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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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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670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9.26 17:31
조회
43
추천
4
글자
12쪽

마존이 선택한 여인

DUMMY

일단 계산을 운운 하는 보연 앞에서는, 귀왕도 분명 주춤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래, 무엇 때문에 공주가 필요한 것이냐?!”


작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보연이 머리를 들어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마존이 중천년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세게 나올 것 같습니다.

최소한 중천년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마존이 몸을 사리고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좋은 방법은 눈앞까지 데리고 가서 보여주고 다시 데려오는 것입니다.”


보연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싸늘한 기운이 주변을 감싸 돌기 시작했다.

모든 귀신들이 놀란 모양이었다.

아마 또다시 귀왕에게 제대로 한소리 들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으로, 미리 혀부터 차대는 귀신들의 소리까지도 배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솔깃한 마음이 동한 귀왕이, 짙은 눈썹을 모으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 네년이 대의를 생각할 그릇은 아닐 테고, 네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기에?”


한시름 놓인 보연의 입가에 웃음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여자도 잡아왔으니, 내친김에 마존의 마음을 제대로 가지고 놀아 볼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서요.

저나 귀왕이나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제가 하고 싶습니다. 맛만 보여주고 다시 잘 가지고 오는 거죠!"


가만히 듣던 귀왕이 한참 후에야 보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네가 그 녀석 앞에 가면, 공주를 안 뺏길 자신은 있고?”


보연의 얼굴이 밝아지며, 귀왕을 향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방법을 다 생각해 두었습니다 귀왕! 그년의 몸에서 혼만 빼서 혼 낭에 담아두십시오. 혼 낭은 두고 몸만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러면, 그녀석이 혼이 없는 제 여자가 온전히 살아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보연의 표정엔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다.


“궁지에 몰리면, 비슷한 것만 보여줘도 희망을 가지고 믿고 싶어지는 법이지요. 다 보여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정도만이라도 보여주면, 어쩌면 더 애타 할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독한 년, 불에 탄 상처에 뜨거운 물까지 붓는 격이구나. 너 답다!”


일이 잘 풀려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보연도 귀왕의 기분을 맞추느라 음흉한 웃음소리를 일부러 더 크게 질러대고 있었다.



****



파한정의 가장 높은 나무위에서 바라보던 모습은 그대로였다.


나무도 새둥지도 폭포도 모두 있어야 할 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너무 약이 올랐다.

의지가 없는 생명도 그대로 평온함을 누리는데, 마계의 수장이면서도 함께 있고 싶은 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하얀 얼굴과 손의 근육이 경직되고 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형님,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합니까...!'


그래도 한때 형제랍시고, 살려두는 걸 주저하지 않았었는데, 만황지 전투에서 힘없이 주저앉던 그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마계를 두고 하는 전쟁에 왜, 모든 구중천을 이렇게 들쑤셔야 하는 거야!

귀왕. 이제 마계를 떠나서 모든 계의 적이 되는 걸 자초 했지만, 그보다...!! 내 여인은 건들면 안됐어! 이제 본존 앞에서 더 이상의 인정 따위는 구걸조차도 할 수 없을 거다!"


옆의 나뭇가지위에 꼬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던 당당도, 그의 주군의 불편한 심기를 느꼈는지, 그르릉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쓰윽 일어나더니, 사나운 발톱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마존을 바라보았다.

당당의 응원방법이었다.


파한정 아래를 내려다보던 마존의 흐릿한 두 눈 속에, 그의 옆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며 신나하던 운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이 향하던 기억을 따라, 마존도 맥없이 그 곳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위해 꾸미고 있던 별채는, 이미 주인을 정해 놓았으나 주인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그녀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미운정' 이라고 부르기로 한 걸 말해 줄 순간을 생각하자, 그의 딱하게 그늘진 얼굴 속에도 수줍은 듯 옅은 웃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아마, 곧 네게 말해 줄 수 있을 거야! 보고 싶군... 미치게... 견딜 수 있을까."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된 그리움은,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선계의 피를 모두 말리고,

마계의 기운이 깃든 현빙화의 검붉은 불꽃만 핏빛으로 불태우고 있었다.



****



마존이 보연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전해들은 연수가, 마존 에게 겨우 허락을 받아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다.


