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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스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크리파 - Apocry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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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스
작품등록일 :
2020.03.23 22:18
최근연재일 :
2020.05.16 23:0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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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0,881

작성
20.04.1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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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Chapter 4-2. 건강해서 좋네.

DUMMY

2


복도도 전송실과 느낌이 비슷했다. 벽과 바닥은 은빛이 감도는 금속 재질이고 천장에는 타원형의 전등이 점점이 달려있었다. 아마 함 내부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되어있을 것이다.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이거··· 크기가 어느 정도 되죠?”


카나타가 조금 앞에서 걸어가고 지희와 베르타, 유카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복도는 꽤 넓어서 셋이 걸어가는데도 공간이 충분했다.


“길이는 250미터 정도야. 높이는 25미터 정도.”


지희의 물음에 유카리가 손가락을 흔들며 대답했다. 밝은 성격만큼 기분 전환도 빠른 듯 카나타에게 눌려서 훌쩍거리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250? ···굉장하네요.”


아래에서 보고 100미터는 넘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예측했던 수치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이렇게 큰 물체가 공중에서, 그것도 날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완전히 정지할 수도 있다니. 무슨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면 이런 게 가능한 걸까.


“그치그치그치? 대단하지? 이거 구상하고 설계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다구. 물론 만든 것도 절반 이상 내가 만들었···.”

“유 카 리.”

“카나아~ 간만에 자랑할 사람이 생겼는데에에~.”

“안 말릴 테니까 나중에 해. 지금은 그런 거 말고도 이야기할 게 많아. 들어가자.”

“그런 거라니. 그런 거라니이이~.”


전송실을 나와 복도를 따라 똑바로 걸어오니 바로 의무실이었다. 문 옆의 카드판독기에 카나타가 카드를 긋자 의무실 문은 소리 없이 옆으로 열렸다. 셋은 차례차례 의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군가의 앙앙대는 목소리는 못들은 걸로 하고.


들어서자 양쪽에 침대가 두 개씩 있고 문의 맞은편 벽에 커다란 책상과 책장, 그리고 이런저런 의료도구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책상에서 책을 보고 있던 남자가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응. 왔구나.”


하얀 가운을 입은 갈색 머리칼의 남자였다. 피부색이 옅고 손가락이 가늘어서 약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지희를 바라보는 얼굴은 부드러우면서도 자신에 차있었다. 남자는 책에 안경을 벗어놓고는 일어서서 오른쪽의 침대를 가리켰다.


“여기 누워볼래?”

“네? 누울 만큼 다친 건 아니에요.”

“···다친 것 때문에 그러는 게 아냐.”


지희의 말에 베르타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지희는 베르타의 옆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로 가서 신발을 벗고 누웠다. 남자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더니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기 시작했다.


“난 조진성이야. 잘 부탁해.”

“아, 채지희입니다.”

“상처 말고 아픈 데는 없어? 어지럽다거나.”

“아뇨, 없어요.”

“건강해서 좋네. 알았어. 할 이야기가 많지? 난 치료할 테니까 할 거하렴.”

“네.”


대답한 것은 카나타였다. 카나타와 베르타는 지희의 옆 침대에 앉았다. 지희는 팔을 진성에게 맡기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둘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문이 닫혔는데도 유카리가 없는 것을 보니 다른 곳에 간 모양이었다.


“그럼.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그전에 지희 네가 본 것부터 이야기해줄래?”


카나타가 말했다. 지희는 오늘 밤, 베르타를 만나고난 뒤로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밤의 창고 수색. 피를 발견한 창고. 이미 사람이 아니었던 경찰. 밖에서 베르타를 기다릴 때 본 안개. 커다란 괴물 등등.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그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들만.


“음, 그렇구나. 그 괴물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알아?”

“베르타가 가르쳐 줬어요. 이형(異形)이나 언네임드 크리쳐(Unnamed Creature)라고 부른다고 들었는데요.”

“그래. 이제부터는 부르기 편하게 이형이라고 하자. 그리고 그 이형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키는 것이 우리들이야.”

