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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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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665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9.28 17:30
조회
33
추천
4
글자
12쪽

선. 마의 기운

DUMMY

선홍빛의 아주 예리한 핏 선이 그녀의 하얀 목 위로 새겨졌다.

하지만 상신답게 전혀 움츠려 드는 기색이 없는 운우가, 오히려 웃음기마저 띤 얼굴로 전신을 올려다 보았다.


동시에, 운우의 상처에 민감해진 마군들도 그들을 향해 조금씩 더 가까이 간격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운우의 목전에 들이대고 있던 수심검을 다잡으며 전신이 아녕과 나체귀를 향해 단호하게 말을 내 뱉았다.


“저들을 당장 멈추도록 하라! 아니면, 수심검이 더 이상 상신의 피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전신의 말에 동요된 마군들이 주춤하는 동안, 함께 놀란 자운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전신과 운우를 바쁘게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천계의 상신이요.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니, 빨리 원래의 모습을 찾으시오. 운우 !"


전신이 다시 운우에게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운우도 뒤지지 않고 전신을 매섭게 쳐다보았다.


"내가 몇 번의 윤회를 거쳐보니 알겠던데...? 당신네들이 갖고 노는 윤회가, 멀쩡한 혼들의 운명을 함부로 자르고 붙여대는 참 못된 짓 이란걸 말이야.

제법 똑똑해 보이는데, 그걸 모른다구?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은 두고 보는 게 역겨워서 말이지!

다행히 내가 뭐, 힘도 안들이고 할 만한 게 있다하니, 힘없는 혼들을 대신해서라도 얼른 해야 하지 않겠어? "


운우가 결심한 듯이 다시 한발을 앞으로 내 딛으려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는 듯이 잽싸게 뛰쳐나온 자운이, 그녀의 앞에서 허리춤을 잡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운우상신 안돼요. 이건 옳지 않아요!”


숨이 막힐 듯이 감정을 억누르며 전신이 자운을 내려 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자운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자운, 그들이 당신을 데려간 건, 당신을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제 다시 만났으니, 나에게로 돌아오면 안 될까?“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전신을 보는 순간, 저 손을 잡고 자운도 얼른 숙이의 등위로 함께 올라 타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라도 하듯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던 자운이 눈물 가득한 얼굴을 들어, 전신을 바라보았다.


“안돼요! 그럴 수 없잖아요. 내가 가면, 운우 상신은 누가 지켜요?”


“자운... 운우는 지금, 잘못 된...”


“그래도, 상신을 죽이는 건 절대 안돼요! 그러면 저 들과 뭐가 달라요? 다른 방법... 상신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세요. 아직 각성을 하지 못해서, 기억을 못하실 뿐이에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전신!”


마음 아픈 표정을 지으며, 전신이 자운에게 대답했다.


“난, 그럴 수 있는데, 저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때마침 나체귀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운우를 다그치고 있었다.


“신이공주, 시간이 없소! 이제 막 별이 하나의 열로 마주 섰으니, 지금 마기가 가장 치솟을 때, 빨리 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나체귀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큰소리와 함께 궁소검을 높이 쳐들어 마군의 혼령들에게 공격을 명하였다.


정신을 점령당한 혼들이 벌떼처럼 천계의 병사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운우가 천해문을 무사히 통과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기위해, 혼령으로 이루어진 마군들은 칼날에 배어지는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하나의 신념으로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신체가 온전하지 않은 혼령들은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웅웅- 거리는 소리만 연신 토해내고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칼날에 배어져 나가는 마군들의 둔탁한 소리에 섞여, 마기가 가득한 그들의 칼에 베어지는 천계병사들의 짧은 고통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인,

소름 끼치도록 무겁고 조용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신의 물빛 검을 사이에 두고 운우와 자운과 전신이 끊어내기 힘든 감정에 잠시 묶여있는 사이,

운우가 먼저 재빨리 자운을 칼날 아래로 밀쳐 넣는 대신, 전신의 칼날 끝을 빠져나온 후 천해문 쪽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거의 한순간에 일어났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천제와 계획한대로 전신이 ‘수심검’을 들어 운우의 몸을 내리치기 위해, 칼날만큼 무거운 심정으로 운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둘에 대한 감정으로 다급해진 자운의 몸에서는, 선기와 마기의 힘이 함께 모여서 완성된 기운이 거세게 솟구쳐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운은, 운우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위험을 한순간에 쳐내며 멀리 날려 버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자운의 공격에, 놀란 마음만 안고 방어의 뜻을 전혀 품지 못했던 전신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엄청난 기운에 밀려, 허공위로 끝없이 튕겨 날아가고 있었다.


