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i**** 님의 서재입니다.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최근연재일 :
2022.07.17 19:55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7,262
추천수 :
1,103
글자수 :
233,327

작성
22.06.09 08:10
조회
296
추천
20
글자
12쪽

적응 4

DUMMY

나는 영호 님의 버그 수정 방법이 버그 발생 원인을 수정하는 것이 아닌 버그의 현상만을 수정한 주먹구구식 수정이라 불안했다. 하지만 게임 라이브 서비스 중에는 원인을 수정하기 위해 코어 로직을 변경하는 것은 위험 할 수 있다. 오히려 주먹구구식으로 현상만 막는 것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우리 게임이 당장 다음 달에 오픈한다면, 지금 영호 님의 수정 방식이 더 맞을 수도 있다. 이번 주 주간 보고에서도 이영식 파트장님이 오픈 준비는 순조롭다고 보고 했고, 팀장님도 클라이언트만 준비되면 바로 오픈한다고 했으니, 지금 코어 로직을 변경하지 않는 것은 옳은 판단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오픈 준비는 이영식 파트장님이 잘 진행하고 있으리라 믿고, 내 역할인 스킬 작업을 하고, 남은 시간에는 다수의 기획자로부터 요청온 툴 작업을 했다. 툴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 때마다, 내 책상에는 음료와 과자가 쌓여갔다. 모두 툴을 만들어줘 고맙다며 내게 사다 준 간식이다. 하지만 난 간식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냥 책상 위에 쌓아두기만 했다.

나는 간식보다, 내가 툴을 만들어 줄 때마다 기뻐하는 상대방의 표정에서 더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준 툴에 대한 사람들의 감사를 받을 때마다, 내 기분도 좋았다.

계절은 내 기분처럼 곧 봄이 됐고, 이제 길거리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


출근 전 내 자취방.

잘 개져 있는 양말 옆에 다섯 장의 손수건이 겹겹이 쌓여있다. 나는 장공건설에서 일을 할 때, 항상 수건을 챙겨 다녔다. 육체노동을 하다 보면 땀이 많이 나고, 그 땀을 닦기 위해 매일 수건을 하나씩 챙겨 가지고 다녀야 했다.

창밖을 보니 오늘은 유독 날씨가 더울 것 같아 손수건을 하나 챙겼다.



출근 후 사무실에서의 오전.

오랜만에 민희 씨한테 연락이 왔다.


“띵동. 진수 씨 잘 지내요?”

“민희 씨 오랜만이에요. 민희 씨도 잘 지내시죠?”

“그··· 날 따뜻해지면 제가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러는데···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잊고 있었던 약속.

민희 씨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주기로 했었지.

“네. 괜찮죠. 아트 팀도 1시부터 점심시간이죠?”

“네. 점심은 1시 맞아요.”

“그럼 점심 먹고 1시 30분에 카페테리아에서 볼까요?”

“움··· 요즘 많이 바쁘세요?”

“많이 바쁘진 않아요. 근데 여기저기서 툴 요청이 계속 와서 일은 계속 있네요.”

“움··· 그럼 점심 같이 먹을래요? 점심 같이 먹고 커피 마시면 되잖아요.”


요즘 툴 작업을 시작하면서, 클라이언트 파트 티타임은 계속 따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되도록 점심이라도 클라이언트 파트 분들과 함께 먹으려고 해었는데···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네. 그래요 그럼 1시 5분에 로비에서 봬요.”

“넹~!”


그날 점심시간.

오늘 날씨는 내 예상처럼 더웠고 햇볕도 강렬했다. 민희 씨는 먼저 나와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민희 씨는 봄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산뜻해 보였다. 나와 그녀는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나를 보며 웃는 모습에서 마음의 안심과 따뜻함을 느꼈다.


“와~ 민희 씨 오랜만에 보니까···”

“네?”

“아··· 아니에요.”

“오랜만에 보니까 뭐요? 빨리 말해봐요.”

“아··· 반가워요.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요.”

“칫. 그래도 나도 방가워요!”


우리는 민희 씨의 안내대로 수제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수제버거집은 언덕배기에 있어서 0.5층 정도 높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테라스 쪽 자리밖에 없어서 우리는 오픈된 테라스에 앉았다. 나는 짧은 치마를 입은 민희 씨가 걱정됐고, 민희 씨도 반 층 아래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신경 쓰여 보였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펼친 후, 민희 씨의 무릎 위에 올려줬다.


“어머! 진수 씨 손수건도 가지고 다녀요?”

“네. 일 할 때 땀나면 닦아야 하니까요. 지금은 에어컨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니까 별로 쓸 일은 없지만요.”

“진수 씨는 정말··· 요즘 사람 같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민희 씨가 나의 촌스러움에 대해서 말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곧 수제버거가 나왔다. 이 두꺼운 음식을 어떻게 먹나 싶었는데, 민희 씨는 햄버거를 요령 있게 꽉꽉 눌러서 입에 묻히지도 않고 잘도 먹었다.

