.


처음에는 교회 신도를 가장하여 성실하게 예배를 받다가 타겟이 정해지면 그 사람들을 성경공부를 빌미로 데리고와 그림과 비유등 여러 방식으로 교육을 하면 금방 빠져들어 믿음이 깊은 사람들일수록 더 쉽게 넘어오게 되고 신도의 일부분만 넘어오면 중소규모의 교회는 순식간에 장악이 되었다.


새성전교에서는 교회를 장악하는 순간을 그 교회 교인의 약 20% 정도가 넘어오는 시점으로 잡았는데, 그 정도가 되면 교회내 여론을 주도할 수 있고 넘어온 신도들이 다른 신도들 몇 명씩만 데려와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금 장군이 그런 기운을 이곳 제주에서 혹세무민하는 자들에게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혹세무민하면서 자기배를 불리던 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봉기를 일으킨 것도 결국 노여움을 불러일으켰다는 말들이 나올 것이고 종국에는 지금까지 장군이 만들어 놓은 혁명의 불길이 사그라 들 것이다.


장군이 즉시 노정과 고홍진을 만나서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재해가 발생하면 저런 굿판이 일어나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다. 불안하니 어딘가 기대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너희 할머니도 절에 시주를 하고 그러시지 않더냐?”


하지만 이런 재해가 발생하면 으레히 발생하는 일이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자 장군이 단호히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이 지금은 그저 백성들의 공포를 미끼로 자기들 배를 불리고 있지만 그 미끼가 약해지면 점점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려는 혁명의 의지가 퇴색되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강하게 단속을 해야 합니다.

벌써 구휼에도 지장이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본격적으로 그런 일이 보이기 시작할 때 움직이면 너무 늦습니다.”


장군이 계속 설득을 하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


“혹세무민을 이끄는 사찰과 신당들을 없애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야 합니다.”


이러한 혹세무민을 이끄는 일은 크게 두 곳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먼저 절간이었는데 제주에 큰 사찰이 세 곳 있지만 제대로 수행을 하는 중들은 드물고 결혼을 한 대처승들이 부지기수였고 기복신앙에 의지해서 자기 배만 불리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곳곳에 신당들이 넘쳐 났는데 이런 일이 생길 때 마다 제주도민들의 두려움에 편승하여 돈을 갈취하는 굿판을 벌이던 곳이 즐비하는 등 폐단이 극심하였다.


노정이 염려를 하면서 말했다.


“그 수가 엄청날 텐데 쉽게 감당이 되겠느냐?

그리고 제주 백성들의 원성을 살 수 있다.”


“군사들을 동원하여 일시에 제압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초반에 몇 명 정도가 넘어 갈 때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면 새성전교에서는 그 교회는 포기하고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던가.


고홍진이 말했다.


“우리들 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에는 유림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스님들도 활용을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제주 남쪽의 법화사는 그래도 괜찮은 스님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좋겠구나. 나름 선의의 경쟁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여 고홍진이 명도암 유림들을 설득하고 장군이 법화사로 가서 스님들을 설득하였다.


준비가 완료되자 각 진영의 군사들 수백명을 소집하여 절간과 신당들을 급습하여 사람들을 속여서 금품을 갈취하던 대처승들과 무당들을 잡아 들이기로 했다.


유림들은 신당쪽을 스님들은 절간을 맡아서 앞장서기로 했고 군사들은 뒤에서 물리력을 보조하기로 했다.


스님들의 대표로 나선 혜은 스님이 절간은 스스로 자정에 나서겠다고 의지를 표했다.


“유림들 손에 맡기는 것 보다는 우리 손으로 직접 하는게 낫지 않겠소?”


불교쪽은 제주읍성 서쪽에 있는 도근천 인근의 수정사를 먼저 처리하기로 하여 혜은스님이 젊은 승려들 수십명을 데리고 앞장서서 나갔고 군사들 백여명이 뒤를 따랐다.


수정사 앞에 선 혜은 스님이 이름과 다르게 과격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 절은 불법을 수호하는 곳이 아니고 도적들의 거처나 마찬가지다. 이런 자들 때문에 우리 승려들이 욕을 먹고 있다. 한꺼번에 들이쳐 대처승들과 그 가족들을 모조리 잡아 들여라!”


승려들이 몽둥이를 들고 일제히 뛰어들어가 대처승들을 때려 법당 앞마당에 꿇어 앉혔고 가족들과 딸린 식솔들을 모조리 잡아 들였다.


장군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따라 나왔다가 순식간에 정리가 되는 것을 보고 유림들이 맡은 신당쪽의 상황을 보기 위해 동쪽으로 말을 달렸다.


이곳은 뱀굴(사굴 蛇窟) 신당이 있는 곳으로 예전에 마을 동쪽에 있는 큰 굴에 사는 뱀에게 매년 처녀를 바쳤는데 중종때 서련이라는 판관이 뱀을 죽였다는 전설이 있고 그 뱀의 영혼을 모시는 신당으로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곳이어서 이곳을 본보기로 정했다.


