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온 쇳덩이가 돛대에 부딪쳤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돛대 끝이 튕겨 나가듯 부러졌다.
아비크와 시즈가 돛대 앞으로 달려왔다. 멈칫 끊어진 돛대를 올려다 보던 두 사람은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과 같은 검은 쇳덩이들 여러 개가 같은 쪽에서 연이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배를 돌려요!”
뒷갑판쪽에서 조타륜을 붙잡고 있던 선장을 향해 아비크가 크게 말했다.
그러나 돛대 한 쪽이 부러지는 걸 보고 놀란데다 저쪽에서 날아오는 여러 개의 쇳덩이를 보고 잠깐 넋이 나갔는지 선장은 그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어이 선장님...!”
아비크가 조타륜 쪽으로 뛰어가려는데 선장의 뒤에서 누가 나타났다. 어느새 선실에서 올라와 선장이 잡고 있는 조타륜을 같이 붙잡는 엘리어트를 보고 아비크는 뛰어오려다 말고 멈춰 섰다.
날아오고 있는 쇳덩이를 피하기 위해 엘리어트가 조타륜을 돌리자 정신을 차린 선장 역시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조타륜이 돌아가면서 배의 선체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살얼음 때문에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쇳덩이 하나가 다시 날아와 돛대에 맞자 돛을 묶어둔 두 개의 밧줄이 끊어졌다. 펄럭이며 돛 한 쪽이 느리게 아래로 떨어지려는 걸 보고 번개같이 그 쪽으로 달려간 아비크와 시즈가 위로 딸려 올라가는 밧줄을 붙잡았다.
아기실에 갔을 때와 달리 지금은 백 명 남짓 태울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배였다. 돛대 세 개 중 하나라도 못 쓰게 되면 이동할 수 있는 위력이 반이 된다.
“윽..!”
체격 조건이 아무래도 힘쓰는 건 불리한 시즈가 아비크 뒤에서 안간힘을 쓰며 밧줄에 매달리는데 그 뒤로 다가온 시라가 밧줄을 움켜 잡았다.
그도 엘리어트와 함께 방금 전 선실에서 올라왔다.
버티는 두 사람 뒤에서 밧줄을 움켜잡고 시라는 허리 뒤로 단단히 돌렸다.
“갑자기...”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이야?”
“몰라요 우리도.”
여전히 안간힘을 쓰며 크게 시즈가 대답했다.
하늘 저쪽에서 날아오는 쇳덩이들이 계속 늘어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같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가 날아오고 있는 쇳덩이를 보고 가슈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방향을 트는 바람에 기울어지는 배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난간 양쪽을 붙잡으며 그는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조타륜을 옆으로 돌리며 엘리어트는 옆을 보았다. 배가 움직이고 있는 곳은 바다지만 바로 옆에서 빙벽과 얼음 바닥이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빙벽 뒤로 숨어 일단 날아오고 있는 쇳덩이를 피할 생각에 엘리어트는 다시 조타륜을 돌렸다. 이번에는 더 사정없이 키를 돌리자 뱃머리가 무자비하게 얼음을 깨며 조금 전보다 빠른 속도로 옆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날아온 쇳덩이가 배의 측벽에 박혔다. 어디에 맞았는지는 몰라도 배가 가라앉는 느낌은 없었다. 다행히 수면 아래가 뚫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엘리어트가 배를 돌리는데 다시 또 배 측면에 구멍이 생겼다.
이번에는 제대로 맞았는지 잠시 후 조타륜을 잡고 있는 손에 조금씩 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구멍이 생기면 배에 천천히 물이 들어온다. 하부 갑판으로 내려간 가슈와 나머지 사람들이 아래에서 죽어라 노를 저을테니 당장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빙벽 사이로 배가 조금씩 접근해 들어갔다. 그러면서 배는 균형을 잃고 조금씩 기울었다. 그 동안에도 쇳덩이들은 여전히 머리 위로 날아들어왔다. 그 중 하나가 돛대를 스치며 갑판에 떨어졌다.
쇳덩이가 갑판 한가운데 구멍을 내자 더욱 묵직해지는 조타륜에 엘리어트는 더욱 힘을 주어 키를 돌렸다. 바닥까지 구멍이 생기자 배는 방향을 돌리는 것과 상관없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느리게 기울어지면서 배는 빙벽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다 어디 걸렸는지 갑자기 뱃머리쪽이 위로 크게 튀어 올랐다. 그러자마자 완전히 균형을 잃고 배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비틀거렸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부러진 돛대 끝이 빙벽 한 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빙벽에 찔려 들어가다가 돛대가 얼음벽에 꽂힌 채 멈췄다. 그러자 반쯤 기울어지다 말고 빙벽과 얼음 바닥에 좌초된 것처럼 배가 겨우 멈췄다.
