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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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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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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697,994

작성
21.08.3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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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암초의 바다 - 16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제가 이 직장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요?”


“일은 힘들어도 당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임엔 틀림없을 겁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난번 태풍으로 농사가 망했어요. 어떻게 해야 다음 수확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최근 사업 상황이 좋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불안을.


“지병이 최근 들어 너무 심해졌네요. 제가 올해를 넘길 수 있을까요?”


“마족이 되는 길을 고르지 않는다면 힘들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목숨에 대한 불안을.


“할게니우스가 앞으로 칸달레아와의 패권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이후 대통령들이 타락하지 않고 자기의 본분을 다 한다면 분명히 가능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조국에 대한 불안을.


“방금으로 마지막이야. 고생했어.”


각자 다른 불안을 품고 가게를 방문한다. 그리고 각자의 답을 얻고 돌아간다. 콜로딘 제도 발통 섬 노르센텀 구역 6번지구 칼슨로 4번 길의 자그마한 점집엔 하루에도 수 십 명의 사람이 그렇게 다녀갔다.


“마리도 고생했어. 오늘은 다들 금방 돌아갔네.”


뿔이 더 자라 한 뼘 이상의 크기로 자란 란펑은 이제 완전히 성장이 끝났는지 더 커지지 않았다. 대신 완숙미가 더해져 이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신수의 분위기가 났다.


“그러게. 다들 가기 싫어서 난리 치기 일수인데.”


가게는 번창하고 번창해서 줄 서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가게들이 근처에 줄줄이 들어서고, 그런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번호표를 나눠주는 상황이 될 정도가 되었다.


이쯤 되면 경쟁업체나 뒷조직의 공작이 장난 아니게 들어올 법도 한데 구르탁이 일을 잘 하고 있는지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뭐 자릿세 많이 휘핑 해줬으니 그쪽도 불만은 없겠지.


“그만큼 절박한 사람들은 다 점을 봤다는 뜻일까?”


“글쎄. 그런 거 치고는 오늘도 되게 많이 온 것 같은데.”


“저 왔어요.”


“한 명 더 왔네.”


“뭐가요?”


“아냐. 그보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리안은 이제 자기 전용석이 되어가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항구가 뭔가 분위기가 되게 뒤숭숭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퇴하고 외박한다고 하고 나왔어요.”


얼마나 뒤숭숭해야 다른 데보다 훨씬 안전할 항구에서 빠져나오냐? 그리고 그걸 왜 그렇게 평온하게 말하냐?


“뭐 뭔 일이 있길래? 뭐 철수 명령이라도 떨어졌어?”


“그런 건 아닌데, 아시다시피 세르방트도 요즘 소란스럽잖아요? 그거 때문인지 처우가 많이 안 좋아져서 총독이랑 기싸움이 심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밥 못 먹는 건 큰 일이지.


“큰 일이네. 별 일 없이 끝나면 좋을 텐데.”


“여기서 파업이야 늘상 있는 일이니까요.”


역시 세르방트 놈들은 이기적이네. 자기 이득만 찾자고 농땡이를 부리다니.


“너 근데 외박이면 어디서 자냐? 어디 정해둔 곳 있어?”


“글쎄요? 딱히 생각하고 나온 건 아니라서.”


나는 적당히 근처 호텔이나 알려주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별안간 란펑이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서 묵고 가.”


“엥? 여기서?”


얜 또 왜 갑자기 여기서 재우겠다니? 저어기 아카라네 집도 있고 근처에 호텔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여기서 저녁도 먹고 갈 거잖아? 기왕이면 잠도 여기서 자는 게 편하지 않을까?”


“잠은 어디서 자고? 침실은 하나에 침대도 너꺼 하나가 끝인데.”


나도 소파에서 대충 자는 판국에 얘는 어디다 재우려고?


“응? 하나 더 꺼내면 되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침실로 들어가는 란펑.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디선가 침대를 꺼내 방 한쪽 구석에 놓았다. 침대를 자연스럽게 들어서 놓는 걸 보면 쟤도 마족이긴 마족이······. 아니, 그보다.


“아니, 그, 거 뭐야? 내거는? 난 왜 지금까지 소파에 잤어?”


“마리 침대 필요했어? 마리 너무 자연스럽게 소파에서 자니까 집에 침대 따로 있고 여기선 임시로 자는 거니까 그렇게 자는 건 줄 알았는데.”


이 무슨 어이없는 오해? 이래서 대화가 중요하구만!


“사실 나 집이 없어. 지금까지 건물 옥상이나 뒷골목에서 신문이나 모포 덮고 잤어. 마족 아니었으면 냄새 풀풀 풍기면서 다녔을 거야.”


“어쩐지. 집에 안 가더라니.”


눈치채는 게 늦어! 남의 과거는 그렇게 궁금해했으면서 지금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는 관심이 없을 수 있지? 아니 얼마나 나를 밑바닥으로 보고 있었던 거야? 아니지, 이번 같은 경우엔 너무 고평가했던 건가?


