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명인k 님의 서재입니다.

하트의 반(V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명인k
작품등록일 :
2013.02.04 17:06
최근연재일 :
2019.02.10 23:08
연재수 :
298 회
조회수 :
979,454
추천수 :
28,216
글자수 :
2,269,960

작성
18.12.02 21:33
조회
294
추천
10
글자
19쪽

하트의 반(VAN) - 2-31 검은 기사들(4)

DUMMY

하트의 반(VAN) - 2-32 검은 기사들(4)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바다에는 물고기 한 마리 헤엄쳐 다니지 않는다.

위에서는 역동적으로 바람이 휘몰아치지만 바다에서는 물이 이상하리만큼 묵직하여 바다로 연결되는데도 돌섬 주변은 정체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배가 들어와도 움직이기 힘들고 거기에 심한 안개까지. 죽은 바다는 사람이든 물고기든 살기 어려운 곳이다.


안개와 어둠에 가려 있었고 더구나 시즈는 구름 위쪽에서 내려섰기 때문에 구름에 가려진 중간부터는 보이지 않아 돌섬이 아스드의 성 만한 크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실제로 이곳은 그 몇 배에 해당하는 크기였다.


영주의 성 몇 개는 모여 있는 크기에 해당하는 거대한 바위가 오랫동안의 풍식작용으로 형성된 구불구불한 미로와 함께 우뚝 솟아 있는 천연의 요새.

밤이 되면 어둠에 동화되어 웬만한 동체시력을 갖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곳.


그런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만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몇 개 성을 합쳐 놓은 것 같은 크기와 높이를 가진 돌섬 안은 미로처럼 복잡하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더욱 어디로 연결되는지 아직도 미처 확인해 보지 못한 곳들이 남아 있다.


그 한 통로를 일렌 키히스는 걸어갔다.


통로가 좁고 천장이 낮은 통에 걸어가면서 몇 번 구멍이 숭숭 뚫린 돌로 이뤄진 천장이 머리에 걸려 그의 자세는 구부정했다. 뒤에서 보면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앞을 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언제나 그렇듯 날카로웠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엣시모어에서 출발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은지 이미 여러 날. 절반의 부대는 아쉬로 떠났고 나머지는 여기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벌써 오랫동안 그는 중요한 일에서 배제되고 있다.

‘빌어먹을.’

그의 소망은 예전처럼 실전에 투입되는 거였지만 주군의 심부름을 주로 맡게 된 뒤로는 복귀가 쉽지 않았다. 이번 애보기만 끝나면 바로 전장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물론 그것은 몇 번 반복된 실수 덕에 에르디스 영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는 더 화가 치밀었다. 주군 카뷔에 에르디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실패하게 만든 어떤 인물이 불현듯 떠올랐기에.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통로를 계속 걸어가다 그 끝에 이르러 그는 밖으로 나왔다. 겨울임을 알려주는 찬바람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게 아니었다면 사실 통로가 끊긴 것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통로 안과 밖은 경계가 없는 어둠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그는 찬바람에 몸을 맡겼다. 통로 앞으로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전 발을 딛을 수 있는 공간이 조금 있다. 그래 봤자 서너 발작 정도로, 서 있을 만은 했지만 바람이 워낙 사나워 잘못하다간 자칫 균형을 잃을 수도 있었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이곳에 죽치고 있자니 답답함에 속이 탈 지경이라 몸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에 그나마 속이 뚫렸다. 더구나 그는 어두운 곳에 오래 동안 가만히 있는 걸 싫어했다.


“바람 쐬러?”

그런 것이 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는지 돌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되는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내 뒤에 있지 마.”

좁고 경사진 돌벽 위로 앉아 있던 서너 명의 남자들을 구분해 내며 일렌 키히스는 말했다.

“칼 맞기 싫으면.”

“그러지 말아야 할 건 너지.”

어둠속이 다시 킬킬거렸다. 묵직하게 몸을 일으키며 그러면서 누가 걸어 나왔다.

“먼저 와 있던 건 우리야.”

