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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님의 서재입니다.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최근연재일 :
2022.07.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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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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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씨와 의지

DUMMY

팀장님과 이영식 파트장님의 긴 면담 이후, 클라이언트의 파트의 티타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업무 효율은 전혀 좋아지지 않은 것 같다.

하루 6시간 일하는 것과 8시간 일하는 것의 결과물이 왜 같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사태를 파악해보고 싶어서 메롱 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메롱 님?”

“오오 이게 누구야! 진수 님이잖아!”

“ㅎㅎ 네. 요즘 바빠서 메롱님이랑 대화를 거의 못 했네요.”

“진수 님 다시 스킬로 넘어오는 거예요? 엉?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왓!!”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뭔데요?”

“요즘도 스킬 작업하실 때 클라이언트 지원이 잘 안되나요?”

“네 똑같죠. 저쪽은 항상 똑같아요. 저렇게 일관되게 똑같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일관성에 특별한 재능이 있나 봐요.”

“그래요? 클라이언트 파트 요즘은 티타임도 잘 안 가는 것 같던데···”

“진수 님. 클라이언트 파트는 티타임이 문제가 아니에요. 티타임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에요. 티타임 나름대로 갖는 장점도 있거든요. 물론 매일 2시간씩은 과하지만요.”

“그럼 메롱님이 봤을 때, 뭐가 문제에요?”

“의지!”

“에??”

“할 생각이 있어야 하죠. 시간이 1시간 있든 100시간 있든 할 마음이 없는데, 뭐가 되겠어요?”


의지? 5년 전 내가 미믹게임즈의 수습 직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그때는 의지라는 말을 참 많이 썼는데··· 잊고 있었다.

역시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클라이언트 파트는 왜 의지가 없어요??”

“ㅋㅋ 그건 난 모르죠. 진수 님이 더 잘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네요··· 근데 저도 파트가 분리된 지 좀 돼서 ㅎㅎ”

“아무튼 왜 저들이 일할 생각이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 분위기는 저쪽 파트장에 쥐고 있겠죠. 이러나저러나 영식 님이 조직장이니까 그 조직은 영식 님 스타일에 따라 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군요···”

“근데 왜요?”

“그냥 전 제가 만드는 게임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모두 함께 열심히 해야죠.”

“그게 진수 님을 왕따시킨 영식 파트장님 이어도요?”

“네 ㅎㅎ 그리고 저 왕따 아니에요.”

“올~ 보통 사람은 한번 당하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복수할까만 생각하는데, 진수 님은 대인배네요. 좀 멋진 듯?”

“ㅎㅎ 설마요···”


의지··· 이영식 파트장님에게 어떻게 의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우선 내가 의지 충만했던 추억을 떠올려보자.

미믹게임즈 재직 시절,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퇴사하고 나와 민희 씨 그리고 이원하 대리님 이렇게 셋만 남았을 때. 우리는 모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의지를 되찾았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의지를 되찾을 수 있었지?

나는 그저 게임을 오픈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오랜 꿈이었던 내 목표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민희 씨랑 이원하 대리님은 어떻게 그 암울한 상황 속에서 의지를 되찾을 수 있었지?

고민할 필요 없이 직접 물어보자.


나는 민희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민희 씨 안녕하세요.”

“우왕 진수 씨당. 먼저 메시지를 다 보내시구 어쩐 일이세요?”

“잘 지내시죠?

“그럼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되세요?”

“시간요? 움··· 잠시만요.”

“천천히 답주셔도 돼요. 이원하 대리님한테도 물어봐야 해서 이원하 대리님이랑 먼저 얘기하고 있을게요.”

“앗 아니에요. 시간되요. 저랑 먼저 얘기해요.”

“네 그럼 언제 시간되세요?”

“저··· 토요일요! 오늘 금요일이니까 저 내일 시간돼요!”

“아··· 주말인데 괜찮으세요? 저는 그냥 카페테리아에서 잠깐만 봐도 되는데.”

“안 돼요! 오늘은 제가 바빠서 안 돼요. 내일 봬요.”

