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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첫 번째 -자객(조선, 168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1.10 16:49
최근연재일 :
2020.11.14 00:38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35,363
추천수 :
306
글자수 :
248,789

작성
20.11.13 19:14
조회
305
추천
2
글자
9쪽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7

DUMMY

-5-


마양의 손을 묻고 온 날부터 사흘 동안

김중선은 취해 쓰러질 때까지

혼자 술만 마시며 지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하고 무거운 슬픔이

김중선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술로 사흘을 보내고,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겉모습만이라도 차분하고 담백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대략 열흘 정도 걸렸다.


그런 김중선을 보면서,

그의 어머니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들의 답답한 심정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아침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재첩국을 끓여

해장거리로 내놓고,

평상시처럼 장터로 생선을 팔러 나갔다.


일상으로 돌아온 김중선은

어떻게든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이미 한 번 거센 파도가 밀어닥쳐

마구 흔들려 버린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몇몇 지인들이 한잔하자고 권해도

그는 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 혼자 술을 마셨다.


그의 마음을 제일 크게 괴롭힌 것은,

난도질당하던 벗의 처참한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김중선의 잘못도 아니고

미안해할 일도

괴로워할 일도 아니었다.


마양을 만나기 전의 김중선이라면

기억에 남길 일도

마음에 남길 일도 아닌,

그저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양과 만나

교분을 쌓기 시작하면서부터

김중선의 마음은

타인의 입장에 공감하고,

타인의 사정을 배려하려는 쪽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고,


‘저 사람은 지금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

하는 마음을

가질 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분명 변하기 어려우나,

어떤 계기가 됐든 한번 변해 버리면

결코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그는 마양의 죽음 이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이제 그의 여생에서 의무는 있으되

즐거움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한번 죽어 버린 친구는

절대 돌아올 수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가족뿐이다.


얼른 평정심을 되찾아야 한다.’


이렇게 그가 혼자 마시는 술은

항상 친구에 대한 자책감으로 시작해서

가족에 대한 의무감을 고무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그해 겨울,

온 고을에 돌림병이 돌았다.


한번 전염되면

고열과 기침을 동반한 설사가

열흘 가까이 지속되다가

체력이 약한 어린아이와 노인들부터

피를 토하고 죽어 가는,

실로 두려운 재앙이었다.


여기저기서 요청이 오는 탓에

김중선은 하루에도 열 번이 넘게

이곳저곳 왕진을 다니는

바쁜 날이 계속되었다.


김중선은

딱히 잘 듣는 약재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의원으로서의 절망감을

깊이 맛보고 있었다.


그날도 옆 고을까지 왕진을 다녀와

피곤이 극에 달했던 탓에

저녁도 먹지 않고

일찍 방에 드러누운 김중선은,


부뚜막에서

어머니가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왕진을 다니면서 숱하게 들었던

그 익숙하고 섬뜩한 소리에

놀란 김중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얼른 부뚜막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의 당황한 모습을 보자,

얼른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를 죽이려 했으나

한번 터져 나오기 시작한 기침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김중선은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고,

신중하게 어머니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어머니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이미 폐가 많이 상해 있을 정도로

병이 깊게 진행되어 있었다.


김중선은

자신의 유일한 가족에게까지 밀어닥친

끔찍한 재앙에 절망하여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유일한 벗을 잃은 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았건만,

어찌 삶은 이리도 잔인한 것인가······.


김중선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했고,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그날 밤부터 김중선은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않고

어머니의 병구완에 최선을 다했지만,


어머니의 병은

김중선의 정성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타개할 수 없는

이 안타까운 상황에 자책하고 절망하며

서서히 망가져 갔다.


열흘 후,

어머니는 아침부터 심한 기침을 하다가

결국 입으로 피를 쏟았다.


그 모습을 본 김중선은

이제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힘이 떨어지자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아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 죽으면, 장독대 밑을 파 봐.

꼭,

잊어버리지 말고······.”


유언을 말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숨이 너무 가빴는지,

어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다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 숨이 끊어지면······

절대로 땅에 묻지 말고,

불에 태워 바다에다가 뿌려주렴······.


천한 어미 때문에,

귀하고 잘난 내 아들,

아무 잘못도 없이

평생 동안 발목이 잡혀······


뜻도 못 펴고

가정조차 이루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용서해 다오.”