얼음이 찢기고 깨져나가는 소리와 배가 단단한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길게 이어지다가 잠시 후, 사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배가 기울어져 옆으로 넘어질 때까지 비틀거리면서도 눈을 질끈 감은 채 밧줄을 놓지 않고 있다가 시즈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배가 멈춰선 걸 보고 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다가 시즈가 손을 놓았다.
“야, 야.”
그가 손을 놓자 실리는 무게에 밧줄에 서너 걸음 딸려 나가다 말고 아비크도 손을 놓았다. 밧줄 두 개가 빠르게 위로 솟아 올라갔다. 돛 한 쪽이 바닥으로 느리게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 바닥이 단단했는지 가라앉는 거 없이 배는 정지되었다. 배가 멈추자 엘리어트도 조타륜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조타륜이 더 이상 돌아가지 않고 멈춰 있는 걸 보니 배 바닥이 어디 걸린 것 같았다. 지금으로선 다행이었다.
혹시 또 쇳덩이가 날아오지 않는지 위를 올려다 보면서 시즈 때문에 순간 빠질 뻔 한 팔을 뒤로 돌리며 아비크는 엘리어트에게 갔다.
"갑자기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하는 거에요?"
빙벽 때문에 배가 가려져서인지 다행히 더 이상 날아오는 쇳덩이들은 없다.
배가 멈춰서자 가슈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도 갑판 위로 올라왔다. 가슈와 레이, 길더가 아비크의 뒤에서 걸어왔다. 잠깐동안 팔이 떨어져라 노를 젓고 난 뒤라 레이가 찡그리며 팔을 털었다.
“이게 무슨 난리야?”
“진짜 뭐에요?"
가만 있다 갑자기 웬 난리통을 겪나 싶어 같이 올라온 길더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낸들 알겠냐."
둘이 동시에 묻는 소리에 심드렁히 아비크는 대꾸했다.
“쇳덩이 같았는데..”
누가 그랬는지는 재껴 두고라도 이만한 위력은 처음이라 가슈는 아까 봤던 걸 잠깐 생각했다.
“철인가..?”
배에 구멍을 내고 돛대를 한 번에 부러뜨릴 정도면 강철 같은 무기일 것이다.
“헤르반이 철이 많이 나는 곳이긴 한데..”
시즈와 함께 조타륜 쪽으로 걸어온 시라가 그 말에 대꾸했다.
“뭘로 만들었든 다짜고짜 왜 우릴 공격해요?”
생각해 보니 열이 받는지 아비크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헤르반이 우릴 공격했다고 생각해요?"
가슈가 물었다.
"그건 아직 모르지."
시라가 대답했다.
“가서 알아봐야 겠어.”
다들 떠드는 소리에 그 때까지 가만 있던 엘리어트가 입을 뗐다.
"어디서 누가 그랬는지."
배에 구멍이 났으니 지금은 움직일 수도 없고 그냥 나갔다 또 공격당할지도 모른다. 어디서 누가 왜 배를 공격했는지 먼저 파악해야 했다.
“부서진 곳을 손봐둬.”
아래에서 위로 하나 둘 씩 올라온 일행들을 향해 엘리어트는 말했다.
“배가 움직일 수 있게.”
그와 눈이 마주친 티에리와 우젠이 끄덕였다.
"네."
시라와 가슈들 말고 지금 이곳에는 티에리와 우젠 그리고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이 같이 왔다. 그들은 산채에 같이 있던 사람들로 아기실에 있지 않고 엘리어트를 따라 가겠다고 나선 자들이었다.
“배가 숨어든 걸 봤다면 만에 하나 이쪽으로 찾아 올 수도 있을 거야.”
엘리어트와 함께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며 시라는 가슈를 향해 말했다.
“만약 그러면 괜히 맞서지 말고 피해.”
아직 모르는 적이니 서른 남짓한 남자들만으로 맞서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알았어요.”
가슈가 끄덕였다. 어차피 그도 그럴 생각이었다.
