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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마루] 님의 서재입니다.

용언 쓰는 잠입 경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윤
작품등록일 :
2024.07.17 10:19
최근연재일 :
2024.08.28 19:0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665
추천수 :
65
글자수 :
228,931

작성
24.07.29 18:00
조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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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15. 한 명의 죽음 (5)

DUMMY

15. 한 명의 죽음 (5)


철컥-


문을 걸어 잠그고 구두는 벗지 않은 채 내부로 들어갔다.

원룸.

작은 창에 쇠창살이 달렸고, 그 사이로 빛이 새어 시체에 닿았다.


“시발······.”


싸움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피곤?

이 작은 공간에서 숨을 쉬기가 버거울 정도로 공기가 무거웠다. 나는 그 무거운 상태에 순응하듯 주저앉았다.


“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인색터는 새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쥐며느리 같은 종인 것인지 척추를 타고 이어진 등껍질 때문에 목 옷깃 부분이 약간 트여 있었다.

그리고 카라를 따라 죽 이어져 떨어지는 단추 사이로 그의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후우······.”


피 냄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언가 죽어나는 냄새도 아니었지만 확실히 불쾌한 냄새가 이 방안에 진동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검은 액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따듯했다.


‘인색터를 죽일 때 외피 강화를 쓰기 전 입 안에 칼을 넣고 한 번에 끝내는 방식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정신 차려.”


운반책은 죽었다.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결론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정신 차리라고.”


주방에 있는 싱크대에 물을 틀어 얼굴을 비볐다.

머리가 뜨거워 머리카락까지 다 적셨다.

그리고서 벽에 기대 있는 시체 옆에 앉았다.

아, 생각해 보니 왜 이렇게 피곤한 건지 깨달았다.


“머리카락 붉은색이 다 안 빠졌어.”


내 ‘스킬’을 써서 그런 거였다.


“시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칙- 치칙-


“후우.”


그리고선 조금 전 공장에서 어이없게 스킬을 사용했던 과정을 떠올렸다.


“총이지.”


결국 총부터 시작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많고 그걸 뚫느라 너무 정신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 상태로 내게 겨눠진 총구를 보고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스킬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하.”


막상 죽음에 직감하고 나니 여지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밀려드는 모멸감을 짙게 빨아 입안에 삼키고, 또 뱉었다. 회색 연기가 참 많이도 뿌옇게 흐렸다.


“후우, 시발······.”


마치 계단을 차례차례 오르는 것처럼 스트레스가 쌓였다.

수인들이 착취당하는 꼴을 봤고. 그걸로 투기장을 열었던 놈들의 웃음을 들었고.

나 역시 이 바닥에 구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를, 겨눠진 죽음이 폭발시켰다.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없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놨으니, 자연히 스킬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생길 것이다.

고작 말단 간부라는 놈이 총을 가지고 있었으니 청두파 대가리까지 치려면 죽음도 각오해야만 하리라.

마치 지금 내 옆에 있는 운반책처럼.


“후우······.”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대로 이 일은 운반책을 죽은 걸로 끝이고.

이우람은 본사 라인을 임해찬으로 잡고 나는 반장과 함께 또 퇴역인가?

아니,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걸까?


“정말 시시한 이야기야.”


‘너무 깊게 들어온 걸까? 이 세계에······.’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정신 차려. 제대로 하기로 했잖아?”


나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일어났다.

담배 하나를 다시 불붙여 운반책 시체의 발 사이 쪽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명령했다.


“일어나.”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멸감? 자책감? 혼란? 그 모든 건 잠시 꺼둔다.

이번 일은, 끝까지 간다.


스스슥-


머리카락이 다시금 붉게 물들고 혀가 타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 검은 연기가 내 입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일어나.”


꿈틀-


그리고 시체는 명령에 반응했다.


“이, 이게 무슨······.”


내 스킬에 이 세계가 붙인 이름은.


‘완전명령(完全命令).’


듣는 이가 어떤 상태이든, 또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용언(龍言)이라고 들어봤어? 대통합의 계절 이전에 드래곤이 바다에서 터져 죽기 전에 골치 아팠던 게 이것 때문이라고 하던데.”

“예, 예? 당신은 누구······.”