“모두가 집이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을 버려!”


“그건 고정관념이 아니라 당연한 가정 같아요.”


“닥쳐! 너도 여자 방에 같이 침대 두고 자게 생겼는데 뭘 그렇게 태평하게 있어?”


“어, 저기 말곤 놓을 데 없지 않나요? 밖엔 란펑 씨 짐으로 공간이 없는데요.”


아 그렇네요. 망할. 이놈들 또 나만 바보 만들고 있어.


“침실에 침대 하나 더 못 놓나? 나도 침대에서 좀 자보자.”


저 어디서 나오는지도 어떻게 집어넣는지도 모르겠는 요상한 물건 꺼내기로 내 것도 좀 꺼내 주면 안 되겠니?


“하나 더 꺼낼 수는 있는데, 자리가 없겠는데?”


원래 과일 가게였던 곳을 사서 꾸민 거라 과일을 쌓아 두던 창고 겸 휴게실이 가게에 있는 방의 전부였다. 방은 이미 침대 2개로 전부 차버렸다.


“저것들 잠깐 치워. 나만 그냥 자?”


나는 밖에 있는 테이블이니 소파니 하는 것들을 가리켰다. 내가 억울해서라도 꼭 침대에서 자야겠어.


“아,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란펑은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가구들을 어디론가 치우고 침대를 꺼내 그 공간에 놓았다.


볼 때마다 어디서 꺼내고 어디다 넣는지 참 궁금해. 저 큰 게 어떻게 저 소매로 쑥 들어가. 이불은 또 어떻게 제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건지 참.


“제가 밖에서 자면 되겠네요.”


“아니, 내가 밖에서 잘 거야. 지금까지 마리를 고생시켰으니 죄값을 치러야지.”


하? 왜 결론이 그렇게 나? 아니, 내가 불평을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각오는 좋아. 좋은데. 굳이? 나 별로 기분 안 상했어.”


“아니야. 이런 건 성의의 문제야.”


“괜찮대두? 내가 괜찮다니까?”


얘 갑자기 왜 이래? 대체 무슨 꿍꿍이······. 앗!


“망할 기지배.”


“오호호. 그렇게 됐으니 저녁 먹으러 가자.”


그렇게 말하고 재빠르게 아카라네 가게로 도망가는 란펑.


“불편하시면 제가 그냥 다른데 알아볼게요.”


“아니야. 내가 나가서 자면 돼. 여관 값이 한 두 푼이냐? 공짜로 재워줄 때 공짜로 자.”


“······요즘 저 피하시죠?”


아 씨. 얘는 또 왜 이래. 그냥 좀 조용히 넘어가면 안 돼? 나 아무 말 안 하잖아. 그럼 너도 아무 말 하지 말라고.


“내가 언제?”


“평소의 마리 씨라면 란펑 씨가 저렇게 말했을 때 그냥 그러라고 하셨을 테니까요. 역시 저번의 그 일 아직도 마음에 두고 계시나요?”


“언제부터 날 알았다고 아는 척이야? 이제 아주 내가 뭐 할지도 예언하겠다?”


“네. 이대로 화 내시다가 씩씩대며 저녁도 안 드시고 다른데 가실 거고, 그리고 나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내실 거잖아요?”


아주 마리학 박사 나셨네. 니미럴.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너랑 상관없잖아.”


“왜 없어요? 마리 씨는 친구가 서먹해지려고 하는데 그냥 지켜보시나요?”


“역시 2호야. 1호에 뒤쳐지지 않아.”


“그 말은 제가 마리 씨한테 귀찮을 뿐인 존재라는 건가요?”


“······왜 그렇게 되는 거야?”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1호, 2호가 그런 의미 아니었나요?”


“그렇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다른가요?”


“달라!”


달라!


“그럼 말로 해주세요. 알기 힘들잖아요.”


차분한 목소리. 내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 이 녀석도 꽤 진심이구나.


“나도 모르겠어. 난 그냥 너랑 란펑이랑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일상이 좋을 뿐인데. 다들 그거로는 부족한가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원래 내 전용석이 있던 자리에 설치된 침대에 걸터앉았다. 푹신하고 포근한 침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요.”


리안 역시 내 옆에 와 앉았다.


“최소한 난 아닌 것 같아. 지금 이대로는 안 돼?”


“지금 그대로면 앞으로도 저를 피하시겠다는 건가요?”


“아니! 야······. 그건 아니야.”


아 진짜! 왜 이렇게 말이 안 나오는 건데! 이러니까 내가 진짜로 저 녀석을 좋아하는 것 같잖아!


그냥, 조금 부끄러운 거일 뿐인데. 젠장.


“저나 란펑 씨나 마리 씨가 조금 변한다고 해서 고개 돌릴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잖아요.”


