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3,513
추천수 :
18
글자수 :
697,994

작성
21.12.22 19:44
조회
21
추천
0
글자
10쪽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5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둘을 거둬준 건 코르코프낙에서 굴뚝청소부를 하고 있는 바브노크였다. 주위에선 바비나 비카 정도로 불리고 있는 바브노크는 둘에게 자기를 비노라고 부르게 하였다.


비노는 항상 얼굴에 검댕이를 묻히고 다녔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럽지 않은 듯 제대로 지우지도 않은 채로 다녔다. 티끌 하나 용서하지 않던 저택에서 생활한 데니즈에겐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요 며칠 찾아봤는데 부모님 소식은 없더구나. 너희만 괜찮으면 나랑 같이 살지 않겠니?”


비노는 얼굴의 검댕이와는 다르게 매우 하얀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둘을 거둔 것도 정말 순수한 이유에서였고, 거둔 뒤에도 다른 의도를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나즈?”


나즈는 잠시 비노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비노는 진심으로 기뻤는지 그 억세고 큰 손아귀로 둘을 동시에 꼭 끌어안았다.


데니즈는 익숙해서 가만히 있었으나 나즈는 괴로움에 살짝 몸을 뺐다.


“가볼까?”


그렇게 가족이 된 셋은 오늘도 일을 나섰다. 노동은 최선, 나태는 죄악임을 표방하는 칸달레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노가 자기 생업을 하는 동안 나즈와 데니즈는 목공소에서 일을 했다. 아이인 둘에게 본격적인 일을 시킬 순 없으므로 데니즈는 나무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나즈는 바닥에 떨어진 나무 파편이나 톱밥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데니즈랬던가? 일 좀 하네.”


인간들이 일하는 곳에 마족이 끼어 있었다.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성인 남성보다 월등히 강할 데니즈가 작업을 하니 경이로운 효율이 나왔다.


“이야, 어디서 저런 애를 데려왔데?”


“뭐라더라? 저번 이주 때 온 애들인데, 애들만 달랑 와서 바비가 거뒀다더라.”


“그게 되나? 고아들은 군인으로 가지 않나?”


“냅둬. 우리 입장에선 좋잖아?”


의심을 살 법도 하지만 언뜻 보기에 인간과 전혀 차이가 없는 데니즈는 쉽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동태 눈깔투성이인 이곳에서 홀로 초롱초롱한 눈빛인 것도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데니즈가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동안 나즈는 모두의 관심 밖에 있었다. 원체 조용한 성격인데다가 딱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딱 데니즈의 여동생 정도의 인식이었다.


그런 나즈가 바닥에 떨어진 나무토막을 지긋이 보고 있으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 공장 유일한 바닥 쓸기 담당인 나즈가 그러고 있으니 누구도 제지할 사람이 없었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와중에 벨트에서 튀어나온 한 뼘 정도의 조각. 나즈는 천천히 나무토막을 주워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을 재개했다.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일과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노동자들은 일제히 기계와 공구들을 놓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들 고생했어. 내일 늦지 말고 나오고.”


목공소의 생산량은 순조롭게 목표치를 채우고 있었다. 야근을 할 필요도 벌점을 부과할 필요도 없었다.


“빨리 가야지. 늦게 가면 술 못 사.”


“난 담배. 목공소에선 못 피니까 근질근질해.”


식료품은 각 가정에 배급된다. 하지만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은 노동의 대가로 받는 토큰으로만 구매할 수 있었다. 매일 한정된 수량만 판매하기 때문에 빠르게 가야 했다.


“사탕이라도 사갈까요?”


“응.”


사탕 역시 같은 취급이었다. 저택에서의 생활이 아직도 몸에 익어 있는 데니즈는 사탕이 주는 감미로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데니즈가 번 토큰의 절반 정도는 사탕을 구매하는데 들어갔다.


저택에서 먹던 간식들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맛. 그저 설탕을 녹여 뭉친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었다.


