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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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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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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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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바르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신 상태가 지극히 의심스러운 두 승마자와의 거리가 200큐빗쯤 남은 지점에서, 갑자기 그들의 말과 썰매가 크게 휘청였다. 옆에 있던 바르톨의 동료가 외쳤다.


"저 놈들... 줄을 끊었군!"


동료의 말처럼 썰매 한 쪽에서 끊어진 줄이 허공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자신을 붙잡고 있던 질량이 사라지자 순간 오른쪽 말이 중심을 잃고 크게 비틀거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말은 다행히 중심을 잡은 듯했다. 그대로 멈췄다면 좋았을 테지만 말은 여전한 기세로 성문을 향해 달렸다. 동료는 바르톨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성문이네 바르톨! 일단 성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나!"


"그...그렇지!"


동료의 말에 바르톨은 그제서야 직업적 소명의식을 떠올렸다. 말썰매는 도무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대로 놔두면 성문을 통과해 시가지 어딘가에 들이박을 게 분명했다.

무벤의 시청에서 매달 꼬박꼬박 봉급을 받고 있던 바르톨은 자신이 나서야 하는 순간임을 직감했다. 바르톨은 빠르게 판단을 끝마쳤다. 바르톨은 뒤돌아보며 외쳤다.


"이보게들! 성문을 닫아!"


도르래 앞에 있던 병사들은 물론 바르톨의 부하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성문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었으므로 이의는 나오지 않았다. 도르래가 돌아갔고 성문이 닫혔다. 바르톨과 동료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 섰다.

그사이 상황은 꽤 많이 변모해 있었다. 말과 썰매는 이제 완전히 분리된 채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승마자들이 필사적으로 한쪽 고삐를 당기고 있어서 두 말은 좌우로 쭉 갈라졌다.

썰매는 한쪽 줄을 먼저 잘라낸 바람에 무게 중심이 엇나간 듯했다. 썰매는 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동시에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바르톨은 잠시 그 썰매에 타고 있을 탑승자들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했다. 아마 그들의 세계는 지금쯤 끔찍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탑승자들에게 애도를 보낸 바르톨은 잠시 후 실질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바르톨은 정면과 성문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성문을 닫으라고 지시한 과거의 자신을 후려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바르톨은 어떻게 자신이 그런 멍청한 명령을 내렸는지 의아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성문을 닫은 바람에 바르톨과 두 동료는 미친 말과, 회전하는 썰매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을 받으며 바르톨은 달려오는 것들을 관찰했다. 승마자들에게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말을 멈추기 위해 분전하고 있었다.

문제는 두 마리의 말 쪽인 듯했다. 거품을 물고 있는 두 말은 이미 흰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르톨은 관찰을 마쳤다. 그리고 그 모든 관찰이 가능할 정도의 거리가 되어버렸다는 점을 깨닫고 절망했다.


바르톨은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썰매는 그나마 피하기 수월해 보였다. 썰매는 이제 자의적으로 멈추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고, 그래서 진행 방향을 추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굴러오는 같은 질량의 돌멩이와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말이었다. 바르톨은 미친 것이 분명한 두 말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정문 주변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길을 닦아 놓은 탓에, 몸을 숨길 만한 엄폐물도 일절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던 바르톨은 문득 한 마리의 말과 눈이 마주쳤다.

물론 흰자만 그득한 눈이었고, 더불어 바르톨에게는 말의 심중을 헤아리는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바르톨은 눈이 마주친 순간 그 말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요컨대 그 말은 가장 가까이 있는 물체와 자신의 머리통 중 어느 쪽이 더 단단한지 시험해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바르톨의 머리에는 오로지 그 두 단어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은 다시 기승을 부려 지독하게 느릿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흘리던 바르톨은 결국 왼쪽을 선택했다.

왼쪽으로 몸을 날리려던 바르톨이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불행하게도 바르톨은 그 순간, 아주 예전에 들었던 상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요컨대 말이라는 생물은 눈 앞에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따라간다는 상식이다.

바르톨이 체념하기 직전, 뒤에서 동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바르톨! 뭐하고 있나! 어서 이리 오게!"


돌아 보자 동료들은 성문과 성벽의 틈 사이에 박혀 있었다. 평소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움푹하게 안으로 파인 곳이었다. 설계자의 실수가 분명한 그 쓸모없는 구조물이 그 순간 바르톨에게 마치 성역처럼 느껴졌다. 바르톨은 헐레벌떡 뛰었다.

마침내 성벽 틈에 도달한 바르톨은 그러나 더 큰 문제에 직면했다. 동료들 사이로 몸을 집어 넣으려던 바르톨은 당황하며 물었다.


"...자네들 좀 더 안 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나?"


요청을 하긴 했지만 바르톨은 그것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좁은 틈은 이미 두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동료는 대답 대신 바르톨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들은 전방에서 다가오는 말처럼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바르톨은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꼭 알 것만 같았다.

얼마 전 출산한 동료는 '너는 먹여 살릴 자식이 없잖냐'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결혼한 동료는 '너는 처가 없잖냐'에 해당하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바르톨은 납득했다. 동료들의 무언의 언질은 타당했다.

누군가 반드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세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한 사람이 감내하는 편이 낫다. 아무래도 그 편이 불행의 총량이 적을 것이다.

바르톨은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료들이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얼굴로 마주 고개를 끄덕였을 때, 바르톨은 소리치며 동료들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허리 숙여 이 자식들아!"


