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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스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크리파 - Apocrypha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지나스
작품등록일 :
2020.03.23 22:18
최근연재일 :
2020.05.16 23:0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68
추천수 :
0
글자수 :
140,881

작성
20.04.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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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Chapter 2-2. 기다릴게.

DUMMY

2


“이건···.”


난간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 둘은 같이 멈춰버렸다.


긴 복도를 걸어 계단으로 한 층을 내려가자 나타난 곳은 창고가 아니었다. 길이는 100미터를 넘을 것 같고 폭은 50미터 정도, 거기다 둘이 서있는 곳 아래로 적어도 30미터는 더 아래에 수면이 있는, 창고 밖에서 봤을 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이 창고 아래에 있었다. 직사각형 수조 같은 모양이지만 바닥을 이루고 있는 수면은 분명히 바닷물일 것이다. 그건 이 정체불명의 공간이 바다를 통해 바깥과 이어져 있다는 의미였다.


“배··· 아냐. 잠수함···?”


지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운데에 커다란 직사각형이 파여 있는 모양이지만 그 주위의 면적도 상당히 넓었다. 이곳저곳에 철근이나 금속판 같은 것이 널려있고 건너편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중장비도 한 대 서있었다. 옆에 문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안쪽에 공간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잠수함 건조장이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결론이었다. 잠수함을 만드는 순서 같은 것은 모르지만 잘못된 결론일 확률은 낮았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이런 곳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없어.”


여기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베르타의 얼굴에 변화는 없었지만 난간을 잡고 있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말을 걸려던 지희는 베르타가 그대로 아래를 보며 생각에 잠기자 옆에 있는 철문을 올려다보았다.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창고 정문의 뒤는 완만한 내리막으로 기울며 아래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높고 폭이 넓어서 대형 트럭도 어렵잖게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밖에서 봤을 때는 철문이 상당히 커보였는데 안쪽에서는 워낙 큰 공간과 비교가 되다보니 아까 들어온 출입문 정도의 크기로 보일 정도였다.


지희는 경사를 올라가서 문 뒤에 섰다. 밖에서부터 이어진 흥건한 피가 안까지 흘러들어와 있었다.


“응···?”


그런데 피의 흐름이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끊어져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끊은 흔적은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둥근 모양으로 끝나 있었다.


“어째서···.”


예상이 빗나갔다. 지희는 손바닥으로 턱을 감싸면서 고여 있는 피를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 출혈이라면 문 뒤에 시체가 있거나 시체를 끌어서 옮긴 흔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깨끗했다. 사람의 피. 그것도 흘린 지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피인데 왜 아무 것도···.


그때 덜컹 하고 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창고 안이 무척 조용했던 데다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바람에 둘은 순간 움찔할 만큼 놀라고 말았다.


“거기 누가 있습니까?”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열린 것은 건너편 안쪽에 있는 작은 문들 중 하나였다. 손전등을 비추며 들어온 남자는 안이 밝은 것을 알았는지 전등을 껐다. 하얀 경찰모자를 쓴 순찰 경관이었다. 경관은 뛰는 듯한 걸음으로 직사각형의 모서리를 돌아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 거기서 뭐하고 있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일이라는 건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의미한다, 이런 평범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오히려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지희는 베르타를 바라보았고 아래서 올려다보고 있던 베르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걸 발견해서요.”


지희는 죄송하다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것 말입니까?”

“예. 그런데 창고 문이 열려 있어서 무심코 들어와 버렸어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쪽으로 좀 와주시겠어요?”


경관은 베르타의 뒤를 지나 지희가 서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베르타는 지나가는 경관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본 다음 다시 거대한 수조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희와 베르타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항구 근처의 대형 창고. 그 아래에 만들어져 있는 엄청난 크기의 비밀 공간. 이곳을 발견한 경찰이라면 사람 이전에 이 장소에 대한 의문부터 가졌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피로군요. 그것도 상당히 많아요.”

“예. 밖에도 고여 있는데 이걸 보고···.”


말을 꺼내는 순간, 지희는 경관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가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관은 허리를 굽혀 피가 고인 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시선만 돌려 아래를 보자 베르타도 날이 선 눈으로 경찰을 보고 있었다.


“이건 조사해 봐야겠군요. 본서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지희는 뒤로 천천히 걸으면서 경관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응? 학생. 그게 무슨···.”

