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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첫 번째 -자객(조선, 168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1.10 16:49
최근연재일 :
2020.11.14 00:38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35,369
추천수 :
306
글자수 :
248,789

작성
20.11.13 23:22
조회
295
추천
1
글자
8쪽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0

DUMMY

-16-


그날 밤,

김중선은 마성을 데리고

임복정의 신당으로 갔다.


오랜만에 찾은 그곳엔

김중선의 급한 전갈을 받은 안강수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임복정은 김중선의 옆에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마성의 얼굴을 보고 한순간 흠칫했지만,


안강수 앞에선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 의원,

도대체 무슨 일이시기에

이리도 급하게 만나자고

전갈을 띄우셨소?


그리고 저 사람은 또 누구요?”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이 너무나 궁금했는지

안강수가 서둘러 물었다.


김중선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살주계(殺主契)를

소집해 주실 수 있겠소?”


살주계라니,

그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청방의 접주인 안강수가 모를 리 없었다.


살주계란 이름 그대로

검계 중에서도

‘주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아주 특수한 검계였다.


살주계원들은

화적 떼가 기승을 부리는 북방이나

왜구가 출몰하는 남도의 해안가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거칠고 사나운 사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살주계는

험지에서 목숨을 건 실전을 몇 번씩 겪은

강인한 이들을 중심으로,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담대한 자들을 섞어 조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강수가 소속된

지리산의 ‘추설’과

금강산의 ‘목단설’ 같은,

조선 팔도에서 가장 큰 군도가 조직한

살주계는


족보도 없는

지역의 몇몇 검계가 연합하여

‘큰 공사가 있을 때마다’ 소집하는

일반적인 살주계와는

‘계원의 질’ 자체가 달랐다.


‘추설’과 ‘목단설’의 살주계는

훈련도감(訓鍊都監)56)이나

금군(禁軍)57) 출신의

고강한 무예를 지닌 정예무사 몇몇이,


세 개 정도로 나뉜

‘살주계’의 조장을 분담하여 맡고 있었다.


이들이 지닌 경력이나 실력

또는 신분으로만 보면

검계나 군도의 무리에

속할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으나,


누구에게나 힘든 사정이 있듯이

그들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정쟁에 휘말려 파직된 사람이거나,

비리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군문(軍門)에서 쫓겨난

‘비운의 무사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평상시엔 신분을 감추고

팔도를 유람하며

각지의 계원들 중에서

무재(武才)가 있는 자들을 선발하였고,


선발된 자들은

혹독한 훈련과 조장의 개별 지도를 거쳐

일당백의 살수로 키워졌다.


이들은 조장에게 전수받는

기본적인 전투기술 외에

특기 하나씩을 집중적으로 단련하여,


유사시 역할 분담이 명확히 이루어진

효율적인 집단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훈련받았다.


추설과 목단설은

이렇게 조직적으로 양성된

‘살수’들을 중심으로,


‘사람을 죽이는 데

아주 탁월한 기술을 가진 자들’을

일부 섞어서


세 개의 ‘조(組)’를 만들어

각 조당 열 명 이하의

소수정예로 운용하였다.


여기서 얘기하는

살인의 탁월한 기술이란,


활을 아주 잘 쏜다거나

암기(暗器)를 잘 다룬다거나,

조총을 잘 쏘는

원거리 저격의 명수라거나,


그물이나 사슬 종류의

특이한 무기들을 잘 쓴다거나,

체술(體術)이나 골법(骨法)에

능통한 자들을 얘기하는 것으로,


개중에는 김중선처럼

독을 잘 다루는 자들도 있었고,

유명한 석전꾼58)이나

화약을 다루던

화포장(火砲匠)59) 출신도 있었다.


이들은 평상시엔

조장의 지휘에 따라 훈련에 매진하다가

이삼 년에 한 번 정도

‘추설’이나 ‘목단설’이

단독 또는 연합으로 벌이는

‘큰 장(場)’에 투입되어

실전 경험을 쌓은,


살인과 전투만 담당하는

특화된 자들이었다.


“김 의원,

지금 김 의원께서 하신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잘 알고서 하시는 말씀이겠지요?”


안강수가

당황한 기색을 간신히 억누르며

힘겹게 말했다.


“잘 알고 있소.


잘 알고 있으니

이렇게 따로 전갈까지 띄워

형방나리를 급히 뵙자고 한 것이오.


살주계를 소집해 일을 벌이는 대가는

평상시 ‘장’보다

두 배 높게 지불할 수 있소.


어떻소?

일주일 내로 거사를 치를 수 있겠소?”


“······.”


안강수는

즉답을 피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살주계의 소집은

웬만해선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일단 자기의 상관인

청방의 방주와 논의를 해야만 했고,

일의 내용에 따라

지리산의 노사장까지

상의를 거쳐야 할지도 모를

아주 큰일이었다.


하지만 평상시 ‘장’보다

두 배의 대가를 낼 수 있다는

김중선의 달콤한 제의는


욕심 많은 안강수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하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먼저 어디의 누구를 죽일 것인지

상세히 알려 주시오.


