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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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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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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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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광장을 벗어난 병사들은 의기양양한 기세로 성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틈바구니에서 바르톨은 병사들의 태도에 격렬한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뒤면 난잡하고 더러운 전투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지만, 바르톨이 보기에 병사들은 그런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물론 그들은 흥분해 있었고, 또 달아올라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곧 벌어질 전투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군중 속에서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던 바르톨은 문득 본대에서 걷고 있는 자신의 동료를 발견했다.

후위대에 있던 바르톨은 본대의 병사들을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것이 군대의 행군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바르톨이 느끼기에 그것은 행군이라기 보다는 축제의 행렬이나 행진에 가까웠다.

실제로 바르톨이 무리하게 병사들을 가로질러 갔음에도 그 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르톨의 접근을 알아챈 동료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바르톨은 동료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르톨은 심려하며 물었다.


"자네 걱정되지도 않나?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진단 말이네."


"응? 그야 그렇지만 상대는 어차피 베르미들이잖나. 수가 좀 많다곤 들었지만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지. 주변을 둘러보게 바르톨.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는데 그깟 베르미들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동료의 태연한 답변에 바르톨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르톨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문지기 소속이 아닌 시청의 행정병이라는 점과, 또 현재 진군하고 있는 거의 모든 치안대원들이 성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두 가지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바르톨은 어째서 그들이 이토록 태평하게 행군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르톨이 생각하기에 지금 치안대원들은 창검을 지닌 수천 명의 인파가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그 상황 자체에 들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전투에 대한 긴장감이 전혀 없는 것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았다.

현재 병사들은 두려움이나 공포는커녕, 반대로 의용심이나 정의감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위험에 빠진 시민을 멋지게 구해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테고, 그 상상이 쉽게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르톨은 그것이 지독하게 오만한 생각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심지어 무벤의 치안대원들은 제대로 창검을 휘둘러본 적도 없다.

사람이 많은 도시일수록 더 많은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무벤은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임에도 그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도시다. 무벤은 피오 교단의 수호 아래에 있으며, 가장 악독한 범죄자들조차 교단의 미움을 사는 일에는 난색을 표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인간사에서 범죄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는 한다. 다만 중범죄가 일어났을 경우에도 무벤의 치안대원들이 활약할 기회는 일절 없다. 그럴 경우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수도사들과 신성 기사단의 몫이다.

무벤의 모든 시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치안대원들의 주 업무는 주취자를 안전하게 귀가 시키거나, 혹은 골목을 쏘다니는 꼬마 악동들을 안전하게 부모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 정도다.

바르톨은 되물었다.


"자네는 뭔가 착각하고 있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고작 베르미 몇 마리가 아닐세. 나는... 나는 그것들을 직접 목도했네! 이건 말 그대로 전쟁이네! 여기 있는 병사들 전부가 한 순간에 고꾸라질지도 모른단 말이네!"


"무슨 말을 하는 겐가? 그야 이것은 전쟁이지. 도시를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 말이네. 그러니 참전하는 일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닌가."


거기서 바르톨은 대화를 포기해버렸다. 바르톨은 그 이상으로 대화를 이어갈 시 동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르톨은 주변을 살폈다. 병사들은 모두 그 동료와 마찬가지로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더 대화를 이어갔다면 동료와, 주변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병사들은 바르톨을 겁쟁이로 치부해버릴 것이 뻔했다.

바르톨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전쟁의 기묘한 속성에 대해 깨달았다.

요컨대 전쟁이란, 그것을 직접 겪은 세대에겐 더없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자란 후대에겐 오히려 은근한 동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치안대원들의 부모는 종교전쟁을 겪은 세대였고, 치안대원들은 정확히 후대에 속하는 세대였다.

치안대원들은 매일 같이 그 전쟁이 얼마나 장대했고, 그 전쟁의 목적이 얼마나 숭고했으며, 또 그 전쟁을 수행한 인물들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듣고 자랐을 것이다.

또, 바로 그런 이유로 지금 치안대원들은 자신들이 맥동하는 역사의 일부분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 흥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바르톨은 시무룩해졌다. 그곳엔 지독하게 많은 인원이 있었지만, 그중에 자신의 심정에 공감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얼마 걷지 않아 상황은 급변했다.

광장을 벗어나 첫 시가지에 진입했을 때 선봉대 쪽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인파 탓에 비록 선봉대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르톨은 선봉대가 베르미 무리와 조우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선봉대에서 시작된 소란은 본대를 거쳐 차츰 후위대까지 전해졌다. 그러자 그때까지 의협심으로 가득했던 분위기가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병사들 사이로 조금씩 전염되고 있는 그 감정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바르톨은 자신과 공감할 수 있는 수천 명의 병사를 얻었다. 바르톨은 그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우울해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바르톨의 혼란과는 관계없이 병사들은 계속해서 진군했다.

그리고 시가지를 지나 주거지의 초입에 다다랐을 때 병사들은 이제 완전히 주눅 들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전 시가지에서 선봉대에 있던 병사들의 첫 감상은 그저 베르미의 수가 생각보다는 많다는 정도였다. 병사들은 베르미들의 수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깐 뿐이었다.

