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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마루] 님의 서재입니다.

용언 쓰는 잠입 경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윤
작품등록일 :
2024.07.17 10:19
최근연재일 :
2024.08.28 19:0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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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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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수 :
228,931

작성
24.07.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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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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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6. 혈석 (1)

DUMMY

16. 혈석 (1)


어지럽다.

꿈인지 기억인지 모를 것들이 아른거린다.


‘저건?’


내 눈앞에 있는 건, 나였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린 내가 분명히 보였다.

아, 이건 기억이다.

나는 저 더러운 반 팔 티를 입은 코찔찔이 시절을 기억했다.

보육원에 들어간 나이가 5살이었나?

그때 덩치가 큰 놈들이 괴롭혔던 때였다.


“악마!”


그놈들은 내게 돌을 던졌다.

악마라고, 그렇게나 때리고 돌을 던졌다.

지들도 우리 세계를 침략한 이계인들 주제에.

부모에게 버려진 건 똑같은 주제에.

하지만 돌에 맞고 피가 흘러도 어린 나는 제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삼키는 채였다.


‘근데 내가 왜 맞고 있었더라?’


딱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른거리는 풍경은 마치 그것을 잊지 말라는 듯, 나를 더 이전 기억으로 끌어내렸다.


‘내가 뭘 잘못 했었지?’


어지럽다.

땅이 꺼지듯 모든 것이 어둠 속에 빠진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났다.

익숙한 목소리지만 얼굴이 떠오르진 않았다.

한쪽은 여자고, 다른 한쪽은 남자고.

그 사이 어린아이인 나는 입을 막기엔 팔이 너무 짧다.

그래서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를 향해.


“싸우지 마!!!”


‘명령’했다.

네 개의 눈이 나를 돌아본다.

작디 작은 내게 겁을 먹은 모양이다.

둘은 어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중 여인 쪽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마.


그건 분명히 저주였다.

그래, 지금 이 꿈인지 기억인지 모를 것들은 전부 내가 받은 저주고 난 그것을 잊어선 안 된다.

속죄해야만 하니까.

악마같이 저주받아 태어났어도 그 속죄가 끝날 수 있도록, 어지럽게, 나는 더······.


#


“···떳떳하게, 큭!”


눈을 뜨자마자 복부 쪽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맞아, 난 그 인섹터한테······.’


스륵-


“음?”


하지만 붕대를 풀고 보니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벌써 흉이 진 상태였다.


“뭐지?”


다 나아서 흉이 질 때까지 사경을 헤맨 걸까?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나는 서둘러 주변을 살피고 내가 누운 간의 침대 옆 책상에 있는 핸드폰을 주었다.


“하아.”


하루, 아니 밤낮으로 보면 이틀이 지난 상태였다.

분명 이틀 안에 회복할 상처는 아니었는데······.


“음?”


핸드폰 옆엔 메모가 하나 있었다.


- 어디 좀 나갔다 오마.

- 나가지 마라.


반장이었다.

그제야 내가 뭘 하다가 이 지경이 됐고 지금 상황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간부라는 놈 하나 처리하고······.”


조직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을 찾았고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확실히 올라가기로 했다.

그게 바로 간부를 치는 일이었고, 상대 조직인 청두파의 보스를 끌어 내리는 방법이었다.


“인섹터 하나가 죽었지.”


하지만 이우람은, 그 병신이 일을 그르쳤다.


“제길.”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다.

결국 이우람이 임해찬 부장이 얘기했던 쉬운 길을 선택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청두파 놈들이 남은 말단 간부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또 2인자가 배신했다는 건 무슨 말이지? 아니, 그 전에 운반책이 죽었으니 큰일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정신을 차렸어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5일.”


하지만 중요한 건 몸은 회복됐고,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뿐.

그러니 가만히 누워 반장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란 소리였다.


“운반책이 죽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어차피 큰일은 벌어질 거고, 그때까지 기반을 무너뜨려야 해. 일단 나가서 청두파 쪽 마지막 간부 놈을 잡아야지.”


어차피 할 일은 같다.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것뿐.


“그렇게 청두파를 무너뜨리고 적송 본사로 간다.”


놈이 어디 숨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불은 지펴졌고, 반드시 찾아내 쳐야 한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붕대를 풀고 옷을 입었을 때였다.


끼익-


“역시나 벌써 움직이고 계시네요?”


웬 젊은 여자 하나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누구······?”

“의사에요. 야매이긴 하지만.”


그녀는 흰색 패딩을 입고 있었고, 특이한 건 패딩 뒤쪽으로 날개가 돋아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반쯤 잘린 채였지만.


“천족?”

“······.”


천족이라면 중국 쪽 부자 놈들한테 죄다 팔려 갔다고 들었는데.

그런 천족 여자가 왜 여기 있으며, 왜 의사인 거며, 왜 야매인 건지 물어보려 했지만, 아무쪼록 그녀가 빨랐다.


