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659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5.11 18:57
조회
215
추천
4
글자
11쪽

강철의 남자(5)

DUMMY

"먼저 접근한 쪽은 블러드 머니 쪽이었다. 그들이 먼저 접근해오기 전까지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떠올리지조차 못하고 있었지."

"그쪽에서 어떻게 알고 접근한거죠?"

"그건, 나도 모르겠군. 애초에 내 아내와 딸에 대한 존재는 너희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병원 사람들 말고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있었다."

"..."


왜 우리에게조차 비밀로 한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그걸 대놓고 물어보는 것을 분위기로 거부하고 있는 아저씨였다. 잘은 모르지만, 길드 차원에서 도움을 줬었다면...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었는데.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그 딸이라는 애 말이야. 지금은 건강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건강한 아이라고 말은 할 수 없겠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밖에서 뛰어놀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많이 올랐어."

"헤에. 그건 다행이네."

"그렇지.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뒤로 아저씨는 한동안 그 강지영이라는 아이에 대해 내게 말해주었다. 말을 하는 아저씨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말하는 기색에는 답지 않게 들뜬 기색이 엿보이는 걸로 보아 그 강지영이라는 아이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한동안 얘기하던 강철환은 주머니 속에서 액정에 금이 간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시간을 확인했고, 난 아저씨의 스마트폰에서 특이한 스티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하. 아저씨. 그거 귀엽네."

"그런가. 그렇다니 다행이군."


아저씨의 스마트폰 케이스 뒷면에 붙어있는 것은 엄청나게 눈에 띄는 분홍색의 꽃 모양 스티커. 무슨 정신 지배 같은 거라도 당하지 않은 이상 저 아저씨가 직접 저런 걸 자기 폰에다가 붙이고 다닐 리는 없었으니 아마 딸아이가 붙여줄 걸 거다.


"정말로, 정말로 그 지영이라는 애가 소중한가봐?"

"...지금으로서는, 내게 남은 전부라고 말할 수 있지. 그 아이가 없는 앞으로의 내 인생은...상상하기 힘들군."

"허, 그 정도야?"

"그래.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너와 싸워야만 한다."

"..."

"블러드 머니에 대한 너의 적개심은, 잘 알고 있다. 너에 관한 일에 직접 손을 쓴 일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그만큼이나 집요하게 널 쫓아 왔으니 그런 마음을 품게 되는 것도 이해가 가고 말이다."

"그건..."

"아니면 뭔가? 이제 와서 모든 걸 잊고, 블러드 머니 쪽에서 함께하기라도 할 건가? 내 불쌍한 딸아이를 위해서?"

"..."

"아니겠지. 내가 알고 있는 류진이라는 헌터는, 결코 그런 남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미안해. 아저씨. 하지만."

"더 말할 필요 없다.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나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옳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오히려 정의에 가까운 쪽은 네 쪽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정의...인가."


새삼 저 아저씨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을 듣게 되니 굉장히 씁쓸한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저 아저씨를 부르던 이명은 '정의의 철권'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늘 공의를 위해서 주먹을 휘두르던 것으로 유명했고, 실제 성격도 그에 가까운 아저씨였으니까.

나도, 아직 어리다고 말할 수 있던 시절에 이 아저씨의 그런 점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말이야. 어쩌면 함께했던 시간이 긴 만큼, 지금의 나를 만든 것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 이 아저씨일지도 모른다.


"아마 한동안은 잠잠할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남궁혁이 널 냅두라고 지시한 일이니 말이지. 하지만 그 후부터는...아마도 내가 직접 너를 상대하게 될 거야. 블러드 머니에는, 남궁혁을 제외하면 널 상대할 수 있는 헌터가 나 외에는 없으니 말이지."

"그렇, 겠죠. 역시."


블러드 머니가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인력의 대부분은 그저 그런 양아치들이 대부분. 정말로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헌터는 아마도 남궁혁과 강철환이 전부일 것이었다.


