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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님의 서재입니다.

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최근연재일 :
2022.07.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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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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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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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고구마는 최대한 짧게

DUMMY

형사들은 모두 보이스피싱범을 잡기 위해 뛰어갔고, 나와 고주영은 돈 가방을 들고 사람이 많이 있는 인근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입구를 주시하면서 형사님들에게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유도선수 출신의 형사님들은 압도적인 허벅지 근육으로 범인들을 모두 검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범인을 모두 검거한 형사는 내게 전화했고, 우리는 돈 가방을 들고 형사들에게 갔다.


그중 상대적으로 어려 보이는 형사 한 명이 내게 말했다.

“네가 이진수냐?”

“네.”

“정렬 형님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들었던 거만큼 이상한 놈이네”

근육맨 실장님의 이름은 김정렬이다.


“저요? 제가 이상해요?”

“그래.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조폭 손에 들려있는 돈 가방을 코앞에서 들고 튀겠냐?”

“아··· 조직 폭력배인 줄 몰랐어요···”

“조폭인 거 알았으면 안 뛰었을 거야?”

“···크게 고민하고 한 행동은 아니라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네 덕에 우리도 한 건 했다. 안 그래도 저놈들 우리가 찾고 있던 놈들이거든. 고생했어.”

“저기··· 혹시 피해자들도 돈 돌려받을 수 있나요?”

“어. 돈 들고 튀기 전에 돈이랑 같이 현장에서 잡았으니까. 보상받을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기뻤다. 이원하 대리님의 어머니가 개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기뻤다.


이진수) 주영아 우리 돌아가서 민희 씨랑 같이 순댓국에 막걸리나 한잔할까?

고주영) 네? 아침도 순댓국 먹었잖아요?

이진수) 이번에는 고기만 순댓국으로 먹으면 되지! 가자 내가 살게! 민희 씨한테도 전화해. 우리가 간다고. 나는 이원하 대리님한테 범인 잡았다고 전화할게.


보이스 피싱범을 앱 피싱으로 낚은 덕분에 이원하 대리님의 어머니는 천만 원을 무사히 돌려받았고, 식당 개업도 계획대로 했다.

그리고 나와 고주영과 민희 씨는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다. 그리고 원하 대리님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평생 공짜 순댓국을 약속했다. 고주영과 민희 씨는 나라에서 주는 상은 처음 받는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용감한 시민상보다 원하 순댓국집에 사람이 가득 차 장사가 잘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기분 좋았다.

가끔 우울한 주말이면, 원하 순댓국집에 가서 막걸리와 순댓국을 마셔야겠다.

보이스 피싱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관계는 조금 더 돈독해졌다. 특히 민희 씨와 나는 이제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주말에 만나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가끔 퇴근길에 통화도 한다. 아트팀 회식 이후 민희 씨는 내가 조금 더 편해진 것 같다.



2014년 12월.

내가 미들소프트에 입사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 나와 고주영은 스킬을 넘어 인게임 쪽 로직을 모두 담당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이영식 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노력한 만큼 우리 게임은 점차 완성되었다. 그리고 석 달 전 드디어 우리 게임이 출시했다.


게임 성적은 애매한 중박이었다. 출시 후 석 달 만에 손익 분기점을 살짝 넘긴 정도? 그래도 회사에서는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회사의 무리한 조직개편으로, 기존 맴버 다 퇴사해서 프로젝트를 이어 만들기 힘들었을 텐데, 출시까지 했고, 더욱이 작지만 이익까지 내고 있으니 칭찬받을 만 한 것은 맞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칭찬의 대상이었다.

아트 팀 사람들과 기획자들은 여전히 나와 고주영을 인정해줬다. 하지만 팀 내 최고 의사 결정자인 팀장님에게 나와 고주영은 여전히 주변인이었다. 그리고 박 팀장님은 우리 프로젝트가 잘 만들어진 이유가 이영식 파트장님이 갑자기 각성하여 일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의 업적은 대부분 이영식 파트장님에게 돌아갔다. 나는 이 점이 찝찝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임아린 팀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해줬다.

