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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님의 서재입니다.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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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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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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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게임을 만들고 싶다

DUMMY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던 아이의 추억.


내가 중학생이던 1990년대 후반.

시골이었던 우리 동네도 잘 사는 친구들 위주로 컴퓨터를 구매하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시골이라 신문물 전파가 늦었던 우리 동네에서 제일 먼저 컴퓨터를 산 것은 새별이었다.

고급진 쓰리스타 브랜드였고, 무려 586 CPU에 플로피 디스켓과 함께 2배속 CD-ROM까지 달린 최고급 사양이었다.


늦은 편이긴 했지만, 그다음 해에 세진이와 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한글대왕 컴퓨터를, 찬호는 컴퓨터 구매 후 2년 뒤에 신형 CPU로 교체해 주는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했던 체인지 다운 컴퓨터를 구매했다.


"진수야 이번 주에는 내가 PC line을 살게. 네가 PC 챔프 사."


지금이야 무료 게임이 널렸지만, 내가 중학생 시절에는 게임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7,000원짜리 PC 잡지를 하나 사면 몇 년 지난 것이긴 해도 정품 게임을 하나씩 넣어 줬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각자 하나씩 다른 잡지를 산 다음 서로 cd를 바꿔가며 밤새 게임을 했다.


참세기전, 대항해의시대, 아스토니아 스토리 등등 3.5인치 플로피 디스켓 시대의 게임을 하다 CD-ROM이 대중화되면서 게임의 볼륨이 풍성해졌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게임을 했다.

하지만, 전략 시뮬레이션인 별크레프트는 내 인생을 바꿔 놨다.


학교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원래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별크레프트를 접하는 순간부터 공부를 완전히 놓게 됐다.

거기다 하필이면 나보다 한 학년 높은 우리 형은 전교에서 1~2등 하던 우등생이었기 때문에, 나는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매일 형과 비교를 당했다.


나는 어제도 새벽까지 게임을 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퍽!"


수학 선생님이 내 등 짝을 후려쳤다.


"잠은 집에 가서 자라. 너희 형은 집에 가서도 잠 안 자고 공부만 하던데, 너는 학교에서도 잠을 자냐?


하지만 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게임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유전자 몰빵 된 형이랑 나는 항상 극과 극 삶의 비교 체험 현장이었다.


거기다 나는 딱히 운동 신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인싸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내 삶에서 누군가에게 진다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경쟁이 펼쳐질 때마다 1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이번엔 꼴찌만 하지 말자라는 그런 마인드의 삶.


하지만 게임에서만큼은 달랐다.

나는 게임이 좋았고,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에 쏟았기 때문에 게임 세계에서는 이기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이기는 것에 익숙해지니, 승리를 넘어서 게임을 직접 만드는 창조주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게임을 끊고 게임을 만드는데 몰두했다.

처음엔 RPG만들기라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으로 나만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틀에 갇혀 있는 RPG만들기에서는 내 상상의 나래를 모두 펼칠 수 없었다.


나는 좀 더 내 세상을 내 뜻대로 만들기 위해 RPG 만들기를 버리고,

PC 챔프를 사려고 모아둔 돈과 한 달 치 급식비를 삥땅 쳐서 서점으로 갔다.

진짜 게임을 만드는 창조주가 되려면, 일단 코딩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서점 사장님이 단골인 나를 알아봤다.


"얘, 아직 PC 잡지 나올 때 안 됐어."


"아니요. 오늘은 다른 거 사러 왔어요."


전문 서적이 가득한 곳.

두껍고 알지도 못하는 용어로 가득 찬 그곳에서 나는 어떤 책을 사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 중 하나를 골랐다.

표지가 복잡하지 않고 심플한 동물이 하나씩 그려져 있는 이 시리즈의 책이 분명 초보자 용일 것 같았다.

나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돈 3만 원으로 프로그래밍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1,00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펼쳤다.


“흠... 전혀...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게임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멍청한 프로그래머라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게임하듯 책을 보기로 했다.

한글 번역이 안 된 외국 게임도 그냥 하다 보면 익숙해지듯이.

이 책도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무작정 읽기로 했다.


나는 가방에 든 교과서를 모두 빼고 프로그래밍 책을 넣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집에서든 무작정 이 책만 봤다.

