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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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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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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7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9.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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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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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억 심기

DUMMY

“ 옥호사형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 내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자영의 음성이었다. 소용돌이의 형상을 둘러싸던 꽃잎들이 흩어져 가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서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들썩이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시간은 중요해. 널 데려오는 일에, 난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천계가 힘을 잃어야 가여운 인간들의 윤회도 끝이 날 수 있는 거잖아.

자성의 별이 다가오는 그날에 모든 게 결정되어야 하지. 시간이 없다구!"


“세오 사형, 그냥 흐르는 대로 두세요. 옥호사형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 또한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선택이든지 함께 할 테니까요. 그게 답이에요.”


“아니, 내가 살 수가 없어. 네가 내 눈앞에 없으니...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의 이야기가 끝맺을 새도 없이, 다시 그녀의 모습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봐, 너무 빠르잖아. 네가 너무 빨리 흩어지잖아. 그대로 두는 게 항상 옳은 건 아니야!

바뀌어져야 할 건 바꾸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구!"


자영의 흩어지는 모습 속에서, 가장 밝은 빛으로 빛나는 붉은 꽃잎 한 장이 마지막으로 흩어지려고 할 때였다.


세오가 놓치지 않고 급하게 선기를 끌어 모아, 한참을 힘겹게 시름한 후에 붉은 꽃잎 한 장을 그의 손아귀 안에 담을 수 있었다.


꽃의 정령으로 변한 그녀의 진기였다.


“옥호 사형을 몰아세울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을 것 같아. 이 진기를 깨뜨리면 정령으로 기를 모아온 너의 지난 시간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

적어도 사형이 널,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



아직 인간인 자운을 위해, 여전히 전신은 그녀가 먹을 음식들을 궁리 하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과일을 따고 선기를 이용해 천계의 음식을 불렀다가 비슷하게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선기를 이용해 불러낸 음식은, 신선들의 몸에 맞춘 선식 이다보니, 인간인 자운에게는 맛도 없을뿐더러 몸의 기운을 보충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제법 그의 음식 실력이 늘었는지, 자운도 무표정하게 삼키기만 하던 처음의 음식과는 다르게 몇 숟가락에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전신이 지금껏 존재하면서 가장 신선답지 않고 가장 전신답지 않은 일상이지만, 가장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 귀신들은 맹렬히 자운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귀왕과 신이공주의 화가 극에 달해 있는 탓에, 중천의 공주를 찾지 못하면 그들의 존재도 세상에서 함께 사라져야 할 판이었다.


인간인 자운을 천계로 데려갈 수 없으니, 전신은 거꾸로 천계 세상의 일부분을 떼서 인간계로 가지고 내려왔다.

인간계의 조용한 한쪽에 공간을 벌려 천계의 세상을 넣고, 아무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결계를 쳐 두었다.


자운의 기력이 조금씩 회복이 되고 안색도 밝아졌지만, 가슴을 누르는 아픈 기억은 여전히 그녀를 나을 수 없는 병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여긴 어디에요?"


넓게 펼쳐진 키 낮은 꽃밭에 둘이서 나란히 앉아, 서투른 솜씨로 또다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전신에게 자운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짧은 대답도 할 경황이 없어 보일만큼 바쁜 손길로 더듬거리는 그의 한쪽 옆에는, 키가 작게 꺽어놓은 갖가지 예쁜 꽃들이 소담스럽게 쌓여있고, 몇몇 송이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숙이가 느릿느릿 다가오더니, 꺾어놓은 꽃들에게 코를 갖다 대고 있었다.


“숙아 안된다 !”


화들짝 놀란 전신이 두 손으로 흩어진 꽃들을 오므리고 있었다. 그 모양을 자운이 한동안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선이잖아요?”


“어. 그렇소...!..."


“뭐 하세요? 하루 종일 밥 짓고, 꽃따고...선녀도 아니고."


“어, 그게... 임무중이오!"


“무슨 임무요 ? 누가 시킨 일이에요? 그리고 여기는 어디죠?”


“기억이 아직 많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소. 이 일은 내가 시키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 난 당신을 지켜야 하거든!"


“...?. 어렵군요...”


그녀의 기억 속에는 마존의 눈으로 바라본 모습들이 대부분 들어차 있는 탓에, 전신을 좋아하지 않는 그의 기억 속에서 전신에 대한 호감을 찾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의 어색한 손끝에서 어렵사리 탄생한 건, 서투른 모양의 꽃 화관 이었다.


