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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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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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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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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697,994

작성
21.08.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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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암초의 바다 - 12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브랜디 한 병 마시고 기분 좋게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땐 어느덧 해가 져가는 중이었다. 노곤한 정신을 이끌고 밖에 나가니 나도 모르게 정신이 확 드는 풍경이었다.


“뭐지? 죽을 때가 됐나?”


세상 어디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뿔 달린 다 큰 처자가 길다란 치마를 입고서 자전거를 비틀거리며 타고, 그걸 또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뒤에서 잡아주는 모습. 아니, 저 뿔은 언제 저렇게 크게 자랐다니?


내가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게 아니라면 저건 필시 란펑과 리안이겠지. 그리고 왜 진짜라서 사람 숨고 싶게 만드냐?


“야, 나 아직 여기서 장사 더 하고 싶거든? 근데 왜 당장 내일부터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그러고 있냐?”


발통섬에 공터가 얼마나 많은데? 벌레 좀 많고 가끔씩 마족들도 튀어나오긴 하지만, 최소한 길 한가운데서 자전거 타는 연습하는 놈들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잖아?


“일어났어? 리안이 신기한 걸 가져와서 한번 타보고 있······. 꺄아아!”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멋지게 옆으로 쓰러지는 란펑. 그걸 또 부축한다고 달려가는 리안. 아주 잘하는 짓이다.


“앞을 보셔야죠! 다치신 곳은 없어요?”


신수가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다치면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 걸까? 평범하게 병원? 당연히 자전거도 박살이 났을 테니 철물점? 아니면 불량품을 가져왔으니 환불해달라고 하게 마이클? 그것도 아니라면 신수를 다치게 할만큼 자전거가 강력하다는 거니 대학교?


도저히 답을 못 내리겠다. 그리고 뭐? 꺄아아? 그게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신수가 낼 비명이라면 팔 잘린 사람은 대체 어떤 비명을 질러야 하는 거지?


“마리, 이거 생각보다 어려워. 리안은 잘 타던데.’


“그래도 아까보다는 잘 타시는데요? 이대로면 금방 타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가? 그래도 조금만 더 잡아줘. 아직 좀 무서워.”


“네네.”


자기 자신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나 역시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왜냐면 건너편의 아카라랑 내 표정이 똑같을 테니까!


“카악, 퉤!”


크게 가래침을 뱉은 아카라는 그대로 식당 안으로 사라져 다신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저 둘의 행각을 보는 건 나만이 남았다.


“아직 잡고 있지? 놓으면 안 돼?”


“예, 아직 잡고 있어요. 그대로 페달 계속 밟으시고요.”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돼. 나 앞으로 가고 있는 거지?”


“네, 가고 있어요. 앞 보시고요.”


“꺄아! 잠깐! 이거 좀 이상해! 자꾸 옆으로 휘어!”


“위험해요! 손에서 힘 빼요!”


다시 멋지게 옆으로 넘어가는 란펑. 그걸 또 몸으로 받아내는 리안. 쟤는 아직도 란펑이 총에 맞아도 무사할 거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괜찮으세요?”


“응. 근데 너가 다친 거 아니야? 팔에서 피나!”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나저나 아직 좀 무서워하시는 것 같네요.”


“그치만 리안이 자꾸 중간부터 손을 놓는걸?”


“언제까지 제가 잡아드릴 순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아, 마족도 신을 찾아도 되나? 마족이니까 마왕님 찾으면 되나? 아님 난 노르센텀 사람이니까 전하?


이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감정. 손발이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하고 가슴이 저리는데, 간질이라도 걸린 걸까? 와 신난다. 마족의 몸으로 간질도 걸려보네?


그럼 이제 발작을 해볼까?


“남의 자전거로 뭐하고 있는 거야!”


나의 외침에 그때까지 화기애애하게 있던 둘은 그대로 굳었다. 나는 그런 둘의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가 내 자전거를 집어 들었다.


“가게 앞에서 잘하는 짓들이다. 근엄하게 점을 치던 점쟁이가 이렇게 놀고 있는 꼴을 보면 잘도 점을 치러 오겠다? 장사 접고싶냐? 엉?”


“타다보니 재미있어서 그만······.”


“아, 그래. 재미있었겠지. 그렇게 둘이 히히덕거리면서 노니까 재미있든? 주인은 술마시고 자고 있으니까 그 사람 자전거로 놀아도 재미있기만 하겠지. 주변 사람들이 보건 말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치?”


“조금만 진정하세요. 왜 화가 나셨는지는 알았으니까 조금만 진정하시고······.”


“나 지금 굉장히 침착하거든? 진정해야 하는 건 너희들이겠지.”


“예예. 일단은 안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아니? 얘기 안 해.”


이대로 등을 돌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가슴 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해선 돌릴 수밖에 없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중이었다.


“하, 뭔데 시발. 갑자기 왜 이러는데.”


영문 모를 불쾌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 감각. 나는 어쩌면 좋은 걸까?


