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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커 서재

양판소 작가 죽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베르커
작품등록일 :
2014.06.01 14:24
최근연재일 :
2014.06.08 17:38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61,625
추천수 :
1,998
글자수 :
28,136

작성
14.06.01 17:27
조회
5,370
추천
166
글자
5쪽

2화

DUMMY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장! 여기엔 아무도 없다!”

곧바로 장의 반박이 이어졌다.

“절대 그럴 리 없어요! 그 작가는 지금껏 그 감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을 텐데요!”

“장의 말이 맞아. 나는 이 안에 있다.”

“음?”

어디선가 들려온 나지막한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봤다.

“설마 작가냐?”

“그래.”

“어디로 숨은 거냐! 모습을 드러내라!”

“모습을 드러내는 것쯤이야 쉽지.”

희끗한 인간의 형상이 보이는 곳으로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베는 감촉이 전혀 없었다.

울화가 치밀었다.

“뭐냐! 너는 대체! 유령이라도 된단 말이냐!”

“하하하하!”

작가는 마구 웃음을 터뜨렸다.

더럽게 재수가 없었다.

“대답해라, 이 글쟁이 새끼야!”

“하하하! 내가 창조했지만 너는 참으로 멍청한 주인공이구나. 이곳은 내가 쓰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네가 감옥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쓱쓱 썼다. 그러니 너는 나를 절대 볼 수 없었지. 그리고 방금 네가 칼을 휘두르는 순간, ‘베는 감촉이 전혀 없었다.’라고 쓱쓱 썼다. 그러니 너는 아무것도 벨 수 없었던 거야.”

“자기를 죽이러 온 적에게 장황하고 친절한 설명이라니…… 과연 양판소 작가……!!”

문밖에서 경악하며 외치는 장의 목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보이지 않는 작가는 계속 말했다.

“자, 이제 어쩔 거냐? 지금이라면 용서해 줄 테니 순순히 마왕을 처단하러 갈 테냐, 아니면 여기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냐? 나야 지금 당장 연중을 선언하고 다른 주인공으로 다른 스토리를 써도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

“흥, 당연히 널 죽일 테다! 장! 문을 닫아!”

“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감옥 안에서 미친 듯이 검무를 추었다.

모든 상념을 멈춘 채였다.

“이, 이 놈!”

작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하다.

애초에 이 소설은 3인칭 시점이 아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작품 안에 머무르며 서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작가도 현재 엄연히 이 세상의 일원!

다시 말해 이 세상 안에서 물리적 제약을 받는다는 의미다!

이제부터 나는 쓸데없는 잡생각을 멈추겠다.

그렇다면 작가는 주인공인 나를 통해 어떤 서술도 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부터 그저 검만 휘두르면, 이 좁은 공간에 단지 ‘은신’하고 있는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요절이 날 것이야!!

작가는 절규했다.

“이 녀석! 지금 보니 너무 영리하다!!”

“흥, 알았으면 죽어라!!”

검무가 계속될수록 주변으로 검기도 휘몰아쳤다.

검기가 감옥을 가득 메웠다.

“으아악!”

작가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번쩍!

감옥의 중심부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떴다.

지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감옥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환호성을 올렸다.

“내 인생을 멋대로 망쳐놓은 개놈의 작가 새끼, 드디어 죽었구나! 드디어 죽었어!!”

작가가 죽어서 이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감옥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위쪽으로 달음박질쳤다.

멍청히 서 있던 장도 이윽고 내 뒤로 따라붙어 달리며 물었다.

“세상이 멸망하는 겁니까?”

“그래!”

“그럼 어딜 가든 죽잖아요? 대체 어딜 가는 거예요?”

“지상으로 가야지!”

“왜죠?”

“인생의 마지막은 이런 음침한 곳보다 드밝은 곳에서 맞이해야 기분이 개운할 터!”

“과연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상할 일이다.

나와 보니 감옥 건물만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건물은 아주 멀쩡했다.

“뭐지? 설마 아직 작가가 살아 있는 건가?”

“바로 그 설마다……!”

감옥 건물이 사라지며 만들어진 거대한 구멍에서 악마가 기어 올라왔다.

흉악한 붉은 얼굴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길이의 나선형 뿔을 머리에 대칭으로 두 개 달았다.

어마어마한 마기 앞에서 이빨 부딪히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네가 설마 마왕이냐?”

“그래…….”

“자, 작가는 어디 가고 갑자기 네가 나타난 것이냐?”

악마는 뾰족한 손톱으로 볼살을 긁적였다.

“내가 바로 작가다.”

“뭐, 뭐라고?!”

악마의 얼굴이 더욱 험상궂게 변했다.

“내가 마왕인 것이 이 작품의 마지막 반전이요, 하이라이트였거늘……! 전부 망쳐버린 네놈을 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악마, 아니 작가는 양팔을 벌리고 포효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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