전신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천계의 대장군들이, 다시 상황을 파악한 후 마군과 대치 중이던 천계의 병사들을 모아, 운우를 막기 위해 천해문 쪽으로 일제히 방향을 틀어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나체귀와 아녕도 운우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지만, 급하게 아녕이 한손을 뻗어 나체귀를 멈추게 했다.

굳이 이들이 나서지 않아도 일은 알아서 해결이 될 것이라는 의미 같았다.


엄청나게 솟아오르는 기운을 한번도 다스려 보지 못했던 자운이, 잠시 정신을 잃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멈추어지지 않는 선마의 힘을 계속해서 거칠게 뿜어내고 있었다.


자운의 머리위로는 투명한 형상으로 발현된 청룡이 아직 완전한 원신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현빙화의 여린 꽃잎의 기운을 보호하며, 함께 허공 위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운의 엄청난 힘의 보호아래, 어느 누구도 운우의 길을 막아서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허공으로 튕겨 날아가던 전신이 정신을 가다듬고 자운에게 돌아왔을 땐, 그의 ‘수심검’이 어디를 겨누어야 할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었다.


자운에게서 발현되는 힘은 다스려야 할 주인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선기와 마기의 힘이 조화롭지 못한 채로 엉키며 이제는 서로가 더 세게 뻗어 나오려고만 하고 있으니, 너무 거칠고 엄청난 힘이 자운의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선기와 마기가 합쳐진 힘을 전신인 그도 막을 수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보다, 거칠게 뻗어 나온 힘이 원신을 능가하고 자운 스스로의 내력을 파괴라도 하는 건 아닌지, ‘수심검‘을 든 채로 전신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자운을 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다시 막다른 길에서 그가 그녀를 구할 수 없게 되지나 않을지, 너무 겁이 나기 시작했다.


“ 운아...! 그만 하거라! "


목이 터질 듯 전신의 소리가 하늘 위를 덮어 내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울리는 가장 애틋한 함성이었다.



****



천계에서도 가장 신성하고, 무서울 만큼 무거운 위엄이 서려있는 '천수대'에는,

죽어서라도 천계를 지키려는 선대 천제들의 염원이 혼 불로 남은 채로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천계의 심장인 '천상염환' 이었다.


천계와 따로 구별되어, 천궁의 하늘위로 떠있는 이 작은 계에는 선불을 떠받치는 선옥의 단과 그 아래 깔려있는 선옥석만이 거침없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직 궁소검을 소환해서는 안 됩니다. 마성이 최고로 솟구치고 있는 상태에서 혼들이 깨어난다면, 오히려 주변의 마군들에게 떼죽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별의 열이 어긋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합니다!”


천제와 상제가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조용하게 의논을 하고 있었다.

천제와 함께 그들 가까이에 서 있던 태자 백현성군도, 상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운을 지켜내겠다고 호언하던 천제의 약속을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딸이 천계를 위협하는 무서운 힘으로 저곳에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측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한 마음이 상제의 심경을 흔들고 있었다.


천제와 상제와 태자를 비롯한 대신들과 여러 상신들이 천계의 심장인 선불이 타오르고 있는 천수대에 모여서, 천계의 신령스러운 거울인 선경을 통해 천해문의 상황을 주시하며 혀끝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태자 백현성군은 모여든 상신들의 틈에서 풍신의 모습을 찾고 있었지만, 아직도 그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 천해문 밖의 상황을 안다면, 너무 상심이 클 텐데... '


그보다, 운우를 해칠 생각까지 계획한 천제에 대한 서운함 때문인지, 며칠 전부터 그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조차 없던 중이었다.