걸어온 남자가 일렌 키히스의 옆에 나란히 서며 앞을 바라보았다.

“시원하구만.”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만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이래서 좋단 말이야.”

그러면서 그가 일렌 키히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안 그래?”

“손 치워.”

목소리가 무서웠다.

“그리고 꺼져. 안 그럼 밀어 버릴테니.”

진심으로 하는 남자가 힐끔 그를 보다 손을 뗐다.

“무서라.”

그가 말했다.

“너무 그럴 거 없어. 같이 싸우는 처지에..”

말하던 그는 키히스에게 발로 걷어 채여 앞으로 밀리는 걸 간신히 버텼다. 한바터면 진짜로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야 이...”

안색이 변해 일렌 키히스를 향해 덤벼들려는 그를 뒤에서 누가 잡았다.

“그냥 넘어 가요. 우리끼리.”


걸어와 침착한 음성으로 말하는 그를 일렌 키히스는 알아 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남자를 상대할 때보다 그의 표정에는 훨씬 반응이 생겼다.


“살아 있었군. 로어크.”

마지막으로 그를 본 건 벨라르드에서다.

“그렇죠 뭐.”

엣된 얼굴의 청년이 냉소적인 음성에 별다른 반응 없이 대꾸했다.


“그래봤자 얼마 안 남은 것 같지만.”

팔 한 쪽을 덮고 있는 옷이 어깨 아래에서부터 힘없이 펄럭이고 있는 걸 보며 키히스는 비아냥댔다.


“적어도 키히스 씨보다는 오래 살아 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비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로어크가 대꾸했다.


“우리가 들어가요.”

시비가 붙는 건 피하고 싶었는지 남자를 향해 그가 다시 말했다.

“이 자식이 먼저 싸움을 걸었잖아.”

발끈하여 남자가 소리쳤다.

“키히스 말대로 친목을 다질 사이는 아니니까 그냥 비켜줘요.”

“싫은데!? 내가 왜..”

“걱정 말고 그 입이나 닥쳐.”

키히스가 응수했다. 로어크에게 관심을 보인 것도 잠깐. 이내 그는 다시 짜증이 솟구쳤다.

“내가 꺼져 줄테니.”

여기서도 조용히 있을 곳이 없다는 생각에 속이 뒤틀렸지만 길게 말할 기분도 아니라 키히스는 몸을 돌렸다.


“일렌.”

걸어가는 그의 뒤에 대고 로어크가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우린 적이 아니고 어차피 싸움에서 뒤를 봐줄 사람은 서로니까.”


들은 척도 안하고 일렌 키히스는 그대로 통로 안으로 사라졌다.


“넌 저 자식하고 잘 알아?”

“그냥 몇 번..”

따지듯 묻는 남자의 목소리에 침착하게 로어크는 대꾸했다.

“함께 싸운 적 있어요.”

이번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도 카뷔에 에르디스의 명령으로 일렌 키히스와는 몇 번 같이 움직인 적 있었다.

“같이 싸운 적은 없어도 한 두 해 같이 있던 사이도 아닌데 말 몇 마디 좋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전장에서 키히스와 함께 싸워본 적은 없는 남자가 울분을 터트렸다.

“진짜 별 놈의...”

“예전에 말이야.”

두 사람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껏 한 마디도 안하고 경사진 벽에 앉아 세 사람을 보고 있던 나머지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처럼 중간에 눈이 변한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붉은 눈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가 있었거든.”

두 사람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태어날 때부터 붉은 눈이었으니 마을은 난리가 났지. 불길해도 보통 불길한 게 아니라고 말이야. 그 날로 마을은 불에 탔고..”

남자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갖 태어난 핏덩이를 그래도 살려 보겠다고 아비가 몸으로 병사들을 막으면서 창에 꼬치구이가 되는 동안 어미는 아기와 도망쳤지. 결국 잡혔지만..”

