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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첫 번째 -자객(조선, 1680)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완결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1.10 16:49
최근연재일 :
2020.11.14 00:38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35,361
추천수 :
306
글자수 :
248,789

작성
20.11.13 20:47
조회
330
추천
1
글자
8쪽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4

DUMMY

아비가 그의 앞으로 내민 것은

놀랍게도 본가가 소유한 전답의 반을

김중선에게 넘긴다는 유언장과,

그 유언이 이미 적용된 토지문기였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얼떨떨한 김중선의 귀에

아비의 말이 이어졌다.


“관과 종가에는 이미 손을 써 뒀다.


넌 이제부터 나 대신

이 집의 가산을 관리할 사람이다.


장남이던 중곤이가 요절한 후로

비록 지금은

가세가 많이 기울었을지 몰라도,


넌 자랑스러운 핏줄을 타고난

이 명문가의 사람이다.


다소 늦긴 했지만

성혼도 해서 자식도 낳고,

다시 이 집안을······.”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김중선이 자신의 말을 자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김철국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결국 숨겨진 이유를 말했다.


“얼마 전에 종가에 부탁해서

양자를 하나 들였다.


나랑은 사촌이 되고

너랑은 오촌 당숙이 되는

용인의 친척에게

늦둥이 막내아들이 있다고 하더구나.


내 직접 그 아이를 만나 보니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눈빛부터 아주 총기가 넘치기에

서둘러 일을 진행했다.


어차피 그 집엔

장성한 아들이 이미 둘이나 있어

일이 아주 쉽게 되었고.


······작년에

파주에 돌림병이 크게 돌았을 때

아내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처가와의 관계도 끊어진 지금,

나마저 눈을 감으면

이제 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죽고 나서

가문의 대를 이을 그 아이의 이름은

중명이다, 김중명.

올해로 열한 살이 되었지.


그러니 내 마지막 부탁이다.


부디 너의 그 좋은 재주를 살려

아직 어린 중명이를 지켜 줄 수 없겠느냐?


중호와 함께 이곳 파주에서

중명이를 도우며 살아가기엔

너에게 넘긴 가산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부디 그 아이를 잘 보좌해서

과거도 치르게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아비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김중선이 단호하게 물었다.


“어머니? 어머니라니?

혹시 널 낳은 막심이를 말하는 것이냐?

그 아이가 죽었느냐?”


“제 어머니가 그분 말고 또 계신지요?”


“어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비록 비천한 계집종의 몸을 빌려

태어났어도


넌 내 피를 이은 내 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부터

중명이가 장성할 때까지

이 집의 가산을 관리할 사람이니라.


이 문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


막심이가 죽었다니 차라리 잘되었다.


그러잖아도 그때

홧김에 팔아 버리는 바람에

내 손으로 면천을 시키질 못해,

앞으로 너나 중명이한테

혹시라도 오점이 될까 봐

영 찝찝했거늘.


본시 이 일이 완벽하려면

원래는 막심이까지

속량(贖良)54)을 시켜서

양인으로 만들었어야 되는데······.”


아비의 입에서 흘러나온,

어머니에 관한 무심하고 냉소적인 말들은

김중선의 가슴을 후벼 파서

결국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김중선은 격앙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제 어머니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직 돌아가신 그분뿐이십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말씀 길게 하실 것 없습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뵐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김중선의 바짓가랑이를

그의 아비가 붙잡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에 안 될 일인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각오하고 있었어.


이렇게 가면 절대로 안 된다.

이것도 얼른 챙기고,

이제 어디가지 말고 여기에 머물러라.


네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아주 많아.

내가 다 잘못했으니 다 용서하고,

제발 여기서······.”


꾹 참고 넘어가려 했던 김중선의 분노가

드디어 제대로 폭발했다.


“당신께선······ 참으로 이기적인 분이시오.

제가 보기엔 지금 당장 숨이 끊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낯빛이오만,


어찌 그리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체면이니, 가문이니, 핏줄이니,

그런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여

이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시오?


그런 의미도 없는 양반 놀음은

당신이나 계속하시오.

난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소.


지금에야 말하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로 미워하고

제일로 부끄러워하는 것이 뭔지 아시오?


바로 당신이

내 어머니의 몸을 통해

나에게 물려준 당신의 피요.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에 흐르는

당신의 이 더럽고 추악한 피를

싹 빼 버리고

다른 사람 것으로

통째 다 바꿔 버리고 싶소.