그걸 먼저 듣고,

내 선에서 판단한 연후에

방주를 만나러 가겠소.


다만 일의 특성상

방주를 만나러 가려면

의뢰 보증금으로 선금이 필요한데,


평상시 공사비의 두 배를 낸다면

은자로 족히

일만 냥은 내셔야 될 거고······


그러면 선금이······.”


안강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중선이 마성에게 눈짓을 하자,

마성은 은자가 가득 담긴 상자를 열어

그의 눈앞에 보여 주며 말했다.


“밖에 다섯 상자 더 있소.”


눈앞에서 은자를 본 이상,

안강수가 대금에 대해

더 말을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안강수는 일의 내용에 대해 물었다.


“누구를 죽여야 하오?”


“대답을 듣기 전에 꼭 약속해 주시오.

내 대답을 듣고

혹시라도 일을 물리지 않겠다고.”


“김 의원,

아무리 내가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버는 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상도의도 없는

가벼운 놈은 아닙니다.


아니면

김 의원에게는

우리 청방이 그리도 우습게 보이시오?”


“······만복상회 최희수요.”













주석


56) 훈련도감(訓鍊都監) :

조선 시대에

수도의 수비를 맡아 보던 군영이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오위제(五衛制)가 붕괴되고

새로운 군사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1593년(선조 26년)

류성룡(柳成龍)의 주장과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의 권유에 따라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낙상지의 지휘 아래

절강병으로부터

창·검·낭선(筤筅) 등의

기술을 배우게 하다가

뒤에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이 군대는 병사를

포수(砲手)·사수(射手)·살수(殺手)의

삼수병(三手兵)으로 분류하여

전문 기술을 가진

특수부대를 형성한 데에

그 특색이 있다.



57) 금군(禁軍) :

고려·조선 시대에 설치되었던

국왕의 친위군(親衛軍)이다.


왕과 가장 가까이에서

입직(入直)·시립(侍立)·

호종(扈從)을 맡았으므로

선발할 때 탁월한 무재는 물론

왕의 신임이 중요하였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양반층 유음자손(有蔭子孫)의

업무자(業武者)가 이에 속했다.


1409년에

왕의 신변 보호·

왕궁 호위 및 친병 양성 등을 맡은

기병(騎兵) 중심의 친위군으로

겸사복(兼司僕)이 설치되었다.


겸사복에는

무재뿐만 아니라

용모·학식 등을 갖춘 자로서

양반·서얼·양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선발되었다.


정원은 50인으로

특히 북계인(北界人)이 우대되었다.


또, 1492년(성종 23년)에는

궁성 수비를 맡은

정원 50인의

우림위(羽林衛)가 설치되어


금군은

내금위·겸사복·우림위 등

삼청(三廳)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이들은 금군삼청

또는 내삼청(內三廳)이라 불리며

왕의 친병으로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다.



58) 석전꾼 :

석전(石戰)을 하는

돌팔매의 전문가로 보면 된다.


59) 화포장(火砲匠) :

화포(火砲)를 제조하는 장인으로,

1445년(세종 27년)에

화약장(火藥匠)을

화포장(火砲匠)으로 개칭하고,

화포만 제조하게 하였다.


유명한 화포장으로는

『징비록』에도 등장하는

이장손(李長孫)이 있다.


이장손은

선조 때에 군기시에 소속된

화포장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격진천뢰를 제작하여

왜적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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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後日談 이장(移葬) 20.11.14 435 3 3쪽
9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6 20.11.14 336 2 1쪽
9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5 20.11.14 294 2 3쪽
9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4 20.11.14 290 2 6쪽
9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3 20.11.14 300 2 9쪽
9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2 20.11.13 306 2 3쪽
9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1 20.11.13 295 1 6쪽
»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0 20.11.13 296 1 8쪽
88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9 20.11.13 281 2 2쪽
87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8 20.11.13 276 2 7쪽
86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7 20.11.13 286 2 4쪽
8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6 20.11.13 305 2 13쪽
8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5 20.11.13 283 2 8쪽
8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4 20.11.13 331 1 8쪽
8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3 20.11.13 328 2 6쪽
8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2 20.11.13 289 2 6쪽
8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1 20.11.13 280 2 3쪽
79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0 20.11.13 286 2 7쪽
78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9 20.11.13 346 2 5쪽
77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8 20.11.13 296 2 5쪽
76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7 20.11.13 306 2 9쪽
7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6 20.11.13 284 2 3쪽
7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5 20.11.13 285 2 5쪽
7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4 20.11.13 284 2 6쪽
7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3 20.11.13 323 3 4쪽
7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 20.11.13 310 2 6쪽
7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 20.11.13 293 3 2쪽
69 第 五 章 무사(武士) 마양 - 11 20.11.13 308 2 4쪽
68 第 五 章 무사(武士) 마양 - 10 20.11.13 31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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