신선들은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말썽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구중천의 규칙이 오랜 세월 전부터 존재해 왔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이 깨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마존의 예상치 못한 분노를 감당하기 위해서, 만날 장소를 인간계로 선택한 보연이 알려준 낮은 산중턱에서, 진소와 당당과 함께 연수를 앞세운 마존이 들뜬 마음을 애써 누르며 어둠의 한 부분처럼 가만히 서서 자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바닥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아있던 당당이, 슬며시 일어나 송곳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옅은 연기 속에 보연이 몇몇 귀신들을 데리고 마존과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나타났다.


보연에게 먼저 급하게 말을 꺼낸 건 연수였다.


“보연아 설마 했는데, 역시 또 일을 이렇게 만드는 구나. 지금이라도 얼른 공주를 마존께 보내드리고 우리는 이곳의 일들은 잊고 현령계로 가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함께 살도록 하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라니 !”


보연이 거칠게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연수가 보연을 다시 달래려 애쓰고 있었다.


“어차피 넌, 이제 어느 계에도 들어가기가 힘들어. 하지만 현령계는 소란스럽게만 하지 않으면 서로 간섭을 하지 않으니까, 너도 얼마든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어.”


“그만해. 꿈도 꾸지 마! 이것저것 잡다한 늙은것들만 모여 그림자처럼 지루하게 살아가는 곳에, 내가 왜 너하고 같이 가냐. 간다고 해도 다른 누구라면 모를까!"


이때, 반대편의 귀신들에게 둘러싸인 채 아무반응도 보이지 않는 자운의 기운을 느낀 마존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존이 자운을 향해 마기를 뻗어 그녀를 에워싼 후 조심스럽게 허공위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아무 반응도 없이 인형처럼 들어 올려 진 자운이, 마기 안에 싸인 채 그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순간 발끈한 귀신들이 마기를 막아내기 위해 일제히 자운 쪽으로 그들의 몸을 날려, 함께 엉겨 붙기 시작했다.


“바보 귀신들아, 뭐하는 거야! 우리가 저 모양으로 데려 왔는데. 직접 데려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아니야!”


보연이 삐죽거리며 하는 말은, 어쩌면 그들을 꾸짖기보다 넌지시 마존의 심기를 자극하려는 것 같았다.


자운이 곱게 누운 모습으로 마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와 멈췄다.

잔뜩 화가 치밀어 오른 마존의 관자놀이에서 강한 경련이 일어나고, 우직하게 깨문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비집고 나왔다.


자운의 얼굴위로 부드럽게 손길을 스치던 마존이 떨리는 손길을 내리며, 산속을 찢을 듯이 큰 울림을 내질렀다.


“너, 보연!! 도대체 자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연수도 덩달아 심장이 떨어질 듯, 움찔 놀라며 두 손으로 가슴을 쓸어안고 있었다.


“그야, 마존의 실력을 두려워한 귀왕이 미리 조심하기 위해서 공주의 혼은 따로 빼서 보관하고, 몸만 먼저 보여주시기로 한 거죠."


“이것들이, 목숨 줄이 아깝지 않구나! 명을 재촉하는 걸 보니, 소원대로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목숨 줄을 모두 원 없이 도려내 주겠다!"


마계 신의 서슬 퍼른 노여움에 모두가 귀와 가슴을 움츠리고 있을 즈음, 오히려 불편한 듯한 표정을 드러낸 보연이 천천히 몇 걸음을 앞서 나오며 마존을 쳐다보았다.


“마존, 지금 저와 이 귀신들을 다 죽여 버리면, 저 중천의 공주는 어떻게 다시 귀왕에게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마존도 길을 모르실 텐데요?”


간드러지는 보연의 목소리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이, 모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분노를 즐기는 듯이, 보연이 하나하나 얼굴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실, 요즘 내 목숨 줄은 내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뭐 그렇게 애착도 생기기 않네요. 이 목숨 가져갈 이가 하도 많아서 마존도 제 목숨이 탐나시면 아마, 긴 줄부터 서셔야 할 것 같아요.”


웃음소리까지 흘리는 보연의 목소리는 이미, 지옥의 어떤 마귀보다 더 악독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자운의 혼은 어디에 있지?”


“그야, 귀왕이 소중히 잘 보관하고 계시니, 마존께서 걱정 하실 일은 없으세요.