“잘 들어. 지금 내가 네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


나는 내가 던져둔 담배를 인색터의 찢어진 입에 꽂고 다시 말했다.

명령을.


“난 청두파를 쓸어버릴 작정이야. 네가 ‘물건’을 옮기는 운반책이라는 것도 알아. 그러니까 내게 말해.”

“뭐를요? 당신은 누구······.”

“2주 뒤에 있다는 그 큰일. 그게 뭔지, 언제 어디서 일어나는지.”


운반책은 자신의 팔을 들어 움직이려고 했고 난 그걸 잡아 막았다.


“저, 저는 모릅니다.”

“모르는 건 대답하지 않아도 돼. 그럼 다시 물을게. 네가 옮기고 있던 물건이 뭐야!”


붉게 타오르는 혀.

그리고 그에 맞춰 붉게 물든 머리와 붉은 기운이 발산되는 두 눈이 뜨겁다.

상대는 내 얼굴을 보고 마치 진짜 용이라도 본 것처럼 공포를 집어삼켰다.


“저는, 저는, 저는······ 혈석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혈석? 그게······ 크흑!”


순간, 마치 눈에 칼이 들어온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와 두 눈을 감았다.

입안은 꼭 숯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기침이 났다.


“맞아, 난 혈석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런데······ 일이 틀어졌어.”

“콜록!”

“일이, 내 일이 틀어졌어. 2인자가 날 버린 거야.”

“컥! 2인자라고?”


나는 기침을 이으며 겨우 고개를 들어 운반책을 바라봤다.

그는, 아니 그것은 담배 연기를 마구 빨아들이며 부서진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왜 죽었어야 하는데!!!”


제길, 시작이다.


“나는······.”

“그만!”


그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내 스킬인 ‘완전명령’은 그 듣는 이가 누구이든, 내가 말한 것이 무엇이든 듣기만 한다면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세뇌를 걸면 세뇌가 되고, 죽은 이까지도 잠시 부활시킬 수 있다.

본디라면 용이 가진 스킬.

하지만, 나는 용이 아니다.


“나는 잘못이 없어!!!”


때문에 내 스킬은 불완전했고 그것의 부작용이 반드시 일어났다.


“괜찮아. 난 네 편이라니, 쿨럭!”

“지랄하지 마! 그럼 난, 내 머리가 왜 이런 건데? 그 하프오크가······.”

“자, 잠깐!”


고장.


내 명령을 들은 이가 명령을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잘못되어 일어나는 반작용이자 발작.

만약 ‘조용히 해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저 입을 막는 걸 생각할 수 있지만.

듣는 이가 ‘조용히’의 기준을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자기 심장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조용하게.


“제, 제발 진정해.”


그렇게 되면 심장이 멎는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고?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괜찮아.”


그게 바로 완전명령이라는 내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운반책에게 내렸던 명령은.


“다 죽여버릴 거야······!”


그것이 일어났다.


“더는 이렇게 쭈그리고 살지 않겠다고!!!”


그것이 내게 달려들었다.


쿵!


“이런, 시······!”

“닥쳐!”


푹!


칼을 들고 있던 놈들도 막을 수 있었고, 총을 가지고 있는 이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스킬을 당했던 ‘가장 수하가 많은 놈’을 마치 인질처럼 데리고 당당히 걸어 나와, 정보를 불게 하고 여기까지 왔어도.

나보다 작은 인색터, 그것도 반쯤 죽은 인색터의 갈퀴 하나 피하지 못했다.


“이인자가 배신했어. 정보를 적송에 흘린 것도 그놈이겠지!!!”

“커헉!”


그 때문에 배의 출혈이 생긴 나는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내가 쭈그리고 있고 그가 서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무슨 조건이라도 맞은 것인지, 인색터는 순간 정신이 돌아와 말했다.


“청두파 2인자가 자기 보스를 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뭐? 하지만 더는 묻지 못했다.


“하아······.”

“아이는 건들지 말아주세요.”


툭-


그는 쓰러졌다.

처음 내가 이곳에 왔을 때처럼 힘없이, 시체로 돌아갔다.


“하아, 하아······.”


나도 그처럼 쓰러지고 싶었지만, 여기선 안 된다.

