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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5.28 03:10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11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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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9
글자수 :
836,283

작성
22.07.3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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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추천
17
글자
22쪽

쫓는자와 쫓기는자

DUMMY

“오랜만에 형이랑 이렇게 다니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은데.”


강기석이 장군과 나란히 오르막을 오르며 말했다.


‘이놈은 덩치만 컷지 아직 순수하다니깐···

쫓기는 와중에 추억을 떠올리다니···”


“하긴 그동안 각자 맡은 일이 있으니 이럴 일이 잘 없긴 했지.

그때에는 막산이랑 셋이 여기저기 많이도 쏘다녔지.”


장군이 문득 정의현에서 봉기하기 전에 해가 뜨기 시작하면 그 전날 장군초에 내려 놓은 통발을 확인하고 낮 동안은 다른 동네로 다니며 청년들을 만나던 때를 떠 올렸다.


그때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매진을 하던 때라 주위 사람들 하나하나가 정말로 소중했었다.


하지만데 지금은 규모가 커 지고 각자 맡은 책임이 있는데다 살펴야 할 것도 많다 보니 예전에 느꼈던 끈끈한 그 무언가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에는 배는 고파도 형이랑 막산이랑 셋이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던 그 느낌이 정말 좋았는데···”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셋이 함께 일몰을 보던 곳에 같이 가자.

거기서 형제의 연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장군의 말에 강기석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꼭 하는 거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느냐?

그런데 지금은 배가 너무 고프구나.”


“하하하. 어제 부터 계속 걷고 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하지.”


첫날 산길을 달리다시피 하여 사십리를 이동하였고 둘째 날 동틀 무렵부터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산행은 이골이 난 사람들로만 데려와서 새벽부터 걸으면 하루 백리 정도는 쉽게 다니는 사람들인 데다가 길잡이가 좋으니 속도가 금방 금방 붙었지만 걷는 거리가 긴 만큼 금방 배가 고팠다.


“자, 잠시 쉬면서 아침을 먹고 가겠습니다.”


한시진쯤 걸어 해가 떠오를 때쯤 되지 벽운자가 일행을 멈춰 세웠다.


벽운자는 이곳 지리를 잘 아는데다 이런 경험은 훨씬 많기 때문에 전적으로 맡겨 놓고 있었다.


“둘은 북쪽 산정으로 가고 둘은 서쪽을 경계한다. 그리고 해가 떴으니 불은 피워도 됩니다.”


이 시기는 기근이 일상이던 때라 곳곳에 화전민들도 많고 유랑민들이 많아서 불피우는 정도로는 추적을 당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탈출하는 시간을 벌어 줄 필요가 있어서 조금씩 일부러 흔적을 내면서 내려가는 중이었다.


지금 장군과 함께 내려가고 있는 일행은 오십명 정도인데 전날 일부는 중간에서 헤어져 동쪽으로 웅치고개를 넘어가서 무주쪽으로 숨어들기로 하였고 나머지는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식사를 다 했으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다섯명은 내장산 방향으로 흔적을 남기면서 가다가 암자로 들어가도록 하고 나머지는 계속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이번에 장군을 구하려고 모인 자들 대부분이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온 당취들이라 나중에 복장만 바꾸어 입고 절간에 숨어 들면 쉽게 알아보기 힘들 터였다.


이른 아침을 먹고 한 시진 정도를 더 걸어 갈담천 북쪽의 장구목산에 도착하였다.


산 정상에서 개천 건너에 보이는 갈담역참 건물을 내려다보며 이집이 말했다.


“저 앞쪽에 있는 객사를 털어야 한다는 것이지? 너무 눈에 띄는 것 아닐까?”


벽운자가 대답했다.


“어제부터 계속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이길을 지나는 파발은 없었습니다.

아마 어영군들은 나주와 병영성의 군사들을 동원해 남쪽에서부터 수색해 올라올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남쪽이 막힐 것이니 그전에 말을 타고 사람을 보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군도 같은 의견이었다.


“맞습니다.

하루 빨리 쌍봉사에 사람을 보내고 병영성에서 군사가 빠진 틈을 타 병영성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내야 하니 서둘러야 합니다.”