말하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와중에 병사들 눈을 피해 애를 모래에 묻어 놨다네. 잡혀가서 고통스럽게 죽느니 여기서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는지 아님 며칠이라도 더 살아남길 바랬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런 그를 향해 찡그리며 남자가 투덜대는 동안 그는 그는 일렌 키히스가 사라진 쪽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런 녀석을 발견하고 에르디스 님이 데려온 게 벌써 27년전이야.”

두 사람보다는 연배가 좀 있는 그가 기억하는 옛날 일이었다.


“그래서 뭐? 불쌍하다 이거야?”

남자가 코웃음쳤다.

“이 눈으로 사람 대접받고 살아본 놈 있어? 나만해도 눈이 변했다고 길에 버려져서 다 죽어가다 여기 왔고.”

그가 손으로 로어크를 가리켰다.

“넌 벽장에서 발견된 게 몇 살이라고 했지?”


“여섯 살이요.”

오래전 일이라 생각을 떠올리며 로어크는 대꾸했다.


“그래 그 나이에 부모가 눈 앞에서 찢어 죽어가는 걸 지켜본 놈도 있다.”


여섯 살에 눈이 변한 로어크는 벽장 속에 숨겨진 채 절대 나오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부모의 말에 안에서 몰래 밖을 엿보다가 부모가 영주가 보낸 병사들의 손에 사지가 찢겨 죽는 걸 보았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기절했다가 눈을 뜬 뒤에도 무서워서 밖을 나가지 못하고 벽 장 속에서 열흘 넘게 있으며 굶어 죽어가다 발견됐다.


“여기 있는 놈들 중에 안 그런 놈 있어?”

마음에 안들었는지 일렌 키히스가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는 찌푸렸다.

“유난 떨긴.”


“성격이죠 뭐.”

무심히 대꾸하며 로어크는 말을 이었다.

“싸움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러니 우리끼리 쓸데없는 문제는 만들지 말고 조용히 있죠.”

그가 하는 소리에 남자는 찡그렸다.

“젠장.”

큰 싸움을 앞두고 괜한 소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는지 로어크의 말에 인상을 섰지만 더 말하지 않고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동안 로어크는 일렌 키히스가 사라진 쪽을 힐끔 보았다. 일렌 키히스까지 돌아오고 난 뒤 더 이상 이 돌섬에 들어오고 나가는 자들은 없다. 그것은 끝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싸움이 끝나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해방의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거기에 자신이 함께 할 수 있든지 아니면 키히스 말대로 함께 할 수 없던지 간에.


찬바람에 남자의 분통이 조금 더 가라앉길 기다렸다 이내 세 사람도 통로 안으로 사라졌다.






먼저 통로 안으로 들어와 다시 한참을 걸어가다가 일렌 키히스는 맞은편에서 뛰어 오던 누군가가 다리에 부딪치는 통에 멈췄다.

“미안.”

뭐 때문인지 뛰어오다가 미처 자신을 못 보고 부딪친 아키가 겁먹은 기색으로 사과했다. 어둠속이라 보이지도 않았는데 기색만으로 일렌 키히스는 알아본 모양이었다.

“..... 어디 가는 거야?”

한참 그를 내려다 보다가, 조금 전 남자를 상대할 때와 달리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기색으로 키히스는 물었다.

“베르나데트가 없어서.”

베르나데트가 그를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어선지 아키 역시 일렌 키히스를 대하는 건 어려워했다.

줄어드는 음성으로 대꾸하는 아키를 키히스는 아무 표정없는 얼굴로 내려다 보았다.


조심성 없고 치마자락 붙잡고 놓지 못하는 꼬맹이지만 검을 다루는 실력만은 어느 검은 기사 못지않다.


“너는 베르나데트랑 숨어있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지?”

갑자기 그가 물었다. 잠시 가만 있다 아키가 대답했다.

“그야.. 응.”

생각만으로도 좋았는지 대답하는 목소리가 처음으로 활기를 띄었다.

“잘 들어.”

키히스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렇게 되려면 앞으로 있을 모든 싸움에서 우리가 이겨야 해.”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움찔하는 아키를 향해 나직히 그는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너도 최선을 다 해야 하고.”

잠깐 망설이며 그를 보다가 아키는 물었다.