장군이 현장에 도착해 보니 한낮이 되어가도록 다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당 밖에 서서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아니 어째서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젊은 유림들을 대표로 이끌고 있던 김계륭이 말했다.


“그, 그게··· 군사들이 신살을 받을까봐 두려워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장군이 즉시 말에서 뛰어내려 신당 문 앞으로 갔다.


문 앞에 심방(무당)이 나와서 외쳤다.


“네 이놈들! 신령님이 노하시는 것이 두렵지도 않으냐?

이 줄을 넘어 오면 반드시 신벌을 받을 것이다!”


장군이 코웃음을 치고는 칼을 뽑아 신당 문 앞에 드리운 금줄을 내리쳐서 끊어 내고는 외쳤다.


“만일 이로 인해서 신령이 노해서 벌을 내린다면 그 신살은 삼신인의 가호를 받는 내가 모두 받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혹세무민 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두려워하는 군사들이 있었지만 장군이 단호하게 선언을 하며 앞장서서 나가자 모두들 따랐다.


다른 곳에서도 적잖은 반발이 있었지만 모두 잡아들여 일부는 환속시키고 일부 죄질이 나쁜 자들은 무너진 담벼락 수리나 도로 정비 사업 그리고 성산포의 항구 건설 작업에 투입하였다.


수정사를 정리한 후 바로 큰 사찰인 원당사를 비롯 잡다한 작은 사찰들을 모두 없애고 제주 남쪽에 있는 법화사만 남겨 두었고 절노비들은 모두 제주목의 관노로 삼았다.


원당사는 구휼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기로 하였고 수정사는 건물을 허물어 삼성혈에 삼성전을 새로 지어 제주도민들을 달래게 하였다.


그리고 곳곳에 산재해 있던 신당들도 대부분 폐쇄하고 제주 남쪽의 광정당 하나만 남겨 잡신이 아닌 단군을 모시는 신당으로 만들고 신산마루에서 행해지던 굿들도 모두 금지시켰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유림의 선비들과 법화사의 스님들이 여기 저기를 다니며 미신의 타파를 설하며 풍속의 교화에 앞장섰다.


* * *


모든 일이 끝나자 제주목사 노정이 조정에 치계하였다.


“제주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나고 많은 민가의 담벽이 무너지거나 기울었고 특히 대정현과 제주목 서쪽의 피해가 심하였습니다. 다행히 모두 밖에 나가 있는 낮에 발생하여 큰 인명피해는 없었고 다음날 아침까지 땅이 계속 흔들리는 등 크고 작은 여진이 잇달아 밤새도록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불안함에 사람들이 밤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지진의 피해는 어느정도 수습이 되었지만 제주의 백성들의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신당과 사찰에서 혹세무민 하여 금품과 곡식을 갈취하는 사례가 속출하여 그들을 잡아들여 환속시키고 신당과 사찰을 여러 곳을 폐쇄하였고 일부 죄질이 나쁜 자들은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백성들이 있기도 하여 제주의 민심을 달래고자 수정사 건물을 일부 허물어 삼성혈에 삼성전을 건립하도록 하고 유서 깊은 신당의 입구에 문을 세워주는 지원을 하였습니다.


또한 고(故) 김진용의 제자들과 고전적, 문영후 등 제주 유림의 선비들이 적극 나서서 풍속을 교화하고 미신을 타파하는 등 제주에 유학이 왕성해졌습니다.”


* * *


항파두리 성 남쪽이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다그닥 다그닥


장군이 오랜만에 앞치마를 걸치고 칼을 잡았다.


노정과 고홍진 등이 여자들이 하는 일을 한다고 적극 만류를 하였지만 장군이 단호하게 말하며 계속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사람마다 하는 일에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남자도 필요하면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여자들도 글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의 구분이 생길 뿐입니다.”


장군이 이런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함이었기도 했고 지금 하는 요리가 중요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신당과 절간을 폐쇄한 후 어느정도 민심이 안정이 되기는 했지만 좀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서 장군이 제주를 몇 군데로 나뉘어 돌면서 잔치를 열고 있었다.


‘민심 안정에는 맛있는 것을 먹이는 것이지 최고지.’


그래서 지난번 재판을 하면서 압류해 놓은 목장의 소를 잡아서 먹일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먹여야 하는 입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소를 잡아 뼈와 머리를 고아서 국을 끓이니 국은 그래도 어느정도 돌아가는데 고기는 국에 뜬 몇 점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이렇게 양손에 칼을 잡고 난타의 리듬을 타고 있는 것이었다.


“고기가 다져 졌으면 야채를 다져주세요.”


고기를 잘게 다진 후에 야채를 다져서 섞어주고 조나 기장 등 잡곡등을 갈아서 섞고 소금, 마늘, 고추, 생강, 꿀 등으로 양념을 하고 거기에 잡내 제거용으로 오메기술도 섞어주었다.


“양념을 하였으면 미리 준비해둔 돼지 창자에 집어넣어 주세요.

중간에 적당히 한번씩 꼬아주어 길이를 조절해야 합니다.”


이시기에도 순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기 때문에 곧잘 따라 하였다.