시라가 얘기하는 동안 엘리어트는 기울어진 배에서 아래로 뛰어 내렸다. 바닥으로 내려서서 그는 배 뒤쪽 끝까지 걸어갔다. 빙벽 옆에 몸을 숨긴 채 그는 밖을 확인했다. 이제 하늘에서 날아오는 건 없다. 잠시 그쳤던 눈이 하늘에서 조금씩 내리고 있는 것만 보였다.
“가까이서 날아온 건 아닌데..”
말을 끝내고 엘리어트 옆으로 온 시라가 마찬가지로 그가 보고 있는 쪽에 시선을 준 채 말했다.
“꽤 멀리서 왔어.”
동감이라는 듯 엘리어트도 말했다. 척봐도 무게가 나갈 것 같은 쇳덩이는 상당히 먼 거리를 날아왔다.
“뭔지 알고 싶기도 하니..”
그 만한 위력을 가지는 무기는 처음 본다고 생각하며 시라는 말했다.
“일단 가볼까.”
시라가 먼저 빙벽 옆으로 나갔다.
얼음 절벽은 높으면서도 두께가 얇았다. 의외로 부서지기 쉬운 상태였는지 손대지 않아도 아래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엘리어트와 시라 두 사람이 절벽 위로 올라왔을 때 아래쪽으로 얼음 일부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두 사람 다 얼음 위에서는 싸워본 적 없는데 미끄러운 얼음 절벽 위를 힘들이지도 않고 올라서고 있었다. 올라오자마자 자세를 숙인 채 두 사람은 반대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근처에서는 제일 높은 곳이라 멀리까지 내다 보였다.
아까 쇳덩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으니 아래에서 위로 쏘아 올려 진 것이다. 누군지 모르는 적들은 높지 않은 곳에 그리고 가깝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 있는 위치에서는 보이는 게 없자 엘리어트는 절벽 가장자리를 타고 앞으로 나갔다. 여기는 지금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다. 분명히 바다인데 바로 옆에서 얼음 절벽을 경계로 육지가 이어진다.
여기 저기 튀어나와 있는 얼음 절벽들이 해안선 역할을 하며 빙벽을 기준으로 이쪽은 바다, 그리고 반대편은 육지가 이어진다.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계속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서로 눈짓을 하고 두 사람은 다시 얼음 벽 위에서 사라졌다.
어느 정도 조용해지고 난 뒤, 망을 보기 위해 기울어진 선체 위에 일부만 남고 나머지는 아래로 내려갔다. 엘리어트 말대로 여기서 움직이려면 일단 배는 고쳐둬야 했다.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은 대여섯 명 정도였고 웬만한 일은 가슈들이 선원 역할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배 측면에 난 구멍을 확인하고 일단 막아두기 위해 아비크는 배 한 쪽에 쌓여 있는 판자들을 주워 올렸다. 벽에 판자를 대자 옆에 있던 사람이 망치와 못을 건냈다.
“근데 너까지 오면..”
옆에서 거들고 있는 사람은 보지도 않고 아비크는 물었다.
“꼬맹이들은 누가 돌보고?”
못을 입에 문 채 그는 그 중 하나를 판자 위에 댔다.
“물어 뜯기 좋아하는 꼬맹이가 특히 걱정할텐데?”
“슬로런이 보살펴 줄 거니까 괜찮아.”
적당한 판자와 망치로 아비크 옆에서 마찬가지로 벽에 못질을 시작하며 엔지프가 대꾸했다. 무슨 생각인지 그 역시 엘리어트를 따라 가겠다고 나서서는 여기까지 같이 왔다.
“너 그 아줌마 무서워하지 않았냐?”
“시킨 일 제대로 못할 때나 그렇지 슬로런도 엘리어트처럼 한 말은 지켜.”
엔지프가 배의 구멍에 망치질을 시작했다.
“그 쪽은요?”
엔지프가 말을 끝내자 이번에는 시즈가 물었다. 옆에서 적당히 쓸만한 판자를 부지런히 재고 있던 렌스가 고개를 들었다.
“난 할 일 없이 가만 있는 것도 싫고..”
판자 하나를 그에게 건내며 난감한 듯 렌스가 어깨를 움츠렸다.
“어쨌든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궁금하고.”
그는 사실 여기 따라올 이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엘리어트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고는 해도 산채로 먼저 찾아온 것도 그렇고 아마 지금 한 말처럼 가만 있는 걸 싫어하는 성격 같았다.
“다들 나서서 고생 못해 안달난 것 같네.”
렌스의 대답에 혼자말처럼 아비크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그가 다시 벽에 못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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