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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스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크리파 - Apocrypha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지나스
작품등록일 :
2020.03.23 22:18
최근연재일 :
2020.05.16 23:0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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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0,881

작성
20.05.1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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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 5-11. 됐니, 명탐정?

DUMMY

11


이젠 통신이 되지 않고 잡음만 작게 들려왔다. 지희는 고글을 몇 번 두드려보고 완전히 통신이 막힌 것을 확인한 다음 앞에 있는 커다란 문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의 구식 철문과는 달리 이번에는 손을 대서 감지하는 터치패드가 문 옆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통신이 없어도 이 문 뒤에 초공간엔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문 뒤에서 전해지는 기운이 컸다.


지희는 문 앞에 서서 고글을 벗고 지금까지 꺼내지 않은 백지카드 두 장을 꺼내들었다. 원래 자신의 카드인 스페이드덱이 조절을 위해 미국에 가있는 동안 사용한 임시카드였다. 세 장이었지만 방어벽생성카드가 갑판에서 부서져서 두 장이었다. 기본이 되는 카드만 있다면 마력의 한도 안에서 계속 같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부서지면 그걸로 끝이다. 이 문 뒤에 있는 상대는 두 장으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지희는 왼손가락 사이에 카드 두 장을 끼우고 터치패드에 가볍게 손을 댔다. 그러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캔하는 것처럼 빛이 휙 지나가고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지희는 여기에 개인정보등록을 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였다.


문 뒤에는 엷은 안개가 흐르고 있었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BOE와 완전히 같았다. 다만 농도가 그보다 옅어서 주위의 모습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다.


그곳은 무척 넓은 공간이었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앞에 문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전함의 한 층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다른 어떤 물체도 없었다. 다만 가운데에 커다란 직사각형 기둥이 하나 서있을 뿐이었다.


“왔나.”


기둥은 전체가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으로 표면을 따라 가끔 붉고 노랗고 파란 빛의 선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이 기둥이 바로 초공간엔진이었다. 점점 커지는 기운이 여기서 흘러나온다는 것이 이상할 만큼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주위의 안개는 엔진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낮게 깔리는 것처럼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좀 전의 그 친구로군.”


초공간엔진의 옆에 서있던 조셉이 돌아서며 말했다. 지희와 조셉의 사이는 50미터는 떨어져 있었지만 목소리가 울리면서 조용한 공간에서 또렷하게 들렸다.


“당신···.”

“아, 잠깐. 섣불리 움직이면 위험하네.”


조셉이 손을 들어 움직임을 막았다. 지희는 걸어가려다 발을 멈추고 조셉을 보았다. 조셉은 지희의 차가운 눈동자를 보고 살짝 웃고는 옆으로 돌아서면서 초공간엔진에 손을 짚었다.


“지금 임계점을 넘어서 가동 중일세. 여기서 조금만 더 출력을 높이면 엔진이 날아가 버릴 거야. 초공간엔진이 폭주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연구된 게 없네만 지금 그게 보고 싶지는 않겠지.”

“자폭할 셈입니까?”

“자,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오게. 손의 그 카드는 버리고. 그리고 열 걸음 앞에서 멈춰서. 허튼 생각은 말게나. 내가 손을 떼면 엔진 출력이 올라가니까 자네 말대로 같이 죽기 싫으면 말일세.”


지희는 천천히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깐 말없이 초공간엔진을 보고 있던 조셉이 지희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군. 아포크리파. 그리고 자네들은. 우리가 이길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끝을 내버릴 줄은 몰랐어. 그 부분에서는 완패군.”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위화감. 하지만 지희는 그 느낌을 지워버렸다.


“그래서. 이제 목적 달성에 실패했으니 마지막으로 다 끌어들이면서 자살하겠다는 겁니까.”

“헛된 욕망에 마음을 빼앗겨 과학을 옳지 못한 곳에 사용하고 사람들을 곤경에 처하게 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마지막은, 그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나.”

“헛된···?”


이상하다.


지희의 머릿속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다시 한 번 스쳐지나갔다. 지금 조셉은 자신이 꾼 꿈이 헛된 것이었다고, 잘못된 방법이었다고,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고 그것을 단 한 마디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큰일을 벌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쉽게 부정할 수가 있는 걸까. 지금의 조셉의 목소리는 분노에 찬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회고하는 목소리였다. 아포크리파의 메인브리지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는 달랐다.


