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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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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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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3
추천수 :
18
글자수 :
697,994

작성
21.06.19 13:09
조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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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암초의 바다 - 5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가게 개시 5일차. 현재 누적 방문 손님 단 두 명. 그 중 한 명은 아카라고, 다른 한 명은 자릿세 받으러 온 내 동업자, 다시 말해 지금까지 방문한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굉장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마리이이. 왜 아무도 안 오는 걸까?”


이유는 알고 있다. 일단 인간은 이런 마력냄새 풀풀 나는 수상쩍은 가게 따위 안 온다. 그럼 마족만 남는데, 대부분의 마족은 또 신수 특유의 강렬한 기운에 거부감을 느낀다.


란펑에게 접근할 사람은 비교적 둔감한 마족인 나와 그래도 급이 있는 마족인 아카라네 가족밖엔 남지 않는 것이다.


“리안은 오잖아?”


물론 그와중에 특이한 놈은 있다. 그게 리안이라는 게 위로가 되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말이야.


“손님 아니잖아!”


안 되는 모양이다.


“모르겠다. 난 껀수 뛰고 올 테니까 넌 밖에 나가서 호객행위를 하든 마법으로 좀 꼬셔오든 알아서 하고 있어봐.”


나는 무어라 소리를 치는 란펑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 껀수 들어온 건 없고 슬슬 그 푹신한 소파의 품도 지겨워진 것이 컸다.


내리쬐는 태양볕을 걷고 있으니 이젠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 마리 씨 아니세요?”


나왔다 2호. 얘는 왜 좀 돌아다니려니까 나타나고 그런다냐.”


“뭐야? 란펑이라면 가게에 있으니까 가게로 가.”


“하핫, 실은 휴일이라 할 게 없어서 돌아다니는 중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가게는 저녁에 들릴 예정이라 사갈거 없나 살펴보고 있었어요.”


속편한 녀석이다. 저렇게 헤실헤실 돌아다니니까 이상한 놈팽이들 만나서 고생하지.


“그러냐? 맛있는거 사와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떠나고자 하였다. 산책을 다른 사람과 하는 취미는 없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시죠. 어차피 마리 씨도 한가한 거 아닙니까?”


얘 왜 이래? 정말 한가한가봐.


“저리가 2호. 난 좀 혼자 있고 싶으니까.”


“2호?”


“그래 2호. 너가 2호, 란펑이 1호.”


“뭐의 2호입니까?”


“몰라도 돼.”


나는 내 공략대로 리안을 무시하고 걸었고 리안도 2호의 명성에 걸맞게 절대 떨어지지 않고 따라왔다.


“아 가라고! 친구 없냐?”


“하하, 단신으로 부임해 와서요. 여기 와서는 다들 묘하게 거리를 두는 느낌이라. 일이 바쁘기도 하고요.”


“그런 얘기를 웃으면서 하냐! 하, 됐다. 심심하면 따라오든지.”


요는 나랑 란펑이 여기 와서 처음으로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사람들이라는 거지? 애가 왜 이렇게 구질구질 하냐. 저런 성격으로 저러기도 쉽지 않은데.


“마리 씨는 여기에 온지 얼마나 되셨나요?”


“말 걸어도 된다고는 안 했거든? 말 걸지 마.”


“네.”


나의 쏘아붙임에 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시키는 건 잘해요.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리안은 정말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공무원을 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음과 동시에 짜증이 솟구쳤다.


“그렇다고 진짜 아무 말도 안하냐?”


“아, 이제 말해도 되나요?”


“이러니까 2호지.”


“그러니까 그 2호가 뭐의 2호인가요?”


“안 가르쳐줘.”


이러니까 세르방트 놈은 안 된다. 이상한 데까지 참견하려고 한다. 그런식으로 데호르하인을 강탈해 갔겠지.


“더운데 뭐라도 마시면서 가시지 않을래요?”


“너가 사는 거지?”


“마리 씨, 지금까지 한 번도 돈 낸적 없지 않아요?”


“사준다는데 내가 왜 돈을 내?”


“그럼 평소에 모은 돈은 어디가 쓰시나요?”


“술.”


“가끔씩은 저도 나눠주세요.”


“손님이나 데려와 임마.”


“그럼 또 놀러가도 된다는 거죠?”


왜 이야기가 그렇게 가는 걸까? 그리고 대체 뭐때문에 이렇게 놀러오는 것에 집착하는 거지? 아무리 친구가 없어도 그렇지 자기가 호구잡혔다는 것도 모르나? 뭐 안 사와도 안 사오는 대로 받아줄 거긴 해도, 주는 걸 거절할 수야 없지.


“설마, 취향이 그쪽은 아니겠지?”


“그쪽이라뇨?”


“란펑. 만약 진짜면 죽일 거야. 으, 기분 나빠.”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아니면 됐어. 그래서 뭐 마실 거냐?”


