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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님의 서재입니다.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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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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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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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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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나만의 빽 만들기 1

DUMMY

고주영의 고민은 내 예상과 다른 곳에 있었다.

“네. 진수 님이라면 이해해 줄 테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제가 입사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진수 님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학벌도 좋고 학교 다닐 때 성적도 좋아서 아마 서류 합격에는 별문제 없을 거예요. 그리고 면접도 뭐···”

“그런데?”


고주영은 옥상 난간에 팔을 기대고 서울의 답답한 빌딩 숲을 바라봤다.

“제가 걱정하는 건 진수 님이에요.”

“나?”

“네... 진수님도 같이 3N게임즈에 가면 좋을 텐데···”

“오? 나도 3N게임즈 갈 생각 있어. 전에 네가 한 얘기 듣고 나도 최고의 회사에서 최고의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졌거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고주영은 한숨을 쉬었다.

“진수 님은··· 힘들 거에요.”

“뭐가?”

“아마 이력서도 합격 못할 거예요. 운 좋게 이력서에 합격했다고 해도, 면접에서 떨어질 게 분명해요. 전공자들도 면접에서 대부분 탈락하는데, 진수 님이 될 리가 없어요.”


주영이는 최근 상대방에게 시비조로 말하는 버릇을 많이 고치긴 했지만, 역시 고주영은 고주영이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너는 자신 있어?”

“네 저야 뭐··· 문제없죠.”


이진수는 고주영의 “문제없죠”라는 말을 좋아한다. 고주영은 타고난 재능이 충만하고, 노력할 줄 아는 친구다. 고주영이 문제없다고 하면, 진짜 문제없는 거다.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마. 나도 들어갈 거야. 3N게임즈.”


고주영은 이진수의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진수가 “걱정하지 마”라고 말할 때마다, 고주영의 머리로는 항상 크게 걱정해야 할 만한 상황이었다. 전공자도 특출나지 못하면 이력서도 못 내미는 3N게임즈다. 그런데 이진수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진짜 그 일은 어떻게든 잘 풀렸다. 그래서 고주영은 이진수의 입에서 “걱정하지 마”라는 말이 나오면,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냉철한 고주영답지 않게 말이다.


“알겠어요. 그럼 3N게임즈에서 봐요.”



고주영과의 대화 후, 이주의 시간이 더 지났다. 이제 2015년 1월이었고, 나는 31살이 됐다. 경력도 7년 차가 됐다.

해가 바뀌니 고주영의 말처럼, 채용 공고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채용 공고 중에 3N 게임즈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영아. 너는 준비 많이 했어?”

“네. 저는 대학교 졸업할 때 취업 준비 많이 해봐서 문제없어요. 포트폴리오나 좀 만들면 끝나요.”

“그렇군. 잘됐네.”

“근데··· 진수님은 이력서 써봤어요?”


그러고 보니 나는 미믹게임즈 입사는 근육맨 실장님 낙하산으로, 미들소프트 입사 때는 강신구 팀장님 낙하산으로 입사했다. 두 번 다 이력서를 쓰긴 했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는 형식상 이력서였다.


“두 번 써보기는 했는데··· 두 번 다 형식상이었지. 제대로 써본 적은 없어.”

“그럼 제가 이력서 쓰는 방법 좀 알려드릴게요. 우선 이력서에서 핵심 포인트는···”

“아니야. 난 어차피 이력서로 들어갈 거 아니야.”

“네?? 진수 님 3N게임즈에도 빽이 있어요?”

“아니.”

“그럼요?”

“이제 만들어야지. 내 빽을.”

“···”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주영아.”

“네?”

“나 민희 씨랑 사귀기로 했어.”

“네?? 두 분 원래 사귀던 거 아니에요?”

역시 민희 씨랑 내가 사귀는 것은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나와 고주영은 우선 3N게임즈의 대표 게임들을 검색해봤다. 대기업답게 여러 장르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었고, 대표작도 많았다.

“흠··· 역시 큰 회사라 대표작이 많군···”


우리는 다시 채용 공고를 봤다.

