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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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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672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9.23 17:30
조회
36
추천
4
글자
12쪽

잃어버린 너

DUMMY

“일단 지금은, 천계와 밀접한 일이 아니고서는 전신도 움직이지 않을 거잖아요!

다들 제 코가 석자인데, 보통 때라면 다른 계의 문제들도 천계 놈들은 저희가 구중천의 우두머리랍시고 나대겠지만, 지금은 천계도 자기들이 살아남기에 급급하니,

그들의 원천수인 영선강의 수원이 있는 영선계라도 공격을 해야, 움직일 가능성이 생기지 않겠어요?"


더 이상, 보연 저 계집의 말에는 절대로 귀 기울일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마음먹던 귀왕이, 또 한 번 보연의 계획에 솔깃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그렇긴 하겠지."


"공격을 해댄다고 영선계가 무너지진 않겠지만, 마군들이 대놓고 미련스럽게 영선계를 공격해댄다면 신경이 쓰인 천제도 분명이 전신을 보낼 테고,

그사이 전신이 그년과 함께 없는 것이 확인되면, 현화루를 써서 결계를 파괴하고 그년을 잡아 오기만 하면 되는 거죠.”


"...음... 나쁘진 않군."


여전히 이번에도 일이 탐탁지 않게 마무리가 된다면, 보연을 반드시 찢어 없애버릴 것이라고만 또 한 번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



물결위로 비춰지는 사물의 그림자처럼, 미세한 일렁임이 느껴지는 공간 앞에서,

보연이 초조한 듯이 왔다 갔다 하길, 수십 번은 반복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았다가 멀리서 떨어져서 보았다가를, 또 그렇게 수십 번을 재어보고 있었다.


‘마지막 인데...’


이제 현화루 가루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계의 여장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최고의 황홀한 무기였던 현화루를, 절대 사용하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려고 하였었다.


한때 마존이,

진소와 자신만을 믿고 건네준 마존만의 강력한 무기인 현화루를 그들에게 줄 때, 마존의 마음은 분명 자신을 많이 아끼고 있었다.

여인이든 동생이든 상관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주었던 그 마음이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믿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전신이 미리 몇 개의 비슷한 형상으로 공간이 접힌 부분을 인간계에 이리저리 심어 놓은 탓에, 몇 번의 허탕을 치면서 이제 남겨둘 양은 고사하고 이번 한번을 더 시도하여도 그들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하면, 귀왕에게 잡히기 전에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분명 귀왕은 혼이라도 찾아내어서, 갈기갈기 찢고 갈아서 소멸시켜 버릴 것이 분명했다.


보연이 이럴 땐 인간들처럼 신이라도 찾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지만, 이내 콧방귀와 함께 거세게 머리를 몇 번 흔들며 투덜거렸다.


“신은 무슨...! 니들이 보기엔 나도 신이다!”


주변에서 지루해진 귀신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채 머리를 갸웃거리며, 곧 터져버릴 것처럼 열이 오른 보연을 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 빌어먹을 전신! 천계 놈들이 더 야비한 짓만 골라서 하지. 시간이 남아도는 거야? 같은 걸 몇 개씩이나 지르고 다닐 만큼, 전신이라면서 할 일이 그렇게 없어 ? !"


하지만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초조해진 보연의 손끝이 이제는 살며시 떨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까짓것. 소멸! 그래. 뭐 지금은 마존이 아쉽지만, 내가 사라진다면 뭐가 중요해. 내가 없어지는데... 에라 모르겠다 !”


눈을 질끈 감고 보연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현화루 가루를, 일렁이는 공간사이로 팽개치듯이 휙- 하고 던져버렸다.


공간으로 흩어진 현화루 가루는 눈물처럼 투명한 방울로 변하며 마치 살아있는 소귀들의 움직임처럼, 부드럽고 재빠르게 목표물을 향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알아서 잘 달라붙어 주었다.