반면 나는 소스를 입 주변에 마구 묻혀가면서, 겨우겨우 먹었다. 민희 씨보다 내 입이 더 클텐데, 스펙보다는 요령의 차이인 것 같다.

감자튀김도 없이 햄버거와 콜라 하나가 9,000원이나 하는 햄버거. 여기에 천 원만 더 보태면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삼계탕을 먹을 수 있다. 수제버거는 효율이 좋지 않은 음식이다.


식사를 마친 후 민희 씨와 나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회사 근처 길거리를 산책했다. 산뜻한 민희 씨와 함께 길을 걷자니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나도 세련된 서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민희 씨.”

“네?”

“아트 팀 분위기는 어때요?”

“아··· 잘 모르겠어요. 다들 소속된 프로젝트 없이 외주처럼 일하니까 편하다는 사람도 있긴 한데, 대부분 소속감이 없다고 싫어해요.”

“이원하 대리님은 잘 지내세요?”

“네. 대리님은 저랑 파트는 달라도 팀이 같아서 종종 보는데, 대리님도 우리 셋이 같이 만들었던 때가 좋았다고 해요. 그때는 진짜 우리 게임 만드는 느낌이었다고···”


아트 팀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원화나 UI 등 디자이너들이 특정 프로젝트에 속하지 않았고, 아트 직군만 모두 모아 별도의 팀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리된 아트 팀은 회사 내의 여러 프로젝트로부터 요청이 들어오면 일을 받아서 진행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이렇게 분리되어 운영되는 아트 팀 사람들은 “내 게임”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아트 팀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어서 좋은 건 없어요?”

“글쎄요. 좋은 건 모르겠고 나쁜 건 거 있어요.”

“어떤 거요?”

“진수 씨랑 같은 팀이 못 되는 거?”


아무래도 민희 씨와 이원하 대리님이 나와 함께 일했을 때는, 내가 이런저런 툴을 많이 만들어 줬었는데, 이제 나와 팀이 다르니, 툴이나 사소한 개발적 이슈들을 해결해 줄 사람이 없나 보다.


“아··· 혹시 민희 씨도 툴 필요해요?”

“툴요?”

“네. 혹시 필요한 툴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같은 팀 아니어도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어휴··· 진수 씨는 참··· 진짜 옛날 사람 같네요. 쳇.”

“저는 아무래도 시골 살다 왔으니까··· 옛날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긍··· 그렇게 일이 좋으면 이따 오후에 와서 제 버그나 봐주세요.”

“네. 제가 오후 업무 빨리 끝내고 민희 씨한테 갈게요.”


그날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내 업무를 모두 마치고 민희 씨가 근무하는 4층으로 갔다. 4층에 와본 적이 없어서 민희 씨 자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잘 꾸며 입은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누구?”

“안녕하세요. 저는 3층에서 근무하는 클라이언트 이진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수 씨는 4층엔 무슨 일?”

“유민희 씨 만나러 왔습니다.”

“오우야··· 또 민희 씨야? 요즘 민희 씨 귀찮게 하는 남자 너무 많아요. 쯧쯧.”


그때 민희 씨가 헐레벌떡 쫓아왔다.

“팀장님. 이쪽은 이진수 씨에요.”

“진수 씨. 이쪽은 저희 팀 팀장님. 임아린 팀장님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어머. 이 사람이 그 진수 씨야? 민희 씨 술만 취하면 말하는 그?”

“아! 아니에요. 팀장님 제가 언제 술 마시고 진수 씨 얘길 했다고··· 그냥 제가 뭐 물어보려고 잠깐 불렀어요.”

“뭐~ 잘해봐~ 또 봐요 진수 씨.”


임아린 팀장님은 내게 알 수 없는 의미의 미소를 보낸 후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민희 씨를 따라 그녀의 자리로 갔다. 민희 씨는 긴장했는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민희 씨. 뭐 봐주면 돼요?”

“아··· 제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데요. 이게 잘 안돼서요···”


나는 민희 씨의 모니터를 봤다. 민희 씨는 Sprite Animation을 만들고 있었다. Sprite Animation이란 2D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GIF와 동일한 원리다.


“뭐가 잘 안 돼요?”

“제가 애니메이션을 50프레임이나 그렸는데, 중간에 자꾸 작업한 게 날아가요.”

“어디 한번 해보세요.”


민희 씨는 50장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애니메이션 툴에 등록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한번 실수라도하면 버그로 인해 기존에 등록된 애니메이션이 모두 날아갔다. 다시 작업하면 되니 크리티컬한 이슈는 아니었지만, Sprite Animation을 매일 작업해야 하는 민희 씨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하다.

이래서 민희 씨 얼굴이 빨개져 있었던 거구나. 단 한 번의 실수나 예기치 않은 버그로 이미지 등록을 수십번씩 다시 해야 하면 나라도 화가 났을 거다.


