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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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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698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5.10 19:44
조회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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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강철의 남자(4)

DUMMY

그야말로 느닷없이 벌어지게 된 술판이었고, 자리도 불편한데다가 풍경도 더 이상 삭막하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는 장소였지만 생각보다 술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 대작 상대가 나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크으...달다 달아! 이게 바로 인생 사는 맛이지!"

"...술이 달다니 별 웃기는 말을 다 듣는군."

"그런 말을 할 거면 좀 웃는 척이라도 해요 아저씨. 그리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술잔을 다시금 쭉 들이켰고, 강철환도 손에 든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잔 받으쇼 아저씨."

"고맙군."


강철환의 잔이 빈 것을 확인한 내가 강철환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고, 강철환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다시금 내가 준 술을 가볍게 넘겼다.


"여전히 잘 마시네 아저씨는."

"그러는 너는 술이 제법 늘었군. 예전엔 술이 비교적 약한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살다보니 술보다 훨씬 쓴 경험을 많이 해서 그런가.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다만, 너에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거지?"

"아...그거 말이죠. 그냥 뭐, 이것저것."

"이것저것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지나치게 큰 일을 당한 것 같던데. 주일이는 대체 뭘 한 거냐? 다른 길드원들은?"


그렇게 말하는 강철환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나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길드에서 나간 뒤에 길드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설마 내가 갑작스럽게 탈퇴한 것 때문에 무슨 문제라도..."

"그런 거 아냐 아저씨. 그야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라기는 했지만...잘못이랄것 까지야."


그렇다. 강철환 역시도 전에는 가디언 길드의 소속. 심지어 나, 그리고 강주일과 함께 창립 멤버 명단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초기 멤버 중의 일인이었다.


"내 일은 그렇다 치고, 난 아저씨의 일이 굉장히 신경쓰이는데 말이야. 갑자기 길드를 나가버리더니 블러드 머니 쪽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놀랐다고."

"..."

"역시...그 딸이라는 애랑 관련된 거지?"


어제 처음으로 알게 된 강철환의 딸인 강지영의 존재. 몇 년 동안 함께하면서도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존재였기에 내가 느끼고 있는 의구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철환은 여전히 말없이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젠장,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아저씨."

"..."

"아 진짜. 뭘 알아야 도와 주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에요 아저씨. 그렇게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뭣 하나 좋아질 게 없다는 건 아저씨도 잘 알고 있잖아요."

"도와...준다고."

"그래요! 우리 그렇게 서먹한 사이 아니잖아요?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네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이고...진짜, 답답해 죽겠네."


나는 답답함에 들고 있던 술잔을 그대로 원샷해버리고는 술기운에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야 지금 내 사정이 보통 사람보다 좀 안쓰러운 처지기는 한데 말이야. 그래도 나 류진이야! 한때는 천재 소리 듣던 헌터라고. 그런 나조차도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그거 진짜로 아저씨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거 맞아요?"

"...그건."

"그러니 한번 들어나 봅시다 예? 설령 큰 도움은 못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백짓장도 받들면 낫다라는 속담도 있잖아."

"...맞들면이다."

"에라이씨 진짜! 그게 그거지! 별 되도않는걸로 태클 걸지 말고!"


나는 가슴을 치며 고구마를 백 개는 먹은 것만 같은 답답함을 표현했고, 강철환은 그런 내 모습이 웃긴지 실소를 흘리고는 자기 술잔에 담긴 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동안 침묵했고, 나는 그런 아저씨가 입을 열 때까지 아저씨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고, 그렇게 아까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강철환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올해 열세살이 된 딸이 있다. 이름은, 남궁민이 말해줬었지. 강지영이라고."

"헤에. 열세살인가...아니 잠깐만, 아저씨 올해로 서른둘이잖아? 근데 열세살짜리 딸이라고? 그거 혹시 속도위..."

"이 얘기, 그만할까?"

"미, 미안미안. 내가 잘못했어. 쓸데없는 거에 태클 안 걸테니 계속 하라구."


그나저나 열세살이면 아직 중학교도 못 들어간 완전히 애라고 부를 만한 나잇대다. 그런 어린애한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엄청나다면 엄청난 아저씨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고민을 앓고 있는 걸까.


"이 나라 사람 중에 안 그런 사람이 몇이냐 있겠냐만은...던전이라는 마굴은, 우리 가정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

"..."


던전이 처음 등장한 날, 나도 그랬지만 이 아저씨도 일행 없이 혼자였다. 그렇다는 말은...


"그날, 3일만에 던전을 탈출한 후에 황급히 애엄마와 지영이를 찾으러 다녔었지만...너무 늦었더군."