“······.”


지희는 잠깐 말을 멈추고 카나타와 베르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베르타는 지희의 오른팔에서 움직이는 준성의 손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놀란 표정은 아니네. 무슨 생각이 들어? 지희 넌 마법이라는 이 세계의 가장 큰 비밀 중 하나를 벌써 알고 있으니까 받아들이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니?”

“뭘 물어야 되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형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면, 그것들이 모여서 지구에 침입하기라도 하나요? 아니 그전에 그런 생물이 어디서 나타난 거예요?”

“지구를 지킨다고는 하지 않았어. 지키는 건, 이 세계야.”


카나타는 손으로 앞머리를 가볍게 빗고 말을 이었다.


“우선 어웨이크닝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50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의 정체는··· 차원과 차원의 충돌이야. 마법을 배웠으니 차원에 대한 개념도 알고 있지? 흔들리는 공 모형 말이야.”


흔들리는 공 모형. 혼돈을 나타내는 정육면체 안에 각각의 차원을 나타내는 구체가 여러 개 떠있는 차원론의 예시 모형이었다.


“그 개념이야. 공간이 모여서 하나의 차원을 이루고, 수많은 차원이 혼돈―존재하지 못하는 공간을 떠다니고 있다는 것 말이야.”

“그중에서 어떤 차원과 우리 차원이 부딪혔다?”

“맞아. 확률적으로 따지면 몇만분의 일. 불가능이라고 해도 될 가능성이지만 일어난 건 일어난 거니까. 한 차원에는 다른 차원이 가까워지기만 해도 간섭이 일어나. 그런데 이건 아예 서로 부딪혔으니 괜찮을 리가 없지. 그래서 일어난 게 어웨이크닝이야.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와 존재가 이어져있다는 증거. 그런데 그 연결의 보호벽이 되는 차원이 흔들려 버린 거야. 어웨이크닝때 존재 자체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많이 생긴 이유가 여기에 있어.”


카나타는 특히, 지형이 바뀌었다든가 하는 부분보다 사람의 존재에 영향을 준 사건을 말하고 있었다.


우선 인류소거. 인류의 1/3이 사라져버린 사건. 52년 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이 찾아왔을 때 전 인류의 1/3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었다. 기본적인 산업은 70퍼센트 이상 자동화 되어있어 생활면에서 큰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정신을 빼앗긴 남은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겨우 진정이 되긴 했지만 이 사건의 원인은 지금까지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리고 인종융합. 어웨이크닝 이후에는 인종의 구분이 없어졌다. 유전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동양에도 백인과 흑인이 태어나는 식으로 인종을 구분하는 의미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거기에 머리칼의 색과 눈동자의 색도 마찬가지였고 어웨이크닝 전에는 없었던 색도 많이 생겨났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밝혀진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이유를, 지금 카나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군요. ···그래서 그렇게.”


지희는 누운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카나타도 응응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해했어? 그럼 이번엔 BOE 이야기를 해볼까. 미안하지만, 꿈을 깨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네. 그건 지구의 숨결 같은 것과는 전혀 관련 없는 거야. BOE는 차원과 차원이 부딪혔을 때 차원의 벽이 약해지면서 혼돈이 흘러들어온 흔적이야. 꼭 닫혀있던 유리창이 망사창으로 변해버렸다고 하면 될까. 음··· 망사라고는 해도 구멍의 크기가 0에서 무한대까지 멋대로 바뀌는 말도 안 되는 망사지만 말이야.”

“아아···.”


왠지 한숨이 나오는 기분에 지희는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되는 셈이었다. BOE 안에서 행방불명된 비행기와 배들, BOE 안에서의 통신두절과 방향추적불가 같은 것들.


얇아진 차원의 벽 옆을 지나는 거라면 그건 모두 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른 차원으로 날아갔다면 찾을 수 있을 리가 없고, 타차원 간섭이 일어나는 곳에서 통신이나 방향확인이 쉽게 될 리가 없으니까.


