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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님의 서재입니다.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최근연재일 :
2022.07.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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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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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이영식 파트장님은 내게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전가했고, 팀장님은 나를 불렀다.


“진수 님. 제가 클라 파트장님이랑 면담을 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영식 파트장님 말로는, 진수 님이 평소에 클라 파트에서 협조적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제가요??”

“네”

“제 어떤 점이 클라이언트 파트에 비협조적이었나요?”

“영식 파트장님 말로는, 클라이언트 파트와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파트 원들과 함께 있을 때 먼저 자리를 피한다던가?”

“매일 두 시간씩 낚시와 예능 프로그램 얘기만 하는 티타임 시간이 아까워서 티타임에 따라가지 않은 것이 비협조적인 건가요?”


“크흠··· 그 문제는 제가 주의를 줬고요. 클라이언트 5명 중 진수 님만 겉도는 것은 맞지 않나요?”

“그야 당연히, 그분들은 다 파트장님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니까요···”

“진수 님. 사내 테스트에서 우리 게임의 평가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 팀은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고요.”


팀장님은 뜸을 들이고 다시 얘기했다.

“진수 님한테는 미안하게 됐지만, 저는 팀장으로서 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네”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 진수 님을 클라이언트 파트에서 빼고 팀 직속으로 옮길까 합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바로 제 자리 옆쪽 블록 빈자리로 자리 이동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영식 파트장님은 사내 테스트 실패의 원인을 내게로 돌린 것 같다. 내가 평소 클라이언트 파트원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핑계로 말이다. 억울했지만, 내가 그들과 잘 섞이지 않은 것은 일부 사실이었고, 그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스며들기 위한 노력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별 말없이 회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지금 내가 팀장님께 하나하나 반박한다고 하더라도, 팀장님이 나를 믿어 줄 리 없다. 애초에 팀장님이 내 의견을 듣고 싶었다면, 자리 이동을 지시하기 전에 나한테 왜 그랬냐고 먼저 물었을 것이다.

이미 끝난 결정에 돌을 던져봐야 돌만 아깝지···


나는 자리를 옮기기 위해 짐을 쌌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내게 요구된 스킬 제작과 개선 작업을 모두 무리 없이 해냈다. 오히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 각종 툴까지 만들어서 편의성 개선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생각해보니 나는 내 테스크들을 잘 처리했지만, 파트 원들과의 관계 형성에 실패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메모장을 꺼냈다. 내가 미들소프트에 입사 후 적었던 메모는 하나같이 조직이나 관계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한 줄 더 추가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면, 조직이 커질수록 개개인의 실력보다 관계가 중요 할 수 있다.”


나는 개인 짐이 별로 없었다. 컴퓨터와 그동안 기획이나 아트파트에서 고맙다며 갖다준 간식만 옮기니 자리 이동은 끝났다.

내게 고맙다며 가져다주었던 간식들··· 그리고 검은색 비닐봉지 두 개를 이어 붙여 대충 포장해둔 키보드. 아저씨가 내게 사줬던 중국산 키보드다.

이 키보드에는 레알 포스라고 쓰여있었다. 진짜 힘? 이 키보드나 나나 신세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진짜 힘들여 일했는데, 결국 우리는 원가 절약을 위해 텐키를 없애고, 어느 나라로 팔릴지도 몰라 키보드 키캡에 한글 각인도 안 돼 있는 그런 키보드. 그리고 그런 나의 경력.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회의실에서 고성이 오갔다. 이미 몇 번 들어 익숙한 목소리다. 옆팀의 신입 클라이언트 고주영과 그의 사수가 싸우는 소리.

평소 위아래 없고, 싹수없기로 소문난 고주영은 오늘도 사수한테 대들고 있는 것 같다.

저 친구 저러다 내 꼴 날 거 같은데··· 하지만 지금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나는 얼추 내 짐과 PC를 모두 이동시켰다. 그리고 ‘나라도 널 써줘야겠지’ 하는 생각에 처량해 보이는 레알 포스 키보드를 PC본체에 연결했다.

앞으로 이 키보드를 아저씨가 사준 키보드라는 의미로 아키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속으로 아키를 응원했다.

“아키, 너나 나나 주류가 아니지만, 그래도 힘내자!”

원가 절약이 심하게 들어간 아키는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하겠지? 나는 아키를 응원하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존에 사용하던 쓰리스타 키보드를 수건에 잘 감싸서 소중히 서랍에 모셔두었다.

프로그래머가 키보드 없이 살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내가 자리 이동을 마친 날 오후.

메롱 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진수 님. 왜 자리 이동했어요??”

“제가 클라이언트 파트랑 잘 어울리지 못한 것 같아요.”


엇? 아저씨가 선물한 레알포스 키보드를 처음 타이핑해봤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독특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텐키가 없어 가로 길이가 짧아진 키보드 덕분에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과 키보드를 누르는 왼손의 위치가 가까워져 손이 더 편해졌다. 역시 원가 절약해서 싸다고 무조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코딩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비전공자에 이미 왕따가 신세였지만, 나처럼 여러 단점을 가진 사람도 아저씨가 선물해준 레알포스처럼 무언가··· 나도 적어도 한 가지라도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맙소사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어떤 소문요?”

“진수 님 왕따 당한다는거요.”

“네? 저 왕따에요?”

“진수 님. 우리나라에서는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흔히 왕따라고 불러요.”