아주 약간의 감이 잡혔을 때부터는 학교에선 책을 보고 저녁엔 새벽까지 코딩 연습을 하다 잤다.

책을 다 읽으면 그달 급식을 굶고 다른 책을 사서 봤다.


아무리 멍청한 나였지만 3년 동안 이 짓을 하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간단한 게임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우리 집 형편은 날로 나빠졌다.

IT 버블이 시작된 21세기에 농촌에서 쌀농사짓고 사는 우리 집의 형편이 나아질 일이 없었다.

그나마 우등생 우리 형은 명문 사립대를 포기하고, 지방 국립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때는 게임을 하느라, 고등학교 때는 코딩을 공부하느라 성적이 바닥을 기었던 나는 깔끔하게 대학을 포기했다.


"나 같은 놈이 대학 가서 뭘 하겠어. 군대나 가자."


군대에서도 프로그래밍 책은 꾸준하게 봤다.

대학을 다니지 않아 전공자가 아니라는 패배감 때문에 일부러 제일 어려워 보이는 책들만 골라서 샀다.

구매한 책을 모두 읽긴 했지만, 사실 내가 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냥 책 보는 게 좋아서 무식하게 계속 봤다.


고등학생 때처럼 시간만 나면 책을 보다 보니 금방 전역이 다가왔다.

내가 전역 한 날, 아버지는 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에서도 여전히 우등생인 형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네 가족은 집에서 신문지를 깔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버지는 내게 그간 고생했다며 잘 익은 삼겹살을 내 밥 위에 올려 주셨다.

그리고 내게 1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줬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교육 철학으로 자신이 원할 때까지 공부가 가능하고 학생 신분일 때는 나이가 몇 살이든 무얼 공부하든 용돈을 준다.

반대로 학생의 신분이 아닌 자식에게는 용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생인 형은 용돈을 받고, 백수인 나는 용돈이 없다.


“네가 대학교를 들어가든, 돈을 벌든 그때까지 이 돈으로 살아.”


“감사합니다. 대학교는 안 가려고요...”


“네가 뭘 하든 간에 너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그런데 어디서 뭘 하든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 불필요한 사람이 되면 안 돼.”


“네 알겠어요··· 이 돈은 1년 뒤에 꼭 갚을게요.”



삼겹살을 배부르게 먹고 내 방에 누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선 나 자체가 누군가의 짐이 되면 안 되니 돈을 벌기로 했다.

기왕 돈을 벌 거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벌고 싶었다.


다음날 미련 없이 아버지가 빌려준 100만 원으로 컴퓨터를 주문했다.

이틀 만에 주문한 컴퓨터가 도착했지만, 64비트 CPU가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이 컴퓨터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자.”


다음 날 새벽 5시. 인력 시장으로 나갔다.

나는 젊고 키가 큰 편이었기에, 인력시장에서 인기가 좋았다.


일찍 나가서 줄만 서 있으면 일당 5만 원짜리 고급 알바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중개 수수료를 제외하면 내게 떨어지는 돈은 4만 5천 원.

일주일에 6일 일한다고 계산하면, 한 달에 백만 원 조금 넘게 벌 수 있다.


첫째 날은 도로 공사 현장에 가서 시멘트 포대를 날랐다.

둘째 날은 공장형 과수원에 가서 전지한 나뭇가지들을 날랐다.

셋째 날도 무언가를 날랐다.


기술이 딱히 없는 나는 주로 무거운 것들을 나르는 일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째 나르는 일을 하자, 인력시장 소개소 사장님에게 제안받았다.


"어이 거기 키 큰 학생, 2주짜리 일이 있는데 그거 해볼래?"


"네? 저요?"


"그래, 2주 다 안 빠지고 나온다고 약속하면 소개해 줄게."


"중개 수수료는요?"


"그건 지금처럼 10% 빠지지. 대신 여기 와서 줄 안 서도 돼. 6시까지만 나오면 되니까."


나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2주 동안 꽝 치는 일도 없고, 한 시간 더 늦게 나와도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바로 해. 이리 들어와서 저쪽 소파에 가서 앉아 있어."


나는 일용직에서 이주용직으로 승진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컨테이너로 지어진 임시 사무소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였다.

밖에 줄 서 있는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나의 느낌.

어쩌면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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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고주영과 최적화 1 +1 22.06.16 295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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