시가지에서 병사들은 인간들이 흔히 베르미를 퇴치하는 방법, 다시 말해 발로 휘휘 걷어차거나, 간혹 뛰어오르는 놈들을 손으로 내치는 것으로 그들을 비교적 손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주거지에서 병사들은 더 이상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주거지의 초입에 선 병사들은 베르미들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맨 앞의 베르미를 발로 걷어찬 병사는, 발을 놀리는 그 짧은 순간에 다른 베르미가 덮쳐 온다는 사실에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머지않아 선봉대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그 병사와 같은 일을 겪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베르미 퇴치 방법을 고수하던 병사들은 결국 그 시점에서 창과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거지를 벗어나 성벽 앞에 다다랐을 때, 병사들 중 웃는 낯을 하고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성벽을 바라보며 병사들은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때쯤 병사들은 더 이상 베르미들이 생물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성벽을 까맣게 뒤덮은, 동시에 계속해서 성벽 위로 울컥울컥 솟아나고 있는 베르미들은, 지나치게 범람해버려 제방을 아득히 넘어버린 파도나 해일처럼 느껴졌다.


여태 조금씩이나마 전진하던 선봉대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 시점에서 병사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영웅이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본능적으로, 병사들은 영웅이 될만한 인물은 그 장소에 유일하게 한 사람 밖에 없음을 느꼈다.

선봉대와 본대 그리고 후위대와 바르톨이 한꺼번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세상 물정을 도통 모르는 어린아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두려운 것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했다.

후위대의 끝자락. 병사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두 추기경이 공인하고, 또 시장이 직접 임명한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베르미의 해일 앞에서 병사들은 제발 그가 영웅에 부합하는 인물이길 기도했다.


*


토비는 전방을 한번 관찰한 다음 길버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자식들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래 길버트, 뭔가 준비해둔 전략이 있겠지?"

"딱히 없습니다."


길버트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토비가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자 길버트는 다소 뻔뻔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이건 기습입니다 토비. 느긋하게 전략을 짤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애초에 기습이 아니지요. 게다가 선봉대와 본대 그리고 후위대를 그 빠른 시간 안에 편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찬사를 받을 일입니다."


"그래 그래. 네 노고는 잘 알겠다 이 자식아. 하지만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맨 뒤에서 저들이 파도에 휩쓸리는 것을 지켜 보자는 말이냐? 네 영지에서 벌어졌던 것과 같은 상황이니 같은 방법으로 저것들을 막으면 될 것 아니냐."


"첫날에 저희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성벽을 수복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한 채 그저 도망치기 바빴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운이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베르미들은 그나마 해가 약간 저물어갈 때쯤 습격해왔고, 그 덕에 영지가 괴멸하기 전에 물러났으니까요."


길버트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결국 토비가 참지 못하고 으르렁댔다. 길버트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길버트는 타이르듯 말했다.


"듀라트 영지에서는 첫날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여기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저희 영지에는 없던 것이 여기에는 있으니까요."

"없던 것이라면..?"

"토비 당신 말입니다."


토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버트는 후위대의 맨 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이 보이십니까? 이곳엔 당신과, 또 다른 아돌프들이 있습니다. 성벽을 올라가는 계단은 선봉대의 인간들이 뚫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래서 하는 부탁입니다만... 토비군 당신이 아돌프들을 이끌고 성벽 위까지 길을 뚫어줄 수 있겠습니까? 병사들이 올라갈 수 있게 말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거라면 가능하다고 해두지. 하지만 굳이 내가 저 놈들을 이끌 이유가 있는 거냐? 네가 이 도시의 사령관이니 그냥 네가 직접 지휘하면 될 일이잖냐."

"이유야 있습니다. 첫째로 저는 인간이고, 둘째로 저들은 아돌프이며, 마지막으로 저는 아돌프를 지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토비군에게 묻겠습니다. 토비군은 만약 생전 처음 본 인간이 사지로 뛰어들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고민에 빠진 토비는 그러나 잠시 후 뒤통수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비는 못마땅한 투로 얘기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무래도 내가 하는 편이 낫겠군. 젠장 털이 얼마나 더러워질지 가늠도 안되는군."

"감사합니다."


곧 토비는 길버트의 옆에서 벗어났다. 후위대 쪽으로 걸어간 토비는 그곳에 아돌프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잠시 후 토비를 포함해 다섯 명의 아돌프가 원을 그리고 섰다.

토비는 그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네 명 중 자신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아돌프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토비는 그 사실이 아돌프들을 지휘하는데 있어서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아돌프들 사이에서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대신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토비는 그 부분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믿기로 했다.

토비는 네 명의 아돌프 중에 자신보다 서열정리에 많이 도전하거나, 혹은 롭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것과 같은 치열한 경험을 한 아돌프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왔다기엔 그들의 털은 너무 도담했다.

