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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682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4.06 18:03
조회
387
추천
6
글자
12쪽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DUMMY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쯤일텐데."


한성기업에서 나온 후, 나는 무려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그야 도보로 서울에서 수원까지 갈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참으로 오래간만에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수원에 위치한 어느 이름 모를 산이었다. 정말 어디에서든 불쑥불쑥 나타나는 던전 게이트의 특성상, 오늘 내가 갈 던전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비싼 돈 내고 타고 온 만큼 뽕은 뽑을 만큼 뽑아 줘야겠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 든 포션들과, 완전히 내구도를 풀로 채운 싸구려 검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내 돈주고 산 건 아니고, 조금 전에 신혜씨에게 들은 그 혜택을 적용받은 거다. 사실 포션은 그렇다치고 착용 레벨 1짜리 싸구려 장검에다가 굳이 한 달에 한번밖에 못쓰는 수리권을 사용한 것이 아깝기는 하지만, 오늘 내가 할 사냥을 위해서는 최소한 레벨 10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이 싸구려 장검의 내구도가 버텨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무기도 빌려 왔고 말이지."


내 등에 파쇄의 대검과 함께 메여 있는 길다란 장검 한 자루. 파쇄의 대검보다는 작지만 평범한 장검보다는 큰 이 검은 대태도라고 불리는 종류의 검이었다.


"아. 여기였군. 오~오늘은 왠지 사람이 꽤 되는데."

"파티원 구합니다! 탱커 완전 우대해드립니다! 퓨어 탱커시면 포션도 지급해드려요!"

"원거리 딜러 구해요! 도적 계열도 받습니다!"


한동안 팔자에도 없는 등산을 즐기던 나에게 파티를 구하는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조금 뒤 나는 위험 테이프로 덕지덕지 감싸여 있는 공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그 공터의 한복판에 위치한 것이 오늘 내가 사냥을 할 던전의 게이트였다.

이 던전의 이름은 버려진 유적. 출현 초기에는 무려 B급이라는 판정을 받은 상위의 던전이었지만, 공략된 이후로는 C급으로 등급이 떨어진 던전이었다.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이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 자체의 레벨은 기껏해야 20정도에, 딱히 수가 많은 것도 아니라 상대하기 쉬운 것에 반해 유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함정이 어마무시하게 많이 설치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함정이란 함정은 모조리 다른 헌터들에 의해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별 거 아닌 몬스터들에 딱 C급 수준에 걸맞는 보스가 있는 그저 그런 던전이 되어버렸기에 등급이 강등된 것.


"물론 이게 전부라면 내가 굳이 수원까지 와서 찾아올 일을 없겠지만 말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파티원들을 구하고 있는 다른 헌터들을 싸그리 무시하고는 망설임없이 게이트로 향했고, 그러자 왠지 졸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복쟁이 한 명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에...실례지만 신원을 밝혀 주시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헌터 면허 미소지자는 출입 금지라서 말입니다."

"아. 맞다. 그랬지 참."


여태 지키는 사람 한 명 없는 슬럼의 던전에만 들락거리다보니 까먹은 사실이지만, 보통 던전 게이트의 앞에는 이렇게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이 한 명 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눈앞의 사내의 가슴에는 국가에서 파견된 공무원임을 증명하는 공무원증에 매달려 있었고, 나는 별 수 없이 주머니 안에서 아침에 발급받은 사원증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걸 면허 대용으로도 쓸 수 있다고 했으니 이거면 됐겠지.


"네. 확인했습니다. 한성기업 소속의...류진씨로군요?"

"네. 맞습니다."


오. 진짜로 되는군. 새삼스럽지만 신기한데.


"음...그런데 던전에는 혼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같이 온 파티원은 보이질 않는데요."

"혼자 들어갈 거 맞는데요."

"음...뭐, 알겠습니다. 좋은 사냥 되십시오."


저번의 3인조와는 다르게 혼자 들어가려는 나를 걱정하는 것 같은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길을 비켜주는 남자. 나는 사원증을 다시 받아들고는 주저없이 던전의 게이트를 통해 버려진 유적으로 들어갔다.


"여기 풍경은 그대로군.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데도 말이지."


게이트 뒤로 펼쳐진 광경은 유적...이라기보다는 폐허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유적이기라도 한 것인지 하늘은 바닥에 깔린 것과 같은 석재 벽돌로 완전히 막혀 있었고, 벽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짝이는 돌들에 의해 내부는 대낮처럼 환한 상대였다.


"어디 한번 그 빌어먹을 함정도 그대론지 확인하러 가 보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메여 있는 장검의 검집을 움켜쥐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


"흐아압!"


