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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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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668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9.19 17:30
조회
32
추천
4
글자
11쪽

연적의 사내들

DUMMY

놀란 자운의 눈이 크게 떠졌지만, 반사적으로 그의 단단한 어깨에 손을 걸쳐 올리기만 할 뿐이었다.


“갑자기 눈이 왜 와요? 봄인데?”


“네가 원하면 눈도 오고, 꽃눈도 오는 거야!"


“...? 전신, 제 꿈을 본 거에요?”


“아니, 네가 그냥 말해줬어.”


전신이 이불채로 자운을 안고 초막 밖으로 나서자, 정말 밖에는 하얀 눈송이와 함께 꿈에서 본 것처럼 작은 꽃잎송이가 섞여서 날리고 있었다.


“네 말처럼, 정말 아름답구나!”


여전히 자운을 안아 든 채, 그의 옷처럼 새 하얀 빛깔의 눈송이를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운아 !”


무거운 음성이었다. 그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로 자운이 가만히 그를 올려보았다.


아래에서 보는 그의 목선이 정말 굵직하고 매끈했다.

그리고 인간계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았다. 신선은 점이 없다고 ... 점은 인간에게만 있는 윤회의 흔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지, 전신의 피부는 백옥으로 깎아 만들어진 형상이라고 해도 될 만큼 티끌 하나없이 밝고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가... 자신을 이렇게 안고 소중히 여긴다니, 정말 이전에 자신이 구중천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남자를 만날 수 있었을까, 횡재라도 한 것같은 생각이 가득 들고 있었다.


“네?”


그의 얼굴선만 올려보느라, 한참이나 늦은 대답이었다.


“ 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근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 하지만, 자책과 미안함으로 자신을 어둡게 묶어버린다면, 생각과 기가 흐르지 않고 막히게 돼. 그러면, 네가 각성을 하는데 어려움을 줄 뿐이지.”


마치 안고 있는 그녀를 어디에다 내던져 버릴 것만 같은, 서글픔과 실망이 가득 담긴 무거움 이었다.


아무 말도 찾지 못한 자운이, 눈을 돌려 주변으로 흩날리는 하얀 눈송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안고 있던 자운을 내려 맨발인 그녀를 그의 발등위로 올려 세운 전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소중한 물건이라도 덮듯이 어깨부터 조심스럽게 감싸 주었다.

그의 가슴 앞으로 오목하게 들어찬 자운을 감싸며 전신이 아주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네가 빨리 각성하지 못해서, 혹시나 잠시라도 널 잃어버릴 까봐 걱정이 돼.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도 꼭 찾아내겠지만..."


자운의 가슴이 무겁게 뛰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 일어나서 내가 없어도 찾지 말고, 밥은 차려놓고 갈 테니 혼자서라도 꼭 먹어야 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가 잠시라도 옆에 없다고 생각하니, 무슨 말이라도 할 요량으로 돌아보려고 했지만, 전신이 뒤에서 너무 꼭 잡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네..."


일어나는 많은 생각들에 비해서 너무 짧게 나온 대답이었다.



****



마계의 입구에서 기다리는 전신의 얼굴빛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무기도 없이 마계로 들어왔다가 궁지에 몰린 채 풀 조각처럼 쓰러져 가던, 그의 형제와 같았던 장수와 부하들의 선혈이 뿌려지던 곳이었다.

아무리 마계의 주인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서면 항상 마음을 무겁게 자극하는 기억이었다.


그에게 마계라는 의미 자체는, 몹시도 걸리적거리고 요즘 같아서는 듣기만 해도 신경질이 나는 존재였다.

한 발만 디디면 암흑 속으로 빨려 들 것 같은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입구였다.


“ 안 그래도 들어가기 싫은 곳인데, 입구마저 저렇게 흉흉하게 생겼다니,”


소용돌이 입구 앞에서 뒷짐을 진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뒤쪽으로, 소리도 없이 나타난 진소가 검의 소리만 철렁 거리며 조용하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전신을 뵙습니다.”


마존의 수하를 마주 한 전신이,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없이 고개만 돌려 쳐다본 후 인사에는 응하지도 않고 있었다.


“마존은 폐관수련을 마쳤나?”


“그러합니다. 마존께서 파한정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하라!”


진소가 전신에게도 검은 연기를 씌우며, 함께 파한정의 입구까지 이동을 하였다.