한낮의 거리에 열고 있는 가게는 거의 없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 이외엔 전부 아침 일찍이나 해가 진 후에나 열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가게는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근처에 아는 가게가 있어요.”


이런날 여는 가게를 안단 말이야? 하긴 공무원이니까 낮에 여는 가게는 알고 있어야 점심을 먹겠지.


“잠깐 너를 다시 봤었는데 말이야. 뭐냐? 여긴?”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운 서체로 글씨가 적힌 간판, 습기 대책은 세우긴 한건지 의심이 드는 나무 뼈대, 귀신의 집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인지 자라있는 담쟁이 덩굴까지, 여기를 노르센텀 어디 도시 한가운데라고 착각한 것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카페에 우리는 도달했다.


“같은 세관공무원 동료들에게 소개받은 가게입니다. 고향에 돌아간 것 같다나요?”


그런 기분이 들 것 같긴 하다. 저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면!


뭐? 커피 한 잔에 29살롯? 차가운 건 7살롯 더 받아? 이런 돈에 미친 세르방트 놈들!


“지랄 마. 여기서 커피 한 잔 먹고 29살롯 날리느니 동네 술집에서 맥주 4잔 마실래. 미역네 가도 메뉴 하나는 먹겠다.”


그나저나 어느새 세르방트 구역으로 넘어온거지? 여기 사는 놈들은 정상이 없는데. 언제 총맞을지 모르는 곳이라고!


“그래도 한번쯤은 가볼만하지 않은가요? 가끔씩은 이런 사치도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이런데 다니면 봉급이 버티냐? 세르방트 놈들 아니랄까봐 허세 부리는데 아주 열심히네!”


“쉿! 마리 씨, 목소리가 커요!”


뭘 허둥지둥 하고 있어? 그래, 나 노르센텀 사람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마음에 안 드시면 일단 이동해요. 자자, 어서요.”


“누구 마음대로 내 몸에 손대래? 죽어볼래?”


“네네, 죽어드릴 테니까 일단 가요,”


“너 내가 못할 거 같냐? 엉?”


“제발요!”


이끌림 반 자발적 반의 움직임으로 나와 리안은 세르방트 구역에서 벗어났다.


“괜히 더 더워졌네요.”


“내탓이라는 거야?”


“그게 뭐가 중요해요? 아무것도 못 마셨다는 게 중요하죠.”


리안답지 않게 힘이 없는 모습. 이놈도 인간이긴 인간이네.


“아, 모르겠다. 그냥 노점에서 아무거나 마셔.”


마침 근처에 아는 얼굴이 하는 노점상이 보였다.


“요 영감탱이. 장사는 잘 돼?”


“히익! 보호비라면 어제 내지 않았습니까?”


언제봐도 정겨운 얼굴과 정겨운 반응. 다들 이렇게 순종적이면 좋을 텐데 말이야.


“아, 그랬었나? 농담이야. 쪼올지 마. 보호비 왜 내는데? 됐고, 괜찮은 거로 두 잔만 내와봐. 돈은 얘가 낼거야.”


영감은 내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지 음료를 만들고 건내주면서도 전혀 돈을 받을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리안이 돈을 내밀자 두 눈을 크게 뜨며 돈을 받아서 거슬러 주었다.


“고생하쇼. 다음달 보호비 잘 준비하고.”


그렇게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영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약간 그늘진 곳으로 피신했다.


“후우, 덥네요.”


“인간은 불편하겠어.”


“불편할 것까지 있나요? 그걸 견디고 살아가는 게 인생인걸요.”


“오, 책좀 읽었나봐? 어디서 그럴듯한 소리를 하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었거든요. 지금은 공무원이나 하고 있지만요.”


눈물 나는 사연이다. 친구도 없고, 꿈도 잃어버리고, 거기다 가족들도 없는데, 애가 왜 이렇게 짠하게 사냐?


“마리 씨는 왜 용병일을 하고 있나요?”


아, 그걸 물어보냐? 보통 물어봐? 얼마나 날 편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걸 물어보냐? 하여간 세르방트 놈들이란.


“물으면 묻는대로 다 대답해 주겠냐? 돈내고 란펑한테 물어보든가.”


영감탱이, 과일은 아낌 없이 넣었네. 근데 얼음은 어디 이상한데서 떼오나봐. 살짝 이상한 마력맛 나.


“이런 건 본인한테 들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쓸데 없는 데서 성실하네.”


“음료 사드렸잖아요.”


“안 돼. 너무 길어. 그냥 적성 맞아서 하고 있는거라고 알고 있어.”


딱히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성에 안 맞는 건 아니다. 어디 한군데 속박되는 일 없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일하고 싶지 않을 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그 말은 딱히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거네요.”