지희는 조셉의 말대로 열 걸음 정도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노란 안경 너머로 지희를 보는 조셉의 눈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메인브리지에서 봤던 일그러진 웃음이 아니라 편안해 보이는, 마치 모두 끝냈다는 듯한 만족스런 웃음이었다.


“당신··· ···조셉 박사님. 무슨 생각을···?”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해선 안 될 짓을 한 어리석은 인간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그 욕망이 꺾이자 좌절한 나머지 견디지 못하고 자폭하는 거지. 초공간엔진을 날려버리는 건 이렇게 내가 졌을 때를 생각하고 미리 세운 계획일세.”


아니다. 그게 아니다.

그런데 대체 뭐가···?


“하지만, 이건 내 마음에 남은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하고 싶네만, 아무래도 머펫과 자네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내키지 않는군. 자네들이 이 배를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겠네. 그리고 이건 선물일세.”


조셉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지희에게 던졌다. 작고 검은 것이 휙 날아왔다. 받아서 손을 펼쳐보니 자그마한 육각형 데이터칩이었다.


“머펫에게 전해주게. 그 안에는 이 초공간엔진과 프로토타입5호의 데이터, 그리고 내가 개발한 브레이커 유닛들의 데이터가 들어있네. 패배자의 선물치고는 쓸 만할 걸세.”

“박사니···.”

“자네. 이름이 뭐지?”


지희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대답했다.


“···채지희입니다.”

“그래, 지희군. 여기까지 오면서 느꼈겠지만 쉽지는 않았을 걸세. 브레이커들끼리의 실전은 처음이었을 테니까 말이야. 앞으로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자가 또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네. 이번 일을 기억하고 잘 대비하게나. 머펫에게도 그대로 전해주게. 패배자의 말이지만 유언 정도는 들어주겠지.”

“조셉 박사님··· 박사님은···!”


커다랗게,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초공간엔진의 짚고 서있던 조셉의 가슴에서 붉은 액체가 번져 나와 옷을 물들였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조셉의 눈은 천장을 향해 멈춰있었다.


“박사님!!”


조셉은 손이 미끄러지고 다리가 풀리면서 앞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지희는 급히 달려가 무릎을 꿇으면서 쓰러지는 조셉을 받쳤다.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안고 있는 지희의 가슴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


“박사님! 정신 차리세요!!”

“···전해주겠나.”

“예···?”

“미안하다고··· 전해주게. 이런 친구라서 미안···하다고···.”


천천히 눈이 감겼다.

팔이 옆으로 툭 떨어졌다.


“···박사님?”


대답은 없었다.


“박사···님···.”


이게, 뭐야.


지희는 조셉의 얼굴을 보고 피에 물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끝에서부터 온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희는 손을 꽉 쥐면서 고개를 숙였다. 싸늘한, 마음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감각이 온 몸을 채워왔다.


“자, 그만하고 일어나렴.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었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지희는 조셉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누이고 일어섰다. 초공간엔진을 가운데 두고 반대편에서 여자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적갈색 머리칼에 멀리서도 또렷이 보일 만큼 입술이 새빨갰다. 오른손에 작은 권총을 들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

“그래. 암이 말기라 길어도 반년을 못사는 사람이었어.”


여자―로디아가 말했다.


“···그래서, 쏴도 된다는 거야?”

“괜히 항암치료 받으면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이렇게 한 번에 가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아아, 누나는 여기서 안락사 찬반 논쟁을 할 생각은 없어. 그것보다, 조금 전에 받은 그 칩. 나한테 넘겨줬으면 좋겠네.”

“역시··· 그랬나.”


지희는 손을 펴고 손바닥 위의 작은 칩을 내려다보았다.


“박사님은 이용당한 거야. 초공간엔진을 만들기 위해서. 차원을 넘나드는 지배 같은 건 처음부터 박사님의 뜻이 아니었겠지. 그건 우리들, 아포크리파를 끌어들이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어. 그래서 이 배의 내부 구조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고 브레이커 유닛을 장착한 사람들도 적었던 거야. 우리한테 지고 배를 폭파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흐음. 재미있는 애네. 그래서?”

“···초공간엔진을 폭주시켜 자폭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사건의 중심인물인 박사와 그 부하들은 모두 생존불명의 상태가 되겠지. 하지만 초공간엔진의 항행 데이터와 브레이커 유닛의 전투 데이터는 남아. 이렇게.”