“앞일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 이제 란펑도 우리 미래는 못 보는데.”


“마족이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게 이상한가요?”


젠장. 저 녀석 얼굴을 똑바로 못 보겠어. 지금 봤다간 멍하니 쳐다볼 것 같아.


“넌 왜 나하고 란펑한테 집착하는 거냐? 너도 항상 얼버무렸잖아. 이 기회에 솔직하게 말해봐.”


제대로 대답 못하면 가만 안 둬.


“알고 계시잖아요. 저 마리 씨 좋아해요.”


뭐뭠머무머뭐뭐뭐뭐머?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란펑 씨한테는 이미 말했어요. 몇 달 전부터 알고 계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하,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였는데.”


“머, 뭐라고 하는 거야? 장난이 심해? 엉?”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처음 사람의 시체를 봤을 때도 이렇게까지 뛰진 않았어.


“장난으로 이런 말 안 해요. 아시잖아요?”


“그, 그럼 란펑도 좋아하는 거냐? 하, 참. 사람 헷갈리게 말하네.”


그런 거겠지. 이 녀석 얼빠진 면이 있으니까 말을 제대로 안 한 거겠지.


“저 리안은 마리 레노르망 씨를 사랑합니다.”


진짜 그냥 한 번만 넘어가주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거로 답이 되었나요?”


이젠 잘못 듣거나 장난인 거로 못 넘어가잖아.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좋냐 싫냐를 따지자면 좋다는 쪽이긴 한데, 그게 사랑으로 연결 되냐고 묻는다면 또 모르겠고. 아 진짜! 전부 란펑 때문이야!


“몰라!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같은 년이 뭐가 좋다고 다가오는 건지. 진짜······.”


“바로 답 안 해주셔도 돼요.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고요.”


으아. 이 상태로 밥이 넘어갈 리가 없잖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고 싶은 기분인데. 아, 모르겠다. 되는 대로 말해봐.


“너는 무슨 내가 좋냐?”


나는 일어나 아카라네 가게로 가는 리안의 뒤에 대고 외쳤다.


“어, 정확히 어떤 의미죠?”


내 외침을 들은 리안은 그 자리에 멈춰서 눈만 깜빡이며 나를 보았다


이제 모르겠다. 이미 강을 건넜어.


“내 어떤 면이 좋은 거냐고.”


뭐 이런 걸 물어보고 있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강한 척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여리다는 점일까요?”


그걸 또 왜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어? 얼굴을 못 들겠잖아!


“전 먼저 가 있을 게요. 늦지 않게 오세요.”


공무원 주제에! 공무원 주제에!


“아아아아아아! 짜증나!”


분노의 주먹질. 그러나 먼지만 휘날릴 뿐 침대는 멀쩡했다.


“앞으로 무슨 얼굴로 보냐?”


안 그래도 조금씩 피하고 있었는데, 이젠 진짜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도망치고 싶을 거 같은데.


진짜. 죽고 싶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마리도 소녀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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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5 21.12.22 21 0 10쪽
90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4 21.12.16 22 0 10쪽
89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3 21.12.16 20 0 13쪽
88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2 21.11.28 22 0 13쪽
87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1 21.11.22 25 0 14쪽
86 궁정 안뜰에서의 한때 21.11.13 27 0 10쪽
85 어느 붉은 저택에서 - 2 21.11.05 19 0 10쪽
84 어느 붉은 저택에서 - 1 21.11.04 19 1 17쪽
83 헬하운드가 아가씨고 인간이 야생아인 이야기 21.10.25 23 0 14쪽
82 암초의 바다 - 21 21.10.08 27 0 21쪽
81 암초의 바다 - 20 21.09.29 19 0 21쪽
80 암초의 바다 - 19 21.09.23 17 0 10쪽
79 암초의 바다 - 18 21.09.14 15 0 16쪽
78 암초의 바다 - 17 21.09.08 22 0 16쪽
» 암초의 바다 - 16 21.08.31 18 0 12쪽
76 암초의 바다 - 15 21.08.25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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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암초의 바다 - 13 21.08.12 14 0 10쪽
73 암초의 바다 - 12 21.08.03 14 0 12쪽
72 암초의 바다 - 11 21.07.27 17 0 11쪽
71 암초의 바다 - 10 21.07.19 18 0 14쪽
70 암초의 바다 - 9 21.07.10 19 0 13쪽
69 암초의 바다 - 8 21.07.07 19 0 11쪽
68 암초의 바다 - 7 21.07.01 19 0 14쪽
67 암초의 바다 - 6 21.06.26 16 0 13쪽
66 암초의 바다 - 5 21.06.19 22 0 12쪽
65 암초의 바다 - 4 21.06.10 19 0 14쪽
64 암초의 바다 - 3 21.06.07 19 0 12쪽
63 암초의 바다 - 2 21.05.29 25 0 14쪽
62 암초의 바다 - 1 21.05.26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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