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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마루] 님의 서재입니다.

용언 쓰는 잠입 경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김윤
작품등록일 :
2024.07.17 10:19
최근연재일 :
2024.08.28 19:0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670
추천수 :
65
글자수 :
228,931

작성
24.07.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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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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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 스카우트 (1)

DUMMY

2. 스카우트 (1)


“당신, 저랑 일 하나 같이 하시겠습니까?”


1평 남짓한 사무실.

아니면 창고나 취조실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에서 면접관님은 지나치게 밝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는 서류 몇 장을 책상 위에 펼치며 말을 이었다.


“종합 체력 검사 상위 1등! 인적성 및 서류 심사 1등! 이계인 특수 적합도 1등! 마침 저희 쪽에 이렇게 좋은 인재를 쓸 일이 있거든요. 아, 저는 유지혁 팀장입니다. 편히 유 팀장이라 불러 주시죠!”


면접관님, 아니 유 팀장님은 내게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떨어졌잖아요?”


애석하게도 나는 경찰 시험에 떨어졌다.


“무슨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인제 와서 뭐 하자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 붙을 줄 알았다.

1차 서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몇 달 동안 고시원에 박혀 공부만 했다.

물론 지금의 특채는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지만 기존 인간 경찰 공무원 모의고사까지 합격할 정도였으니까.

컨디션 조절까지 잘했고 실수도 없었다.

막상 시험장에서 나올 땐 점수 체크를 하지 않아도 무난히 만점일 것이라 예상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점수로 1차는 합격.

이어진 2차 육탄전 실습은 면접관이 말했던 것처럼 체력 검사 상위 1등, 모의 전투 실습에선 인간 열 남짓을 제압했다.

공부만 했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내겐 몸 쓰는 것도 공부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하긴 무술을 따로 공부하기 전부터 길바닥에서 자라려면 싸움은 필수였으니 어떻게 보자면 조기 교육을 받은 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아무쪼록 그렇게 2차 합격한 다음, 최종 면접까지 올랐을 때.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가 스킬을 안 써서 그런 거겠지.’


아무래도 짐작 가는 이유는 이거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경찰 대학을 나오거나 해외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스펙(?)이 좋거나 한 쟁쟁한 합격자들이 복도를 지나 대강당으로 이동할 때.

뭔지 모를 미련이 남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다 잡힌 것뿐인, 낙오자.

그게 나였다.


“당신이 떨어진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그런 나를 붙잡아 이곳까지 데려온 유 팀장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왜 떨어진 지는 지독하리만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제가······ 스킬 사용을 거부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이계인이 우리 세계로 들어오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힘인 ‘스킬’을 사용하는 인간들이 나타났고.

그것은 곧 아무런 노력도 없이 저절로 갖게 된 스펙이 되었다.

나 역시 그런 경우로, 경찰 분류표에선 ‘2세대’라 부르는 경우였다.


“죄송하지만 그 생각을 돌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난 내 스킬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내게는 저절로 갖게 된 스펙이 아니라 ‘저주’니까.

꼭 지독하고 잔인하며, 더러운 일이라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처리할 ‘악인’이나 가지고 있을 그런 스킬은.

이세계든 저세계든 우리 세계든 존재하면 안 되는 거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제 스킬을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만약 경찰이 되어서도 스킬을 써야만 한다면, 경찰이 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겠습니다.”

“아니, 지금 너무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 같네요.”

“···헛다리요?”

“대통합의 계절 특별 채용으로 단순 인원 충당이 목표라고 광고한 거 못 보셨나요?”


물론 봤다.

이계인들이 우리 세계로 건너오고 그들의 안정화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정부에서 선포한 ‘대통합의 계절’에.

경찰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라는 그 광고.

하지만 말은 저렇게 하더라도 이계인들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말인 거,

그것도 안다.


“그게 지금 뭐 어쨌다는 겁니까? 이계인 대상 사회봉사 요원 같은 거라도 시키려고요?”