귀왕의 힘으로 이제 겨우 원기를 키워 놓았는데, 혼과 육체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으면 공주가 다시 지푸라기처럼 꾸들꾸들해 지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요.

얼른 보내주셔야 다시 혼도 넣어줄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요? 마존.”


“보연아, 그만해! 귀왕한테 가더니, 너 미쳤니?”


애가 탄 연수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왜? 좀 멋있어 보이지? 아무나 이 위대한 마존의 심정을 이렇게 들쑤셔 놓을 수나 있겠어? 이런 기분, 참 좋은데...!"


마존이 보연의 존재를 무시하며 자운을 향해 돌아섰다. 자운의 코와 볼 사이로 그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잠을 자듯이 고르게 내쉬는 숨소리의 기를 확인한 후, 다행 이라는 듯이 슬픈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자운,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내가 곧 데리러 갈게. 무서워하지 말고, 기다려줘...’


다시 주문처럼 그녀의 볼과 귀 사이에 얼굴을 대고 나지막이 속삭여 주었다.


잠시 후, 자운의 모습위로 마존의 힘찬 손길이 한번 스쳐 지나자, 며칠간 고생한 탓에 거칠고 때 묻은 자운의 얼굴에 다시 밝은 광채가 서리더니, 이전의 맑고 사랑스럽운 마존이 기억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발끈한 보연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진소가 얼른 나서며 보연의 앞으로 그의 검을 갖다 대고 눈을 부라렸다.


“알았어. 예민하긴!”


보연이 다시 뒤로 두어 발 물러서며, 날카롭게 마존을 째려보았다.


“마존, 어쨌든 지금은 귀왕께 보내셔야 해요"


목소리를 최대한 예쁘게 가다듬으며 보연이 마존을 향해 자신있게 말을 건넸다.


"나머지는 마존과 거래한 대로, 공주를 최대한 살리도록 할게요. 그러면 이후에 마존께서도 싫든 좋든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셔야 합니다! ”


여전히 마존이 보연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창백한 손가락으로 자운의 뺨 위를 가만히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닿일 듯 말 듯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은 어느새 자운의 입술 위를 머물며, 산의 굴곡과 들판의 평안함을 닮은 도톰한 입술 위를 한 바퀴 돌고 난 이후에야 살며시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자운의 앞에서 수인을 맺자,

그의 이마위에 새겨진 현빙화의 원신이 허공위로 새어나와 그의 눈앞에서 붉은 금빛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눈앞의 빛 속으로 손을 뻗은 마존이 현빙화의 꽃잎을 한 장 떼어낸 후, 그 꽃잎을 자운의 이마위로 흡수시키고 꽃잎을 한 장 잃은 현빙화의 원신을 다시 그의 이마위로 돌려놓았다.


진소와 당당이 많이 당황해 하고 있었다. 마존이 원신에서 꽃잎을 떼어내다니... 숙명처럼 그가 지켜야할 여인을 선택한 것이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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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아녕의 진실 +3 22.10.01 42 4 11쪽
86 마계로 향하는 청룡 +4 22.09.30 36 4 11쪽
85 천해문을 여는 운우 22.09.29 38 4 12쪽
84 선. 마의 기운 +2 22.09.28 34 4 12쪽
83 격전의 날 22.09.27 38 4 12쪽
» 마존이 선택한 여인 22.09.26 44 4 12쪽
81 보연의 거래 22.09.25 34 4 11쪽
80 회마곡에서 만난 자운과 운우 +2 22.09.24 42 4 13쪽
79 잃어버린 너 22.09.23 36 4 12쪽
78 슬픈 준비 +2 22.09.22 41 5 13쪽
77 셋이서 함께 +4 22.09.21 63 5 12쪽
76 세오의 계획 22.09.20 31 5 12쪽
75 연적의 사내들 +2 22.09.19 33 4 11쪽
74 운우의 흔적 22.09.18 44 4 12쪽
73 기억 심기 +2 22.09.17 36 4 12쪽
72 현연의 탈출 22.09.16 34 6 12쪽
71 전신의 죽 +2 22.09.15 43 6 12쪽
70 다시 제자리로 +4 22.09.14 47 6 11쪽
69 기억 소환 22.09.13 33 6 12쪽
68 현연의 윤회점 22.09.12 36 6 12쪽
67 네가 꿈꾸는 사이 +2 22.09.11 4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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