그리고 선경 속에 비춰지는 자운의 모습은, 지금까지 전신 에게서만 전해 듣던 소식들 속에서 그가 생각했던 모든계획들이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 운아 ...!'


그냥, 이 복잡한 전쟁이 끝나고 나면, 귀왕의 테두리에서 안전하게 자운을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녀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거센 힘에 갇힌 채로 마음대로 휘둘려지느라, 너무 여리고 딱해 보였다.




여전히 정신을 잃긴 했지만,

운우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발현된 그녀의 선마가 합쳐진 애매하게 거칠고 거센 힘은, 천해문으로 향하는 상신을 막기 위해 덤벼드는 천계의 병사들과 맞서, 이제 엄청난 살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멀찍이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나체귀가 연신 쓴 미소만 흘리고 있었고, 무표정하게 살상을 바라보던 아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잠시 후, 천해문이 열릴 겁니다. 문 밖에서 싸우는 일을 멈추고, 하나의 마군도 남기지 말고 모두다 천계 안으로 입성하도록 명 하십시오.”


나체귀가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자운의 힘은 아무래도 힘이 아니라 그녀의 의식을 일깨워야 할 것 같다고 전신은 생각하였다.

조금 떨어진 허공위에서 참상을 바라보고 있던 전신이 드디어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수심검‘을 넣고 숙이의 갈기 위에 앉은 채로, 깊은 표정 속에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몇 번의 아름다운 수인의 모양이 바뀔 때마다, 하늘이 바뀌고 있었다.


처음엔 맑았던 하늘의 구름 빛이 잿빛으로 어둡게 물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거운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한 구름에서는 시원스러운 빗줄기가 삐져나와, 살상으로 여념 없는 마군과 천계의 병사들 위로 내리 붓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하늘에서 비를 쏟아낼 생각을 하다니...


아주 잠깐, 천계의 병사와 마군들이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해 의아한 듯이 한번 씩 고개를 내저었지만, 이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그들의 살상은 다시 계속되고 있었다.


낮은 허공에서 살상의 기운을 뿜어내며 떠 있던 자운이, 의식이 없는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빗물의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자, 드디어 눈꺼풀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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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1.24 21:50
    No. 1

    선, 마의 기운이 함께 발현되는 모습에서 운이는 존재 자체가 태극이란 생각이 들어요. 다음 편이 궁금해 댓글도 없이 몇 편을 연달아 읽었어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25 00:50
    No. 2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벌써 여기까지 달려오셨어요~~
    어쩌면, 글이 끝나면.. 별님 댓글도 못볼것 같은 아쉬움이 먼저 들어요..ㅠ..ㅋ.
    마지막까지 좋은글로 남을수 있기를~~
    주문을… 외웁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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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보천귀장 +2 22.10.02 36 4 11쪽
87 아녕의 진실 +3 22.10.01 42 4 11쪽
86 마계로 향하는 청룡 +4 22.09.30 36 4 11쪽
85 천해문을 여는 운우 22.09.29 38 4 12쪽
» 선. 마의 기운 +2 22.09.28 34 4 12쪽
83 격전의 날 22.09.27 38 4 12쪽
82 마존이 선택한 여인 22.09.26 43 4 12쪽
81 보연의 거래 22.09.25 34 4 11쪽
80 회마곡에서 만난 자운과 운우 +2 22.09.24 41 4 13쪽
79 잃어버린 너 22.09.23 36 4 12쪽
78 슬픈 준비 +2 22.09.22 41 5 13쪽
77 셋이서 함께 +4 22.09.21 62 5 12쪽
76 세오의 계획 22.09.20 31 5 12쪽
75 연적의 사내들 +2 22.09.19 32 4 11쪽
74 운우의 흔적 22.09.18 44 4 12쪽
73 기억 심기 +2 22.09.17 35 4 12쪽
72 현연의 탈출 22.09.16 34 6 12쪽
71 전신의 죽 +2 22.09.15 43 6 12쪽
70 다시 제자리로 +4 22.09.14 47 6 11쪽
69 기억 소환 22.09.13 33 6 12쪽
68 현연의 윤회점 22.09.12 36 6 12쪽
67 네가 꿈꾸는 사이 +2 22.09.11 4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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