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i**** 님의 서재입니다.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최근연재일 :
2022.07.17 19:55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7,267
추천수 :
1,103
글자수 :
233,327

작성
22.07.04 00:31
조회
192
추천
12
글자
11쪽

나만 몰랐던 고백

DUMMY

2004년 당시 모바일 게임 시장은 아직 초기였다. 이 당시 초대박 나지 않은 모든 게임이 그랬듯, 우리가 만든 게임도 출시 후 3개월이 지나자 유저 수와 매출이 급감했다.

게임 업계는 보통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회사를 다닌다기보다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로 들어 간다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CT 팀 사람들은 프로젝트의 수명이 다 하자, 최소 인력만을 남기고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메롱 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진수 님? 잘 지내죠?”

“네. 잘 지내죠.”

“소식 들었어요?”

“무슨 소식요?”

“우리 CT 팀 조직개편한대요. 들었어요?”

“아니요 저는 처음 들어요. 어떻게 개편한데요?”

“그래도 우리 프로젝트 평이 회사에서 나쁘지 않았으니까. 박 팀장님은 몇몇만 데리고 새로운 프로젝트 프로토타입 만들려나 봐요. 거기엔 이영식 파트장님도 포함이고요.”

“그렇군요···”

“회사 입장에서야 어차피 프로젝트 수명도 다했겠다~ 우리 팀이 계속 유지될 필요도 없죠. 뭐.”

“그건 그렇죠···”

“아마 게임 유지할 만큼만 최소로 남기고 모두 전환 배치하거나 할걸요?

“그렇군요···”

“그래서 저는 떠납니다!”

“어디로요???”

“이직해야죠. 요즘 게임 회사들이 판교로 많이 가고 있어요. 저도 대세를 따라 그쪽으로 갑니다.”


“가시기 전에 치킨 한번 먹으러 가요. 그동안 신세 진 것도 많은데 제가 살게요.”

“어허~ 무슨 말씀이세요 진수 님! 신세는 제가 졌죠. 치킨은 제가 사겠습니다!”

“네. 기획파트 분들 모두 해서 같이 봐요! 민규 님이랑 전승수 파트장님도요.”

“그럼 내가 자리 한번 만들게요. 진수 님은 이제 어떻게 할지 정했어요?”

“아직 고민 중이에요.”

“의외네요? 나는 진수 님이 항상 의지 충만하고 고민 보다는 행동에 시간을 쓰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요? 미들소프트에 남아서 다른 팀으로 갈지, 이직할지 고민하는 거예요? 혹시 지금 프로젝트에 잔류할 생각이에요?”

“아~ 그건 이미 결정 끝났죠. 저도 이직할 거예요.”

“그럼 뭘 고민하는 거예요?”

“그건 비밀이에요.”

“··· 그럼 이직은 어디로 이직하는데요?”

“3N게임즈요!”

“헐··· 3N게임즈 합격했어요?? 저는 거기 3번이나 시도했는데 3번 다 이력서에서 바로 탈락당했어요 ㅠㅠ”

“아니요? 아직 이력서도 안 냈어요.”

“아하···근데··· 거기 입사하기 빡셀 거예요. 거긴 우리나라 최고의 게임회사잖아요.”

“네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하려고요.”

“그래도··· 진수 님이라면 가능성 있을 거예요! 진수 님은 특별한 프로그래머잖아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나는 스타트업인 미믹게임즈에서 작은 규모의 여러 게임을 만들어 봤다. 그러면서 게임을 만드는 노하우를 배웠다. 그리고 한창 성장하고 있는 미들소프트에서 중규모 게임을 만들며, 관계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최고의 게임 회사에 가서 최고들이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내 두 번째 목표는 미들소프트를 퇴사하기 전에 민희 씨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일단 더 어려워 보이는 두 번째 목표를 먼저 시도하기로 했다. 거절당하는 것에 두려움이 조금 있었지만, 이제 이직하게 되면 영영 고백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주저 없이 민희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민희 씨!”

“넹! 진수 씨!”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영화 볼래요?”


사실, 최근 우리는 1~2주에 한 번씩 만나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더 이상 볼만한 영화도 없었다.

“새로 개봉한 영화 있나요?”

“아··· 그건 그렇네요. 더 이상 볼 게 없네요. 어쩌죠···”

“뭘 어째요? 우리가 영화 볼 사람 없어서 만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가로수길 갈래요? 거기 가서 점심도 맛있는 거 먹고 해요. 거기 길이 예뻐요.”

“그럼 그럴까요? 지역 이름이 가로수 길인 거죠?”

“ㅎㅎ 토요일 11시까지 신사역으로 오세요. 거기서 만나서 같이 가요.”

“네!”



민희 씨를 만나기로 한 토요일 아침 9시.