“나는 진수 씨가 한 게 뭔지 잘 알아. 진수 씨가 이영식 파트장을 변화시키지 않았다면, 이 프로젝트는 망했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파이팅 해.”

“감사합니다···”

“우리 민희 씨한테 잘해주고~”


내 공허함은 임아린 팀장님의 칭찬만으로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내 노력과 인내를 몰라주는 박 팀장님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내 상황을 알게 된 근육맨 실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해줬다. 역시나 실장님은 나보다 어른이다.

“뭐가 아쉬운 거야?”

“팀장님이 제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게 아쉬워요···”

“진수야. 내가 두 가지만 얘기해줄게.”

“네.”

“운동선수들은 훈련할 때 상대와 대련을 많이 해. 왜 근력 운동만 하지 않고 다칠 수도 있는 대련 훈련을 많이 하는 줄 알아?”

“잘 모르겠어요.”

“바로 경험이야. 이기는 경험과 지는 경험 모두를 해보기 위해서 수없이 대련하는 거야. 이때 중요한 것은 항상 이기는 사람은 오히려 성장하지 못한다는 거야. 져보기도 하고 이겨보기도 해야 해”

“대련에서 항상 이기는 사람이 실제 시합에서도 더 잘 이기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이기기만 해본 사람은 지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어. 진짜 시합에서도 확실하게 이기려면 지는 것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 그러니까 너도 인정받아보기도 하고, 인정 못 받아 보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거야 알겠어? 더군다나 너네는 팀플레이잖아. 모두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져보기도 해야 해.”

“네. 그렇겠네요. 두 번째 해줄 말은 뭐예요?”

“그리고 두 번째. 애초에 네 목표가 뭐였어?”

“이영식 파트장님이 열심히 일해서 우리 프로젝트가 잘 만들어 지길 바랐어요.”

“그럼 네 목적은 이룬 거잖아?”

“네··· 그렇죠.”

“그럼 뭐가 아쉬워?”

“... 그렇네요. 제가 아쉬울 일이 아니네요.

“그래. 이것만 명심해. 넌 좋은 경험을 했고, 네가 목표한 것을 이뤘어.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은 후회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거야. 목표도 다시 잡고.”

“조언 감사합니다. 고민해볼게요!”


살다 보면 나이와 관계의 복잡성을 떠나서 그냥 마냥 어른 같은 사람이 있다. 부끄러움도 모른 체 투정 부릴 수 있는 사람. 내게는 그런 사람이 두 명 있다. 근육맨 실장님과 아저씨.

나는 근육맨 실장님과 통화한 뒤,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미들소프트에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경험한 것은 뭘까? 내 다음 목표는 뭘까? 나는 이영식 파트장을 왜 고치려고 했고, 어떻게 고쳤지?

오랜 생각 끝에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그냥 내가 결론을 만들어 버렸다. 내가 만든 결론은 상황의 이해다. 나는 이영식 파트장이 나를 왜 적대시했는지 이해했고, 이영식 파트장의 마음을 이해한 덕분에 그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만약, 내가 이영식 파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와 경쟁을 선택했다면, 설사 내가 그를 보기 좋게 이겼다고 해도 그 기쁨의 시간은 잠시뿐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를 이겨서 얻는 것은 짧은 시간 동안의 통쾌함뿐이다. 그리고 나는 동료를 잃겠지. 이러나저러나 클라이언트 파트도 일을 열심히 해 준 것은 사실이니까.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누군가에서 무언가를 뺏는 즐거움보다, 함께 하는 즐거움이 더 큰 사람이다. 그러니 내 서운함은 여기서 접기로 했다.



한편, 고주영도 나와 비슷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진수 님.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뭐가?”