칙- 치직-


그녀는 곧장 내 붕대 근처로 와서 담배를 물었다.

붕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상태를 보는가 싶더니, 연기를 내 얼굴에 뿜었다.


“이게 무슨 짓······.”

“당신네 반장님께는 신세를 좀 져서. 냄새 안 나죠?”

“뭐?”

“내가 지금 뱉은 담배 냄새.”


그러고 보니 냄새가 나질 않았다.

아니,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닌데.


툭-


그녀는 내게 다가와 셔츠 단추를 하나 풀고.


투드득-!


그대로 주욱 찢었다.


“이, 이 시발?”

“바깥쪽은 멀쩡한데, 아직 회복하려면 멀었어요. 일단 앉아서 내 말 들어요.”


그녀는 그렇게 반쯤 벗은 나는 두고 왕진 가방처럼 생긴 걸 책상에 내려놨다.

그 가방엔 ‘적송’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반장 지인인 건 알겠는데,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설명을······.”

“아, 내 이름은 ‘엘, 리’에요.”

“엘리?”

“아뇨, 그냥 ‘리’라고 부르면 돼요.”


그녀는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서 분명 언젠가 맡아봤던 향이 올라왔다.

시큼하고, 뭔가 탄 것처럼 메케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위급한 상황이니 당연히 이것도 썼을 거예요.”

“나한테 뭘 썼다고?”

“네, 아직 당신 피에 ‘혈석’이 돌고 있다는 소리죠.”


가방 안에 있는 건 거즈에 쌓인 정체불명의 붉은 돌이었다.

그리고 난 그 말을, 한 명의 죽음에서 똑똑히 들었다.


“이게 그 운반책이 옮기고 있었다는 물건이라는 거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나는 의자에 다시 앉아 손을 뻗었고, 엘리는 가방 문을 닫았다.


“아직, 돌고 있으니까.”


그녀는 손가락을 빙빙 돌려 내 가슴, 정확히 심장 쪽을 쓸었다.


“우리······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는 나를 눕혔다.

내 목덜미로 팔을 뻗으려 했지만, 닿기엔 짧았다.


텁-


“네가 우리 반장이랑 무슨 부적절한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텐 안 통해.”


나는 그녀의 가느다란 팔목을 잡아 위로 올려 들었다.


“큿!”

“천족들이 팔려 간 이유가 ‘잠자리에 좋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확인할 시간이 없거든.”


사실 경찰 시험을 준비하며 이계인을 공부한 터라 알고 있긴 했다.

그들이 가진 스킬은 ‘독성의 중화’.

즉, 함께 잠자리에 들기만 해도 체내에 있는 독성이 전부 사라지고 피로 회복도 된다는 말이었다.


“우리 천족이 가진 재능을 좀 발휘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는 걸요?”


그녀는 팔목이 아픈지 잠시 주무르다 다시 담배를 피웠다.


“지금도, 일하러 온 거고.”

“일?”

“반장님이 부탁한 일이 있어서, 그 전에 당신 상태도 좀 보려고 한 거예요.”


아무쪼록 이런 사무실까지 대놓고 천족이 온 걸 보면 반장이 손을 쓴 건 확실해 보였다.


“반장이 뭐라고 했는데?”

“앞으로 당신이 할 ‘큰일’에서 혈석에 관한 설명이 꼭 필요하다길래.”


그녀가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말해 주는 게 그녀의 일이란 뜻이었다.

이를테면 이게 계단에 올린 첫 발자국이랄까.


“좋아. 혈석이라는 게 뭔지 알려줘.”

“난 누워서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한데요?”

“시끄럽고.”


칙- 치직!


나 역시 담배를 물었다.

역시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야매 의사가 들고 다닐 정도면 그렇게 중요한 물건도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당신들 말로 천족이니까요. 가까이 있으면 담배 냄새도 꽃향기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죠.”


이건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내가 알고 있는 천족은 가까이만 가도 스킬 덕에 독성을 가진 모든 것들이 제 작용을 못한다고 들었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가방 안에 들어있는 붉은 돌의 향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천족의 스킬에도 냄새가 나는 게, 혈석이라는 게 그만큼 독성이 심하다는 거야?”

“바보.”

“그럼 뭔데?”


그녀는 가방을 책상 아래로 떨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이건 마약이에요.”


마약이라고?

그럼 지금 청두파가 옮기려는 물건이 이 마약일 뿐이라는 소리인가?


“마약이야 대통합의 계절 전에도 있었어. 그런데 그것 때문에 경찰이든 이계인이든 조폭이든 달려들어서 이 난리를 피우고 있다고?”

“이건 보통 마약이 아니니까.”


엘리는 다시 한번 깊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녀가 뿜는 담배 연기는 회색보단 흰색에 가까웠다.

그게 꼭 향초처럼 느껴졌다.


“이계인이 사망하면, 아주 드물게 시신에서 이 혈석이 나와요. 체내에 있는 ‘이계 인자’가 응축된······.”