“나즈도 하나 먹어요.”


나즈는 무덤덤하게 사탕을 받았다. 그리고 곧장 먹는 대신 투박한 종이 포장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나즈가 버는 토큰은 온전히 가계에 보탰다. 배급되는 것보다 더 많은 기름이나 추가 옷가지, 다 닳은 연장의 교체나 비노가 마실 술 등이었다.


물건 구매까지 끝내고 나면 사람들은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 어떤 오락시설이나 여가시설도 없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 밖에는 없었고, 그마저도 칸달레아의 살인적인 추위는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나즈와 데니즈는 추위는 느끼지 않지만 그 흐름에 동참하며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다녀왔습니다.”


“어서오렴. 일은 힘들지 않았니?”


“괜찮았어요. 그것보다 이것 보세요! 오늘은 줄을 빨리 서서 보드카를 2병이나 사왔어요!”


“하하, 고맙구나. 자, 저녁들 들거라.”


저택에서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데니즈는 지금의 이 소박함이 좋았다. 이곳에 다른 나즈가 없다는 것이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얘들아, 좋은 소식이 있단다. 얼마 안 있으면 상경이 가능할 것 같구나. 수도에 간다면 분명 여기보다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술이다 뭐다에 토큰을 허비하는 동안 비노는 착실히 거주지 이전 투자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게 20년 동안 이어진 결과 수도로 이사 가는 것이 어느새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수도 사람들은 다 멋쟁이라고 하더구나. 우리 같이 칙칙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촌놈이라고 놀림받는다는데 얼마나 대단할까?”


식사시간이 끝나면 비노는 데니즈를 앞에 두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대부분은 수도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비노의 눈은 데니즈보다도 밝게 빛나곤 했다.


나즈는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언제나 벽난로의 바로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화상을 입지 않을까 하는 거리에서도 나즈는 꿈쩍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있었다.


“아이고, 그나저나 요즘 허리가 아파서 큰일이구나.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되는데.”


얼마 전에 작업 중 지붕에서 떨어진 탓에 비노는 허리가 좋지 못했다. 어떻게 작업을 하곤 있어도 점점 힘에 부치고 있었다.


“이거 써.”


언제나 벽난로 앞에서 비킬줄 모르던 나즈가 어느새 허리를 두드리고 있는 비노의 앞에 와 한 막대기를 내밀었다.


“지팡이구나? 오, 괜찮은걸? 어디서 난거니?”


“내 거. 빌려줄게.”


손잡이 부분이 새의 머리 모양인 썩 단단해 보이는 지팡이. 그것을 보고 데니즈는 의아함을 느꼈다. 나즈와 언제나 붙어 다녔음에도 나즈가 저것과 비슷한 걸 꺼내는 것조차 본 기억이 없었다.


“허허, 고맙구나. 그날 만난 게 너희 같이 착한 아이들이라 참 다행이야.”


기뻐하는 비노가 무색하게도 용무가 끝난 나즈는 다시 벽난로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비노는 멋쩍게 지팡이만 만지작거렸다.


“그나저나 비싸 보이는 건데 어디서 난 건지. 훔쳐온 것만 아니면 좋으련만.”


“나즈면 그런 짓 안 할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비노는 직감적으로 데니즈와 나즈가 정상적으로 이주를 온 아이들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차림이야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씨앗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외모가 비노가 일부러 묻혀 놓은 검댕이 밑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착하고 순진하긴 해도 세상물정을 전혀 모른다던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등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존재했다.


“시간이 늦었구나. 이만 잘까?”


하지만 비노는 둘이 조용히 지내만 준다면 그것들을 구태여 추궁할 생각이 없었다. 누구나 아픈 과거가 있는 법이었고, 그것을 들추는 건 인간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었다.


“네.”


비노의 집에 침대는 1개 밖엔 없었다. 비노가 혼자 누우면 가득 차는 침대. 하지만 셋은 언제나 잠자리를 함께 했다.