“다 알았다는 표정이네. 기분이 어때? 세계의 비밀을 의무실 침대에 누워 아무렇지도 않게 들은 기분이?”


카나타는 무릎에 팔꿈치를 받치고 턱을 괴고는 후후후 하고 웃었다. 재미있어하는 한편으로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무척 누나다운 웃음이었다. 왠지 멍해지는 것 같아 지희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는 말했다.


“그럼 그 이형은, 다른 차원의 생물이겠군요.”

“정답. 그것들이 직접 차원의 벽을 넘어서 공격해 오는 것은 아니야. 차원의 약해진 틈새를 빠져나온 이형 중 하나가 우리 차원에 접근하면 이쪽의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지. 너희들이 본 경찰관이 그런 경우야. ···이번엔 이미 죽어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이형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극도로 흉폭한 성격이 되어버려. 쉽게 말해 범죄자가 되는 거랄까.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연결된 사람이 나타나면 차원의 벽을 넘어가서 이형을··· ···어라, 어라.”

“······.”


멍해진다고 생각했던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카나타의 목소리가 점점 멀게 느껴지고 눈꺼풀이 무겁게 아래로 내려왔다. 지희는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손가락 끝부터 물속으로 잠겨가는 것 같은 느낌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흐릿해지는 눈에 이쪽을 보고 있는 베르타의 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처음으로 차원 밖으로 나간 사람은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해. 그런데도 지희 넌 그렇게 움직인 거야. ···많이 피곤했을 거야. 잠깐 자.”

“그래. 다시 올 테니까.”


카나타와 베르타가 일어서는 것을 본 것이 마지막. 지희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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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pilogue. 잘 부탁해. (1권 끝) +1 20.05.16 16 0 15쪽
29 Chapter 5-16. 아포크리파. 20.05.16 17 0 14쪽
28 Chapter 5-15. 오빠. 20.05.16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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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hapter 5-10. 빚 갚으러 왔다. 20.05.16 28 0 13쪽
24 Chapter 5-9. 끝까지 바보네. 20.05.16 16 0 9쪽
23 Chapter 5-7. 정말 대단해. 20.05.16 12 0 14쪽
22 Chapter 5-5. 부탁할 게 있어. 20.05.16 32 0 6쪽
21 Chapter 5-1. 전투 개시. 20.05.16 16 0 10쪽
20 Chapter 4-9. 구해줄게. 20.05.16 16 0 18쪽
19 Chapter 4-7. 나도 너 좋아해. 20.05.16 12 0 9쪽
18 Chapter 4-5. 프로토 타입. 20.05.16 13 0 13쪽
17 Chapter 4-4. Leviathan Ver 7.02 20.04.19 16 0 8쪽
16 Chapter 4-3. 반한 거 아니야? 20.04.19 14 0 5쪽
» Chapter 4-2. 건강해서 좋네. 20.04.19 19 0 10쪽
14 Chapter 4-1.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20.04.19 11 0 7쪽
13 Chapter 3-6. 그 녀석을 깨워. 20.04.19 18 0 9쪽
12 Chapter 3-5. 뭐가 들었죠? 20.04.19 14 0 9쪽
11 Chapter 3-4. 모시러 왔습니다. 20.04.08 14 0 14쪽
10 Chapter 3-3. 흥미 없어. 20.04.08 15 0 10쪽
9 Chapter 3-1. Breath of Earth. 20.04.08 14 0 13쪽
8 Chapter 2-5. 버려진 성서. 20.04.08 13 0 8쪽
7 Chapter 2-4. Extreme Charge 20.04.08 11 0 10쪽
6 Chapter 2-3. Build Up 20.04.08 18 0 7쪽
5 Chapter 2-2. 기다릴게. 20.04.03 22 0 12쪽
4 Chapter 2-1. 어웨이크닝. +1 20.04.03 41 0 13쪽
3 Chapter 1-2. 신경쓰지 마세요. 20.04.03 20 0 11쪽
2 Chapter 1-1. 오랜만이야. 20.04.03 24 0 12쪽
1 Prologue. 준비 됐나요? 20.03.23 62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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