버려진 유적 어딘가, 누군가가 휘두른 메이스에 의해 이끼 낀 돌 골렘이 머리를 잃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후...여기는 정리 끝났습니다!"

"여기도요!"

"좋아좋아. 다들 수고 많았어! 다들 여기 와서 힐 받으라구!"


그렇게 외치는 것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장년의 남자. 힐러보다는 탱커가 어울릴 것 같은 외모의 그가 묘하게 작아 보이는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는 모습은 제법 언밸런스하게 느껴졌다.


"후...혹시 물 남은 거 있어요? 전 다 마셔서."


메이스를 휘두르던 남자 한 명이 비어버린 생수통을 거꾸로 잡고 흔들며 말했고, 수염 힐러가 껄껄 웃으며 반쯤 들어있는 자신의 생수통을 내밀었다.


"으하하하! 여기 있수다! 앞에서 빠따질하느라 고생했지?"

"뭐 그렇죠. 아저씨도 고생했어요."

"으하하하! 뒤에 숨어서 힐만 쏘는 내가 고생은 무슨!"


아무리 봐도 메이스 청년의 말은 그냥 예의상 한 말인 것 같았고, 그걸 눈치를 챈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염 힐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구구...이거, 여기 던전 몬스터들은 제법 상대하기 편하다는 소리를 듣고 온 건 좋은데...그래도 빡센 건 어쩔 수 없네요."

"확실히 그러네요. 워낙에 느릿느릿한데다가 피격 면적도 넓어서 때려잡기 편하기는 한데 말이죠. 그래도 일단은 돌덩어리들이라 부수는 것도 일이네요 진짜."

"그러게나 말이에요. 검사들이 이 던전을 그렇게나 기피하는 것도 이해가 되네요."


확실치 부드러운 부분이라고는 전혀 없이 전신이 돌덩어리인 골렘의 특성상 벤다는 공격방식은 그리 효과적이라고는 볼 수 없을 듯 했다.


"그래도 수가 적어서 망정이지 이런 것들이 무더기로 몰려온다고 생각하면...끔찍하네요."

"정말로 그렇네. 아무리 느린 놈들이라지만 수로 밀어붙이면 상대하기 버겁겠어."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런데 이 에이리어에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던건데, 저건 대체 뭔가요?"


수염 힐러의 치유를 받으며 숨을 돌리고 있던 권법가 헌터가 위험 테이프로 둘러쳐져 있는 제단 같이 생긴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거 말이야? 함정이지 함정!"

"함정이요?"

"그래. 지금이야 던전의 초입이니 함정 같은 게 많이 보이진 않지만, 앞으로 진행하다보면 저렇게 막혀 있는 게 수두룩 빽빽이야."

"허...함정이라니. 함정이면 뭐, 위에 올라가면 돌덩어리가 굴러온다던가, 가시가 튀어나온다던가 하는 그런 건가요?"


권법가는 지금까지 들어가봤던 던전에서 흔히 보던 함정을 떠올리며 말했지만, 수염 힐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직접 겪어본 건 아닌데, 여기 있는 함정들은 그런 일반적인 함정들과는 조금 다르다더군. 지금까지 흔히 봐왔던 함정들과는 다르게 저주 함정부터 강한 몬스터의 소환진이 깔려있는 함정이나, 그 밖에도 이것저것 함정들이 잔뜩 있다고 하더라고. 몬스터들은 약한데, 함정만큼은 여기보다 훨씬 등급이 높은 던전들과 자웅을 겨룰 정도인지라 한때는 등급이 B급까지 올라갔었다는 소문도 들은 기억이 난단 말이지."

"B, B급이요? B급 던전이라면 레벨 40은 되어야 무난하게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던전 아닌가요? 함정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그렇게나 크다구요?"

"나도 거기까진 잘 몰라. 높으신 분들이 매긴 등급이니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사는거지."


수염 힐러는 그렇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고, 권법가 헌터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좀 살겠네...응?"


그리고 수염 힐러가 건네준 생수통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메이스 청년은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누가 오는데요?"

"어. 그래? 몇 명인데?"

"혼자네요."

"혼자? 아무리 그래도 이 던전은 C급 중에서도 제법 상위의 던전인데 겁대가리가 없구만."


수염 힐러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고, 멀리서 걸어오는 인영을 예의주시하던 메이스 청년이 이어 말했다.


"그, 그런데...아저씨가 말한 그 함정 쪽으로 가는데요?"