겨우 선반을 짚고 일어나 문으로 쓰러지듯 다가갔고, 문고리에 손을 올려 열었다.


철컥-


“어? 아저씨는 누구예요?”


문을 열고 나왔더니 5살쯤으로 보이는 인색터 꼬마 하나가 귀여운 가방을 메고 있었다.

시발. 나는 문을 닫고, 그 아이에게 말했다.


“여기, 사니?”

“네, 아빠랑요.”

“아빠가, 나는 아빠 친구인데······.”


시발, 시발, 시발.

이 꼬마에게도 스킬을 쓰면 어떨까? 나를 다 잊으라고.

하, 순수한 아이에겐 더 끔찍하게 고장이 일어날 것이다.

어쩌면 여기 근처에 있는 주민들, 혹은 이 문 안에 있는 시체가 다시 고장을 일으킬 수도 있고.

내 목소리가 들리는 사람이라면 모두 스킬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러니 내 스킬 같은 건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미안하다.”


나는 지갑에 있던 현찰을 전부 꺼내 아이에게 쥐여 주었다.


“아빠가, 쿨럭! 나한테 준 거야. 너 놀고 오라고.”

“정말요?”

“그래. 집에는 들어가지 말고.”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손이 너무 더러워 숨길 수밖에 없었다.


“네 이름이 뭐니?”

“철현이요. 김철현.”


내 모습에 겁을 먹은 건지, 제 이름을 말하던 아이가 사라졌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아이는 해가 지는 서쪽으로, 나는 그대로 더 어두운 쪽, 거리로 향했다.


#


반장은 사무실로 돌아온 정우의 상태를 보고 책상을 밀며 그를 안았다.

정우는 그 즉시 혼절했고, 반장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사무실의 문을 잠갔다.


삐-


신호음이 가다 중간에 끊기기를 몇 번, 계속해서 이우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반장은 간의 침대에 정우를 눕히고 생각을 이었다.

정우는 사경을 헤매면서도 무언가 중얼거렸다.


“반장······ 혈석. 혈석이랍니다······.”

“이우람, 청두파 2인자가, 배신······.”

“이제 한 주 남았습니다.”


반장은 그 의미를 다 알 순 없었지만.


“그 개새끼가······.”


결국 결론은 딱 하나였다.

그는 다시 한번 휴대폰을 잡아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다.”

“······.”


상대가 말이 없자, 반장은 조용히 음성을 깔고 말했다.


“이 일, 뒤탈이 날 거라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애들 꼬신 것도 들었고, 뭔지나 알아보라고 두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이제 안 되겠다.”


그는 눈을 들었다.


“혈석, 이거 누가 시킨 거냐?”


잠깐의 침묵.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임해찬 부장의 목소리가 답했다.


“큰형님이 시키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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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혈석 (3) 24.08.01 57 1 11쪽
17 17. 혈석 (2) 24.07.31 60 0 12쪽
16 16. 혈석 (1) 24.07.30 64 1 12쪽
» 15. 한 명의 죽음 (5) 24.07.29 68 1 11쪽
14 14. 한 명의 죽음 (4) 24.07.28 68 1 11쪽
13 13. 한 명의 죽음 (3) 24.07.27 70 2 11쪽
12 12. 한 명의 죽음 (2) 24.07.26 73 2 11쪽
11 11. 한 명의 죽음 (1) 24.07.25 80 2 11쪽
10 10. 경찰에서 깡패까지 (5) 24.07.24 83 2 11쪽
9 9. 경찰에서 깡패까지 (4) 24.07.23 88 4 12쪽
8 8. 경찰에서 깡패까지 (3) 24.07.22 94 4 12쪽
7 7. 경찰에서 깡패까지 (2) 24.07.21 123 5 11쪽
6 6. 경찰에서 깡패까지 (1) 24.07.20 151 4 11쪽
5 5. 식구 24.07.19 157 5 11쪽
4 4. 스카우트 (3) 24.07.18 193 5 12쪽
3 3. 스카우트 (2) 24.07.17 222 6 11쪽
2 2. 스카우트 (1) 24.07.17 362 7 11쪽
1 1. 시시한 이야기 24.07.17 755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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