비노의 품에 안겨 자면서 데니즈는 편안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품에 안겼던 데니즈지만, 비노의 품은 그 누구와도 다른 감촉이었다. 그것이 뭔지 이해하기에 데니즈는 나이가 많지 않았다.


다시 날이 밝고 일과가 시작되었다. 쳇바퀴를 돌리는 것 같은 삶. 그러나 돌아갈 집이 있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시 힘차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잠깐. 광장.”


목공소로 향하는 길에 나즈는 잠시 다른 길로 새서 광장으로 향했다. 모두가 정해진 직업을 가지고 정해진 배급을 받고 사는 칸달레아라고 해도 아침의 광장엔 할 일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광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규모의 광장엔 조촐하게 동상 몇 개만이 서있었다. 지금이라도 총을 발사할 것처럼 정갈하게 전열을 이루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기 아냐. 역.”


곧 일과 시간이었기 때문에 데니즈는 다소 조바심이 났지만 이미 멀리 떠나버린 나즈를 황급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코르코프낙 유일의 승객열차역이 나왔다. 칸달레아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대륙 횡단 열차의 중간 기착역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역을 이용했다.


역 앞은 탁 트인 공터로, 이른 아침임에도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데니즈는 일찍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의 물결에 넋을 잃고 쳐다봤다.


잠시 사람들을 관찰하던 나즈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가자.”


아직 사람들에게 넋을 빼앗기고 있던 데니즈는 이번에도 뒤늦게 나즈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과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기겁한 데니즈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즈를 안고 목공소까지 달려갔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들키지 않고 목공소까지 도착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둘은 지각을 피할 수 없었다. 벌로 오늘 받을 토큰을 일부 압수당했다.


의기소침해진 데니즈에게 나즈가 먹지 않고 아껴둔 사탕을 주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사랑은 있는 법인가 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름의 시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5 21.12.22 22 0 10쪽
90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4 21.12.16 22 0 10쪽
89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3 21.12.16 20 0 13쪽
88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2 21.11.28 24 0 13쪽
87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1 21.11.22 28 0 14쪽
86 궁정 안뜰에서의 한때 21.11.13 27 0 10쪽
85 어느 붉은 저택에서 - 2 21.11.05 21 0 10쪽
84 어느 붉은 저택에서 - 1 21.11.04 19 1 17쪽
83 헬하운드가 아가씨고 인간이 야생아인 이야기 21.10.25 24 0 14쪽
82 암초의 바다 - 21 21.10.08 28 0 21쪽
81 암초의 바다 - 20 21.09.29 20 0 21쪽
80 암초의 바다 - 19 21.09.23 20 0 10쪽
79 암초의 바다 - 18 21.09.14 16 0 16쪽
78 암초의 바다 - 17 21.09.08 23 0 16쪽
77 암초의 바다 - 16 21.08.31 18 0 12쪽
76 암초의 바다 - 15 21.08.25 19 0 11쪽
75 암초의 바다 - 14 +2 21.08.19 21 1 11쪽
74 암초의 바다 - 13 21.08.12 17 0 10쪽
73 암초의 바다 - 12 21.08.03 14 0 12쪽
72 암초의 바다 - 11 21.07.27 17 0 11쪽
71 암초의 바다 - 10 21.07.19 18 0 14쪽
70 암초의 바다 - 9 21.07.10 20 0 13쪽
69 암초의 바다 - 8 21.07.07 20 0 11쪽
68 암초의 바다 - 7 21.07.01 20 0 14쪽
67 암초의 바다 - 6 21.06.26 16 0 13쪽
66 암초의 바다 - 5 21.06.19 23 0 12쪽
65 암초의 바다 - 4 21.06.10 20 0 14쪽
64 암초의 바다 - 3 21.06.07 22 0 12쪽
63 암초의 바다 - 2 21.05.29 26 0 14쪽
62 암초의 바다 - 1 21.05.26 25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