"함정 쪽으로? 에이~어쩌다 보니 가던 방향 쪽에 함정이 있는 거겠지. 바보도 아니고 저렇게나 들어가지 말라고 덕지덕지 뭐가 많이도 붙어 있는 곳에 들어가겠어?"


확실히 그 말대로 그 함정이라는 제단에는 둘러쳐져 있는 위험 테이프 말고도 시뻘건 삼각형의 위험 표지판이나, 경고 문구까지 그야말로 초등학생이라도 알 법한 위험 표시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메이스 청년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 테이프를 들추고 들어갔는데요?"

"뭐, 뭐!? 이런 젠장! 안 말리고 뭐했어! 어이! 거기! 멈춰!"


그 말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수염 힐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거기 청년! 멈추라니까! 죽고 싶어 환장했어!?"


그렇게 외치며 허둥지둥 제단을 향해 달려가는 수염 힐러. 하지만 그의 필사적인 만류가 무색하게도, 제단 안으로 들어가버린 남자는 이쪽을 한번 스윽 쳐다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제단 안쪽으로 발을 내딛었고, 이내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사, 사라졌어?"

"아이고...이거 망했구만."


위험 테이프 근처 선 수염 힐러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분하다는 듯이 무릎을 쳤고, 권법가 헌터가 그런 그를 따라와 물었다.


"왜, 왜 망했다는 거에요? 설마 저 함정 발동되면 이 일대가 전부 날아간다던가...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겠냐. 망했다는 건 우리가 아니라 방금 들어간 그 청년 쪽이야."

"그, 그건 다행...은 아니고. 대체 왜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서둘러서 데리고 나오면 그만 아닌가요?"

"그게 안되니까 망했다는 거지. 방금 저 청년이 들어간 함정은 이 던전 안에서 제일 골치 아픈 함정이라고 알려진 전이 함정이라고."

"저, 전이 함정이요?"

"그래. 방금 전에 저 골렘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오면 굉장히 곤란하다는 얘기를 했었지?"

"그, 그렇죠?"

"저 전이 함정에 걸리면, 그 골렘들은 물론이고 그 밖에도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오는 방에 같히는 거라고. 그것도 출구도 없는 방에 말이야."

"세, 세상에."

"쯧. 이거 영 오늘 밤 꿈자리가 사납겠는걸. 아마 자살 지망자였던 모양인데, 에잉. 못 볼 꼴을 봤어. 이미 전이가 되어버린 이상 이쪽에서는 손 쓸 도리가 없으니 우리는 그저 명복이나 빌어 주자고."


수염 힐러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뒤로 돌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이 외쳤다.


"자! 그럼 우리도 출발하자고. 방금 저기 들어간 청년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정신 바짝 차리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힘내죠!"


그렇게 수염 힐러와 메이스 청년, 권법가 헌터는 방금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검은 정장 차림의 청년을 애도하고는 다시 한 번 던전이라는 장소의 무시무시함에 치를 떨며 정신을 다잡고 사냥을 위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함정 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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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초능력자(2) +1 21.05.04 211 6 11쪽
52 초능력자 +1 21.05.03 248 4 10쪽
51 낯선 천장(3) +1 21.04.30 248 4 9쪽
50 낯선 천장(2) +1 21.04.29 234 6 10쪽
49 낯선 천장 21.04.28 270 6 11쪽
48 룸메이트 아저씨들(9) 21.04.27 265 5 9쪽
47 룸메이트 아저씨들(8) 21.04.26 303 6 14쪽
46 룸메이트 아저씨들(7) 21.04.23 306 7 11쪽
45 룸메이트 아저씨들(6) 21.04.22 298 6 10쪽
44 룸메이트 아저씨들(5) 21.04.21 301 7 11쪽
43 룸메이트 아저씨들(4) +1 21.04.20 294 7 9쪽
42 룸메이트 아저씨들(3) +1 21.04.19 317 8 12쪽
41 룸메이트 아저씨들(2) +1 21.04.16 332 6 9쪽
40 룸메이트 아저씨들 21.04.15 356 6 10쪽
39 함정 너머에 있는 것(4) 21.04.14 388 5 10쪽
38 함정 너머에 있는 것(3) 21.04.13 350 7 9쪽
37 함정 너머에 있는 것(2) 21.04.12 388 7 12쪽
36 함정 너머에 있는 것 21.04.09 380 7 10쪽
35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3) 21.04.08 375 6 9쪽
34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2) 21.04.07 377 6 12쪽
»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21.04.06 388 6 12쪽
32 휴식 끝, 폭렙 시작 21.04.05 393 8 12쪽
31 휴식(3) 21.04.02 349 7 12쪽
30 휴식(2) 21.04.01 35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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