“싸움에서 이기면, 베르나데트도 더 이상 이런 데 있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래.”

곰곰이 생각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알았어. 그럼 나도 열심히 할께.”

이내 생각이 끝났는지 힘차게 아키가 말했다. 키히스의 입가에 미소가 지나갔다.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는 그의 얼굴이 원래의 차가운 기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은 깊어지고 새벽이 되기 직전 가장 깊은 어둠으로 접어 들었을 때 엘리어트와 시즈는 처음 내려섰던 돌섬의 꼭대기에 다시 나타났다.

돌섬이 커서 대략적인 섬의 모양과 크기를 확인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는 돌섬의 중간 높이까지는 바람 소리 덕에 생각보다 기척을 잘 감출 수 있었다. 그러나 중간부터 더 아래쪽은 지나치게 조용한데다 새벽이 가까워 오고 있어 시간이 없었기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이제 돌아가 엘리어트가 군대를 끌고 올 때까지 시즈 혼자 남는다. 그리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곳은 이제부터 시즈의 몫이 된다.


엘리어트는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돌아가려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군대가 도착하면 바로 들어 올 거야.”

그 때까지 조심하라는 뜻으로 말하는데 반응이 없었다.

“시즈.”

넋이 나간 듯 우두커니 서 있는 시즈를 보고 엘리어트가 그를 불렀다.

“아, 네.”

뭔가 생각에 빠져 있다 정신을 차리며 시즈는 대답했다.


“저기 엘리어트.”

그러다 조심스럽게 그가 엘리어트를 불렀다. 엘리어트가 쳐다보자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 지금 싸우는 거 맞는 거죠?”

아까, 주변을 확인하는 동안 귀가 좋은 시즈에게는 그들의 대화가 조금씩 들렸다.

지금껏 검은 기사단을 싸워야할 괴물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했던 시즈로서는 들려온 그들의 목소리가 예상과 다르게 평범하고 비참하고 희망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놀랐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랭더발이, 검은 기사단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망설이며 말하는 소리에 엘리어트의 시선이 조용히 그를 향했다.

“그러니까 우린 싸울 수밖에 없는 거고.”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우린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는 거죠?”

그렇다는 말을 기대하며 시즈는 엘리어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엘리어트?”

시즈가 그를 다시 불렀다.


동의를 기대하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시즈를 향해 엘리어트는 입을 뗐다.

“만약 우리가 틀렸다면 싸우는 걸 포기 할거야?”

시즈는 머뭇거렸다.

“그건 아니지만...”


“적이라고 모두 옳지 않은 건 아닐 수도 있지.”

엘리어트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그렇다고 해도 비켜줄 수 없는 때가 있어. 그리고 비켜줄 수 없다면 우리가 이기는 걸 택하는 게 더 나은 결과가 되는 거라고 지금은 그렇게 믿는거야 시즈.”


조금씩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절벽 위로 두 사람이 타고 왔던 서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각자 생각으로 입을 다문 채 어둠 속에 잠긴 돌섬 꼭대기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서 있었다.









밤이 되자 인적이 없는 바닷가는 검은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멀리서 희미한 파도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어디서 들리는지 모르는 파도소리는 작아도 어쩐지 기괴하게 들렸다.


“다들 어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차 앞쪽에 앉아 라이론 피셔드는 어둠 속에서도 눈을 감은 채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괜히 방해가 될까봐 시키는데로 여기 있지만.”

하루 전까지 같이 있다가 그들이 더 멀리 가는 동안 그는 마차와 함께 인적이 없는 이 작은 숲에서 대기중이다.


"이게 잘한 짓인지는 확신은 없습니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듀셰의 수장인 오르시의 피셔 영주와 같이 있었고 여기로 출발하기 전 엘리어트로부터 그들에게 가는 걸 권유 받았지만 왠지 그는 여기 따라 오고 싶었다.


“그래도 이 싸움의 결과는 왜인지는 몰라도 네쉬하트 경이 보여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라이론 피셔드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전 여기로 왔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여기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마차 한 쪽에 기대 앉아 아까부터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던 노인을 향해 그가 시선을 주었다.