“오, 안 그래도 찾고 있었다. 너도 어제 그 자리에 있었더랬다?”


신수를 피해서 도망쳤더니 새로운 신수의 등장이다. 여길 오는 게 아니었나? 그냥 할게니우스로 갈 걸 그랬나? 왜 당연하다는 듯이 자전거를 달려서 쫓아오는 걸까?


“뭐요? 더우니까 가까이 오진 말고.”


싱하랬던가? 등 뒤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곤란하다. 다른 마족들도 피하고 있네.


“흡혈귀 아니랄까봐 차갑기는. 어제 마지막까지 있었잖아. 승부 결과 알고 있으면 알려줘.”


무슨 승부? 뭔가 승부를 하긴 했던가? 혹시 그 술 마시기를 승부라고 한다면 둘 다 졌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데.


“어떤 기준으로 알려줄까? 먼저 토 한쪽? 아님 먼저 쓰러진 쪽? 먼저 잔 엎지른 쪽이나 그릇 엎은 쪽, 넘어진 쪽이랑 주정 부린 쪽도 있는데.”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싱하를 보았다. 영락없는 현지 꼬마지만 신수 답게 터무니없는 역량이 느껴진다. 특히 저 태양은 뭔데 저렇게 작은 상태에서도 저리 강렬할까? 란펑의 점술이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흠흠. 그런 자잘한 건 관심 없어. 누가 많이 마셨는지가 중요하지.”


“그거라면 내가 더 많이 마셨어. 솔직히 둘 다 별로 안 마셔본 티 나던데 뭐. 아마 바닥에 쏟은 게 더 많을 거다.”


“······그렇담 승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거로.”


엄청 긍정적이네. 여기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느긋하긴 하다만.


“그거 물어보러 온 거면 난 간다. 기분이 안 좋아서 사람 상대할 기분이 아니야.”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나고자 하였다. 이 더운 지방에서 머리 식힐 만한 곳이 어디 있나 싶긴 하다만, 머리를 좀 식히고 싶다.


“내 땅의 백성이 고통받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말해봐.”


싱하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뒤에 떠있는 태양을 사라지게 한 후 나에게 다가왔다. 꼬맹이의 생각 없는 행동 같아 보여도 뭔지 모를 절도가 느껴졌다.


“나 노르센텀 사람이거든? 네 백성이 된 기억은 없는데?”


“내 땅 안에 살면 내 백성인 거다.”


생각이 단순하긴 해도 심성이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마음이 넓네.


“그래요? 그럼 내 고민 좀 해결해봐요. 뭔가 가슴에 응어리진 게 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좀처럼 풀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할 수록 열만 받는데. 원인을 모르겠으니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뭐야. 그 나이에 사춘기야? 좀 늦지 않아?”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신수만 아니었어도 한 대 때려주는 건데.


“백성이 어쩌고는 어디 갔어?”


“성장통도 고통이라면 게으른 것도 질병이겠네.”


“내가 꾀병이다?”


“생각이 단순하네. 한 두 번만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자.”


자기네 고향이 어떤 꼴이 났는지도 모르는 놈한테 듣고 싶지 않은 말인걸.


“네네. 난 바보라 잘 모르겠으니 답을 알려주세요.”


“태생은 미천하지 않은 거 같은데, 예의는 어디다 바꿔 먹은 건지.”


“하하. 여기 사람들은 다들 말에 가감이 없어. 여긴 무례하게 말하는 게 기본 소양인가봐?”


“나는 아랫것들에겐 화를 내지 않아.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하지만 적에게 관용을 베풀 정도로 자비롭지는 못하거든?”


싱하의 뒤에 다시금 불꽃이 일렁였다. 그것만으로 견디기 힘들 정도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젠장, 화끈하네. 이놈은 다 커도 지금 성격 그대로일 거 같은데?


“존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을 하는 거야. 난 먼저 기분이 좋지 않다고 일러뒀어. 네가 말하는 거에도 답해줬고. 그런데도 예의를 따져? 정작 내가 말해준 거엔 제대로 답도 안 해주고?”


할 말은 한다. 어차피 내 삶은 그 뒷골목에서 끝이 났다. 그때 운 좋게 살아서 연명하고 있는 목숨에 미련 따위는 없다. 살아서 후회할 바에는 죽어서 편안 하겠다.


“호호오. 기개는 있네. 마음에 들었어. 근데 네 고민에 답해주는 건 내 역할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까지 분위기 잡아 놓고 이제 와서 방향 트는 거야?”


“방향을 틀어? 재미있는 표현을 쓰네. 왜 갑자기 말을 바꾸냐는 뜻이지? 나도 앞으로 써야겠어.”


어려져서 그런가? 집중력이 없네.


“그런 늙은이 같은 발언은 제쳐 두고. 그래서 누구라는 건데? 나 자신이 답을 내려야 한다 같은 재미없는 소리 하면 그땐 진짜 갈거야.”