원만한 대인관계···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이해도··· UI 시스템 이해도··· 최적화··· 알고리즘 등등···


나는 주영이를 놀리고 싶어졌다.

“주영아.”

“네?”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수 항목에 있는데?”

“···괜찮아요. 잘 속일 수 있어요.”

“응. 팩트는 대부분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명심하면 돼.”


“네··· 그런데 진수 님이 만든다는 빽이 뭐예요?”

“보통 게임 회사에서 아이디어 공모전을 하면 어느 직군이 유리할 것 같아?”

“기획요? 직군 자체가 아이디어를 내는 게 일이잖아요.”

“역시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어느 커뮤니티에서 기획자가 하는 말을 봤어.”

“기획자가 뭐라는데요?”

“아이디어 공모전을 하면 아트 직군이 제일 유리하다는 거야.”

“왜요?”

“기획자는 글만 써서 남을 설득해야 하는데, 아트 직군은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더 예쁘고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요?”

“그때 딱 생각났지. 그렇다면 프로그래머가 제일 유리한 거 아닌가? 왜냐면 프로그래머는 직접 구현해서 보여 줄 수 있잖아.”


나는 굉장히 좋은 방법을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고주영은 의외로 반응이 미지근했다.

“그렇긴 하죠···”

“대단한 생각 아니야? 기획자는 글로, 아트는 그림으로, 프로그래머는 구현으로! 어때? 프로그래머가 제일 유리하잖아!?”

“그건 누구나 아는 건데··· 사실 그게 힘들죠.”

“왜?”

“누가 아이디어 공모전 하나 내려고 직접 구현까지 해요? 쓸만한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면 최고 한 달 이상은 걸릴 텐데.”

“한 달 걸려서 만드는 게 왜?”

“보통은··· 회사 다니면서 집에 가서까지 뭘 만들려면··· 굉장히 귀찮죠··· 뭐 진수 님이라면···. 다를 수 있겠네요. 흐흐···”

“보통 집에 가서 2~3시간씩 책보니까 그 시간만 써도 충분할 것 같은데···”

“진수님. 보통 사람은 집에 가서 2~3시간씩 책을 보지 않아요···”

“그리고 만약 그게 아이디어 공모전이 아니라 이력서라면?”

“아하? 채용이 걸린 문제면 조금 다르죠. 보통 취업 준비하는데 1년도 쓰니까요··· 진수 님이 말한 빽이라는 게 이거였어요?”

“응. 앞으로 이력서 접수 마감일까지 나는 이력서가 아니라 직접 구현한 결과를 보낼 거야.”


고주영은 조금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할 텐데··· 요즘은 학원에서 단체로 게임 만들고, 그걸 포트폴리오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진수 님의 노력이 희석될 수도···?”

“괜찮아. 나는 3N게임즈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을 따라 만들 거야.”

“엥? 3N게임즈 회사 게임들은 규모가 커서 혼자 따라 만들기 어려울 텐데요?”

“너도 잘 알다시피 나는 코딩을 전공하지 않아서 독학으로 배웠어. 내가 독학하면서 가장 많이 한 것이 뭔지 알아?”

“책 보는 거요?”


나는 딱히 누가 나한테 코딩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보다 실습을 하고 싶어지면, 그냥 시중에 출시되어 있는 게임을 따라 만들면서 코딩을 연습했다. 물론 이미지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를 편집해서 썼기 때문에 이미지 퀄리티는 좋지 않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몇 시간씩 만든 내 모작은 학원에서 아마추어 프로그래머가 한두 달 만에 포트폴리오용으로 만드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크다.


“응. 책 보는 것 말고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모작 게임 만들기야.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모작을 만들어 왔으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네.”

“3N게임즈 게임도 따라 만든 적 있어요?”

“당연하지. 이미 3N게임즈에서 출시한 게임 여러 개 만들어놨어. 이제 이력서용으로 조금 바꿔주고, 프로파일만 하면 돼.”

“프로파일은 왜요?”