바르톨은 동료들의 머리채를 잡고 아래로 숙였다. 다만 틈 바깥으로 끌어내지는 않았다. 바르톨은 낮아진 동료들의 뒷덜미로 발을 올렸다.

그 시점에 동료들은 바르톨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몸싸움을 벌이다가 자칫 틈 밖으로 삐져 나갈지도 모를 일이어서, 동료들은 순순히 바르톨에게 협조했다.

동료 두 명이 허리를 숙이자 바르톨은 그들을 밟고 올라섰다.

이내 벽과 한 몸이 된 바르톨은 위태로운 자세에도 불구하고 틈 밖으로 슬쩍 얼굴을 내밀었다. 평소보다 훨씬 높아진 시야로 바르톨은 성문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했다.


성벽과 50큐빗 남은 지점에서 두 승마자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바르톨이 보기에 그것은 적절한 선택 같았다. 말은 이제 거의 습보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전력질주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야 지금 뛰어내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말에서 떨어진 두 승마자는 몸을 둥글게 말고 양 손으로 뒤통수를 감쌌다.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진행 방향으로 몇십 큐빗 정도 데굴데굴 굴렀다.

그 사이 썰매와 승마자를 전부 잃은 말이 더욱 빠른 속도로 내달았다. 두 말 중 한 마리가 정확히 바르톨과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바르톨은 기겁하며 상체를 집어 넣고서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잠시 후 콰직-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고, 이어서 풀썩 하는 무거운 것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르톨은 다시 틈 바깥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말은 성벽에 머리를 박고 절명한 듯했다. 남은 한 마리의 말은 저멀리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무사한 것 같았다. 회전하던 썰매는 도중에 여러 지형지물과 부딪힌 듯 반파되어있었고, 아마 그 덕에 적잖이 감속된 것 같았다.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었다고 판단한 바르톨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바르톨은 승마자와 썰매 탑승자들이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섯 사람은 비틀거리고, 또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곧장 바르톨에게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르톨은 그들의 면면을 바로 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거지꼴의 두 사람은 남부인인 듯했고 사제복을 입고 있는 세 사람은 북부인인 듯했다.

세 사제 중 비상하게 덩치 큰 남자가 바르톨 앞에 우뚝 섰다. 남자는 위압감에 움츠러든 바르톨에게 명령조로 외쳤다.


"성문을 여시오!"


순간 바르톨은 넙죽 명령에 따를 뻔했다. 그만큼 위엄 있는 몸집과 목소리였다. 하지만 바르톨은 자신의 위치를 상기했다. 아무튼 경비병의 임무란 신원 미상의 불온한 여행객을 검문하는 일이다. 바르톨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통행증을 제시해 주십쇼."


바르톨의 사무적인 대답에 다섯 남자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바르톨은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히 보면 남자들은 하나같이 숲에서 페루스를 만난 사람처럼 초조하고 다급해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꼭 머리에 나사가 몇 개쯤 빠져버린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때 거지꼴의 남자 중 한 명이 윽박질렀다.


"닥치고 성문을 열어!"


난데없는 무례한 발언에 바르톨은 속에서 오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바르톨은 방금 전보다 다소 불퉁하게 대답했다.


"통행증이나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당신네들은 너무 수상하잖습니까."


바르톨의 두 번째 대답이 끝나자마자 스릉-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제복을 입은 세 남자 중 가장 앳된 남자가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는 검 끝을 바르톨에게 향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르톨을 노려 보았다. 바르톨은 그 남자가 무슨 말을 꺼낼지 알 것 같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당장 성문을 열어 이 자식아! 그렇지 않으면 죄다 베어버리고 가겠어!"


그쯤되자 직업적 소명감이나,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 혹은 받은 만큼 일해야 한다는 양심 같은 것은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다.

바르톨은 두 명의 거지와 세 명의 사제들이, 대체 무슨 연유로 이 공공연한 중립 도시의 경비병에게 이렇듯 위협적으로 행동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때 불현듯 바르톨은 다섯 남자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각기 인종과 덩치와 인상과 행동거지마저 전부 다른 그들은, 그러나 전부 초록색의 더러운 점액질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바르톨은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절명한 채 누워 있는 말 역시 온통 초록색 액체로 물들어 있었다.

바르톨은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는 검고 얇은 나뭇가지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이전까지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 나뭇가지는 다섯 남자의 옷과, 쓰러진 말에도 더러 붙어 있었다.

바르톨은 손을 뻗어 바닥에 있는 것 하나를 집었다. 바르톨은 한쪽 면에 돌기가 솟아 있는 그 특이한 나뭇가지를 매만지며 말했다.


"경비병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중죄입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피오 교단의 관리 하에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금지됩니다. 아, 세 사제분들께선 신분증이 없더라도 수도원 소속이라는 것이 증명되면 통과하실 수 있습니다. 어쨌든 무벤에는 피오 뿐만 아니라 디스토니아의 수도원도 있으니까요. 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무벤은 큰 도시니까요."


사무적으로 대답한 바르톨은 그러나 다섯 남자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섯 남자는 바르톨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바르톨은 그들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바르톨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멀리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바르톨은 멍하니 그것들을 관찰했다.

다음 순간 바르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르톨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선 검은 나뭇가지와, 몰려드는 검은 물결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후 다섯 남자가 다시 성문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바르톨의 표정은 그들과 완전히 똑같아져 있었다.

바르톨은 그때까지 어리둥절하게 서 있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당장 성문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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