지희는 펼친 손바닥을 여자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손바닥 위의 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먹을 한 번 쥐었다가 다시 폈다. 손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옆으로 팔을 떨치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백지카드가 한 장 나타났다.


“···물론 폭파되면 데이터를 빼낸 흔적은 없어지겠지.”

“특이한 걸 할 줄 아네. 재밌는 마술이었어.”

“당신은 어디 소속이지? 같은 조직에서 박사님보다 더 상위 단계의 명령 체계가 있는 건가? 아니면 라이벌 조직?”


지희의 목소리는 베일 것 같이 싸늘했다. 로디아는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면서 왼손의 나이프를 빙글빙글 돌렸다. 오른손의 권총은 비스듬히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후후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넌 그걸 나한테 주기만 하면 돼. 다른 걸 알려고 들 필요 없단다. 알겠니?”

“박사님은, 이용당하는 걸 알고도 이걸 만드셨고 또 계획을 실행하신 거야. 이 데이터를 우리한테 넘겨주기 위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맞아. 그래서 끝까지 초공간엔진의 데이터는 주지 않더라. 완성된 데이터만 있으면 나머지는 그다지 상관없는데도 말이야. 그래서 기다렸어. 박사가 자기 손으로 데이터를 빼내는 순간을.”


로디아는 권총으로 지희를 겨눴다.


“자아, 됐니 명탐정? 이제 칩을 넘겨줘야겠어.”


쿠궁하고 바닥이, 아니 함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지희는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며 초공간엔진을 보았다. 자신이 손을 떼면 엔진 출력이 높아진다고 조셉이 말했었다. 초공간엔진은 웅웅소리를 내며 떨리고 있고 표면에 지나다니는 빛의 선이 조금 전보다 훨씬 많아져 있었다. 약하게 새어나오던 안개가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뿜어져 나오면서 바닥에서부터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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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pilogue. 잘 부탁해. (1권 끝) +1 20.05.16 16 0 15쪽
29 Chapter 5-16. 아포크리파. 20.05.16 17 0 14쪽
28 Chapter 5-15. 오빠. 20.05.16 15 0 11쪽
27 Chapter 5-14. 재밌었어. 20.05.16 14 0 11쪽
» Chapter 5-11. 됐니, 명탐정? 20.05.16 15 0 11쪽
25 Chapter 5-10. 빚 갚으러 왔다. 20.05.16 28 0 13쪽
24 Chapter 5-9. 끝까지 바보네. 20.05.16 16 0 9쪽
23 Chapter 5-7. 정말 대단해. 20.05.16 13 0 14쪽
22 Chapter 5-5. 부탁할 게 있어. 20.05.16 33 0 6쪽
21 Chapter 5-1. 전투 개시. 20.05.16 16 0 10쪽
20 Chapter 4-9. 구해줄게. 20.05.16 16 0 18쪽
19 Chapter 4-7. 나도 너 좋아해. 20.05.16 12 0 9쪽
18 Chapter 4-5. 프로토 타입. 20.05.16 13 0 13쪽
17 Chapter 4-4. Leviathan Ver 7.02 20.04.19 16 0 8쪽
16 Chapter 4-3. 반한 거 아니야? 20.04.19 14 0 5쪽
15 Chapter 4-2. 건강해서 좋네. 20.04.19 19 0 10쪽
14 Chapter 4-1.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20.04.19 11 0 7쪽
13 Chapter 3-6. 그 녀석을 깨워. 20.04.19 18 0 9쪽
12 Chapter 3-5. 뭐가 들었죠? 20.04.19 14 0 9쪽
11 Chapter 3-4. 모시러 왔습니다. 20.04.08 16 0 14쪽
10 Chapter 3-3. 흥미 없어. 20.04.08 18 0 10쪽
9 Chapter 3-1. Breath of Earth. 20.04.08 15 0 13쪽
8 Chapter 2-5. 버려진 성서. 20.04.08 13 0 8쪽
7 Chapter 2-4. Extreme Charge 20.04.08 11 0 10쪽
6 Chapter 2-3. Build Up 20.04.08 18 0 7쪽
5 Chapter 2-2. 기다릴게. 20.04.03 24 0 12쪽
4 Chapter 2-1. 어웨이크닝. +1 20.04.03 42 0 13쪽
3 Chapter 1-2. 신경쓰지 마세요. 20.04.03 20 0 11쪽
2 Chapter 1-1. 오랜만이야. 20.04.03 2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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