네 아돌프는 토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곧장 길버트의 말을 하달하려던 토비는 잠시 머뭇거렸다. 토비는 그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얼마간 토비는 인간들이 군대에서 서로 어떻게 부르는지 곱씹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고민하던 토비는 이내 그런 것들은 그냥 집어치우기로 했다. 토비는 일반적으로 어느 아돌프가 낯선 아돌프를 대할 때 하는 것처럼 서두를 뗐다.


"나는 토비다. 다들 멋진 갈기를 가지고 있군. 음, 그러니까... 내가 임시로 너희들의 지휘를 맡게 됐다. 저기 보이는 우리의 대장이 영 쑥스러움이 많아서 말이지."


어색함 탓에 토비는 약간 쭈뼛대며 말하고 있었다. 네 아돌프는 그런 토비의 모습에 싱긋 웃었다. 토비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이어 말했다.


"에잇 젠장할..! 좋아. 그냥 본론만 말하자고. 우리들이 성벽 위까지 길을 뚫어줘야 할 것 같다. 저 선봉대의 비리비리한 놈들은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전할 말은 그게 전부야. 그런데... 혹시 이중에 불만 있는 놈 있냐?"


한 아돌프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실제로 불만이 있는 아돌프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토비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갈기를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그러고선 정중하게 질문했다.


"어, 만약 내 명령을 따르는 것이 불만이라면, 이중에 다른 녀석이 대장을 맡아도 돼.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런 귀찮은 직책을 떠맡아준다면 내 쪽에선 대환영이지."


손을 든 아돌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장 자리에는 우리들 중 아무도 관심이 없어. 네 말대로 그것은 귀찮을 뿐이니까. 너는 경험도 꽤 많아 보이니까 네가 하면 될 테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 아돌프는 동의를 구하듯 남은 세 아돌프를 한번씩 바라보았다. 모두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토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대장이 되는 것이 불만이 아니라면... 뭐가 불만이지?"

"불만이라고 할 것은 아니야. 하지만 네 명령을 따르기 전에 말해두고 싶은 것은 있지. 우선 우리들은 치안대원이 아니야. 우리들은 각자 무벤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거기까지만 말해도 돼.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군. 맨입으로는 안된다는 말이지?"

"이해가 빨라서 좋군."


마지막 답변이 끝난 뒤 토비는 주저 없이 큰 목소리로 컨트 시장을 불렀다. 길버트 옆에 서서 불안한 시선으로 전장을 주시하던 컨트 시장이 토비의 곁으로 뛰어왔다.

곧 다섯 명의 아돌프가 컨트 시장을 둘러싸고 섰다. 다섯 덩치들에게 둘러싸인 컨트 시장은 방금 전보다 훨씬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토비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네가 이 도시의 대장이지?"

"대장은 아니지만... 비슷하긴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거기서 토비는 의도적으로 허리를 숙여 컨트 시장의 얼굴 바로 옆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대로 씩 웃자 토비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토비는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건 강요가 아니라 순수한 제안이다. 자. 우선 저길 한번 봐라."


토비가 성벽을 가리켰다. 컨트 시장은 손톱 끝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성벽 근처에서는 참담한 미증유의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었다. 컨트 시장은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서 다시 토비에게 고개를 돌렸다. 컨트 시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토비를 쳐다보았다. 토비는 자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으로 빌어먹을 장면이지. 아쉽게도 길버트는 병사들의 힘 만으로는 절대 성벽을 수복하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


"예? 길버트씨가 말입니까..? 그럼 저희들은 어떻게..."


"바로 그 얘기를 하러 너를 불렀지. 잘 들어봐라. 정말로 우연찮게도 이곳에는 실력 좋은 아돌프 해결사들이 다섯이나 모여있다. 네겐 더없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


그쯤에서 토비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해결사라는 직업은 적절한 보수 없이는 움직이지 않아. 그것이 업계의 규칙이지. 방금 전에 길버트는 우리들에게 성벽으로 가는 길을 부탁했다. 그 부탁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지. 갈기가 더러워지는 것은 둘째로 자칫하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또..."


"무...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보수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예, 드리고 말고요. 제 사비로 부족하다면 시민들에게 모금해서라도 원하시는 만큼 지불하겠습니다."


몇 가지 확답을 받은 후 컨트 시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다섯 명의 아돌프가 남았다. 토비는 이것으로 만족하냐는 얼굴로 네 명의 아돌프를 차례로 번갈아 보았다. 네 명의 아돌프는 모두 만족한 것 같았다. 처음에 손을 들었던 아돌프가 말했다.


"확약을 받았으니 서둘러 움직여 볼까.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네 뒤에 있는 저 길버트라는 인간은 우리 털을 뽑아버릴 기세로군."


그제서야 토비는 자신이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토비는 뜨끔한 심정으로 뒤돌아보았다. 그 아돌프의 말처럼 길버트가 초조함과 미세한 분노가 담긴 얼굴로 토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토비는 크게 한번 헛기침한 뒤 앞으로 성큼 한발 내딛었다. 토비는 기세 좋게 외쳤다.


"자 가보자고. 저 빌어먹을 것들을 밟아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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