나는 평소보다 옷을 신경 써서 입고, 버릇처럼 뒷주머니에 손수건을 넣으려다 말았다. 12월 한겨울이니 손수건은 필요 없겠지?

신사역은 내 자취방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지만, 나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출발했다. 오늘은 긴장해서 그런지 길을 헤매지 않고 바로 도착했다.


신사역 앞에 도착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지난주에 왔던 눈이 아직 덜 녹아 있었다. 신사역 앞에도 꽃을 파는 아줌마가 있을까 살짝 기대해봤지만, 꽃을 파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작은 액세서리점에서 장갑과 목도리 따위를 팔고 있었다. 나는 쭈뼛쭈뼛 액세서리점으로 다가가 구경했다. 사슴이 그려져 있는 하얀색 털장갑이 눈에 띄었다. 장갑의 사슴이 꼭 민희 씨를 닮아 보였다. 나는 그 장갑을 샀다. 그리고 장갑이 따뜻해지도록 내 패딩 점퍼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진수 씨~!”

등 뒤에서 들려오는 민희 씨 목소리. 민희 씨는 항상 웃고 있으며, 항상 활기차다.


“진수 씨.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오늘 엄청 춥네요. 밥 먹으러 갈까요?”

“네.”


민희 씨와 만나면 오늘 무얼 먹고 무얼 할지는 민희 씨가 정한다.

“오늘 추우니까. 따뜻한 국물 먹을래요? 라멘 어때요?”

“네. 라면 좋아요.”

“흐흐흐··· 돼지 사골국으로 만든 일본식 라면이에요. 진수 씨도 좋아할 거예요.”

“네. 돼지 라면 좋아요.”


우리는 오늘 평소와는 다르게 영화도 보지 않고, 기름기 가득한 일본식 돼지 라면을 먹고 길거리를 방황했다. 중간에 이런저런 잡화점을 구경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구경하고 하다 보니 겨울의 짧은 해는 벌써 어둑해지려 하고 있었다. 역시 집에서 혼자 책만 보는 것 보다는, 민희 씨랑 노는 게 시간이 훨씬 빨리 간다.


그리고 큰 길가를 벗어나면 이어지는 작은 골목. 그곳에 구멍가게처럼 작은 술집이 보였다.

“진수 씨. 우리 저기 이자카야 갈래요? 저기 어묵탕이 맛있어요.”

“좋죠.”


우리는 이른 저녁으로 작은 이자카야에 가서 사케와 어묵탕을 시켰다. 그리고 사케와 따듯한 어묵 국물이 우리의 몸을 조금씩 녹여 줄 때쯤. 내가 말했다.


“민희 씨. 저 이제 이직하려고 해요.”

“네. 저도 CT 팀 소식은 들었어요··· 진수 씨는 언제 이직해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준비하려고요.”

“어디로 가려고요?”

“저도 판교 쪽으로 갈까 해요.”

“그래도 판교면 우리 집이랑은 더 가까워지네요. 고마워요. 먼저 말해줘서.”

민희 씨는 부모님과 함께 분당에서 살고 있다.


“···”

“뭐 괜찮아요. 어차피 미들소프트에서는 어차피 층이 달라서 자주 못 봤잖아요. 지금처럼 주말에 보면 되죠. 뭐.”


나는 지금이 고백하기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항상 실패했을 때의 대책도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고백이 거절당했을 때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고백해버렸다.


“민희 씨. 그래서 말인데요···”

“네.”

“저는 민희 씨가 좋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저희··· 사귈까요?”


민희 씨는 진심으로 당황해하며 토끼가 거북이를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요? 사귀자고요? 지금 저한테 사귀자고 한 거예요??”


예상치 못한 민희 씨의 반응에 나도 덩달아 당황했다.

“아!!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평소 눈치가 좀 없고, 여자랑 어떻게 데이트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긴 한데···”

“진수 씨! 지금 저랑 장난해요??”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진수 씨. 우리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우리 석 달 전에 이미 사귀기로 했잖아요!!”

“네??”

“아트 팀 회식 때··· 진수 씨도 저 좋다고 했고, 저도 진수 씨 좋다고 해서··· 저는 이미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석 달 전, 아트 팀 회식 때 고주영과 내가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때, 임아린 팀장님의 리더쉽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처음 맛보는 와인에 취하자, 임아린 팀장님이 나와 민희 씨의 관계를 가지고 장난친 기억이 있는데··· 혹시 그게??


“진수 씨 정말 너무해요! 저는 다음 주에 우리 백일이라 선물까지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다. 아트 팀 회식 이후 부쩍 민희 씨한테 전화가 자주 왔다. 퇴근하는 길에도, 가끔은 출근하는 길에도 이유 없이 내게 연락했다. 그리고 주말에도 나와의 약속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잡아서 나는 민희 씨가 엄청 심심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날 삐진 민희 씨를 달래주느라 진땀을 뺐다.