“당신이 궁금해서.”

지금까지의 부드럽고 조용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노인을 보는 라이론 피셔드의 눈빛에 고통이 서려 있었다.

“정말 당신 누구입니까?”

엘리어트가 말해준 노인의 정체에 대해 아직까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처음 노인을 본 날부터 라이론은 어쩐지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정말 몰라요?”

고요함을 깨고 목소리가 날아왔다.

“오래도 고민하시네.”

“헤리나. 조용히 해.”

“왜?”

기겁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여자의 음성이 덧붙여졌다.

“너무 답답하게 굴잖아.”


마차는 두 대가 나란히 있었는데 오밤중이라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는지 그 쪽 마차를 쓰고 있던 젊은 남녀 한 쌍이 그가 앉아 있던 옆으로 나타났다. 정확히 불쑥 나타난 건 여자 쪽이었고 그녀를 제지하려고 쫓아온 거였는지 남자는 뒤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여자를 잡아 당기고 있었다.


“그냥 마차로 돌아가자.”

그녀를 향해 청년이 사정했다.

“제발.”

간곡히 말하는 기색에 못마땅한 듯했지만 그냥 무시할 사람은 아니었는지 입을 삐죽거리다가 여자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원래 있던 마차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죄송합니다.”

여자를 먼저 돌려 보내고 청년이 자신을 향해 겁먹은 기색으로 사과했다.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고 그냥 들렸어요.”


라이론 피셔드는 그를 잠시 응시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엘리어트는 이 두 사람을 자신과 같이 있게 했다. 적어도 가까이 다가오는 위험에서 피할 수 있게 해줄 거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전 시라와 함께 열 댓명의 용병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있을 수 있었다.


라이론은 휘장을 내려 노인이 있는 마차 뒷칸을 가렸다.

“나야말로 미안.”

그리고는 그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잠도 못자게 시끄럽게 했구나.”

“아, 아닙니다.”

라이론을 향해 웨이는 연신 허리를 굽혔다.

정확히는 몰라도 엘리어트나 시라가 이 사람에게 상당히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걸 이미 봤기에 그걸 봐서는 적어도 자신이 나서서 말을 걸만한 인물은 아니란 느낌을 줄곧 받고 있었다.


“연인 사이?”

경직된 기색의 청년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다시 미소지으며 라이론이 손가락으로 헤리나가 걸어간 쪽을 가리켰다.

“아, 아뇨.”

기겁하며 웨이가 손을 내저었다.

“친구예요. 동네 친구.”

“그냥 친구 같아 보이지 않는데?”

라이론은 덧붙였다.

“혹시 짝사랑?”

웃으며 하는 소리에 웨이는 난감한 기색으로 머리에 손을 댔다. 그러나 부정하지 않고 이 와중에도 얼굴을 붉히는 걸 보고 라이론은 소리 없이 다시 웃었다.

“어쩐지 동지감이 느껴지는 걸.”

“네?”

갑작스러운 말에 조금 전 상황도 잊고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웨이를 향해 라이론은 다시 웃었다. 그리고는 비어 있는 자신의 옆 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피곤한 게 아니라면 동지끼리 서로 얘기 좀 해볼까.”

조용히 그는 물었다.

“어때?”

갑작스러운 요청에 웨이는 당황했다.

“무슨 얘기요?”

“이것저것. 그냥 하고 싶은 얘기.”