아직은 신여철이나 장군일행 모두가 병영성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 서로 빨리 남쪽으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말이 있으면 그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병영성에 포로로 잡혀있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는지 강기석이 반색을 하면서 말했다.


“하긴 갈담 역사가 털렸다는 소문이 나면 병영성 군사들을 이곳으로 많이 보낼 것이니 사람들을 구출할 기회가 많이 생기겠군요.”


이집이 말했다.


“알겠다. 그럼 빨리 실행에 옮기도록 하자. 우리가 숫자도 많으니 그냥 들이치면 될까?”


진모리가 의견을 내었다.


“제가 강 위쪽을 건너가 접근한 다음 말을 훔쳐 달아나겠습니다.

역졸들이 쫓아오고 난리가 날 것이니 그때 다리를 건너서 치고 들어오시지요.”


이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다. 조심하거라.”


진모리가 먼저 산을 내려갔고 나머지 사람들도 산 아래에 내려가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역참에는 역졸들이 나와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말에 여물을 먹이고 난 뒤 말을 씻기고 있었다.


푸르르릉!


역졸이 초보인 듯 말이 뒷발로 바닥을 차면서 투레질을 하였다.


“어허, 말을 그렇게 다루면 안되지. 그러면 말이 싫어 하잖소.”


진모리가 지나가면서 한마디 툭 던지자 역졸이 말했다.


“말을 다룰 줄 아는 것이오?”


“내가 말을 다룬지 십년이 넘었소. 그 솔을 이리 줘보시오.”


역졸이 엉겁결에 솔을 건넸다.


“이렇게 살살 털이 난 방향으로 빗질을 해야하오.”


말이 조용히 있자 역졸이 화색이 돌았다.


“야. 대단하시오.”


“뭐 이정도 가지고··· 거기 고삐를 한번 줘 보시오. 내 다른 것도 보여드리겠소.”


역졸이 고삐를 건네자 진모리가 고삐를 쥐고 말을 어루만지면서 목도 긁어 주고 하였다.


“이것 보시오. 이렇게 말과 유대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오.”


진모리가 말을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옆에 말리려고 햇볕아래 놓아둔 안장을 들어 말등에 툭 얹었다.


“정말 말이 온순해졌군요.”


“내 다른 것도 보여주겠소. 말을 바깥 쪽으로 데리고 가야겠는데 괜찮겠소?”


역졸이 순순히 대답했다.


“물론이요.”


진모리가 말을 울타리 밖으로 끌고 나가면서 말했다.


“이것 보시오 나는 이렇게 말과 함께 걸어가면서도 탈 수 있다오.”


그러고는 말과 걸어 나가다가 번쩍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럼 이 말은 내가 잘 타겠소. 찰방 나리께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진모리가 말 고삐 한번 흔들자 말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역졸이 부랴부랴 쫓아오면서 말했다.


“어, 그거 가져 가면 안되는데··· 여보시오. 빨리 내리시오.”


주변의 역졸들이 우르르 나와서 크게 소리쳤다.


“저 사람이 말을 타고 도망 간다! 말도둑이다!”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찰방과 역리들이 밖으로 나왔다.


“뭔 소란들이냐?”


“저놈이 말을 훔쳐 달아나고 있습니다.”


진모리가 말 위에 뒤로 앉아서 가고 있다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찰방 나리. 말이 참 좋소. 고맙소.”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 앉아 후다닥 말을 달려 출발하였다.


“말도둑 잡아라!”


역졸들과 역리 등이 나와서 진모리를 쫓아 나가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장군 등이 개천을 건너 역사 건물로 뛰어 들어가서 찰방과 역졸 등을 두드려 패고는 포박하였다.


잠시 후 진모리가 말 뒤에 쫓아 가던 역졸들이며 역리들을 달고 돌아왔고 모두 잡아 들였다.


“나는 고장군이라고 하며 여기 계신 분은 전라 병사 이집 대감이시다.

나라의 운이 다하여 간사한 무리들이 권세를 함부로 부려 곳곳에 탐관오리가 들끓고 있다.