“진수 씨! 이제 자기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퇴근할 때마다 먼저 전화하고! 다른 여자랑 말도 하지 말고! 제 허락 없이는 주말에 다른 사람이랑 약속 잡지 말고! 알겠죠?!”

“네 알겠어요!”

나는 오늘 고백에는 실패했지만, 석 달 전에 잃어버린 여자 친구를 찾게 됐다.


겨우 민희 씨를 달래고 밖으로 나오자, 오늘 해가 뜨긴 했었나 싶은 정도로 어두운 밤이 됐다. 나는 내 가슴 속에서 한참을 데워뒀던 사슴이 그려진 털장갑을 꺼냈다.


“민희 씨 이거··· 제가 따뜻해지라고 패딩 속에 넣고 다녔어요.”

“흥! 진수 씨는 정말 센스가 없네요. 여자 친구한테 장갑 선물하는 거 아니에요!”

“왜요? 장갑 거꾸로 끼고 도망가나요?”

“아니요? 장갑 끼고 있으면 손을 못 잡잖아요.”

“민희 씨는 남자친구 많이 사귀어 봤어요?”

“안 가르쳐 줄 거에요!”


민희 씨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가로수 길을 걸었다. 우리는 사귄 첫날··· 아니 사귄지 석 달 만에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다음 주 월요일 사무실.

우리 프로젝트가 슬슬 정리하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고주영은 요즘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주영을 데리고 옥상으로 갔다.



12월의 옥상은 매우 추웠다.

“요즘 팀 분위기가 뒤숭숭하지?”

“네. 그렇네요.”

“너는 이번이 첫 프로젝트였지?”

“네.”

“이제 우리 팀 사람들 모두 정리하는 분위기던데··· 넌 어쩔 거야?”

“저한테 옵션이 있나요?”

“팀장님이랑 이영식 파트장님은 신규 프로젝트 한다고 하고, 지금 게임 서비스 유지하려면 클라이언트 개발자도 한 명은 있어야 할 거고··· 아니면···”

“그 중에 제가 원하는 옵션은 없네요.”

“응?”

“저는 3N게임즈 이력서 내보려고요. 다음 달이면 1월이니까 공채 시작할 거예요.”

“그래? 좋은 생각이네. 근데 너 요즘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여? 3N게임즈 커트라인이 높아서 입사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아니요···?”

“그럼?”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말해도 돼요?”

“괜찮아.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어. 편하게 말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시 휴제하려고 합니다. 22.07.24 116 0 -
공지 연재 주기를 변경하려고 합니다. 22.07.10 52 0 -
공지 다음 주(6월 20일~) 연재는 이번주 주말에 몰아서 하겠습니다 22.06.17 262 0 -
50 리펙토링 2 +2 22.07.17 168 14 12쪽
49 리펙토링 1 22.07.10 169 9 11쪽
48 사실 진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22.07.08 157 10 11쪽
47 나만의 빽 만들기 3 22.07.07 159 9 11쪽
46 나만의 빽 만들기 2 22.07.06 177 12 12쪽
45 나만의 빽 만들기 1 22.07.05 167 9 11쪽
» 나만 몰랐던 고백 22.07.04 193 12 11쪽
43 고구마는 최대한 짧게 22.07.01 220 15 11쪽
42 피싱 vs 피싱 2 22.06.30 211 13 12쪽
41 피싱 vs 피싱 1 22.06.29 216 12 11쪽
40 임아린의 노하우 2 22.06.28 230 13 12쪽
39 임아린의 노하우 1 +1 22.06.26 261 14 11쪽
38 파트장 변화시키기 2 +1 22.06.19 273 14 12쪽
37 파트장 변화시키기 1 22.06.19 299 14 11쪽
36 민희 씨와 의지 +2 22.06.18 288 16 12쪽
35 고주영과 최적화 4 +2 22.06.18 302 16 11쪽
34 고주영과 최적화 3 +2 22.06.17 298 20 11쪽
33 고주영과 최적화 2 +1 22.06.17 293 21 12쪽
32 고주영과 최적화 1 +1 22.06.16 296 15 11쪽
31 적응 8 +2 22.06.15 298 16 11쪽
30 적응 7 +3 22.06.14 305 19 11쪽
29 적응 6 +9 22.06.13 360 17 11쪽
28 적응 5 +3 22.06.10 307 19 12쪽
27 적응 4 +1 22.06.09 297 20 12쪽
26 적응 3 +3 22.06.08 310 19 12쪽
25 적응 2 +2 22.06.07 316 19 12쪽
24 적응 1 +2 22.06.06 327 2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