“공채 모집 요강에 최적화 쓰여 있잖아. 나는 저걸 노릴 거야. 모작을 넘어서 내 모작의 성능 측정과 해결 방법까지 모조리 이력서에 넣을 거야.”

“아하··· 그 정도 정성이면 면접관들이 혹 할 수 있겠는데요?”

“응. 어차피 이제 회사에서 할 것도 없고, 내 이력서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


물론 아무리 내 모작의 퀄리티가 높다고 해도 수십~수백 명의 전문가가 수년에 걸쳐 만든 원본 게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개인이 이력서를 위해 이 정도씩이나 정성을 들였다는 것은 충분한 어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 뒤 나는 3N게임즈의 모작을 조금 더 예쁘게 꾸미고, 내 모작에 대한 프로파일과 최적화를 했다. 프로파일과 최적화는 CT팀 게임 성능을 좋게 하기 위해 고주영과 많이 했던 작업이다. 그리고 프로파일과 최적화한 것들에 대한 리포트를 많은 시간을 들여 작성했다.

그리고 1월 말. 드디어 3N게임즈 경력직 공채에 이력서를 냈다.


이번 달에 목표했던 이력서도 냈고, CT팀 프로젝트도 더 이상 개발할 것이 없었다. 2015년 2월 첫째 주는 내 인생에 가장 한가한 일주일이 됐다. 그래서 나와 고주영은 회사 옥상에 자주 올라갔다.


“진수 님?”

“응?”

“이제 저희 프로젝트도 공식적으로 접힐 거래요.”

“응 나도 들었어.”

“그럼 어쩌실 거예요?”

“글쎄··· 별생각 없는데.”

“저는 3N게임즈 결과 나올 때까지 대기발령 상태로 있으려고요.”

“그러다 다른 팀에서 너를 자기 팀으로 채용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픽 되면 픽하는 데로 갔다가 3N게임즈 결과 나오면 바로 퇴사하면 되죠.”

“그런가···? 조금 미안하거나 그럴 수 있을 거 같긴 한 대···”“···”

“에이··· 그리고 누가 절 픽하겠어요? 이미 제 전 팀장님이 제 욕을 회사 다른 팀장들한테 다 하고 다녔을걸요?”

“그건 또 그렇네··· 그런데 우리가 뭘 결정할 게 있나? 어차피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이미 다 결정되고 있을 거야. 우리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CT 팀에 남아 있든. 전환 배치를 요청하든 말이야.”

“네··· 그렇긴 하죠···”

“그러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우리는 그냥 우리 준비만 하면 돼.”



2월 둘째 주 월요일 오전.

고주영이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진수 님···”

“응?”

“3N게임즈에서 연락 왔어요?”

“아니···?”


고주영은 울상이 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는 왔어요···”

“오~ 진짜? 좋겠다! 그런데 왜 한숨을 쉬어?”

“후··· 전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저만 되고··· 진수 님은··· 고졸에··· 이력서도 제대로 써본 적도 없고···”

“··· 주영아 내 걱정 그만하고 면접 준비나 해. 나도 곧 연락 오겠지.”

“진수 님. 점심 뭐 먹고 싶어요? 제가 살게요.”

“왜?? 나 불쌍해서 사주려고?”

“···네”

“이왕 사줄 거면 비싼 거 사줘.”


고주영은 당사자인 나보다 내 채용을 더 걱정하고 있다. 그런 고주영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지식 선에서 가장 비싼 점심인 남도 한정식을 골랐다. 무려 1인분에 3만 원이다.


간장 게장과 김치전 그리고 돼지고기 수육에 된장찌개까지. 오후 반차를 내고 소주를 주문할까 고민이 될 만큼 훌륭한 식사였다.

우리는 거하게 점심을 먹었고, 계산은 고주영이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내 컴퓨터가 내게 말했다.


“3N 게임즈 채용팀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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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주영과 최적화 2 +1 22.06.17 293 21 12쪽
32 고주영과 최적화 1 +1 22.06.16 296 15 11쪽
31 적응 8 +2 22.06.15 298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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