“아··· 저처럼··· 그렇네요 저 왕따네요···”

“걱정 마세요. 제가 에너지를 모아 볼게요.”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어차피 기획파트인 메롱 님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일하는 3층은 넓은 사무실에 비해 인구 밀도가 그다지 높지 않아 원래도 띄엄띄엄 빈자리가 있지만, 내가 이동한 섹션은 총 6자리가 있었지만, 달랑 나 혼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내가 왕따면 팀장님은 나를 더 구석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잘 지내도록 화합을 유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다시 이직 자리를 알아봐야 할까? 이직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서 다시 이직한다고 하면, 분명 내가 왕따였다는 사실을 눈치챌 텐데···

나는 할 일 없이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었다.

모든 일에 내 편을 들어주던 근육맨 실장님과 내게 텐키도 없는 중고 키보드를 선물로 주었던 아저씨가 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런저런 궁상을 떨고 있을 때, 놀랍게도 메롱 님은 정말 에너지를 모아왔다.

메롱 님은 오프라인으로는 지나가다 만나도 겨우 고개만 끄덕일 정도로 평범하고 어쩌면 소심해보이는 사람이지만, 온라인 메신져 상으로는 그 누구보다 인싸였다. 메롱 님은 그야말로 사이버 세상에 훌륭하게 적응한 오타쿠다.

그런 오타쿠가 모아준 에너지는 아주 컸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짧은 시간 뒤.

메롱 님은 같은 기획자인 박민규 님 그리고 기획 파트장인 전승수 님과 함께 팀장님을 찾아갔다. 그들은 회의실에 들어가 1시간 넘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 아트 팀 팀장인 임아린 팀장님이 내게로 왔다.


“진수 씨?”

“안녕하세요. 3층에는 웬일이세요?”

“그야 뭐 진수 씨 때문이죠. 진수 씨 정말 왕따에요?”

“아··· 저 왕따라고 벌써 4층까지 소문이 났나요···”

“뭐... 누가 누구를 따돌린 건지는 확인해봐야겠죠? 아무튼 CT 팀 클라이언트 파트는 저도 벼르고 있었어요. 오죽하면 CT 팀 이름이 Coffee Time 팀이라는 농담까지 돌았겠어요? 무능력하면 성실하기라도 하던가. 쯧···”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튼 박 팀장님 어디 계세요?”


나는 회의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회의실에서 기획파트 분들이랑 얘기하고 계세요.”

“그럼 박 팀장님 나올 때까지 진수 씨 옆자리 앉아서 기다려도 되죠?”


그녀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음~ 진수 씨 보기보다 손이 많이 가네. 민희 씨는 보기보다 손이 덜 가는 타입이던데.”

“네?”

“괜찮아. 의리는 지켜야지. 오늘은 진수 씨한테 부탁하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


잠시 뒤 회의실에서 기획파트 사람들과 팀장님이 나왔다. 팀장님은 조금 난처해하는 표정이었다.

임아린 팀장님은 박 팀장님을 보자 곧바로 일어나 박 팀장님에게 다가갔고, 그녀를 본 박 팀장님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임 팀장님. 3층엔 웬일이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잠깐 회의실에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겨우 기획파트와 얘기를 마친 박 팀장님은 또다시 임아린 팀장님에게 이끌려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때 이원하 대리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진수 씨. 소문 들었어.”

“저 왕따라는 소문요?”

“응 ㅋㅋ”

“도대체 누가 4층까지···ㅎㅎ 우리 회사에 저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팀장님도 진수 씨한테 힘을 보태 줄 거야. 나랑 민희 씨가 잘 얘기해뒀어.”

“임아린 팀장님이요?”


임아린 팀장님이 왜 나를 돕지? 내게 임아린 팀장님의 이미지는 나이에 비해 개구장이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그런가 리더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동네 누나 같은 느낌이었다.

가벼워보이는 이미지의 임아린 팀장님 보다는 역시 우리팀 박 팀장님처럼 과묵하고 카리스마있고 덩치도 크고 해야 리더스럽지.

나는 갑자기 임아린 팀장님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임아린 팀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아~ 우리 팀장님? 최고지.”

“아트 팀에 파트가 뭐뭐 있어요?”

“내가 있는 원화파트 있고, 민희 씨 있는 UI 파트 있고, 그리고 3D 관련된 파트도 좀 있고···”

“임아린 팀장님은 원화나 UI나 3D나 다 할 줄 아시는 거예요??”

“아니? 팀장님은 원화 출신이야.”

“그림 실력이 아주 좋으신가 봐요?”

“글쎄? 실무 안 하신 지 오래되셔서 나도 팀장님이 그린 그림 본 적 없어.”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아트라는 하나의 분류가 모인 팀의 팀장이 특별한 카리스마도 없이, 팀원들을 리드할만한 실력을 보여준 적도 없이, 어떻게 팀을 이끌고 있을까? 그것도 잘.


“실력을 본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잘 따라요? UI 파트나 3D 파트도요?”

“응. 모두 임아린 팀장님 좋아해. 그리고 아주 잘 따르지.”

“왜죠?”

“글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팀 사람들은 임아린 팀장님한테 불만 하나 없이 다들 존경하고 있어. 우리 팀장님은 팀 관리 잘 한다고 윗분들도 좋아한다던데?”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아무튼 임아린 팀장님이 진수 씨 도와주러 갔으니까 뭐라도 될 거야. 우리 팀장님을 믿어봐.”


임아린 팀장님은 나를 돕기위해 3층에 내려오신 건가?

나는 우리 박 팀장님과 아트 팀 임 팀장님이 들어간 회의실을 주시했다. 둘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고, 임 팀장님은 회의실 밖으로 나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는 장난꾸러기처럼 내게 윙크를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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