"늦었다니, 설마?"

"애엄마는...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영이도...어떻게든 숨은 붙어 있었지만, 위급한 상황이었지."

"그건...유감이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어. 그 당시에는 모든 병원이 포화 상태였지만, 난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건지 어떻게든 지영이를 입원시킬 수 있었기에, 지영이를 살릴 수 있었거든."

"오오. 그건 잘됐네. 그런데..."


거기서 얘기가 끝났으면 이 아저씨가 지금 이러고 있을 이유도 없다.


"그때, 그 당시에는, 우리는 너무 몬스터들에 대한 이해도가 적었었다. 그들이 남기는 상처에 대해서도 말이지."

"상처, 라고."

"...종류는 모르지만, 일종의 독이라고 하더군.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독이라니, 설마?"

"그래. 성공적으로 끝난 줄로만 알았던 지영이의 수술은, 내부의 독소를 그대로 남겨둔 채 봉합만 해버렸기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악화되고 만 거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진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니, 몸 속의 독은 이미 상처를 입었던 장기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그 주변까지 독소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치료할 유일한 수단은...절제 뿐이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럼 절제하면 되는 거잖아."

"그래. 절제까지는 나쁘지 않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상처를 입은 부위의 장기는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중요한 부위였고, 주변 부위까지 퍼져나간 독소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

"허...그런 일이."

"그 결과, 지영이는 주기적으로 장기 이식을 통해 해당 부위를 이식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장기 이식...이란 건, 상상 이상으로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도, 힘들기 짝이 없는 과정이더군."

"..."


장기 이식. 나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다치는 사람은 워낙 많고, 장기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기에 장기 이식이라는 것은 돈이 아무리 썩어넘치게 많더라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받기가 힘든 것이었다. 그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말이지.


"아저씨 설마...블러드 머니 쪽에 붙은 게?"

"..."


대한민국의 어두운 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블러드 머니. 표면상으로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입에조차 담기 힘든 일들을 자행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그 중에는 분명히 불법 장기매매 또한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아저씨! 뭐라고 말 좀 해봐요!"

"...그래.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

"허어...그런, 그런 일이."


내가 알고 있는 강철환이라는 남자는 답답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외골수였다. 길바닥에 쓰레기 하나 버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런 남자가, 불법 장기매매라는 수단에까지 손을 뻗을 줄이야.


'필시 그만큼 간절했다는 뜻이겠지.'


이 아저씨가 불현듯이 길드를 나가버린 날은 나와 강주일 사이에 다툼이 있기 얼마 전이었으니 무려 7년 전의 일. 그때라면 강철환의 딸이 고작 여섯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다.

여섯살 여자아이. 이어지는 수술 그 자체조차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일 정도로 가녀린 존재. 그런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이니, 이 남자가 변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감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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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의 남자(4) +1 21.05.10 209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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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강철의 남자(2) +1 21.05.06 214 4 9쪽
54 강철의 남자 +1 21.05.05 228 5 9쪽
53 초능력자(2) +1 21.05.04 211 6 11쪽
52 초능력자 +1 21.05.03 248 4 10쪽
51 낯선 천장(3) +1 21.04.30 248 4 9쪽
50 낯선 천장(2) +1 21.04.29 234 6 10쪽
49 낯선 천장 21.04.28 270 6 11쪽
48 룸메이트 아저씨들(9) 21.04.27 265 5 9쪽
47 룸메이트 아저씨들(8) 21.04.26 303 6 14쪽
46 룸메이트 아저씨들(7) 21.04.23 307 7 11쪽
45 룸메이트 아저씨들(6) 21.04.22 298 6 10쪽
44 룸메이트 아저씨들(5) 21.04.21 302 7 11쪽
43 룸메이트 아저씨들(4) +1 21.04.20 294 7 9쪽
42 룸메이트 아저씨들(3) +1 21.04.19 317 8 12쪽
41 룸메이트 아저씨들(2) +1 21.04.16 332 6 9쪽
40 룸메이트 아저씨들 21.04.15 356 6 10쪽
39 함정 너머에 있는 것(4) 21.04.14 388 5 10쪽
38 함정 너머에 있는 것(3) 21.04.13 350 7 9쪽
37 함정 너머에 있는 것(2) 21.04.12 388 7 12쪽
36 함정 너머에 있는 것 21.04.09 380 7 10쪽
35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3) 21.04.08 375 6 9쪽
34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2) 21.04.07 378 6 12쪽
33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21.04.06 388 6 12쪽
32 휴식 끝, 폭렙 시작 21.04.05 393 8 12쪽
31 휴식(3) 21.04.02 349 7 12쪽
30 휴식(2) 21.04.01 35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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