“됐소...! 간만에, 도하노인이 알려준 것 중 제대로 된 것 하나를 이룬 것 같소.”


‘하늘에는, 선생이 도하노인 하나밖에 없나보군...!'


자운의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화관을 들어 보이며, 전신이 꽃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는 자운도 함께 웃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예쁘네요.”


자운의 칭찬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전신이 가만히 일어나더니, 자운 바로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혀 앉으며 흐트러진 자운의 머릿결을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쓸어주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그의 몸짓에 깜짝 놀란 자운이, 앉은 채로 움찔하며 뒤로 몸을 젖혔다.


“가만히 계시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신중했다. 더 이상 그의 성의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자운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단은 그의 손길대로 맡겨 보기로 하였다.


짧은 단장이 끝난 후, 전신이 수줍은 듯이 화관을 들어 그녀의 정돈된 머리위로 얹더니 정성껏 이리저리 맞추어 보고 있었다.


‘천계의 전신이라고...?’


그의 맑은 눈빛과 세심한 손길은, 그가 마귀를 상대로 창칼을 휘두르며 무섭게 호령하는 전쟁의 신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게 할 따름이었다.


어느새 그의 넓은 가슴과 굳건하게 펼쳐진 두 팔 안으로 자운이 꼭 끼어진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의 품안에 갇혀진 공간속에서 자운이 작은 헛기침을 하며 몸을 비틀려 하자, 오히려 움찔하는 자운의 몸이 그의 품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작고 보드라운 한 마리 짐승처럼 그의 몸과 감정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의 멈춰진 두 팔사이로 일어나는 열감의 기운에 놀란 자운이 동그랗게 커진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동시에 화관에서 멈춰있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자운의 작은 어깨와 턱 선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쯤이면 언제나 자운의 몸이 긴장하고 들떠서, 마른 딸꾹질이 일어나던 순간이 그녀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일어나 버렸다.


‘아, 전신...!’


그를 마음에 품고 설레던 순간이 기억났다. 마존이 심어준 기억의 일부분 일리는 없었다.


“저기, 다리가...”


딸꾹질보다 그녀의 입에서 먼저 나온 소리였다.


깜짝 놀란 전신이 그녀의 다리 쪽을 내려 보았다.

자운의 가느다란 종아리가 그가 굽혀 앉은 굵은 다리에 눌려진 탓에, 경련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아, 이런. 미안하오!”


전신이 얼른 자운의 턱 선을 잡았던 한쪽 손을 내려, 짧게 운기한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신기하게도 경련은 금방 풀어지고 다리는 아까보다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고마워요...다리도, 화관도요.”


자운이 감추기 힘든 열감을 두 볼 가득히 드러내며 수줍게 속삭였다.


“자운!”


“네?”


전신의 표정은 진지했다.


“내가 당신에게 나의 기억을 나눠줘도 될까?“


자운의 두 볼은 이제 아예 익어버릴 듯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최대한 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용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이전 숲속의 달밤, 마존의 말이 지금에서야 갑자기 기억이 났다.


‘... 도하노인이, 기억을 되새겨 주기엔 이방법이 가장 좋다고 얘기하던...’


그의 입술의 감촉이 함께 되살아났다.


기억을 나눠주기 위함이라고는 했지만,

그날 마존과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 전신이 그날과 같은 방법을 쓰려고 한다는 설렘 때문인지, 갑자기 몰려드는 많은 감정과 생각들로 자운의 머릿속이 하얘지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미안해하기까지 하는 전신의 모습이 점점 그녀 가까이로 다가오자, 놀란 자운이 두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막으며, 숨도 쉬지 못하는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또다시 애꿎은 딸꾹질이 그녀가 손으로 숨겨놓은 입술 아래에서 커다란 소리로 새어나왔다.


전신이 잠시 주춤거리며 머리를 갸웃거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앞쪽에 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아 수인을 맺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운 미안하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신이 스스로 원해서 우리의 기억을 떠올려 주기를 바랐는데,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각성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기억이라도 전해주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지금 당신에게 선기를 채우고, 함께 내가 가진 우리의 기억까지 전해주도록 하겠소!"


여전히 욱진 거리는 열감이 그녀의 몸을 온통 감싸고 있었지만, 더 이상 필요 없는 기대와 감정은 얼른 털어 버려야 할 것 같았다.