파한정의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경관에 전신이 사뭇 놀란 듯이 넌지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천계의 자청비군의 처소가 하도 멋있다고 해서, 성운과 함께 몇 번 가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께 가보았다면, 별반 다른 게 없으니 둘러볼 것도 없소.”


손님을 맞기엔 참 성의 없는 마존의 말투에, 분위기에 누그러졌던 전신의 마음이 다시 날카롭게 날이 서고 있었다.


넓은 마당 한쪽에 잎이 무성한 나무덩굴로 만들어진 그늘 막 아래에서 한 눈에 봐도 힘이 부친 마존이 삼두견과 함께 앉아, 마시던 약차를 내려놓으며 표정 없이 전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이 제 발로 이곳에 나타날 이유가 있소?”


마존도 전신에 못지않게 못 마땅한 표정이었다.


“폐관 수련을 했다는 자가, 아직 고작 이 모양인가? 쯧쯧, 얼마나 나약하면...”


진소와 당당의 표정이 그를 향한 채 일그러지고 있었다.

당당이 먹이를 앞에 둔 짐승처럼 붉은 혀를 늘어뜨리고 바닥으로 굵은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마존이 이들을 향해 힘없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자, 당당이 마지못해 굵은 침 한 줄기를 전신이 보는 앞에서 위협스럽게 쭉 늘어뜨린 후, 기다란 혀를 입안으로 쑥 말아 넣었다.

꼬리를 바닥에 내리고 앉는 모습이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완전히 회복 할 때까지 폐관수련을 한다면, 천계 당신네들 속이 더 타 들어가지 않겠소?

몰려오는 귀왕의 군대를 나누어 막아줄 이가, 본존 말고 누가 더 있을라고! ”


대답 없이 전신이 알아서 그늘 막 한쪽에 있는 나지막한 의자를 당겨와 앉았다.


마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은 햇살과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갖가지 새소리까지 함께 섞여, 아주 유쾌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가득 느껴지고 있었다.

전신이 자신도 모르게 사방에서 몰려드는 달콤한 꽃향기를 빨아들이느라, 코를 벌렁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서로가 마주한 채, 먼저 말을 꺼내는 이도 없이 그저 눈앞의 연적을 불편하게 응시하고만 있었다.


“운이는, 내력이 좀 키워졌소?”


거친 목소리로 마존이 먼저 전신에게 말을 꺼냈다


“운이...? 그렇게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군.”


“운이의 기억은 좀 돌아왔고?”


전신의 말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고집스러운 마존의 대꾸였다.


“미인!”


그들의 냉기가 진소와 당당을 포함해, 파한정안의 모든 생명들을 얼리고 있었다.


“본존을 찾아 온 이유부터 얘기하시오!”


마존의 또 다른 말이 이어지고, 이에 잠시 냉기도 풀려지는것 같았다. 하지만, 서로의 눈빛만은 그다지 고요하지가 않았다.


“자운이 당신에 대한 죄책감에 빠진 게 싫어 서지.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니, 모든 기가 막혀서 빨리 각성이 되지 않는 게 아니겠나!"


마존이 다시 약차를 입에 가져다 대며,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 ... 그저 연민일 뿐이야.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마치 아주 중요한 말을 놓치기라도 한 듯이, 전신이 재빨리 이어붙인 말이었다.


“연민이든 마음이든, 그게 중요한가? 그녀에게 내가 보고 싶은 이유가 필요한 것뿐인데, 확신을 가지고 운명을 시작하나? 만나야 될 이유가 먼저 필요한 것이지”


마음을 헤집을 듯이 날카롭게 꺼낸 마존의 말에, 전신의 표정이 또 한 번 불편한 모양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 생각만 너무 앞서 달리는 게, 참 무모 하군!”


전신이 비아냥거리며 마존을 흘겨보았다.


“ 자운이 정심검이 선택한 여인이라지... 마계엔 자운이 필요하겠군. 하지만 마계의 명운을 위해, 자운을 이용하게 두지는 않을 거야!"


전신이 또 한 번 마존의 심경을 들쑤시는 말을 내뱉았다.


“걱정 안 해도 돼. 나 또한 같은 생각이거든! 천계의 오룡광진에 심신이 약해 버티지도 못할 자운을 억지로 넣으려는 속셈을 그냥 두고 보진 않을 테니!"