여전히 미소진 채 그를 향해 라이론은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트의 반(VA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후기 및 2부 연재에 대하여 +15 13.09.18 9,548 0 -
298 하트의 반(VAN) - 2-31 검은 기사들(6) +7 19.02.10 280 8 53쪽
297 하트의 반(VAN) - 2-31 검은 기사들(5) +2 19.01.01 252 9 28쪽
» 하트의 반(VAN) - 2-31 검은 기사들(4) +4 18.12.02 295 10 19쪽
295 하트의 반(VAN) - 2-31 검은 기사들(3) +6 18.11.19 298 9 33쪽
294 하트의 반(VAN) - 2-31 검은 기사들(2) +6 18.11.11 299 9 41쪽
293 하트의 반(VAN) - 2-31 검은 기사들(1) +6 18.10.14 313 12 42쪽
292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6) +6 18.06.10 327 9 40쪽
291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5) +4 18.06.10 294 11 34쪽
290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4) +2 17.12.11 367 12 21쪽
289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3) +2 17.12.05 331 10 30쪽
288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2) 17.12.05 248 9 25쪽
287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1) 17.11.19 312 11 23쪽
286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0) +1 17.11.12 316 12 14쪽
285 하트의 반(VAN) - 2-30 듀셰(9) +2 17.11.07 292 11 32쪽
284 하트의 반(VAN) - 2-30 듀셰(8) +2 17.10.30 347 10 20쪽
283 하트의 반(VAN) - 2-30 듀셰(7) +2 17.10.23 347 12 26쪽
282 하트의 반(VAN) - 2-30 듀셰(6) +4 17.10.16 375 10 24쪽
281 하트의 반(VAN) - 2-30 듀셰(5) +2 17.10.09 336 12 9쪽
280 하트의 반(VAN) - 2-30 듀셰(4) +4 17.10.02 616 13 33쪽
279 하트의 반(VAN) - 2-30 듀셰(3) +2 17.09.25 443 16 35쪽
278 하트의 반(VAN) - 2-30 듀셰(2) +8 17.09.18 448 16 19쪽
277 하트의 반(VAN) - 2-30 듀셰(1) +6 17.09.03 584 18 31쪽
276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12) +6 17.08.27 646 16 29쪽
275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11) +4 17.08.20 458 15 24쪽
274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10) +8 17.08.17 526 15 22쪽
273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9) +7 17.08.15 546 12 30쪽
272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8) +8 17.08.15 1,092 13 24쪽
271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7) +15 15.09.16 808 24 22쪽
270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6) +2 15.09.13 715 15 18쪽
269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5) +4 15.09.12 634 13 15쪽
268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4) +4 15.09.11 655 17 18쪽
267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3) +8 15.09.09 710 23 26쪽
266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2) +7 15.06.28 962 24 17쪽
265 하트의 반(VAN) - 2-29 엣시모어(1) +4 15.06.21 745 22 12쪽
264 하트의 반(VAN) - 2-28 덫(6) +6 15.06.19 760 27 28쪽
263 하트의 반(VAN) - 2-28 덫(5) +4 15.06.19 661 22 23쪽
262 하트의 반(VAN) - 2-28 덫(4) +6 15.06.14 723 24 19쪽
261 하트의 반(VAN) - 2-28 덫(3) +2 15.06.14 759 18 15쪽
260 하트의 반(VAN) - 2-28 덫(2) +2 15.06.14 774 16 15쪽
259 하트의 반(VAN) - 2-28 덫(1) +6 15.06.08 801 26 13쪽
258 하트의 반(VAN) - 2-27 전야 +10 15.06.05 759 25 21쪽
257 하트의 반(VAN) - 2-26 변증(7) +4 15.06.02 779 23 15쪽
256 하트의 반(VAN) - 2-26 변증(6) +6 15.05.14 819 31 31쪽
255 하트의 반(VAN) - 2-26 변증(5) +8 15.05.10 800 29 22쪽
254 하트의 반(VAN) - 2-26 변증(4) +6 15.05.10 644 30 18쪽
253 하트의 반(VAN) - 2-26 변증(3) +6 15.05.06 982 29 22쪽
252 하트의 반(VAN) - 2-26 변증(2) +6 15.05.03 680 29 20쪽
251 하트의 반(VAN) - 2-26 변증(1) +6 15.04.30 869 27 15쪽
250 하트의 반(VAN) - 2-25 백색 마녀(3) +8 15.04.28 840 27 14쪽
249 하트의 반(VAN) - 2-25 백색 마녀(2) +2 15.04.26 704 28 18쪽
248 하트의 반(VAN) - 2-25 백색 마녀(1) +4 15.04.24 807 24 12쪽