하여 이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큰일을 해야 하니 이곳의 말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양반 상민 천민 노비가 없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큰 일을 한 것이니 새 세상이 오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


찰방과 역졸들을 모두 묶어놓고 갈담역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말 다섯 마리를 끌고 출발하였다.


갈담역 아래쪽에 흐르는 섬진강 줄기를 건넌 뒤 벽운자가 진모리에게 설명하였다.


“여기 저의 도반인 금운자와 자담 스님이 이곳 지리를 잘 아니 셋이서 함께 가시면 됩니다.

지금 건넌 강이 섬진강 상류인데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십여리를 달린 다음 동남쪽으로 빠져서 이십리쯤 더 가면 다시 이 강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섬진강에 도착하기 전에 자담 스님에게 말을 주고 두 사람은 변장을 한 다음 남쪽으로 내려 가면 됩니다.”


“말을 다른 곳으로 몰고 간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자담 스님이 위험해 지지 않습니까?”


진모리가 걱정스레 묻자 벽운자가 말했다.


“자담 스님은 순창현에 있는 강천사 출신 승려라 중간에 말을 버리고 강천사로 들어가면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섬진강을 끼고 남쪽으로 가다가 옥과천을 따라가면 옥과현이 나오고 또 남쪽으로 가면 동복현입니다.

거기서 계속 남쪽으로 가다가 산하나를 넘으면 쌍계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빠르면 내일 저녁 늦어도 그 다음날 낮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설명을 듣고 진모리가 말에 올라 장군을 보고 말했다.


“저는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부디 무탈하게 오십시오.”


“우리는 여럿이 함께 내려가니 걱정하지 말아라.

오히려 내려가다 검문에 걸릴까 걱정이구나.”


진모리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호패며 옷이며 다 준비되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제가 이럴 때 양반행세 한번 해보지 언제 해보겠습니까?”


당취가 비밀 결사이다 보니 이런 경우가 많은 것인지 상당히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상인이나 승려, 부랑민 등으로 변장을 해오던 제주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허현과 상의해서 병영성에 갇힌 사람들을 잘 구해내야 한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꼭 무사히 구출해 내겠습니다.”


“어제 내려간 당취 승려들 몇명이 있으니 내려가다 여의치 않으면 너무 무리는 하지는 말아라.”


진모리와 금운자, 자담 스님이 출발하고 나머지 삼십여명은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부터는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가겠습니다.”


이미 갈담역에서 충분히 흔적을 남겼으므로 이제부터는 들키지 않고 모두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일행은 산속을 빠르게 이동하여 그날 밤이 되기 전에 오수천을 건넜다.


오수천을 건넌 다음은 순창과 남원 사이를 남북으로 길게 뻗은 풍악산 산자락으로 숨어 들어갔다.


* * *


장군 일행이 갈담 역참에서 말을 빼앗아 달아나고 있을 때 즈음 김체건을 비롯한 십여명의 훈련도감군과 금군들이 금산사로 들어왔다.


금산사의 주지인 도원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군관나리들께서 이 누추한 절간에는 어쩐일로 오셨습니까?”


김체건이 대답하였다.


“어제 역도들이 저희 도감군의 부상자들을 끌고 이곳으로 왔다는 제보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이라면 이쪽으로 따라오시지요.”


주지가 금산사의 요사채로 안내하였다.


“어제 그자들이 데리고 와서 치료를 해주고는 이곳에서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갔습니다. 다행히 위급을 요하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그자들은 언제 떠났습니까?”


“나리들이 오시기 얼마전에 서둘러 떠났습니다. 반각도 안되었을 것입니다.”


대부분 일행들은 그 전날 떠났지만 몇 명은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하여 이날까지 남아 있었다.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달아난 것 같습니다. 바로 추적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일단 부상병들부터 살펴보도록 합시다.”


도원 안내로 요사채에 도착하자 안에 스무명 가까이의 부상병들이 있었다.


말을 타고 있다가 말이 총에 맞아 낙마를 해서 떨어지면서 다리나 팔이 부러진 자들이 많았고 총에 맞은 자들도 좀 되었다.


김체건이 다리에 부목을 대고 있는 군관에게 말을 건넸다.