한편 그녀의 앞에서 수인을 맺고 있는 전신의 모습이 참으로 수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서야 느껴보는 그의 신선다운 모습에 감동하며 그가 하는 모양을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단전 앞에서 단아한 모양으로 수인이 맺어지고 꿈틀거리는 기류 같은 것들이 그의 손끝사이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부드럽지만 힘이 느껴지는 그의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 뻗어 나온 기류는, 흔들림 없이 자운의 가슴과 미간사이로 빨려들 듯이 이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흔들리는 기류와 함께, 전신의 이마위에도 땀방울이 맺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운에게 빨려 들어가는 기류는 처음에는 그녀의 온몸을 간질이듯이 이곳저곳을 들썩거리게 하더니, 기류가 선기로 바뀌어 지며 파고들자 온몸 구석구석이 뜨거웠다 시원했다를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몸이 가벼워지고 생각이 맑고 깊어지는 느낌이 그녀 안으로 ‘훅’ 하고 밀어닥치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전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마존과 당당의 모습이 아른거리면서 살아나더니, 이내 그녀의 기억처럼 선명하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당당이 그녀의 앞에서 검광을 맞으며 튕겨나가고, 마존의 온몸이 이글거리며 보천귀장의 시간을 맞서고 있었다.


전신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수인이 풀어지자, 자운의 볼 위로 두 줄기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깊은 한숨과 같은 호흡을 뱉으며 정신을 가다듬은 전신이 급하게 먼저 자운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놀란 얼굴위로 흐르는 눈물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전신이, 얼른 가까이 다가가 자운의 어깨를 살며시 다잡아 주었다.


“무슨 일이지 자운? 기억이 돌아온 건가?”


“무슨 일인 거죠? 왜 나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다쳐야 한 거죠?”


전신이 들썩이는 자운의 어깨를 살며시 당겨 안으며 어깨를 쓸어주었다.


“ ... 마귀들의 심성은 짓궂고 사악하지. 네가 규령선관 인걸 알고 주변의 모든 요마귀들이 한꺼번에 떼로 모여 널 공격했던 거야. 그리고 그날은, 나보다 먼저 그가 그곳에 도착했던 거지. 그리고 그런 너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것이고...

우린 서로를 지켜주고 싶어 하잖아? 자운 너 또한 그럴 테고, 안 그런가?”


“많이 다쳤나요? 지금은요?”


" ... "


‘이런, 내 품안에서 다른 녀석을 걱정하는 여인에게 오히려 나는 설레고 있다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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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1.20 20:48
    No. 1

    (인간인 자영에게는 맛도 없을뿐더러 → 자운)

    아니 마존, 전신을 싫어하는 기억까지 옮겨주었나요ㅋㅋㅋㅋ
    아니 도하노인도 마존 편인가 보군요.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21 00:36
    No. 2

    우와~~~
    별님,, 짱~~!!
    만월검이 단정하게 정리가 되어가는것 같아요~~
    꼼꼼하게 읽어주시니.. 잘못된 부분이
    별님의 눈길은 피해가지 못하는것 거죵~~^^
    얼른 고칠께용~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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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보천귀장 +2 22.10.02 36 4 11쪽
87 아녕의 진실 +3 22.10.01 42 4 11쪽
86 마계로 향하는 청룡 +4 22.09.30 36 4 11쪽
85 천해문을 여는 운우 22.09.29 38 4 12쪽
84 선. 마의 기운 +2 22.09.28 34 4 12쪽
83 격전의 날 22.09.27 38 4 12쪽
82 마존이 선택한 여인 22.09.26 43 4 12쪽
81 보연의 거래 22.09.25 34 4 11쪽
80 회마곡에서 만난 자운과 운우 +2 22.09.24 42 4 13쪽
79 잃어버린 너 22.09.23 36 4 12쪽
78 슬픈 준비 +2 22.09.22 41 5 13쪽
77 셋이서 함께 +4 22.09.21 62 5 12쪽
76 세오의 계획 22.09.20 31 5 12쪽
75 연적의 사내들 +2 22.09.19 32 4 11쪽
74 운우의 흔적 22.09.18 44 4 12쪽
» 기억 심기 +2 22.09.17 36 4 12쪽
72 현연의 탈출 22.09.16 34 6 12쪽
71 전신의 죽 +2 22.09.15 43 6 12쪽
70 다시 제자리로 +4 22.09.14 47 6 11쪽
69 기억 소환 22.09.13 33 6 12쪽
68 현연의 윤회점 22.09.12 36 6 12쪽
67 네가 꿈꾸는 사이 +2 22.09.11 4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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