“저보다 실력들이 좋으시네요. 이게 생각보다 잘 안들어가네요.”


오히려 이런 것을 처음 만들어 본 장군이 힘들어 하였다.


“자 이제 돌가마 안에 잘 걸어 줍니다.”


장군이 장인의 도움을 받아 허벅(물동이)만드는 가마를 응용하여 훈제를 할 수 있는 돌가마를 미리 만들어 두었다.


참나무 연기를 이용하여 장시간 훈제를 하여야 하므로 연기가 잘 지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를 하였는데 몇 번 실험을 하여 타지 않고 적당히 훈연이 될 수 있는 가마가 완성되었다.


돼지 창자가 많이 없어서 소 창자도 사용하여 굵은 소시지도 만들어서 선반을 만들어 올렸다.


“자 이제 불을 때겠습니다.”


반나절을 훈제를 하여 새로운 고기 요리가 완성이 되었고 일부는 숯불에 직접 굽거나 찌기도 하였다.


새로 만든 요리에 이름도 붙였는데, 이것 저것 잡다한 것들을 갈아서 손가락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긁어모을 소(穌)자를 써서 소세지(穌細指)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시지를 수레에 실어 잔치가 있는 마을로 날랐다.


잔치가 있는 마을에는 신분의 고하와 남녀노소를 떠나 모두 동등하게 먹을 것을 받았고 다만 나이가 많이 든 연장자들만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잔치를 통해 장군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앞에 나서서 연설을 하기도 하면서 제주의 여러 사람들과 만나 친밀도를 높이게 되었고 사람들은 장군의 생각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자연재해에 놀라, 혹세무민하는 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합니다.

앞으로 제주에서는 한자 대신 한글로 모든 일들을 처리하게 할 것입니다.

어려운 한자를 배울 필요가 없으니 베움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글을 몰라 억울한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교육에 대한 것도 이야기하고,


“지진이라는 것은 하늘이 노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땅과 땅이 부딪쳐서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뜨거운 용암 위에 떠 있는데 이리 저리 움직이다가 쌓인 힘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전 왔던 큰 비바람은 멀리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이곳으로 온 것인데 주로 여름에 자주 올라옵니다.

따뜻한 바다에서 물이 증발해 수증기가 되고...”


자연의 법칙에 대한 것도 알려 주기도 하고 혁명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자주 언급해 주었다.


“이번 대기근은 내년까지 계속될 것인데 제가 여러 곳에서 쌀과 먹을 것을 구해 오고 있으니 이번 겨울을 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20여년이 지나면 이 같은 재앙이 다시 닥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번 혁명을 꼭 완수하여 모든 백성들이 힘을 합쳐 그 재앙을 이겨낼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토지개혁이나 반상의 법도를 철폐해야 한다는 등의 직접적인 말들은 대놓고 하는 것은 삼가하였는데, 여러 마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오다 보니 괜히 민감한 말을하여 좋은 잔치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함이었다.


다만 말을 하면서 은근히 여기 저기에 섞어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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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구조작전 +1 22.06.28 1,182 24 20쪽
38 출판 기념회 +1 22.06.26 1,320 22 17쪽
37 천체 모형 +1 22.06.24 1,317 25 17쪽
36 미륵의 현신 +3 22.06.23 1,392 30 19쪽
35 청어 잡이 +1 22.06.20 1,414 31 17쪽
34 특급 수송 작전 +1 22.06.18 1,377 25 17쪽
33 역병을 다스리다 2 +3 22.06.17 1,357 27 21쪽
32 역병을 다스리다 1 +1 22.06.15 1,409 29 14쪽
31 삼고초려 +1 22.06.14 1,455 26 19쪽
30 Winter is Coming! +1 22.06.11 1,581 27 24쪽
29 살기좋은 제주 +1 22.06.09 1,615 29 15쪽
28 일대종사 +1 22.06.09 1,550 34 13쪽
27 해적소탕 3 +1 22.06.07 1,536 32 16쪽
26 해적소탕 2 +3 22.06.06 1,558 35 14쪽
25 해적소탕 1 +3 22.06.05 1,645 35 15쪽
24 천리행군과 졸업식 +1 22.06.03 1,632 38 15쪽
23 제주목사 노정을 파직(罷職) 하소서. +1 22.06.02 1,739 36 17쪽
22 출도자 색출 +1 22.06.01 1,644 43 17쪽
21 불금의 밤 +2 22.05.31 1,639 41 14쪽
20 작전명 고래사냥 +2 22.05.29 1,724 37 15쪽
19 멀리서 온 손님 +4 22.05.28 1,738 38 14쪽
» 풍속교화 +3 22.05.27 1,726 37 18쪽
17 군사조련 +3 22.05.26 1,813 40 14쪽
16 을나의 후손들 +1 22.05.25 1,868 39 15쪽
15 니가가라 나가사키 +1 22.05.24 2,009 36 20쪽
14 가짜뉴스 +1 22.05.23 2,103 42 15쪽
13 출생의 비밀 +5 22.05.21 2,249 46 17쪽
12 개작두를 열어라! +5 22.05.20 2,194 4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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