"그래도 조심해라. 남궁혁...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 남자가 아무런 흉계도 꾸미지 않고 웅크리고만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죠. 저도 그 작자한테는 호되게 당했으니...그런데 앞으로는 적이라면서요? 적한테 그런 조언 해줘도 되는 거에요?"

"그런가."


강철환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한 잔의 술을 들이켰고, 대화중에 계속 홀짝거리며 마신 덕에 가져왔던 술병들은 모조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 술값 대신이라고 생각해라. 그러고보니, 술은 굉장히 오랜만이로군. 블러드 머니쪽에 붙고 나서 조금 뒤부터는 마신적이 없단 말이지."

"엑. 진짜요? 아저씨같은 말술이 그러고 어떻게 살았대요?"

"그러게나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씁쓸한 기분만 들 뿐 취할 수가 없게 되더군. 아마 죄책감 때문인 거겠지."

"..."

"이건, 내가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업이다. 지금까지 저지른 죄만 하더라도, 평생에 걸쳐서 속죄해야 할 일. 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아저씨..."

"어쨌든 그렇게 됐다. 이제 정말로 일어나 봐야겠어. 밖은 벌써 해가 떴을만한 시간이야."


강철환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비어버린 술병과 쓰레기들을 검은 비닐봉지 안에 모아담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많이 변하긴 했구나. 예전에는 늘 쓰레기 문제로 내게 잔소리를 듣곤 했지만, 그래도 고쳐지지를 않아서 골머리를 앓은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하하. 공병들 편의점에 가져다주면 한 병에 무려 백원이라구요. 이 아까운 걸 어떻게 그냥 버리고 갑니까?"


확실히 예전에는 나같은 인재는 쓰레기 줍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사회적 이익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아저씨는 늘상 그런 나를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말로 타일렀었고. 그리운 기억이구만.


"그럼, 갈까."

"네. 아저씨."


아직 나누고 싶은 이야기야 한가득 있었지만, 야속하게도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의 대화를 기다려줄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우리는 아쉬움과 답답함을 남긴 채 던전 밖으로 나왔다.


-----


강철환과 헤어진 뒤, 나는 다시 박선호의 차를 타고 이 와중에도 쿨쿨 잘만 자고 있는 골칫덩이 아저씨 둘을 다시 그 병원에 던져놓고는, 수리를 맡겨 놓았다는 내 스마트폰을 회수한 뒤에 일단 박선호의 집이 아닌 내 거처로 돌아왔다. 박선호야 조금 아쉬운 눈치였지만,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말이지.


"우선은...한성기업에 가야겠지. 후우, 막막하구만. 이걸 어쩌면 좋냐."


나는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부러진 채로 자루만 남아 있는 싸구려 장검의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그나마 이건 자루라도 남아 있지 스톤 브레이커는 통째로 남궁민 놈이 가져가버렸기에 꼼짝없이 백프로 배상을 해내야 할 판이었으니 내가 배상해야 할 금액이 얼마인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거...비쌀텐데."


요즘 아이템 시세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유미씨가 들고 있던 던전제 아이템조차 아닌 그 검만 해도 삼천만원이라는 억소리나는 가격을 자랑했었으니 필시 그것보다는 더 비쌀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부딫혀 봐야겠지. 여기서 한숨만 내쉬고 있는다고 박살난 아이템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단 부러진 자루나마 곱게 싼 뒤에 박선호에게 빌린 정장을 입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한성기업으로 향했다. 늘 입는 평상복은 세탁중이고, 신혜씨한테 받은 그 옷은 완전히 망가져서 수선도 불가능하니까 말이지. 상반신뿐이긴 하지만.


"젠장. 출근길의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울 수도 있다니."


회사 가기 싫다는 던전만 없었다면 어느 평범한 회사원이나 할 법한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자 나는 금방 한성기업 본사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여느 때처럼 사람 기를 팍 죽일만큼 웅장한 기세를 뽐내는 한성기업 본사 건물이 나를 맞이했다.


"여어~좋은 아침."

"음...오늘도 왔나."