“파총 나리 괜찮으십니까?”


“다리가 부러져 이렇게 짐만 되는 구만.”


신여철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어영군들을 꾸려서 내려가는 것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허적과 유혁연 등이 적극 주장을 하여 훈련대장 유혁연의 관할인 훈련도감의 별무사들을 함께 내려 보내게 하였다.


물론 각 군영에 운용하고 있는 기병이 아주 많지는 않았기에 어영청에서 기병 일백을 꾸리기 힘들고 도성 방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현종도 허락을 하면서 은근슬쩍 금군도 몇명 붙여서 보내게 되었다.


이번에 훈련도감에서는 별무사 스무다섯명 정도가 내려왔는데 어영군과 급을 맞추기 위해서 특별히 종4품 파총을 대장으로 삼아 보냈다.


함거를 호송하는 대열의 선두에 훈련도감군이 배치되는 바람에 사망자가 다섯에 중상자도 열이나 나왔고 대장인 파총도 표적이 되어 총도 맞고 말에서 떨어져 다리도 다쳤다.


“총에 맞은 곳은 어떻습니까?”


“그냥 스쳐 지나간 정도라 좀 지나면 괜찮아 질 걸세.”


“바로 전라감영에 연락하여 의원을 보내겠습니다.”


“역도들 추적을 해야 할 것인데 체건이 자네가 별무사들을 이끌게.

자네 위의 군관들이 죄다 표적이 되어 죽거나 다쳐서 어쩔수가 없네.”


“알겠습니다.”


환자들을 살피고 밖으로 나와서 미륵전 앞 뜰에 앉아서 상의를 하였다.


“이자들이 응급처치를 제대로 해준 것을 보니 나쁜 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죽거나 다친 훈련도감 군사들이 많으니 복수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김체건이 말했다.


“무인들의 삶에서 죽음이란 언제나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들도 죽은 자들도 많았고 자기들의 할 일을 할 뿐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자들이 역도들이니 우리는 추포를 해야 할 뿐입니다.”


“반시진 전에 갔다면 이미 멀리 달아났을 것인데 추적이 가능 할까요?”


“일단 전주성으로 가서 전라 감영군을 보태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상의한 대로 기사장 영감이 병영성 군사들을 이끌고 아래쪽을 막을 것이니 우리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추적을 시작하면 됩니다.”


그때 밖에서 어린 승려 하나가 기웃기웃 하더니 다가왔다.


“군관 나리들. 주지스님이 나중에 보복할지도 모른다고 알려주지 말라고 했는데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무엇이냐?”


“저쪽 암자에 군관님과 같은 사람들이 갇혀 있습니다.”


암자로 올라 가보니 며칠동안 보낸 파발들이 모두 포박되어 있었다.


“어찌된 것입니까?”


“보시다시피 전주성으로 가는 도중에 그물에 걸려서 말은 꼬꾸라지고 우리는 이렇게 포박되어 있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그자들이 여태 이 앞을 지키고 있다가 얼마전에 떠났습니다.

그 놈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김제와 전주로 간 사람들 말고는 일부는 내장산 방면으로 내려간다고 했고 일부는 순창쪽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웅치를 넘어 무주쪽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러 곳으로 갔는데 추적이 가능하겠습니까?”


김체건이 대답했다.


“우리는 장군 일행만 추적하면 됩니다.

그자들의 목적지가 본거지인 강진쪽일 것이고 먼 길을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니 서쪽이나 남쪽을 택할 것인데 서쪽은 평지라 발각되기 쉽고 배편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니 필히 남쪽으로 갔을 것입니다.

최대한 빨리 전주성으로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 * *


그날 저녁 늦게 해남의 전라 우수영에 낙원 상단주 김만수가 방문하였다.


“마음고생이 심하실 것 같아서 위로를 하러 찾아왔습니다.”


김만수의 말에 전라우수사 이박이 반갑게 말했다.


“안 그래도 상의를 할 것도 있고 했는데 잘 왔네. 그런데 뭘 그리 많이도 싸가지고 왔나?”