약간 기분이 상해서 쏘아붙인 말인데, 유 팀장님은 마치 내게 마지막 기회라도 주려는 듯이 상냥하게 말했다.


“아니요, 제가 지금 당신께 제안할 일은 경찰이 하는 일 맞습니다. 요즘 같은 시국에 경찰 인력이 그렇게나 부족한데 고작 스킬을 안 쓰는 사람이라 자른다니요? 당신이 이번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는 그런 게 아닙니다.”


유 팀장님은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40대 후반인 것 같았는데, 지금 그 두 눈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관록으로만 보면 꼭 1000살 먹은 요정 노인인 것 같았다.

그는 내가 떨어진 이유를 자신의 면접 심사표를 꺼내 보여주며 설명했다.


“제가 직접 떨어뜨렸습니다.”


면접 심사표 비고란에 쓰여 있는 내 탈락 사유는 ‘유지혁’이었다.


“예?!”

“저는 당신같이 유능한 인원을 그저 이계인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인원으로 뽑을 생각이 추호도 없거든요.”


그는 책상 위에 있던 심사표와 내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 위로 명함을 하나 내려놓았다.

거기엔 ‘이세계 전담팀’이라 쓰여 있었다.


“조만간 있을 대대적인 ‘벌목’ 작업에 당신 같은 인재가 꼭 필요합니다, 정우 씨.”


벌목?

지금 이 아저씨가 당최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찰로 붙여준다는 겁니까?”

“아니요.”

“그럼 떨어뜨린다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지요.”

“하는 일은 경찰이 하는 일이라면서요?”

“그건 맞습니다.”


말장난이나 하자는 건가, 순간 기분이 퍽 상했다.

하지만 유 팀장님은 그 특유의 명랑한 말투로 내게 설명을 이을 뿐이었다.


“나이 30! 보육원 출신으로 친인척 관계 깨끗하고! 심사 결과 우수하며! 특히나······ 정의로운 사람. 그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는 마치 내 속을 뚫어 보는 것처럼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는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하실 얘기 더 없으면 일어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이 될 기회를 주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서둘러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났다.

유 팀장님이 말한 대로 나는 그저 이계인들 뒤치다꺼리나 하며 돈을 벌기 위해, 그저 인원 충당을 하기 위해 경찰에 지원한 것뿐이었다.

당연히 사명감이라곤 없고 제 몸을 바쳐 이 사회에 이바지할 생각도 전혀 없는, 그저 그런 낙오자.

그게 이때까지의 나였으니까.


“아뇨.”


하지만 유 팀장님은 내게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에다 대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너무나 끔찍한 스킬이니 지금까지 사용을 거부했다. 그게 당신이 정의로운 이유이고 또한 제가 당신을 직접 떨어뜨리고 우리 팀으로 뽑을 이유입니다.”


유 팀장님은 내 손을 잡았다.


“저희 쪽 언더커버 요원이 되어주십시오.”

“예?”


그는 책상에 있던 잡동사니를 전부 바닥에 치워버리고 어디서 난 건지 태블릿 PC를 꺼내 내려놨다.

그걸 내 쪽으로 돌리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 다시 앉고 말았다.


“일단, 보시죠.”


유지혁 팀장님은 그렇게 PPT 하나를 실행했다.


“적송(赤松)?”


큼지막한 문구 아래, 어느 대기업의 것처럼 보이는 조직도가 있었다.


“오크들의 기업이자 실제로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거대 폭력 조직, 적송을 들어 보신 적은 없겠지만 저는 이 이계인 건달 내부에 당신을 언더커버 요원으로 투입할 생각입니다.”


내가 그걸 다 보기도 전에 유 팀장님은 손가락을 눌러 PPT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 조직이란 곳에 대한 설명이 더 나올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내 시험 원서 사진과 함께 나에 대한 정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당신이 왜 스킬 사용을 거부하는 건지, 또 그 스킬이 가진 진짜 능력이 무엇인지는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스킬이 우리의 일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예?”