“50프레임짜리 애니메이션인데··· 이거 프레임마다 한장 한장 등록하기가 너무 불편해요··· 그리고 혹시 버그라도 나면 다 날아가니까··· 드래그 실수해도 기존 작업한 거 안 날아가게 못 할까요?”


나는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당장 이슈만 수정해 줄 것이 아니라 일단 화가 나 있는 민희 씨의 흥분을 가라앉혀 보기로 했다.


“잠시만요.”


나는 3층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동안 기획 파트에서 내게 고맙다며 사다 주었던 과자와 음료수를 검정 봉지에 모두 넣었다. 그리고 다시 4층 민희 씨 자리로 갔다. 민희 씨는 간식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 간식을 민희 씨에게 주면 민희 씨도 화가 풀릴 것이다.


“민희 씨 이거 민희 씨 드세요.”

“어머! 이게 다 뭐에요?”

“제가 모은 간식들이에요. 이거 먹고 화 푸세요.”

“네? 저 화 안 났는데···”

“괜찮아요. 이거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요. 며칠만 기다려보세요.”


그날 저녁 나는 메롱 님에게 봐줘야 할 일들을 후다닥 끝내버리고, 오랜만에 야근을 하며 민희 씨를 위한 MiniAnimationTool을 만들었다. 사실 쉽고, 간단한 툴이지만 사용성은 아주 좋은,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가성비 좋은 툴이다.

우선 디자이너들의 습성을 보면 저런 Sprite Animation을 만들 때 이미지 파일 이름을 “XXX_001.png”, “XXX__002.png” 이런 식으로 만든다. 그래야 본인들도 몇 번째 프레임의 그림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이미지 파일을 드래그해서 툴 위에 올려두면, 드래그된 파일 이름을 파싱하여 분석한 뒤, XXX_001, XXX_002, XXX_003 식으로 이미지 이름의 넘버링 값을 1씩 올리면서 해당 파일이 존재하는지 찾는 함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플러스 된 넘버링의 파일이 존재하면, 그 파일들을 모조리 리스트에 등록하고, 이름순으로 정렬한다.

이미지를 모두 등록한 뒤, 디자이너가 Delay와 Duration을 입력하면 정해진 시간을 대기한 뒤 정해진 시간 간격으로 다음 이미지가 보여주는 심플한 MiniAnimator을 완성시켰다. 이제 이미지 Frame이 1개짜리든 1000개 짜리든 단 10초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MiniAnimator를 만드느라 지하철 막차를 놓칠 뻔했지만, 내일 민희 씨가 좋아하는 모습을 할 생각을 하니, 야근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시 휴제하려고 합니다. 22.07.24 116 0 -
공지 연재 주기를 변경하려고 합니다. 22.07.10 52 0 -
공지 다음 주(6월 20일~) 연재는 이번주 주말에 몰아서 하겠습니다 22.06.17 262 0 -
50 리펙토링 2 +2 22.07.17 168 14 12쪽
49 리펙토링 1 22.07.10 169 9 11쪽
48 사실 진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22.07.08 157 10 11쪽
47 나만의 빽 만들기 3 22.07.07 159 9 11쪽
46 나만의 빽 만들기 2 22.07.06 177 12 12쪽
45 나만의 빽 만들기 1 22.07.05 167 9 11쪽
44 나만 몰랐던 고백 22.07.04 192 12 11쪽
43 고구마는 최대한 짧게 22.07.01 219 15 11쪽
42 피싱 vs 피싱 2 22.06.30 210 13 12쪽
41 피싱 vs 피싱 1 22.06.29 216 12 11쪽
40 임아린의 노하우 2 22.06.28 230 13 12쪽
39 임아린의 노하우 1 +1 22.06.26 260 14 11쪽
38 파트장 변화시키기 2 +1 22.06.19 273 14 12쪽
37 파트장 변화시키기 1 22.06.19 299 14 11쪽
36 민희 씨와 의지 +2 22.06.18 288 16 12쪽
35 고주영과 최적화 4 +2 22.06.18 302 16 11쪽
34 고주영과 최적화 3 +2 22.06.17 298 20 11쪽
33 고주영과 최적화 2 +1 22.06.17 293 21 12쪽
32 고주영과 최적화 1 +1 22.06.16 296 15 11쪽
31 적응 8 +2 22.06.15 298 16 11쪽
30 적응 7 +3 22.06.14 304 19 11쪽
29 적응 6 +9 22.06.13 360 17 11쪽
28 적응 5 +3 22.06.10 307 19 12쪽
» 적응 4 +1 22.06.09 297 20 12쪽
26 적응 3 +3 22.06.08 310 19 12쪽
25 적응 2 +2 22.06.07 316 19 12쪽
24 적응 1 +2 22.06.06 327 2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