“그럼 다음 주도 괜찮아요.”

“아니에요. 저 다음 주에 계속 바빠요. 내일 만나요!! 진수 씨 내일 약속 있어요??”

“아니요 ㅎㅎ 제가 약속이 있을 리가요. 그럼 내일 봬요.”

“앗!! 진짜죠? 그럼 엄··· 내일 12시에 종로에서 만나요. 밥 먹지 말고 오세요.”

“네. 내일 봬요.”


주말은 항상 혼자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게임 만드는 연습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번 주말은 민희 씨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밖에 나가게 됐다.



다음 날 아침.

지도를 보니 종로 쪽은 지하철도 길도 엄청 복잡했다. 나는 내가 길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까 봐 예상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나갔다.

하지만, 오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길을 30분밖에 헤매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나는 뻘쭘하게 종로3가역 지하철 출구 앞에서 빈둥대고 있었다.

그때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꽃다발 여러 개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반말로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 여자친구 기다려?”

“아··· 저 학생 아니에요.”

“그래? 그럼 회사원이야?”

“네. 회사 다녀요.”

“그래서 지금 누구 기다려? 여자야?”

“네. 여자에요.”

“어머나 잘됐네. 여자랑 단둘이 만나는 거야?”

“네···”

“그럼 이거 하나 사. 싸게 줄게. 여자를 빈손으로 기다리면 쓰나? 이거 이만 원에 줄게.”


아주머니는 내게 꽃다발 하나를 건네려 했다. 나는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여자친구 기다리는 거 아니에요.”

“그럼 엄마 기다려?”

“아니요?”

“그럼 뭐? 친할머니야?”

“아니요··· 회사 동료예요.”

“이 청년 순진하네. 어느 회사 동료가 주말에 둘이 따로 만나? 그것도 남녀 사이에? 그러지 말고 이거 사.”


내가 민희 씨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는 극구 사양했다.

“어이구~ 알았어. 그럼 기다려봐.”


아주머니는 역 앞 작은 꽃집으로 들어가더니 포장되어 있는 장미꽃 한 송이를 가져오셨다.

“그럼 이거는 되지? 이천 원이야.”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민희 씨에게 꽃을 선물하면 실례일 것 같아 다시 거절했다.

“이천 원짜리 꽃 한 송이가 자네 인생을 바꿔 줄지도 몰라. 그러지 말고 이 아줌마 돕는다 생각하고 하나 사봐. 응?”


아주머니는 반쯤 억지로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쥐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잘 생각했어 총각. 이 꽃에는 힘이 있어. 그 힘을 믿어봐. 그럼 행운을 빌어!”


아주머니는 내 이천 원을 받아 들고 다시 꽃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민희 씨였다.

나는 악의 없이 내게 웃어주는 민희 씨의 환한 미소가 좋았다.


“어머! 진수 씨 이 꽃 저 주려고 산 거예요?”


그녀는 내 손에 들려있는 장미꽃 한 송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는 함박웃음이 되었다.


“아···?”

“고마워요!”


나는 부끄러웠지만, 그녀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줬다. 그래도 민희 씨가 기분이 좋다니 나도 좋았다.

이제 민희 씨에게 의지에 관해서 물어볼 차례다.


“민희 씨. 저희 어디 가서 얘기할까요?”

“제가 영화 예매해놨어요. 시간이 애매해서 밥은 못 먹고 바로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영화요?”

“네. 여기까지 나왔는데 영화 한 편 보고 가야죠. 얼른 따라오세요.”


그녀는 내 옷깃을 잡고 나를 이끌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영화였다.

민희 씨가 예매한 영화는 인도 영화였다. 나는 인도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인도 영화는 한참 진지한 장면에서 배우들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 같이 신나게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흥이 있어 보였다. 진정한 흥.


내가 아주 작은 귓속말로 민희 씨에게 물었다. 민희 씨는 평소 향수를 쓰지 않는데, 귓속말하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니 은은하게 달콤한 냄새가 났다. 로션 향기인가?