이젠 존재조차 잊혀서 다른 사람한테 제대로 인식되지도 않는 놈한테 조언이나 구하고 있다니. 내 인생도 참 구질구질해.


“더운 날에 밖에 나오면 더운 게 당연한 법. 원인은 그 녀석이지? 그럼 그녀석이 해결해 줘야지.”


“그녀석이 누군데?”


“글쎄? 잠재적인 적한테 거기까지 알려줄 순 없겠지?”


“그럼 우리 가게에 시비 터는 거 좀만 미뤄줘. 네 백성이라며? 그 정도 편의는 봐줘. 그 다음에 신수님들끼리 오해를 풀든지 말든지 하시고.”


싱하는 호쾌하게 웃었다. 아이의 모습으로 그렇게 웃어봐야 박력이고 뭐고 전혀 없었지만, 때마침 다시 생겨난 태양에 없던 경건함도 생겼다.


“내가 신수라는 걸 알고도 그렇게 당당하게 나올 수 있다니. 어느 의미로는 너 또한 영웅이라 칭할만 하구나. 좋아, 내 약조하지. 그대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 차카트에 두 개의 태양이 뜨는 날은 없을 거다.”


싱하는 그렇게 말하고 박수를 쳤다. 맹렬히 타오르던 태양은 주변을 휩쓰는 강렬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자비로우시네. 그 자비로 우리 신수님도 좀 봐주시면 좋으련만.”


“흥! 적에게 자비란 없는 법!”


“완고하셔라.”


나는 피식 웃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더 이상 허공에 대고 혼자 떠든다고 눈치 보기도 싫고, 뭔가 저런 생각 없는 모습을 보니 괜히 고민하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전 좀 더 고민하다 들어가렵니다. 신수님은 저기 돌탑 위에서 자세라도 잡고 있으시죠.”


“그래. 고민 있으면 언제든지 오고.”


나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싱하는 허공을 밟고 내가 말한 돌탑 위에 걸터앉아 섬을 둘러보았다.


“열심히네.”


여기 사람들은 자기들이 버린 신수가 지금까지도 이 섬을 수호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지금은 다 허물어서 다른 건물들이 들어선 가운데 하나 남은 신전의 흔적에 지금도 머물고 있다는 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신수이자 통치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복잡하네.”


더 이상 신앙을 받지 못하게 된 신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누구도 자기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 세상에 홀로 남아 간간히 흘러 들어오는 신앙의 파편으로 연명하며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인 걸까?


란펑도 조금만 늦었다면 저렇게 되었겠지. 그렇게나 눈에 띄는 옷차림으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는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 나은지. 결국 모두에게 잊혀져 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온갖 굴욕과 고통을 감수하여 존재를 유지할 것인가.


“나도 그렇고.”


참 별거 아닌 고민이다. 나중에 보면 분명 뭐 이런 거로 고민했냐 싶을 고민. 그렇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이 참 사람 복잡하게 만든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오늘도 한편 놓고 갑니다. 


날이 많이 덥고 습한데 다들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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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5 21.12.22 2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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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3 21.12.16 20 0 13쪽
88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2 21.11.28 24 0 13쪽
87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1 21.11.22 28 0 14쪽
86 궁정 안뜰에서의 한때 21.11.13 27 0 10쪽
85 어느 붉은 저택에서 - 2 21.11.05 21 0 10쪽
84 어느 붉은 저택에서 - 1 21.11.04 19 1 17쪽
83 헬하운드가 아가씨고 인간이 야생아인 이야기 21.10.25 24 0 14쪽
82 암초의 바다 - 21 21.10.08 28 0 21쪽
81 암초의 바다 - 20 21.09.29 20 0 21쪽
80 암초의 바다 - 19 21.09.23 20 0 10쪽
79 암초의 바다 - 18 21.09.14 16 0 16쪽
78 암초의 바다 - 17 21.09.08 23 0 16쪽
77 암초의 바다 - 16 21.08.31 18 0 12쪽
76 암초의 바다 - 15 21.08.25 19 0 11쪽
75 암초의 바다 - 14 +2 21.08.19 21 1 11쪽
74 암초의 바다 - 13 21.08.12 17 0 10쪽
» 암초의 바다 - 12 21.08.03 15 0 12쪽
72 암초의 바다 - 11 21.07.27 17 0 11쪽
71 암초의 바다 - 10 21.07.19 18 0 14쪽
70 암초의 바다 - 9 21.07.10 20 0 13쪽
69 암초의 바다 - 8 21.07.07 20 0 11쪽
68 암초의 바다 - 7 21.07.01 20 0 14쪽
67 암초의 바다 - 6 21.06.26 17 0 13쪽
66 암초의 바다 - 5 21.06.19 23 0 12쪽
65 암초의 바다 - 4 21.06.10 20 0 14쪽
64 암초의 바다 - 3 21.06.07 22 0 12쪽
63 암초의 바다 - 2 21.05.29 27 0 14쪽
62 암초의 바다 - 1 21.05.26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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