“이거.”


같은 냄새가 났다.


“경찰 아저씨, 당신 피잖아.”


순간, 경관의 몸은 어딘가의 스위치를 넣은 것처럼 상체를 숙인 채로 굳어버렸다. 이 말에는 베르타도 놀란 듯 살짝 눈이 흔들리며 지희를 향했다. 잠깐 멈춰있던 경관은 머리를 위로 휘익 치켜들더니 입을 쩌억 벌리고 기괴한 웃음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크흐흐··· 크흐하아하하하하!!!! 아하하··· 크···크웨에엑!!”


비정상적으로 벌어진 입에서 터지는 것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지희는 뒤로 훌쩍 뛰어 바닥에 내려서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달려온 베르타가 옆에 서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미 조용히 처리할 일은 아니었다.


“···쿠로네. 들어와.”


창고 밖에서 바닥을 찢는 듯한 바퀴 소리가 들리고 다음 순간 뭔가가 바깥에서부터 엄청난 충격으로 철문에 부딪혀 왔다. 폭음에 가까운 소리가 지하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철문은 한가운데가 종이처럼 구겨지며 굉장한 기세로 안쪽으로 튕겨 들어왔다. 미친 듯이 웃고 있던 경관은 날아온 철문에 말려들면서 튕겨 날아가 난간을 부숴버리고 철문과 함께 30미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부서질 때의 충격으로 철문이 달려있던 위쪽에서 돌조각이 부서지며 떨어져 내린다. 그 아래에 쿠로네가 헤드램프를 환히 밝히며 멈춰 있었다. 엔진 소리가 마치 숨을 고르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저건 뭐야. 좀비나 호문클루스?”

“···아니야. ···미안, 가르쳐 줄 수 없어.”

“괜찮아.”


지희는 베르타의 머리를 가볍게 한 번 쓰다듬었다. 베르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걸로 끝난 거 아니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이제···.”


아래에서 무시무시한 괴성이 들려왔다. 좀 전의 웃음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이제 더 이상 인간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울부짖음이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알았어.”


대화를 들었는지 쿠로네가 움직이더니 아래로 크게 점프를 해서 두 사람의 앞에 내려섰다. 앞바퀴에 이어 뒷바퀴가 떨어지더니 옆으로 휘익 기울면서 멋지게 제자리 턴을 한 번 해서 입구를 향해 방향을 돌린다. 동작에 오버가 섞여있는 것을 보니 적당히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야, 쿠로네.”

“오랜만입니다지희.”


둘은 그대로 쿠로네에 타고 창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문을 지나는 순간 공기 자체가 바뀌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창고에서 수십 미터 정도 떨어진 삼거리에서 둘은 쿠로네를 돌리면서 정지했다. 철문이 떨어져 나간 창고 건물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적 가운데 서있었다.


베르타는 핸드폰을 들고 잠깐 걸 곳을 생각한 뒤 번호를 눌렀다.


“···찾은 것 같아요. 네이한테 연락했어요?”

“하긴 했는데, 그쪽도 지금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말이지. 이쪽을 빨리 해결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다 왔으니까 기다려. 끊는다.”

“···네?”


헹커가 전화를 끊는 소리는 삼거리의 직각으로 꺾인 방향 쪽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엔진소리에 묻혀버렸다. 보통 자동차보다 훨씬 큰 두 개의 헤드램프가 정면으로 두 사람과 쿠로네를 비추며 다가오고 있었다. 헤드램프의 빛은 삼거리에 이르자 창고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돌린 뒤 꺼졌다.


나타난 것은 운전석의 높이가 3미터 정도 되는 대형 트레일러였다. 엔진부가 앞으로 튀어나와있는 형태로 본체는 파란색이고 뒤에는 50미터 길이의 하얀 컨테이너를 끌고 있었다. 흐릿한 가로등 빛에 드러난 그 모습은 트레일러라기보다 위압감이 느껴지는 거대한 생물체 같았다.


“여어.”


운전석 문이 열리고 남자 한 명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큰 키에 마른 체격으로 갈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염색머리에 선글라스를 코에 거는 것처럼 쓰고 왼손에는 책처럼 생긴 물건을 들고 있었다. 남자는 씹고 있던 껌을 바닥에 뱉고는 손을 흔들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잘 빠져나왔나 보네. 아, 그쪽이 소문의 마법사인가? 내 이름은 헹커. 잘 부탁한다.”