오늘도 변함없이 회사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은 예의 그 경비원 최민규였다. 그러고보니 저놈도 드디어 내 얼굴을 기억해준 모양이군.


"어. 그럼 수고해."

"으, 음...뭐, 알겠습니다. 당신도 고생하십쇼."


제멋대로 최민규를 향한 친밀감을 쌓은 나와는 달리 최민규는 나와의 거리감을 잡기가 영 애매한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어정쩡한 인사를 건넸고,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거, 보고를 누구한테 해야 되는거지? 신혜씨...는 아니겠지. 일단은 보안실장이랬고, 늘 바빠 보이니까."


지금까지는 사원증도 없이 맺은 이 회장님과의 비밀 계약 같은 느낌이었던지라 회사 사람에게조차 함부로 정체를 알리기 힘든 느낌이었지만...지금이야 뭐, 정식으로 사원증도 나왔고, 개나 소나 내 정체를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박선호도 그렇고, 블러드 머니한테도 힘 되찾았다는 걸 까발려졌고 말이야.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잠깐 고민하던 나는 별 수 없이 안내 데스크로 향했고, 늘상 미소로 일관된 표정을 짓고 있는 안내 데스크의 제복을 입은 여자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미래를 꿈꾸는 기업 한성기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예. 뭐 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말입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아닌데. 나는 헛기침을 하며 데스크 아가씨에게 사원증을 보여줬고, 데스크 아가씨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 저희 회사 소속의 헌터 분이셨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회사 소속 헌터분들의 얼굴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실수를..."

"아, 아닙니다. 저도 이 회사 소속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모르시는 게 정상이죠."


라고는 하지만 제법 여기 들락거린지는 꽤 오래 됐는데 이제 좀 날 알아보는 직원도 있으면 싶은데 말이야. 저 밖에 서있는 최민규처럼.

어이쿠, 그러고보니 이렇게 투덜거릴 처지가 아니였지 참. 당장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뭐하는 짓이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던전 거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9 답사 준비 +1 21.05.12 210 4 11쪽
» 강철의 남자(5) +1 21.05.11 216 4 11쪽
57 강철의 남자(4) +1 21.05.10 208 5 9쪽
56 강철의 남자(3) +1 21.05.07 216 5 9쪽
55 강철의 남자(2) +1 21.05.06 214 4 9쪽
54 강철의 남자 +1 21.05.05 227 5 9쪽
53 초능력자(2) +1 21.05.04 211 6 11쪽
52 초능력자 +1 21.05.03 247 4 10쪽
51 낯선 천장(3) +1 21.04.30 248 4 9쪽
50 낯선 천장(2) +1 21.04.29 234 6 10쪽
49 낯선 천장 21.04.28 270 6 11쪽
48 룸메이트 아저씨들(9) 21.04.27 264 5 9쪽
47 룸메이트 아저씨들(8) 21.04.26 302 6 14쪽
46 룸메이트 아저씨들(7) 21.04.23 306 7 11쪽
45 룸메이트 아저씨들(6) 21.04.22 297 6 10쪽
44 룸메이트 아저씨들(5) 21.04.21 301 7 11쪽
43 룸메이트 아저씨들(4) +1 21.04.20 294 7 9쪽
42 룸메이트 아저씨들(3) +1 21.04.19 316 8 12쪽
41 룸메이트 아저씨들(2) +1 21.04.16 332 6 9쪽
40 룸메이트 아저씨들 21.04.15 356 6 10쪽
39 함정 너머에 있는 것(4) 21.04.14 387 5 10쪽
38 함정 너머에 있는 것(3) 21.04.13 350 7 9쪽
37 함정 너머에 있는 것(2) 21.04.12 388 7 12쪽
36 함정 너머에 있는 것 21.04.09 380 7 10쪽
35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3) 21.04.08 375 6 9쪽
34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2) 21.04.07 377 6 12쪽
33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21.04.06 387 6 12쪽
32 휴식 끝, 폭렙 시작 21.04.05 393 8 12쪽
31 휴식(3) 21.04.02 349 7 12쪽
30 휴식(2) 21.04.01 353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