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베르커 서재

양판소 작가 죽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베르커
작품등록일 :
2014.06.01 14:24
최근연재일 :
2014.06.08 17:38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61,632
추천수 :
1,998
글자수 :
28,136

작성
14.06.08 11:03
조회
5,007
추천
147
글자
6쪽

108화

DUMMY

.

.

.

.

.

어느덧 내 턱에는 수염이 더부룩하다.

장은 풋풋하나마 곱상한 청년이 되었다.

100화를 단숨에 건너뛰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치어가 무럭무럭 자라나 월척이 몇 백 번은 되고도 남을 세월이 흐른 것이다.

마왕으로 오해를 받은 그날,

바로 그날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군대와 싸웠다.

가는 곳마다 용사와 붙었다.

그밖에 싸울아비, 마법사, 주술사, 암살자…….

뭐,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물론 전부 물리쳤다.

나는 세계 최강 용사니까.

당연한 결과지.

하지만 그런 고로, 현재 나는 현세에 강림한 마왕 중 사상 최강, 최악의 마왕으로 단단히 낙인찍힌 상태다.

“하아……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지?”

혼잣말이었으나 성실한 장은 성실히 끼어들었다.

“복면 쓰고 다니자는 제 제안을 용사님께서 단칼에 거절한 것이 결정적이었지요.”

나는 콧방귀를 끼었다.

“용사는 언제나 당당해야 한다. 복면 따위는 쓰지 않아.”

장이 어깨를 으쓱한다.

“이렇다니까요.”

“그건 됐고, 아직 멀었나?”

“이제 다 온 것 같습니다. 저기 보이네요. 황제의 성이에요.”

멀리 황성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황성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도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황제로부터는 물론 아니다.

황제는 해외로 도망친 지 오래다.

종말론자들이 편지로 도발을 걸어왔다.

나는 마왕으로서 역할에 지극히 충실했고, 현재 저 깊고 작은 두메산골까지도 종말론이 득세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종말론자들은 내 열렬한 지지자들이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황성을 장악한 종말론자들은 상식을 거부하고 나를 도발했다.

뭐, 도발이라고 해봤자 별 건 아닌데,

<우리는 진짜 마왕을 알고 있다>

이 한 문장짜리 편지를 보낸 것이 전부다.

실제로 맞는 말이니 전혀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직접 찾아가 마왕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요량이다.

발을 재촉하며 성으로 접근했다.

얼굴에 검은 두건을 두른 종말론자들의 안내를 따라 성문을 지나는 그때였다.

느닷없이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도날드 마왕님, 만세!”

“종말이여, 영원하리라!”

백성들이 진심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댔다.

“백성들도 열렬히 종말을 원하는군. 이 끝을 알 수 없는 암담한 세계에 지친 거야.”

장이 답했다.

“용사님이 그 일등 공신입니다. 마왕으로서 인간들에게 너무 많은 패배를 안겨다 주셨잖아요?”

장 녀석, 꿀밤을 때려주려다 말았다.

성안으로 들어가고, 들어가고, 계속 들어가니 황제의 방에는 황제의 의자에 앉은 종말론자가 보였다.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옆으로 비슷한 옷차림의 인간들이 20여 명이 쭉 벽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중앙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감상을 입 밖으로 뱉었다.

“뭘 준비하고 있었나 보네?”

“지금부터 마왕을 소환할 생각이오.”

뜻밖의 말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마왕을 소환하겠다고?”

“우리는 흑마법을 다루는 소환술사들이오. 할 수 있소.”

“아니, 가능 여부를 물은 것이 아니다. 왜 하필 지금이냐?”

“그야 당신이 도착했으니까.”

“뭐야?”

종말론자 수장이 드러난 입가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진짜 마왕님의 명성을 가로챈 당신을 그분께서 직접 벌주기를 바라오.”

“매우 천진난만한 이유군.”

수장 놈이 순간 엄숙히 외쳤다.

“아이들을 데려와!”

황제의 방 양쪽의 문이 열렸다.

10명의 소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법진을 핏물로 채우기만 하면 마법진은 곧바로 발동된다. 그러면 진짜 마왕님이 이곳으로 강림하실 것이다! 오오, 가짜 마왕은 잠시 대기하라! 소년들이 먼저 죽음을 받아들일지니!”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사이로 나는 종횡무진 움직였다.

소환술사 10명의 머리가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졌다.

수장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마왕을 부르기도 전에 공격하다니! 이 비겁한 가짜 마왕아!”

나는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단순히 네가 멍청한 거야. 마왕을 미리 소환하고 기다렸어야지. 나는 다른 친절한 주인공들과는 달리 적들이 기를 다 모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나긴 변신이 끝날 때까지도 기다려주지 않고, 소환이 끝날 때까지도 기다려주지 않지. 물론 아이들을 10명이나 죽이는 것도 친절히 기다려주지 않아.”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가고 수장은 벌벌 떨고 있었다.

“뭐 걱정하지 마라. 네 멍청함을 너와 네 수하의 전멸로써 갚게끔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이미 피는 충분하잖아?”

“아!”

수장은 바닥을 내려다봤다.

죽은 부하 소환술사들의 핏물이 마법진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미 도망간 후였다.

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마왕이 소환될 것이다.”

수장이 물었다.

“어째서?”

“그 빌어먹을 진짜 마왕과 진작부터 붙고 싶었거든.”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작가 놈을 죽이기는커녕, 작은 엿 하나 먹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역으로 작가 놈의 농간에 놀아나며 지독한 수모를 겪어왔다.

가는 곳마다 일이 꼬이며 오명을 사다 못해, 마왕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나, 알고 보니 마왕이 머무른다는 지역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질 않나, 마왕은 스스로 코빼기도 안 보이지 않나…….

비운의 주인공임을 상기하고 인내하라며 장이 위로(?)했으나, 글쎄, 다 필요 없다.

나는 정말 많이 지쳤다.

한시바삐 마왕을 찾아서 처단하고 이 작품에서 하차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만에 웃었다.

“오라, 진짜 마왕이여!”

빛이 한층 강렬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양판소 작가 죽이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에필로그 +66 14.06.08 4,993 173 5쪽
11 최종화 +54 14.06.08 4,695 141 9쪽
» 108화 +28 14.06.08 5,008 147 6쪽
9 8화 +28 14.06.06 4,513 137 6쪽
8 7화 +24 14.06.05 3,997 140 5쪽
7 6화 +22 14.06.03 4,279 136 7쪽
6 5화 +34 14.06.02 5,228 149 6쪽
5 4화 +30 14.06.01 4,730 161 4쪽
4 3화 +28 14.06.01 5,067 154 5쪽
3 2화 +30 14.06.01 5,371 166 5쪽
2 1화 +26 14.06.01 5,736 167 2쪽
1 프롤로그 +46 14.06.01 6,639 217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