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입구에 산적이 둘 서 있었다.
“너는 누구……”
쓱싹.
“헉!”
“으악!”
산적 둘이 고꾸라졌다.
“흥, 피라미 주제에 활자 낭비하게 하지 마라.”
산적들의 소굴을 바라봤다.
목책으로 두른 산채였다.
저 높은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있었다.
“길기는 어지간히 기네. 그럼 장, 단숨에 가 볼까?”
“네, 용사님!”
우리는 놈들의 나무문을 박차며 산채로 들이닥쳤다.
“누, 누구냐!”
“죽어라!”
“우악!”
“허억!”
검을 휘두르니 낫질할 때 보리 픽픽 넘어가듯 넘어간다.
그동안 맨날 늙은 스승의 구박과 폄하에 시달리며 기 한 번 제대로 못 피고 수련에 수련만 거듭했는데, 눈치도 안 보고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니 심정이 참으로 통쾌하다.
쓰러뜨린 산적만 벌써 수십 놈, 한눈에 봐도 두목인 덩치 큰 산적이 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챙!
검끼리 부딪힌 것은 동굴에 들어와 처음이다.
오! 과연 두목이구나!
챙! 챙!
하지만 네 번째 검이 맞부딪힐 때 빈틈이 보였고 나는 그대로 그의 심장을 찔렀다.
푹!
“헉…….”
놈이 쓰러지기 전에 어깨를 붙들어 잡았다.
“이봐, 공수래공수거라는 말 아나?”
“모…… 모른다.”
“흠, 양놈이라 모르려나? 암튼 보물 창고는 어디 있어? 죽기 전에 말해라!”
“모, 몰라…….”
“두목이 모르면 누가 알아! 건물 일일이 뒤져 보게 만들지 말고 얼른!”
“나…… 나는……”
녀석은 내 어깨에 턱을 기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부두목이다…….”
순간 혈압이 솟구쳐 부두목을 내팽개쳤다.
부두목은 발라당 넘어졌다.
“젠장, 용사 주제에 스토리 초반의 부두목 따위에게 이만큼 고전하다니! 분량을 확보하려는 작가의 계략에 당하고 말았어!”
나는 더러운 기분을 수습하며 부두목에게 물었다.
“두목은 어디 있어?”
“더 위쪽에 있다…….”
부두목은 마침내 숨이 끊어졌다.
“제기랄, 묘하게 친절한데 묘하게 불친절하잖아, 이거…….”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검을 집어 들었다.
내달렸다.
위쪽으로 향할수록 부하들의 저항도 거세다.
갈수록 실력이 좋아진다.
“졸개들이 이 정도면 두목은 대단하겠는걸.”
그래도 여전히 서너 번 안으로 합을 나누면 다 쓰러뜨릴 수 있었다.
마침내 두목을 만났다.
산 정상에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있는 기골이 장대한 이번 놈이야말로 진정 두목에 어울리는 자였다.
“하하하!”
두목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까지 오다니 실로 놀랍구나. 내 이름은…… 헉!”
나는 검으로 곧장 찌르고 들어갔다.
두목은 잽싸게 허리춤의 장검을 뽑으며 내 검을 아슬아슬 비켜냈다.
하지만 나는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공격했다.
“이름을 밝힐 기회 따위, 줄 성 싶으냐!”
이름을 생기면 비중이 생긴다.
비중이 생기면 강해진다.
강해지면 고전한다.
고전할수록 작가는 분량을 확보한다.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원하는 것!
그러므로 나는 놈을 쉴 새 없이 공격한다!
“이얍!”
폭포가 쏟아지듯 내리찍는 내 검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산적 두목의 검이 드디어 부러졌다.
검은 두목의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를 깊숙이 베고 지나갔다.
두목이 쓰러졌다.
“쿨럭! 관군 중에 이리도 다부진 녀석이 있을 줄은!”
말도 못할 치명상을 입어도 말을 못하는 경우는 결단코 없다.
“응? 그나저나 뭐라고 했냐? 관군?”
하지만 두목은 듣지 못한 모양이다.
“자, 내 머리를 베어가라.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살려줘라. 탐관오리들 등살에 먹고살기 어려워 산으로 숨어들었을 뿐 원래는 평범한 양민들이다…….”
나는 기가 막혔다.
“시끄럽고 보물 창고 위치나 알려줘.”
악적들을 처단하여 명성을 올리고 여비도 마련할 겸, 겸사겸사 쳐들어온 거다.
당연히 징그러운 털북숭이 두목 머리나 양민 터는 데는 관심이 없는데 헛소리도 이만하면 중증인 것이다.
“쿨럭! 보물 창고는 없고 쌀 창고가 있긴 한데…… 텅텅 비었을 거다. 며칠 전에 양민들에게 쌀을 나눠줬기 때문에…….”
“뭐야?”
이제 보니 진짜 의적? 나는 불안감을 누르며 물었다.
“네, 네 이름이 뭐냐?”
“이…… 임꺽정…….”
두목은 그 말을 끝으로 사망했다.
털썩.
나는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이 작품…… 대체 정체가 뭐냐?”
- 작가의말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퓨전 판타지 아닙니다. 정통 판타지입니다. 양판소일 뿐입니다. 여기의 임꺽정도 서양인입니다. 본명은 다음 화에 주석으로 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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