“사실 우리가 거의 다 했잖아요. 근데 왜 팀장님은 이영식 파트장님을 계속 밀어주는 거예요?”

“그게 내 목표였어. 나는 이영식 파트장이 일을 열심히 하길 바랐고, 내 바람대로 이영식 파트장님이 열심히 하게 된 거야.”


고주영의 성격은 논리적이면서도 불같은 면이 있다.

“아오··· 그래도 화나지 않아요? 어차피 아트 팀이나 기획 파트는 진수 임 편이니까.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한번 질러봐요. 사실 내가 다 한 거라고! 싸움만 하던 고주영도 친절한 사람으로 개조했고, 낚시 얘기만 온종일 하던 클라이언트 파트도 일을 열심히 하게 바꾼 건 내 덕이다!! 라고요! 사이다처럼 말이에요!”

“사이다? 넌 사이다가 뭐라고 생각해?”

“시원시원 한 거요! 통쾌하게!”

“주영아 내 생각에는 말이야. 현실에서 사이다라는 것은 나와 상대를 이해하는 거야. 아··· 쟤는 저래서··· 나는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말이야. 누군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면, 아마도 한동안은 시원하겠지. 사이다가 목을 넘어가면서 목을 자극할 때처럼 말이야. 그리고 곧 트림하겠지. 그럼 내가 뭘 마신 거지? 괜히 살만 쪘네? 하고 후회하게 될 거야.”


“···진수 님 주말에 절에 다녀왔어요?”


나는 고주영의 질문을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서 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사이다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이해를 하는거야. 아... 그렇구나... 하고 말이야. 그럼 당장은 변화하는 것이 없으니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해도, 아! 그렇구나··· 하면서 이해하는 것들이 하나의 사건을 넘어 너의 평소 행동 의식 속에 자리 잡으면, 그때는 말이야. 너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작은 사건들에 대해서 시원한 감정을 느끼게 될 거야. 아... 그렇네···! 하고 시원해하는거지. 적어도 내게는 목 따가운 단기적인 느낌 보다는 아하~ 이래서 그랬구나 하는게 더 시원하단말이야. 나한테는 이게 사이다야.”


고주영은 이진수의 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고주영은 어떻게 상대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는 다른 사람 이진수.

뭐가 됐든, 고주영은 이진수에게 한 가지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


“내가 도움이 필요 하면, 이진수는 반드시 나를 도우러 올 것이다.”


이 믿음 하나만으로, 고주영은 이진수가 정의한 사이다에 대해서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 조폭 손에 들려 있는 돈 가방을 빼앗아서 도망치고, 불만과 필터 없는 행동으로 남들에게 상처 주는 것이 특기인 나 같은 놈도 잘 받아준 진수 님이라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말이다. 그래··· 진수 님이라면 그럴 수 있어···


고주영이 이진수에게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거에요?”

“클라이언트 파트를 변화시키는 것은 성공했고, 이제 다음 목표를 세워야지. 너도 다음 목표 준비해.”

“저는 이미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우리 팀 모두가 준비하고 있을걸요?”

“그렇겠지···?”

“당연하죠. 우리 게임도 이제 수명을 다 했잖아요.”

“이 게임을 만들려고 2년이라는 시간을 썼는데, 요즘 모바일 게임은 수명이 너무 짧단 말이야···”

“뭐··· 스마트폰 자체가 급변하는 시대니까요. 그래도 몇 년 지나면 모바일 게임도 정말 대작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출시되고 하겠죠.”

“그때 되면 모바일 게임도 몇 년씩 서비스할 수 있겠지?”

“네. 제 생각엔 딱 3년만 지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이 14년도니까 2010년도 후반? 그 정도면 가능성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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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고주영과 최적화 3 +2 22.06.17 298 20 11쪽
33 고주영과 최적화 2 +1 22.06.17 293 21 12쪽
32 고주영과 최적화 1 +1 22.06.16 296 15 11쪽
31 적응 8 +2 22.06.15 298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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