그러니 이제 그런 말도 안 되는

허튼 짓은 그만두시오.


그 연세까지 그러고 사셨으면,

이제 그만 사람이 되실 때도 되지 않았소?

남에게 부끄럽지도 않소?”


김중선의 귀기 서린 꾸지람에

그의 아비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잡았던 손을 놓고 앞으로 엎어지며

급작스러운 탈진의 증세를 보였다.


김중선은 아비의 위급한 모습을 보고도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날 밤,

마을 외곽에 있는

김중호의 집에 머물고 있던

김중선에게

아비의 부고(訃告)가 날아왔다.


김철국은 죽기 전에 사람을 시켜

유언장과 전답 문기를 전하며

다시 한 번 중선을 불렀지만,


그는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망자인 김철국에게

더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새롭게 가문을 이을 적자로 입양된

어린 소년 김중명이

이질에 심하게 걸려

용인의 집에서 사경을 헤매는 중이어서

상주를 맡을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종가의 도움을 받아 예법에 맞추어

그럭저럭 어찌 치르긴 했으나,

종2품 함경도 관찰사까지 지냈던

지체 높은 양반 김철국의 장례는

기이하게도

결국 상주가 없이 치러지게 되었다.


아비의 발인 전날 밤,

김중선은 자신이 평생을 통해

그토록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를

아비에게 받은 유언장과 전답 문기들을

모두 불에 태워 버렸다.


옛날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김중선에겐

아무 의미도 소용도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주석


54) 속량(贖良) :

돈이나 곡식을 내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거나

국가 또는 주인에게 공을 세워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는 제도로,


노비주의 처지에서는

방량(放良)이라고 불렀다.


조선 전기까지는

노비가 신분 해방되는 길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

특히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으면서

신분 해방의 길도 크게 확대되어 갔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는 노비들이 허다하였고,


그러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제도화한 것이 속량이었다.


당시 속량의 방법을 보면

상전(上典)에게

속가(贖價)를 지불하고

속량되는 경우,


부모가

노비 신분인 자손의 속량을 위하여

속가를 바치는 경우,


자식이 노비 신분인 부모를 위하여

속가를 지불하는 경우,


노비가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봉사한 공으로

방량되는 경우,


전공(戰功)으로 방량되는 경우,


노비가 자신을 대신할

노비(代奴婢)를 들이고

신역(身役)에서 벗어나는 경우

등이 있었다.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에 따라

경제력이 풍부한 노비가 많아

당시 속량의 경우

납전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이 밖에도

훈련도감이나 속오군과 같은

군영에 들어가

면천의 기회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속량의 발달은

봉건적 신분제의 붕괴를 뜻하는 것으로,

신분 해방의 길을 빠른 속도로 넓혀 가

이후 노비제 폐지에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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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後日談 이장(移葬) 20.11.14 435 3 3쪽
9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6 20.11.14 336 2 1쪽
9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5 20.11.14 294 2 3쪽
9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4 20.11.14 290 2 6쪽
9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3 20.11.14 300 2 9쪽
9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2 20.11.13 306 2 3쪽
9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1 20.11.13 295 1 6쪽
89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0 20.11.13 295 1 8쪽
88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9 20.11.13 281 2 2쪽
87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8 20.11.13 276 2 7쪽
86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7 20.11.13 285 2 4쪽
8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6 20.11.13 305 2 13쪽
8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5 20.11.13 283 2 8쪽
»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4 20.11.13 331 1 8쪽
8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3 20.11.13 328 2 6쪽
8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2 20.11.13 289 2 6쪽
8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1 20.11.13 279 2 3쪽
79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0 20.11.13 286 2 7쪽
78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9 20.11.13 346 2 5쪽
77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8 20.11.13 295 2 5쪽
76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7 20.11.13 305 2 9쪽
75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6 20.11.13 283 2 3쪽
74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5 20.11.13 285 2 5쪽
73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4 20.11.13 284 2 6쪽
72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3 20.11.13 323 3 4쪽
71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2 20.11.13 309 2 6쪽
70 第 六 章 백아절현(伯牙絶絃) - 1 20.11.13 293 3 2쪽
69 第 五 章 무사(武士) 마양 - 11 20.11.13 308 2 4쪽
68 第 五 章 무사(武士) 마양 - 10 20.11.13 31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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