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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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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1.02.16 22:06
최근연재일 :
2021.09.03 14:54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33,674
추천수 :
609
글자수 :
560,664

작성
21.04.19 15:17
조회
316
추천
8
글자
12쪽

룸메이트 아저씨들(3)

DUMMY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의자 두개를 붙여놓은 곳 위에 등을 맞댄채로 묶여있는 아저씨들이었다. 어두운 조명 탓에 정확한 상태를 알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눈에 띄는 혈흔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들!"


내가 외쳤지만, 아저씨들은 의식을 잃기라도 한 것인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설마 진짜로 죽은 건 아니겠지. 아니어야만 한다.


"젠장. 조금만 기다려요. 지금 바로..."


나는 바로 아저씨들을 풀어주기 위해 앞으로 한발짝 나섰지만,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가 박수를 치며 걸어나왔다.


"하하하하. 설마 했는데 진짜로 왔군요. 보험 삼아서 인질을 잡아두기는 했지만, 워낙에 신출귀몰하신 분이라고 들어왔는지라 진짜로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걸어나온 것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새파란 애송이 한 명과 그를 호위하듯이 따라붙은 깍두기같은 인상의 30대 초중반의 남자 한 명. 한 명은 아는 얼굴이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전혀 본 기억이 없다.


"너 뭐냐? 블러드 머니에서 너같은 놈도 일수꾼으로 쓰냐?"


나는 전혀 기억에 없는 새파란 애송이 쪽을 향해 표정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졌고, 애송이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채 대답했다.


"일수꾼이라뇨. 그런 것들이랑 저를 비교하면 섭하죠."

"그러냐. 생긴 건 딱 양아치같이 생겨서 완전히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야, 양아치...하, 하하하. 농담을 참 잘하시는군요? 듣던대로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네요."

"니들이랑 농담 따먹기 하던 기억은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서, 넌 뭔데? 블러드 머니 놈들고 그리 친한 건 아니지만 면식 정도는 알고 있는데, 너 같은 놈은 도무지 기억에 없단 말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옆에 저놈이 붙어 있는걸 보면 제법 고위급 간부인 건 분명해 보이는데 말이지.


"하하하하. 이거 섭섭한걸요? 그래도 한때는 팬이랍시고 당신을 졸졸 따라다녔던 사람인데 말이죠. 얼굴조차 기억해주지 못하다니 조금은 섭섭합니다? 스틱스의 강물을 마시면서 힘뿐만이 아닌 기억도 같이 날아간 겁니까?"


양아치라는 말에 빈정이라도 상했는지 말투가 조금 띠꺼워진 애송이.


"영웅 노릇은 관둔지 꽤 돼서 말이야. 유감이지만 팬들의 성원에는 보답하기 힘든 입장이란 말이지. 근데 그 이유엔 니들 지분도 꽤 큰 거 알고 있지?"

"하하하하. 하지만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는게 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빌린 건 아니지만 말이야. 어쨌든 내 명의로 빌렸으니 내가 빌린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넌 누구냐? 애초에 팬 같은 거에 관심이 없기는 했지만 진짜로 기억에 없는 놈인데."

"음...뭐, 정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니 말해드리죠. 제 이름은 남궁민. 현재 블러드 머니의 사장인 남궁혁의 아들이자, 부족한 몸이지만 블러드 머니의 후계자 되는 몸입니다."

"...후계자?"


남궁혁 그 미친 놈한테 아들이 있었나? 그런데...


"진짜 아들 맞아? 하나도 안 닮았는데."


나도 남궁혁을 자주 마주친 건 아니지만, 남궁혁은 누구라도 한 번 만나면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개성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궁민은 뭐랄까, 좀 개성이 옅은데.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소리는 자주 듣습니다. 이제와서 새삼 신경쓰지는 않아요."


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인상을 팍 찡그리고 꿍얼거리는 것이 신경이 굉장히 쓰인다는 티가 풀풀 난다. 생각하는 게 바로 표정에 드러나는 타입인가보군. 알기 쉬워서 좋은걸.

그리고 이 와중에도 아닌 척 슬금슬금 남궁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던 나는 드디어 남궁민을 내 검의 사정거리 안에 넣을 수 있었고, 이 기회를 놓칠새라 검을 손에 쥐었지만.


"..."

"...쯧."


이내 포기하고 검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방심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궁민은 내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남궁민의 옆에 선 남자는 달랐다.

내가 폐공장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줄곧 나만을 노려보고 있는 검은 눈동자. 놈의 기세에는 방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놈의 시선은 마치 단단한 사슬이 되어 내 몸을 직접적으로 옥죄고 있는 것만 같은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그런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놈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척 자체는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옅었는데 딴에는 숨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즉에 내게 위치가 파악당한 따까리들 열댓명과 여전히 뭐라고 꿍얼거리고 있는 남궁민은 물론이고, 하물며 기절해있는 아저씨들보다 인기척이 적은 놈은 직접 보고 있는데도 한순간이라도 눈을 뗐다가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여전히 괴물 같은 새끼군."

"..."


놈의 실력이라면 내가 중얼거린 말 정도는 충분히 들렸을 테지만 반응은 전혀 없었다.

놈의 이름은 강철환. 블러드 머니의 행동대장과도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남자이자, 단신으로 현재 블러드 머니가 가진 무력의 대부분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남자였다.