“누가 좋아서 하겠냐? 너도 공무원 좋아서 하는 거 아니잖아?”


“아니라곤 못하겠네요.”


“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되는 거지. 그래도 난 적성은 맞으니까 운이 좋은 거고.”


귀찮은 녀석이긴 하지만, 어째선지 무시할 수 없다. 다른 놈이 이런 질문을 했으면 안면에 주먹 한방 놔주고 참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러고 보면 리안이 여기 와서 일 외의 경로로 사귄 첫 사람이 아닌가 싶다. 란펑과 동시긴 해도.


나도 정이 들었나 보다. 이 일 하면서 정 같은 거 붙이면 안 되는데. 오늘은 친구라도 언제 적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나저나 너도 참 별난놈이다. 나한테 이런 취급 받으면서 계속 붙어있고 싶냐?”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 내치진 않으시잖아요? 그게 마리 씨 나름의 친절인 거겠죠.”


“모르겠다. 나도 원래라면 진작 때렸을 일인데 참는 걸 보면 귀찮긴 해도 싫은 건 아닌가보지.”


“하하, 때리는 건 참아주세요.”


“처신 잘해. 나한테 맞으면 저번처럼 멍으론 안 끝나.”


리안은 그때의 고통이 생각났는지 그때 맞았던 눈가를 손으로 만졌다. 지금은 완전히 나아서 티없이 깨끗해져 있었다.


“음료 잘 마셨다. 난 이만 돌아가서 한숨 자련다.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해라.”


나는 내가 마셨던 잔을 리안에게 강제로 떠넘기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로 돌아갔다. 리안은 따라오려는 듯 하다가 이내 방향을 돌렸다. 2호는 역시 1호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 왔다. 손님은 좀 있었냐 1호?”


“어딜 갔다 온거야? 그리고 1호가 뭐야?”


오늘도 미묘하게 커진 란펑은 반가움 반 짜증 반 섞인 표정으로 날 반겨주었다.


“수정구슬한테 물어봐.”


“나랑 관련된 건 못 본다니까?”


“그럼 영원히 모르겠네.”


“애가 왜 그렇게 꼬였니? 좋게 말하면 덧나니?”


어라? 전보다 앵앵거림이 살짝 줄었다.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힘이 회복되고는 있는 모양이다.


“별로 중요한 거 아니잖아? 그래서 손님 있었어?”


“······없었어.”


“아쉽네. 내일부턴 뭐라도 해봐야겠네?”


집까지 걸어오며 재미있는 방법들이 많이 떠올랐다.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기대가 된다.


“뭔가 안 좋은 생각 하고 있지 않아?”


감도 좋은 꼬맹이다. 곱게 자라신 신수님께 알려줘야지. 콜로딘에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후후후후.”


“음. 나 내일은 쉴까? 내 몫까지 열심히 해줘.”


“워워, 주인공이 빠지면 어쩌자는 거야? 탄트라에선 그렇게 가르치나?”


“탄트라를 모욕하지 마!”


“그럼 보여줘야지.”


“좋아. 보여줄게.”


말한 뒤에야 란펑은 자기가 속은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듯 하였으나 나는 상대해주는 대신 소파에 누워 눈을 붙였다.


저녁엔 리안이 양파튀김을 한아름 들고 찾아왔다. 아카라네 가게에서 떼온 맥주와 함께 저녁은 맥주파티를 열었다.


바삭한 튀김에 차가운 맥주, 이게 인생이지 싶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치맥은 진리입니다.


한국인이면 자고로 치맥입니다.


야근은 필수요소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지요.


여러분은 꼭 맛있는거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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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1 21.11.22 26 0 14쪽
86 궁정 안뜰에서의 한때 21.11.13 27 0 10쪽
85 어느 붉은 저택에서 - 2 21.11.05 20 0 10쪽
84 어느 붉은 저택에서 - 1 21.11.04 19 1 17쪽
83 헬하운드가 아가씨고 인간이 야생아인 이야기 21.10.25 24 0 14쪽
82 암초의 바다 - 21 21.10.08 27 0 21쪽
81 암초의 바다 - 20 21.09.29 19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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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암초의 바다 - 15 21.08.25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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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암초의 바다 - 12 21.08.0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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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암초의 바다 - 10 21.07.19 18 0 14쪽
70 암초의 바다 - 9 21.07.10 20 0 13쪽
69 암초의 바다 - 8 21.07.07 19 0 11쪽
68 암초의 바다 - 7 21.07.01 19 0 14쪽
67 암초의 바다 - 6 21.06.26 16 0 13쪽
» 암초의 바다 - 5 21.06.19 23 0 12쪽
65 암초의 바다 - 4 21.06.10 20 0 14쪽
64 암초의 바다 - 3 21.06.07 20 0 12쪽
63 암초의 바다 - 2 21.05.29 2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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