동시에 목표물에 달라붙은 방울들은 강력한 힘으로 그것들이 붙은 사물들을 조이고 녹이며, 함께 투명한 눈물로 변해가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흘러내린 물기는, 눈물이 말라 들어가듯이 조금 씩 조금 씩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없어지고 있었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현화루를 던져버린 것이었지만, 조금의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보연이 하는 행동을 구경하던 귀신들이, 없는 심장이라도 조여드는 흉내를 내며 옆으로 조심스럽게 실눈을 뜨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귀신들의 아우성이 시작되었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음의 높낮이가 섞인 그들의 소리는 파리떼가 웅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벌레 떼가 달콤한 것을 갉아 먹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또한 신나는 것 같지만, 그렇게 즐거운 소리로 들리는 건 아니었다.


여하튼 이번엔, 다행히 제대로 찾아 낸 것 같았다.

눈앞의 광경에 보연과 귀신들이 믿기지 않는 듯, 잠시 그림자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당황하기는 결계 안에 있던 이도 마찬가지였다.


자운이 꽃밭사이로 흐르는 냇물 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더럽혀진 전신의 손수건을 빨아 헹구다 말고 눈앞의 광경에 놀란 얼굴로 젖은 손수건을 그대로 들고 일어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그들과 잠시 동안 마주보고 서 있었다.


옆에선 귀신들의 소리에 놀란 정치마가 잎에 물었던 풀잎들을 내 팽개치며 앞발을 들고 일어나 큰소리로 귀신들을 쫓는 소리를 질러내고 있었다.


정치마의 찢어질 듯 허공을 휘젓는 소리는, 피부가 찢겨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귀신들이 모두 도망치기 바쁘도록 하기 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한편에서 여유 있게 이를 지켜보던 보연이, 묘한 웃음기를 띠며 팔짱을 낀 채로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아, 보연언니.”


처음엔 한 두 걸음쯤 뒤로 물러나던 자운이, 보연을 알아보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서, 점점 다가오는 보연을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위협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던 정치마가 눈에 거슬렸는지, 보연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숙이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너, 그래봤자 소용없어! 이 몸은 귀신이 아니라서, 네 퇴마음 으로 나를 물리칠 수도 없잖아?

또 주변에 귀신이 없으니, 니 주인을 업고 나를 피해 도망 가야할 의지도 별로 생기지 않을 거야.

그리고 말이야. 지금 너의 그 소리는 그냥 귀에 거슬리는 엄청 못 부르는 노래하나 불러대는 꼴이니까, 그만 입 좀 다물어. 시끄러워 죽을것 같다구!"


숙이가 아랑곳하지 않고, 보연을 덮칠 듯이 앞발을 들어 위협적으로 나오자, 보연이 눈에 거슬린다는 표정과 함께 정치마에게 커다란 보자기처럼 생긴 무엇인가를 '휙-' 하고 던져버렸다.


그러자, 숙이가 쓰러졌다.

수천명의 인간의 억울한 혼을 엮어 만든 인간의 피 그물이 그를 덮친 채 옥죄고 있었다.


그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에 그들의 혼이 닿이는 순간, 그들의 억울한 고뇌의 무게만큼 무겁게 그 생명체를 누르고 숨이 막힐 때 까지 조이며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숙이가 괴로운 듯이 기다란 두 다리로 그물을 빠져나오려고 바둥거렸지만, 그럴수록 그물은 더욱 강하게 그들이 잡은 생명체를 조이고 들 뿐이었다.


숙이가 누워 바둥거리는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나오는 피는, 숙이의 것인지 아니면 원래 피를 축축하게 두르고 있던 그물에서 배어나오는 그들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습에 넋이 나갈 듯이 놀란 자운이, 숨이 막혀오는 입만 동그랗게 벌어 놓은 채, 다시 다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보연 언니, 어떻게... 숙이는 왜...”


자운이 떨리는 음성으로 드문드문 말문을 열자, 듣기도 귀찮다는 듯이 보연이 빠른 손짓으로 자운의 몸을 작은 혼령구로 만들어 버린 후, 허공으로 띄워 작은 혼낭 안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순간, 자운의 의식은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 듯이 무겁게 몽롱해 지며, 한쪽 방향으로 구겨질 듯이 어지럽게 쏠리는 기억과 함께 어둠속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



아직 벗지 못한 갑옷을 두른 전신이, 찢어진 그림처럼 너덜거리는 공간속에서 무겁게 버티고 서 있었다.