“자, 잠깐! 이계인이 죽으면 몸에서 이런 돌이 나온다고?”

“그래서 우리들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혈석’인 거긴 한데. 중요한 건 그게 아녜요. 이계인이 죽고 남긴 이 작은 돌멩이가 당신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가 더 큰 문제지.”


마치 게임 안에서 몬스터를 잡고 나오는 전리품과 같은 돌.

나는 이 돌의 작용에 관한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1세대.”

“뭐라고요?”

“스킬이 없는 사람도 스킬을 갖게 해주는 거지? 이 혈석이······.”


혈석(血石)

이계인들의 말을 그대로 해석한 것이긴 했지만, 아무튼 피처럼 붉은빛을 띠며 흉흉한 기운을 뿜는 작은 돌멩이.

그 정체는, 스킬이 없는 인간 역시 스킬을 갖게 해주는 마약.


“시발, 내 생각보다도 더 구린 방법이었네······.”


즉, 내가 아는 그 뒷세계의 1세대들이 스킬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이 혈석을 통한 것이라는 소리고.

그들은 이 혈석을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이계인을 죽였다는 뜻이었다.


“후우, 물론 심한 환각 작용이나 ‘광폭화’ 증상을 일으켜서 나 같은 천족이나 취급할 수 있는 물건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하.”

“당신처럼 이계 인자가 발현돼서 스킬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게 그럴 거예요.”


드디어 큰 그림이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날, 이우람이 시비를 털 때 나타난 트롤 역시 반장도 모르는 ‘광폭화’가 진행됐었고 매캐한 향이 나며 눈이 붉지 않았던가.


“스킬을 갖게 해준다는데, 인간들한텐 부르는 게 값이지 않겠어요?”

“그랬겠지.”

“하지만 역시나 이계인이 죽어야 나오는 거니까. 당연히 불법이긴 했고.”

“왜 트롤 주제에 혈석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약이 돌고 있다는 건 확실하고, 그래서 현장을 관리하던 반장 역시 그 ‘큰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거고, 그것 때문에 본사에서 임해찬 부장을 불렀던 거고······.”

“임해찬 부장은 혈석이 돌고 있는 인섹터들의 굴을 조사, 혈석을 챙김과 동시에 인섹터 하나가 청두파 운반책으로 있다는 걸 알았고. 그들의 거래를 망쳐서 청두파를 쓸어버릴 생각이었어요. 물론 운반책을 죽이는 과정에서······.”

“이우람이 눈이 돌아버린 거지.”


이우람 이 병신같은 새끼.

운반책이 옮기던 혈석을 보고 눈이 돌아버린 게 틀림없었다.


“나가야겠어.”


아무쪼록 그걸 이우람이 어떻게 쓰든 말려야 했다. 이건 우리가 맡을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서는 나에게 엘리는 더 무시무시한 말을 뱉었다.


“지금 반장님이 쫓고 있는 그 물건이라는 건 제가 들고 다니는 혈석보다 더 귀한 거니까.”

“뭐?”

“청두파는 이계인으로부터 100% 확률로 혈석을 뽑아낼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이제 수요를 맞출 수 있게 공급이 안정화될 거라는 뜻이죠. 그리고 적송과 반장님이 쫓고 있었던 건 그 샘플이라는 소리랄까?”

“인간이, 혈석을 생산할 수 있는 자체적인 기술을 만들었다는 거야?!”

“네, 앞으로는 이계인을 죽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큰 그림이 정리되는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건 내 생각보다도 훨씬 ‘큰일’이다.


“모든 인간이 스킬을 쓰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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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언 쓰는 잠입 경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18. 혈석 (3) 24.08.01 58 1 11쪽
17 17. 혈석 (2) 24.07.31 61 0 12쪽
» 16. 혈석 (1) 24.07.30 65 1 12쪽
15 15. 한 명의 죽음 (5) 24.07.29 68 1 11쪽
14 14. 한 명의 죽음 (4) 24.07.28 68 1 11쪽
13 13. 한 명의 죽음 (3) 24.07.27 70 2 11쪽
12 12. 한 명의 죽음 (2) 24.07.26 74 2 11쪽
11 11. 한 명의 죽음 (1) 24.07.25 80 2 11쪽
10 10. 경찰에서 깡패까지 (5) 24.07.24 84 2 11쪽
9 9. 경찰에서 깡패까지 (4) 24.07.23 89 4 12쪽
8 8. 경찰에서 깡패까지 (3) 24.07.22 95 4 12쪽
7 7. 경찰에서 깡패까지 (2) 24.07.21 124 5 11쪽
6 6. 경찰에서 깡패까지 (1) 24.07.20 151 4 11쪽
5 5. 식구 24.07.19 158 5 11쪽
4 4. 스카우트 (3) 24.07.18 193 5 12쪽
3 3. 스카우트 (2) 24.07.17 223 6 11쪽
2 2. 스카우트 (1) 24.07.17 364 7 11쪽
1 1. 시시한 이야기 24.07.17 756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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