어머니는 힘겹게 말을 이으며

어렵사리 손을 들어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김중선의 두 눈에서

그동안 꾹 참았던

서러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식의 앞길을 막은 이 죄 많은 몸을,

뼈 한 조각이라도

세상에 남겨 두고 싶지 않구나······.


꼭······ 꼭,

흔적도 없이 불에 태워

바다에 뿌려 다오······.”


“······.”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울면서,

얼굴을 쓰다듬는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알았다며 고개만 끄덕이는 아들을 보자,

어머니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서럽게 울고 있는 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불쌍한 내 새끼······


나까지 죽으면,

기댈 곳도 하나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꼬······.


힘들어서 어쩌나······

외로워서 어쩌나······


가여운 내 새끼······.”


마지막 회한을 내뱉은 어머니의 몸에서

모든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들의 품에서 그렇게,

그녀는 숨을 거뒀다.




발인 전날 밤,

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하다 문득

그녀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 김중선은

뒷마당의 장독대 밑을 파 보았다.


장독대 밑에선

그의 어미가

십 년 동안 장터에서 생선을 팔며

악착같이 모은 돈이

조그만 단지에 담겨 묻혀 있었다.


‘연세도 있으시고 의원 일도 잘되니

이제 그만두시라’는 아들의 만류에도


‘놀면 병 생겨’라고 짧게 답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매일 광주리를 이고

생선을 팔러 나가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애잔하게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던,

거칠었던 어머니 손의 촉감도

다시금 떠올랐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격한 슬픔에

심신이 무너져 버린 김중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흐느꼈다.


김중선의 떨리는 등을

환한 달빛만이 슬프게 비추었다.




장터의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고 나서,

김중선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가까운 절의 주지에게 부탁해

그녀의 시신을 화장했다.


어머니의 육신이

불에 타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의 눈에서는

신기하게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어머니의 한 많은 육십 년 인생은

작은 상자 하나에 담겼다.


김중선은 주지에게 사례를 하고,

가장 가까운 바닷가까지

십여 리를 걸었다.


유일한 피붙이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무서운 고립감은


그의 육신을 위축되게 만들었고,

어머니와의 수많은 추억들이 떠올라

그의 마음을 한없이 괴롭혔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는 닥쳐올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힘겹게 먼 길을 걸어갔다.


한겨울의 적막한 바닷가에 도착한 그는

재로 변한 어머니의 유골을

물에 흘려보냈다.


평생 ‘남의 재산’으로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어미의 삶이


저승에서라도 자유롭게 해류를 타고

온 세상 구석구석을 구경하기를 바라며

마지막 한 줌의 재를 뿌리던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굵은 끈 하나가

툭하고 끊어졌다.


그는

자신의 여생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핏줄의 의무’마저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막막한 삶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


자신을 옭아맨 것이

이제 이 세상에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


그 무섭도록 막막한 헛헛함은

그의 마음을 순식간에 잠식해 들어갔고,


김중선의 눈에서는

그제야 굵은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바닷가의 노을이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는

주위의 모든 것이 암흑으로 물들 때까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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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後日談 이장(移葬) 20.11.14 435 3 3쪽
9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6 20.11.14 336 2 1쪽
9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5 20.11.14 294 2 3쪽
9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4 20.11.14 290 2 6쪽
9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3 20.11.14 300 2 9쪽
9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2 20.11.13 306 2 3쪽
9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1 20.11.13 295 1 6쪽
89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0 20.11.13 295 1 8쪽
88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9 20.11.13 281 2 2쪽
87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8 20.11.13 276 2 7쪽
86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7 20.11.13 285 2 4쪽
8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6 20.11.13 305 2 13쪽
8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5 20.11.13 283 2 8쪽
8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4 20.11.13 331 1 8쪽
8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3 20.11.13 328 2 6쪽
8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2 20.11.13 289 2 6쪽
8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1 20.11.13 279 2 3쪽
79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0 20.11.13 286 2 7쪽
78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9 20.11.13 346 2 5쪽
77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8 20.11.13 295 2 5쪽
»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7 20.11.13 306 2 9쪽
7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6 20.11.13 283 2 3쪽
7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5 20.11.13 285 2 5쪽
7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4 20.11.13 284 2 6쪽
7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3 20.11.13 323 3 4쪽
7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 20.11.13 309 2 6쪽
7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 20.11.13 293 3 2쪽
69 第 五 章 무사(武士) 마양 - 11 20.11.13 308 2 4쪽
68 第 五 章 무사(武士) 마양 - 10 20.11.13 31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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