물빛으로 투명한 검 위로 흑룡이 휘몰아 치듯이 감긴 그의 수심검이, 조금 전까지도 수많은 마귀들을 베어내느라 여전히 날카롭게 날이 선채로 그의 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침 까지만 해도 그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환하게 웃던 자운에게 금방 다녀오겠다고 약속하고 그녀에게 따뜻한 배웅을 받던 곳이었다.


그의 손아귀 속에서 수심검의 떨림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아직 배를 채우지 못한 악마의 손길처럼, 무엇이라도 닥치는 대로 쓸어버릴 것만 같은 위세가 서려있었다.


망연히 서 있던 그의 귓가에 ‘타닥’ 거리며 애처롭도록 작은 몸부림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전신이 놀라움과 분노로 일그러지는 얼굴과 함께, 검붉은 피에 흥건히 싸여진 숙이의 몸부림을 알아보았다.


붉은 피로 뒤덮힌 보자기 아래에서 정치마가 얕은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경련과도 같은 미세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전신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담아, 거세게 수심검을 휘저으며 붉은 피 그물을 들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주변으로 흩어진 몇 방울의 핏자국이 전신과 수심검에도 닿이자, 혼이 깃든 핏방울은 어쩔 줄을 몰라 그 자리에서 흑 빛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렸다.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이번에는 부드러운 손길로 숙이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노로 타오르던 그의 눈동자에서는, 이제 통증이 느껴질 만큼 버티기 힘든 고통이 찾아오고 그의 온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의 손길의 움직임을 따라, 정치마를 덮고 있던 흉흉한 핏자국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몸을 바둥거리느라 경직되었던 숙이의 네다리도 힘없이 바닥으로 축 쳐져 버렸다.


전신이 계속해서 선기를 담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어렴풋이 정신이든 정치마가 다시 일어서려는 듯이 자리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괜찮다. 수고했다 숙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잠시 누워서 쉬도록 하거라."


꿈틀거리던 숙이가 다시 잠잠해 지며 눈을 감았다. 그의 손길을 느끼며 아주 편안하게 잠이 드는 것 같았다.


“인간의 혼은 천계의 존재를 감히 어쩌지 못한다. 너는 이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천계로 돌아가도록 하자구나.”


잠이든 숙이의 곁에 주저앉아 찬찬히 갈기를 쓸어주는 그의 곁으로 차가운 기운이 불쑥 들어선 것 같았다.

서두들 것 없었다. 분명히 그 일 테니... 전신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곁에 우뚝 선 검은 형체를 올려 보았다.


이마엔 현빙화의 기운이 들어서고 왼쪽 눈엔 붉은 동공이 타오를 듯이 돌아가며, 그를 녹여버리듯이 태워버릴 듯이 째려보고 서 있었다.


“역시, 네가 일을 저질렀어. 전신!”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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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아녕의 진실 +3 22.10.01 42 4 11쪽
86 마계로 향하는 청룡 +4 22.09.30 36 4 11쪽
85 천해문을 여는 운우 22.09.29 38 4 12쪽
84 선. 마의 기운 +2 22.09.28 34 4 12쪽
83 격전의 날 22.09.27 38 4 12쪽
82 마존이 선택한 여인 22.09.26 44 4 12쪽
81 보연의 거래 22.09.25 34 4 11쪽
80 회마곡에서 만난 자운과 운우 +2 22.09.24 42 4 13쪽
» 잃어버린 너 22.09.23 37 4 12쪽
78 슬픈 준비 +2 22.09.22 41 5 13쪽
77 셋이서 함께 +4 22.09.21 63 5 12쪽
76 세오의 계획 22.09.20 31 5 12쪽
75 연적의 사내들 +2 22.09.19 33 4 11쪽
74 운우의 흔적 22.09.18 44 4 12쪽
73 기억 심기 +2 22.09.17 36 4 12쪽
72 현연의 탈출 22.09.16 34 6 12쪽
71 전신의 죽 +2 22.09.15 43 6 12쪽
70 다시 제자리로 +4 22.09.14 47 6 11쪽
69 기억 소환 22.09.13 33 6 12쪽
68 현연의 윤회점 22.09.12 37 6 12쪽
67 네가 꿈꾸는 사이 +2 22.09.11 4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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