전신이 놀란 표정으로 마존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천제가 할 줄 아는 게 '오룡광진' 그것 뿐이잖아? 전신이 지난번 보았던, 자운이 가진 청룡의 근간을 천제에게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 테고!"


마존이 던진 말에, 당황하는 기색이 적잖이 담긴 채 전신이 대꾸했다.


“세상을 지켜내기 위함이야!"


“그래야 겠지. 하지만 자운이 내력을 완전히 되찾고 신력을 견뎌 내는 것이 가능 할 때만 반드시 해야 할 거야. 아니면 영원히 근간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거 알잖아? 그럼 내가 가만있지 않아!"


마존 또한 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단호한 말속에는 마계의 최고신다운 위엄이 가득 서려 있었다.


“자운이 아직 인간의 몸이어서 천계로 데려올 수가 없어. 인간들이 느끼지 못하도록 공간을 비집고 천계의 공간을 옮겨서 결계를 씌워 놓았으니, 네가 내려가서 자운의 마음에 걸려있는 응어리를 없애주어야겠어.”


마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리고 있었고, 그의 미소를 전신이 불편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



달에 정령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마침 보름달의 밝은 빛 아래에서 생각이 없는 조각상처럼 서 있는 나체귀의 모습은, 천상의 모습과 지옥의 눈빛을 가진 전설 같은 존재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괴물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무은...”


나체귀가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사실 흑조가 먼저 나체귀의 모습을 찾은 후라,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왔는가? 무슨 일이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체귀가 대꾸하고 있었다.


그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세오의 모습은, 나체귀의 백옥 항아리와도 같이 매끈한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떠돌이 낯선 손님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신선의 행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보기 힘든 모습 이었지만, 오히려 지극히 속 좋은 인간의 모습 같아 보이는 세오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푸석푸석 낙엽소리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잘 지냈는가?”


이전에는 세오가 이렇게 잘 웃고, 말 많은 사람 같은지 전혀 몰랐던 것 같았다.


“오랜만에 친구 같은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구만, 행색은 썩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


또 다시 세오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체귀의 모습을 아래위로 쭉 흩어본 후 말을 걸었다.


얼굴을 반쯤가린 가면 덕분에 표정이 많이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술 끝이 올라가고 코 언저리에 주름이 깊게 잡히는 것이, 그 또한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잔 하세.”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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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1.22 20:35
    No. 1

    연적이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원수지간이 되어버린 마존과 전신이지만
    자운을 빨리 각성시켜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어
    서로 꽤 신사적이네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23 01:53
    No. 2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휴일 잘 보내셨나요.^^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두 사내가, 제가 보기에도 참 사랑스러운것 같아요~
    저같아도.. 고민이 좀 됐을 듯요..ㅋ
    첫화부터.. 참 긴 시간이 지난것 같은데,
    포기하지않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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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보천귀장 +2 22.10.02 36 4 11쪽
87 아녕의 진실 +3 22.10.01 42 4 11쪽
86 마계로 향하는 청룡 +4 22.09.30 36 4 11쪽
85 천해문을 여는 운우 22.09.29 38 4 12쪽
84 선. 마의 기운 +2 22.09.28 34 4 12쪽
83 격전의 날 22.09.27 38 4 12쪽
82 마존이 선택한 여인 22.09.26 43 4 12쪽
81 보연의 거래 22.09.25 34 4 11쪽
80 회마곡에서 만난 자운과 운우 +2 22.09.24 42 4 13쪽
79 잃어버린 너 22.09.23 36 4 12쪽
78 슬픈 준비 +2 22.09.22 41 5 13쪽
77 셋이서 함께 +4 22.09.21 62 5 12쪽
76 세오의 계획 22.09.20 31 5 12쪽
» 연적의 사내들 +2 22.09.19 33 4 11쪽
74 운우의 흔적 22.09.18 44 4 12쪽
73 기억 심기 +2 22.09.17 36 4 12쪽
72 현연의 탈출 22.09.16 34 6 12쪽
71 전신의 죽 +2 22.09.15 43 6 12쪽
70 다시 제자리로 +4 22.09.14 47 6 11쪽
69 기억 소환 22.09.13 33 6 12쪽
68 현연의 윤회점 22.09.12 36 6 12쪽
67 네가 꿈꾸는 사이 +2 22.09.11 4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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