“크게 보자면 조직 내에 있는 정보를 저희에게 몰래 빼돌리는 일종의 ‘스파이’라고 보시면 좋을 겁니다. 그때마다 저희 쪽에서 값을 치를 거고요. 하지만 경찰 내부 일개 팀 단위 일이라 생각하시고 작게 보면, 우리 팀 중에 현장에 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아, 제 스킬이 깡패짓에 잘 어울릴 것 같으니까 가서 진짜 깡패가 되라는 겁니까? 뭐, 손가락 하나 자르는 입단 테스트 같은 거라도 보라고요?”

“요즘 깡패들은 입단 테스트 같은 건 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유지혁 팀장님.

이 사람이 내게 말하는 ‘일’이라는 건, 경찰이 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진짜 나쁜 놈들, 깡패가 되라고 하는 거지.


“스킬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부터 당신이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무사히 적송 안까지 들어가는 것! 그것만 생각하세요. 그 후의 일은 차차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또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거기엔.


“허.”


만약 내가 이 일을 수행할 시 얻을 수 있는 돈의 액수가, 그것도 압도적으로 많은 액수가 쓰여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의 일이긴 하지만, 반드시 지급 예정이고 그때까지의 호봉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경찰로서 그 정점까지도 노려볼 수 있도록 제가 만들 거고요.”


돈이나 벌자고 한 거였고 돈이 필요하긴 했다.

게다가 이 거지 같은 스킬을 가지고도 경찰로서 꽤 높은 위치까지 올라 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내가 경찰이 되고자 했던 이유, 그건 그 어떤 사명감이 아니라 그저 나라는 인간도 이 세상에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것뿐이니까.

낙오자, 내가 이때까지의 나를 버리고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

떳떳하게.


“우리 팀에는 당신 같은 인재가 꼭 필요합니다. 그것 말고 지금 당장 다른 중요한 고려 사항이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 그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다른 중요한 고려 사항 따위는 없었다.


“시발······ 그러니까 제가 지금 뭘 어떻게 하면 된다고요?”


유 팀장님은 입이 찢어질 것처럼 웃으며 아까 바닥에 떨궜던 명함을 다시 들어 내게 건넸다.


“우리 함께 이세계의 악을 뿌리 뽑읍시다.”


말하자면, 일종의 스카우트였다.


#


경찰 시험에 떨어지고부터 한 달이 지났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뭘 하고 있느냐고?


“자재 위층으로 옮기겠습니다!”

“야! 합판 들어서 옮기면 허리 나간다! 이거 철이야, 철!”

“이게 더 빨라서요! 일당 받았으면 일해야죠!”


헛둘 헛둘.

노가다 판에서 자재나 나르는 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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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혈석 (3) 24.08.01 57 1 11쪽
17 17. 혈석 (2) 24.07.31 60 0 12쪽
16 16. 혈석 (1) 24.07.30 64 1 12쪽
15 15. 한 명의 죽음 (5) 24.07.29 68 1 11쪽
14 14. 한 명의 죽음 (4) 24.07.28 68 1 11쪽
13 13. 한 명의 죽음 (3) 24.07.27 70 2 11쪽
12 12. 한 명의 죽음 (2) 24.07.26 73 2 11쪽
11 11. 한 명의 죽음 (1) 24.07.25 80 2 11쪽
10 10. 경찰에서 깡패까지 (5) 24.07.24 84 2 11쪽
9 9. 경찰에서 깡패까지 (4) 24.07.23 88 4 12쪽
8 8. 경찰에서 깡패까지 (3) 24.07.22 95 4 12쪽
7 7. 경찰에서 깡패까지 (2) 24.07.21 123 5 11쪽
6 6. 경찰에서 깡패까지 (1) 24.07.20 151 4 11쪽
5 5. 식구 24.07.19 157 5 11쪽
4 4. 스카우트 (3) 24.07.18 193 5 12쪽
3 3. 스카우트 (2) 24.07.17 222 6 11쪽
» 2. 스카우트 (1) 24.07.17 364 7 11쪽
1 1. 시시한 이야기 24.07.17 755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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