관아 밖에 스무명의 상단 일꾼들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지게에 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수영 분위기도 안좋을 것인데 먹는 것이라도 잘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맙네. 안 그래도 병영성에 오십이나 잡혀 있는 덕분에 인원이 줄어 교대가 힘들다고 난리일세.”


“그러겠지요. 번을 서는 군졸들도 줄였겠습니다.”


“지켜야 할 곳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줄어들었으니 더 힘드는 것이지.”


이박이 옆에 있는 종사관에게 지시하였다.


“여기 낙원 상단주께서 먹을 것을 가져왔으니 가져가서 군졸들에게 나눠 주거라.”


"음식은 우리 상단 일꾼들에게 지고 가게 하면 됩니다.”


상단주의 말에 전라우수사가 말했다.


“고맙소. 오늘은 늦었으니 상단 일꾼들은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하게.”


“우수영 안에 상단 건물이 있으니 거기서 몇 명은 자고 나머지는 서문 밖에서 지내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종사관과 상단 일꾼들이 가고 나자 김만수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격조한 것을 보니 그동안 바빴나보구만. 며칠 전에 이세훈 대행수를 통해 한번 와 달라는 전갈을 보냈었는데···”


“그동안 부산포에 다녀왔습니다. 그쪽에도 비누를 보내달라고 해서 다녀왔더니 큰일이 생겼더군요.”


“나도 압해도 해적 소탕할 때까지만 해도 공도 세우고 좋은 일이 생기려나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걱정이 태산일세.”


상단주가 술잔에 감주를 한잔 따라 주었다.


“그렇겠지요. 이건 감주인데 술대신 한잔 드시지요.”


이박이 술처럼 술잔에 따라놓은 감주를 마시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식혜나 감주가 아닌 것 같은데···”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소주가 있어서 조금 섞어 봤습니다. 아무리 금주령이라지만 이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박이 육전을 하나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뭐 이왕 가지고 온 것 마시세.

그리고 오랜만에 이런 담백한 것을 먹으니 좋군 그래.

여기 군사들도 매일 어묵만 줬더니 이제는 제발 그만 달라고 하는구먼.”


“요즘은 어묵에 청어가 많이 들어가서 그럴 것입니다.

아무래도 흰 살 생선보다는 비린내도 많이 날 것입니다.”


“그렇겠지. 요즘 병영성 쪽은 어떤가?”


“그저께 성안에 불이 났던 것 말고는 별 일 없습니다.”


이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그게 사실이었단 말인가? 저녁나절에 누가 병영성에 난리가 났다는 말을 해서 입단속을 시켰었는데···”


“몇 명이 죽었다는 말도 있던데 그 뒤로는 잠잠합니다.

사실 병영성이 저리 되고 나니 우리 상단에 손해가 막심합니다.

우수사 영감께서는 무슨 좋은 방도가 없습니까?”


“나라고 무슨 수가 있겠는가? 없는 연줄도 찾아보려 하고 있는 중이지.”


“제가 알아본 바로는 주상께서는 고장군이라는 자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라고 하였는데 서인들이 역적으로 몰아세우려는 것 같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수사 영감께서도 서인이 아니십니까?”


이박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휴우~ 그렇게 말하면 그렇기는 하겠지만 한낮 무관이 어디 힘이 있겠소?”


“어디 연줄이 닿은 곳이 없습니까? 일이 커지면 저도 좀 잘 묻어 갈 수 있으면 합니다.”


“내의원 도제조로 있는 정치화 대감을 알고 있네만···”


“정치화 대감이라면 판중추대감 아니십니까?”


“그러면 뭐하나? 정치화대감이나 그 형인 정태화 대감이나 모두 당여에 적극적이지는 않으니 도움이 많이 되지는 않을 것 일세.”


“그래도 선이라도 만들어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박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러려면 금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네만···”


김만수가 좀 더 다가앉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적극 도와야지요. 그래서 저를 보시려고 하셨던 것이군요.”


이박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하하, 제네가 역시 말이 잘 통하는 구만.

자네가 도와준 덕분에 여기서 모아둔 것이 좀 있긴 하지만 그걸 로는 생색도 못 내니 말일세.”