247 하트의 반(VAN) - 2-24 바하 +8 15.04.23 813 32 23쪽
246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5) +4 15.04.21 679 34 8쪽
245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4) +10 15.04.20 815 34 16쪽
244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3) +8 15.04.19 741 29 17쪽
243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2) +6 15.04.18 815 28 14쪽
242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1) +9 15.04.16 882 33 29쪽
241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0) +10 15.04.14 931 34 25쪽
240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9) +7 15.01.29 1,248 40 14쪽
239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8) +2 15.01.28 893 30 18쪽
238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7) +6 15.01.25 1,062 33 17쪽
237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6) +4 15.01.20 850 35 20쪽
236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5) +4 15.01.16 1,035 38 13쪽
235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4) +4 15.01.16 983 31 13쪽
234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3) +2 15.01.14 1,237 40 23쪽
233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2) +4 15.01.09 1,131 35 12쪽
232 하트의 반(VAN) - 2-23 벨라르드와 헤르반(1) +5 15.01.08 1,031 33 12쪽
231 하트의 반(VAN) - 2-22 반향(21) +4 15.01.07 1,206 47 7쪽
230 하트의 반(VAN) - 2-22 반향(20) +4 15.01.05 1,081 33 7쪽
229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9) +6 15.01.05 1,459 93 14쪽
228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8) +4 15.01.02 1,099 38 14쪽
227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7) +7 15.01.01 1,090 32 22쪽
226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6) +7 14.12.30 1,058 38 23쪽
225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5) +10 14.12.28 1,014 40 10쪽
224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4) 14.12.27 1,079 37 14쪽
223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3) 14.12.25 1,082 38 16쪽
222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2) +6 14.12.23 1,102 37 12쪽
221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1) +6 14.12.22 1,266 40 15쪽
220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0) +4 14.12.19 1,181 32 15쪽
219 하트의 반(VAN) - 2-22 반향(9) +2 14.12.18 1,082 35 10쪽
218 하트의 반(VAN) - 2-22 반향(8) +8 14.12.18 1,396 41 25쪽
217 하트의 반(VAN) - 2-22 반향(7) +2 14.12.16 1,313 33 14쪽
216 하트의 반(VAN) - 2-22 반향(6) 14.12.15 1,049 35 23쪽
215 하트의 반(VAN) - 2-22 반향(5) +2 14.12.14 1,150 31 12쪽
214 하트의 반(VAN) - 2-22 반향(4) 14.12.13 1,153 34 14쪽
213 하트의 반(VAN) - 2-22 반향(3) +2 14.12.10 1,348 40 17쪽
212 하트의 반(VAN) - 2-22 반향(2) +6 14.12.09 1,213 43 11쪽
211 하트의 반(VAN) - 2-22 반향(1) +6 14.12.07 1,221 40 17쪽
210 하트의 반(VAN) - 2-21 필센(9) +4 14.12.06 1,053 38 19쪽
209 하트의 반(VAN) - 2-21 필센(8) +6 14.12.04 967 37 9쪽
208 하트의 반(VAN) - 2-21 필센(7) +2 14.12.04 1,149 37 15쪽
207 하트의 반(VAN) - 2-21 필센(6) +4 14.12.02 1,108 36 7쪽
206 하트의 반(VAN) - 2-21 필센(5) +6 14.12.01 1,478 39 19쪽
205 하트의 반(VAN) - 2-21 필센(4) +2 14.11.28 1,059 37 11쪽
204 하트의 반(VAN) - 2-21 필센(3) 14.11.27 952 39 8쪽
203 하트의 반(VAN) - 2-21 필센(2) 14.11.26 1,044 42 22쪽
202 하트의 반(VAN) - 2-21 필센(1) +2 14.11.25 2,019 44 10쪽
201 하트의 반(VAN) - 2-20 균열(13) 14.11.23 1,222 44 19쪽
200 하트의 반(VAN) - 2-20 균열(12) +2 14.11.21 1,601 39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