"음. 이거 말하다보니 사족이 너무 길어진 것 같군요. 슬슬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할까요."


혼자서 멋대로 떠들어대던 남궁민은 내가 대답 없이 강철환과 눈싸움을 하고 있자 혼자 머쓱해졌는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주제를 돌렸다.


"그래. 대화를 한번 해 보자고. 용건이 있으면 나를 직접 찾아오면 될 것이지 굳이 아저씨들을 납치한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지."


방심투성이인 남궁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아저씨들만을 채갈 계획이 무산되었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너무 감쪽같이 숨어 계시니 저희로서는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었거든요. 솔직히 오늘 이분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일도 순전히 우연에 가까웠습니다."

"우연?"

"네에. 그야말로 기가 막힌 우연이죠. 그저 일이 조금 있어서 슬럼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분들이 류진씨의 얘기를 하는 걸 들어버렸지 뭡니까. 하하. 이것 참."


허. 그냥 한 번 해 본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우연히 잡히게 된 건가. 아니, 애초에 나 때문에 들뜨지만 않았어도 아저씨들이 외출할 일은 없었을 거고, 잡히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뒤늦은 자책은 할 필요 없으니, 지금은 현재 닥친 상황에만 집중하자.


"그래서 죄도 없는 아저씨들을 그 자리에서 채가서 저 꼴로 만들어놨다 이거냐? 그래도 되는거야?"

"하하하. 채가다니요. 모셔오는 과정에서 약간의 무력 행사가 동원된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정중하게 모셔오려고 일단 노력은 했습니다만, 워낙에 열심히 도망을 치려고 하시는지라."

"..."


빙글거리는 놈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넣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지금은, 지금은 안된다. 우선은 아저씨들의 상태를 파악하자.


"아저씨들한테 뭔 짓을 한 거냐?"

"짓이라고 부를 만한 일은 안 했습니다? 그냥 류진씨를 잘 아는 것 같아서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만, 필사적으로 입을 다무려고 하시더군요."

"..."


평소에 으리으리 거리는 아저씨들이지만 말로만 그러는 줄 알았다. 위기 상황에서는 잽싸게 내 이름을 팔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몸도 허약해보이는 일반인들에게 고문 같은 걸 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솔직해지는 약을 조금."

"솔직해지는...약이라고? 너 이새끼 설마...!"


나는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섰고, 그 순간 강철환 역시도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남궁민의 앞을 막아섰다.


"응? 너 뭔데? 왜 갑자기 얘기하는데 끼어들어?"

"...더 이상 거리를 내 주는 것은 위험해 보였는지라. 실례했습니다."

"뭐? 거리? 하하하하. 너 지금 뭔 소리를 하는거야? 저놈은 과거의 그 검성이 아니야. 지금은 그저 무능력한 한 놈의 거지에 불과하다고. 그런 놈한테 뭘 쫄고 있어?"


남궁민은 그렇게 말하며 강철환을 밀어내려 했지만 강철환은 요지부동이었고, 남궁민은 이내 포기하는 듯 했다.

그나저나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날 발견한 게 순전히 우연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 했다.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조사가 되었다면 내가 헌터로서의 힘을 되찾았다는 것 정도는 바로 파악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지금의 내 무력으로 아저씨들을 무사히 데리고 이 자리를 뜰 수 있을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지만, 어떻게 해도 무리라는 결론만이 도출될 뿐이었다.

남궁민과 떨거지들을 처리하는 것은 검심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문제는 바로 저 강철환이었다. 지금 레벨이 몇인지는 모르지만, 힘을 잃기 전의 나라고 해도 순식간에 제압할 자신은 없는 아저씨였는데 그 뒤로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최근 힘을 많이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직업조차 되찾지 못한 상태였기에 아무리 검심의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 아저씨를 무사히 따돌리고 도망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저 애새끼처럼 내가 힘을 잃었다고 생각해서 방심이라도 해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일 텐데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나를 상대로도 방심이라고는 전혀 하지를 않고 있으니.


"돌겠네 진짜...!"


상황은 정말로 좋지 않다. 얘기들 듣자하니 저 미친 애새끼가 아저씨들에게 자백제를 투여한 모양인데, 마석의 힘에 의해 개량된 자백제는 헌터들에게도 효과가 있을 만큼 성능이 우수한 대신에 그만큼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 독한 자백제를 헌터도 아니고 일반인인 아저씨들에게 투여했다면 한시라도 빨리 응급 처치를 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뭘 하면 되지?"


천천히 정보를 수집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할 생각이었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낭비할 시간은 없다. 나는 빠르게 정곡을 짚어 물었고, 애새끼는 여전히 빙글거리는 재수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하.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요. 인질을 잡길 잘했어요."

"더이상 네 수다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어. 빨리 본론."

"하. 지금 누가 우위에 서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요. 뭐, 좋습니다. 과거에 팬이었던 만큼 어느 정도의 무례는 이해를 해 드리죠."


별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천천히 말을 꺼내는 남궁민.


"저희가 원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지금 당장 류진씨가 돈을 갚을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갚아야죠."

"..."

"하하하. 요즘 같은 시대에 헌터도 아니고 일반인의 몸으로 돈 될 만한 일이 뭐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검성 정도의 인지도라면, 어떻게든 뽑아먹을 거리가 많이 있거든요. 생각보다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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