“이왕 이렇게 된 것 당여에 적극 참석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나같은 무인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마는 뭐든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지금 압해도와 가사도 같은 곳에서 제주사람들을 쫓아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 일세.”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자들과 연결고리를 빨리 끊어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그자들은 꼬리 아니겠습니까?

이미 제주도 유민들이 임시로 인근 섬들에 들어가도 된다고 한 것은 조정에서도 허락한 일이고요.

게다가 그쪽에서 들어오는 돈도 쏠쏠하고 나중에 일이 잘 끝나면 그대로 영감께서 가져오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저도 그쪽에서 어묵이며 비누를 많이 가져다 팔고 있는데 갑자기 없어지면 곤란해집니다.

돈줄을 쥐고 있어야 끈이 끊기지 않는 법입니다.”


“역시 자네에게 물어보길 잘 했구만.”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나중에 크게 되시면 저를 잊지만 말아 주십시오.”


이박이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그럴리가 있겠나? 그런데 이 감주가 달달하니 좋구만. 술도 별로 안 취하고.”


“소주가 많이 없어서 맛만 나게 했더니 그렇습니다. 나중에 금주령이 끝나면 제대로 취하시지요.”


“허허허, 그러세나.”


김만수와 이집이 한참을 술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연줄을 만들까 상의를 하였다.


밤이 깊어지자 군관이 들어와 물었다.


“영감님, 오늘 밤의 군호를 무엇으로 합니까?”


“어디 보자, 서녘서(西)에 사람인(人)으로 하지.”


군관이 가고 나자 김만수가 말했다.


“아니 벌써 2경(밤 10시)이 다 된 것입니까? 늦었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박이 오랜만에 기름진 것과 술을 마셔서 그런지 번들거리는 얼굴을 하고는 맘에 없는 말을 하였다.


“시간이 늦었는데 오늘은 나랑 좀 더 마시다가 객사에 자고 가지 않고서.”


“저는 내일 아침 일찍 강진으로 돌아가 봐야 하니 영감님께서 내어 주신 상단 건물에서 자겠습니다.

하루 빨리 가서 자금을 융통해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그럼 잘 들어가시게. 오늘 대화가 즐거웠네.”


“유익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상단주 김만수가 떠나가고 난 후 통금을 알리는 소리가 들면서 우수영의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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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천체 모형 +1 22.06.24 1,319 25 17쪽
36 미륵의 현신 +3 22.06.23 1,394 30 19쪽
35 청어 잡이 +1 22.06.20 1,416 31 17쪽
34 특급 수송 작전 +1 22.06.18 1,380 25 17쪽
33 역병을 다스리다 2 +3 22.06.17 1,360 27 21쪽
32 역병을 다스리다 1 +1 22.06.15 1,413 29 14쪽
31 삼고초려 +1 22.06.14 1,460 26 19쪽
30 Winter is Coming! +1 22.06.11 1,584 27 24쪽
29 살기좋은 제주 +1 22.06.09 1,620 29 15쪽
28 일대종사 +1 22.06.09 1,555 34 13쪽
27 해적소탕 3 +1 22.06.07 1,539 32 16쪽
26 해적소탕 2 +4 22.06.06 1,562 35 14쪽
25 해적소탕 1 +3 22.06.05 1,648 35 15쪽
24 천리행군과 졸업식 +1 22.06.03 1,636 38 15쪽
23 제주목사 노정을 파직(罷職) 하소서. +1 22.06.02 1,742 36 17쪽
22 출도자 색출 +1 22.06.01 1,648 43 17쪽
21 불금의 밤 +2 22.05.31 1,643 41 14쪽
20 작전명 고래사냥 +2 22.05.29 1,728 37 15쪽
19 멀리서 온 손님 +4 22.05.28 1,743 38 14쪽
18 풍속교화 +3 22.05.27 1,733 37 18쪽
17 군사조련 +3 22.05.26 1,820 40 14쪽
16 을나의 후손들 +1 22.05.25 1,874 39 15쪽
15 니가가라 나가사키 +1 22.05.24 2,013 36 20쪽
14 가짜뉴스 +1 22.05.23 2,108 42 15쪽
13 출생의 비밀 +5 22.05.21 2,255 4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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