“민희 씨. 저 사람들 싸우다 왜 갑자기 춤을 추는 거예요?”


민희 씨도 귓속말로 내게 대답했다.

“인도는 원래 대부분 뮤지컬 식 영화래요. 그래서 중간에 춤추고 노래 부르고, 관객들도 영화 보다가 다 같이 춤추고 그런데요.”

“아하··· 신기하네요.”

“인도 영화 본적 없어요? 발리우드라고 하잖아요.”

“네. 오늘이 처음이에요.”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 삶과는 전혀 다른 문화. 영화를 보다 말고 갑자기 춤을 춘다고? 나는 노래방에 가서도 춤춰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하긴··· 노래방 자체도 살면서 몇 번 가본 적이 없다.

인생의 재미란 무엇일까? 나는 중학생부터 평생 유일한 취미가 게임이었고, 인생의 유일한 목적도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대중에게 나를 계속해서 드러내는 직업. 나와는 완전히 다른 직업. 저렇게 멋있고 예쁜 사람들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노래 부르는 배우들. 그들의 삶을 상상해봤다.

일 년 전만 해도 나는 다른 사람이나 직업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미들소프트의 여러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겪으며, 그들에게 관심이 조금씩 생겼고, 이제는 인도 영화를 보며 게임 프로그래머와는 전혀 다른 직업의 삶까지 궁금해졌다.

이런 내 호기심의 변화는 어쩌면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작은 여자로부터 시작됐을지 모른다.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민희 씨를 바라봤다.

민희 씨도 게임을 좋아할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민희 씨에게 같이 게임 하자고 해봐야겠다.


영화는 세 번 정도 춤을 더 추고 끝났다.

우리는 극장 밖으로 나왔다. 아직 날이 한참이나 밝았다.


“진수 씨 영화 재밌었어요?”

“네. 오랜만에 영화 보니까 재밌네요.”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보러 와요.”

“좋죠. 그런데 다음에는 인도 영화 말고 다른 나라 영화도 보고 싶어요.”

“앗. 인도 영화 별로였어요?”

“아니요. 좋았어요. 그냥 다른 나라 문화도 보고 싶어서요.”


“알겠어요! 다음엔 다른 나라 영화로 예매할게요! 우리 이제 저녁 먹으러 갈까요?”

“네.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르긴 하지만··· 아무튼 배고프네요. 영화표는 민희 씨가 샀으니까 저녁은 제가 살게요. 민희 씨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고기요 고기!”

“무슨 고기요?”

“음··· 이 근처에 영향 센터라고 삼계탕이랑 전기구이 통닭 파는 데가 있어요. 거기 갈까요? 조금 먼데 괜찮죠?”

“네. 전 길을 못 찾아서 그렇지 걷는 것은 좋아해요.”

“걷는 걸 좋아하는, 어떻게 길치가 됐어요?”

“길치는 어떻게 해서 된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길치였어요. 길을 가만히 걷다 보면 잡생각이 많이 나요. 그래서 잡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면, 여기가 어디지? 하게 되는 거죠.”

“오? 그렇게 표현하니까 길치도 좀 있어 보이네요? 저는 막 그런 거 있잖아요. 프로그래머들이 문제 잘 안 풀리면 계속 머리 감싸고 고민하는 거. 그런 거 보면 멋있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고민 없는 스타일이라 그런가봐요. 히히”


우리는 이런 저런 별 의미 없는 얘기를 하며, 민희 씨 손에 들려 있는 장미꽃 한 송이와 함께 나란히 걸었다.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아차··· 의지를 물어봐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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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9 ly*****
    작성일
    24.01.03 12:30
    No. 1

    근데 가족들 다 이민갔나요? ㅎㅎ 연중작인줄 알지만 작가님 글 좋아해서 이제야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재미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ki****
    작성일
    24.01.04 23:43
    No. 2

    재미있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민은 누구 가족을 말씀 하시는 걸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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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고주영과 최적화 1 +1 22.06.16 296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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