“채지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희는 헹커가 내민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런데 헹커는 악수를 끝내고도 손을 놓지 않고 지희의 눈을 보고 있었다. 손을 놓으려던 지희는 이상해하면서도 눈을 돌리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보았다. 잠깐 뒤, 헹커는 피식 웃으면서 손을 놓았다.


“조금 실망이네. 네 번째 카드라고해도 그래도 크리에이터의 손자니까 혹시나 했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아니면 원래 성격인지 상당히 삐딱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희는 그에 대한 반응은 하지 않고 헹커를 보며 빙긋 웃었다.


“마법사이신가 보네요. 조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뭐어, 약간은 흥미가 가서 말이야. 하지만 너. 지금 마력이 줄줄 새고 있잖아? 마력을 저장하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거라고. 그 정도도 못한다니.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대로 있으면 안 되지.”

“이건···.”


목소리는 그대로. 하지만 헹커를 보는 지희의 눈에 순간적으로 차가운 빛이 어렸다가 지워졌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던 헹커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음···. 그러니까 체질 같은 거라서요.”

“체질? 마력 저장하는데 체질이 중요한가?”

“···헹커.”


베르타가 헹커의 말을 끊었다.


“···지금 중요한 건 지희가 아니에요. 모두들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아, 아. 미안.”


헹커는 입구가 부서진 창고를 힐끔 보고는 주머니에서 껌을 하나 꺼내 다시 입에 넣었다.


“처음에 베르타 네 연락을 받고 바로 네이한테 연결을 해서 설명했지. 그런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벌써 이 창고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고.”

“···알고 있었다···?”

“이유는 아직 못 들었지만. 여기가 확실하다고 하면서 창고 안을 살펴보고 특이한 점이 없다면 바로 돌아오라고 하더라고. 저 창고가 이미 비어있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 같더군.”

“···서둘러야겠어. 헹커, 도와줘요.”

“물론. 그러려고 일부러 달려온 거니까.”


헹커는 들고 있던 책 같은 것을 가로로 들고 펼쳤다. 그러자 불이 들어오면서 복잡한 도형이 그려진 표 같은 것이 화면에 가득 나타났다. 노트북이었던 것이다. 헹커는 왼손으로 노트북을 받치고 오른손만으로 키보드를 능숙하게 두드리면서 화면을 바꿨다.


“···지희야.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베르타가 지희를 보며 말했다. 투명하고 빨간 눈동자 너머로 말하지 못하는 기분이 어렴풋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도와주면 안 되는 건가 보네.”


지희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릴게. 조심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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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pilogue. 잘 부탁해. (1권 끝) +1 20.05.16 16 0 15쪽
29 Chapter 5-16. 아포크리파. 20.05.16 17 0 14쪽
28 Chapter 5-15. 오빠. 20.05.16 14 0 11쪽
27 Chapter 5-14. 재밌었어. 20.05.16 14 0 11쪽
26 Chapter 5-11. 됐니, 명탐정? 20.05.16 14 0 11쪽
25 Chapter 5-10. 빚 갚으러 왔다. 20.05.16 28 0 13쪽
24 Chapter 5-9. 끝까지 바보네. 20.05.16 16 0 9쪽
23 Chapter 5-7. 정말 대단해. 20.05.16 12 0 14쪽
22 Chapter 5-5. 부탁할 게 있어. 20.05.16 32 0 6쪽
21 Chapter 5-1. 전투 개시. 20.05.16 16 0 10쪽
20 Chapter 4-9. 구해줄게. 20.05.16 16 0 18쪽
19 Chapter 4-7. 나도 너 좋아해. 20.05.16 12 0 9쪽
18 Chapter 4-5. 프로토 타입. 20.05.16 13 0 13쪽
17 Chapter 4-4. Leviathan Ver 7.02 20.04.19 16 0 8쪽
16 Chapter 4-3. 반한 거 아니야? 20.04.19 14 0 5쪽
15 Chapter 4-2. 건강해서 좋네. 20.04.19 19 0 10쪽
14 Chapter 4-1.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20.04.19 11 0 7쪽
13 Chapter 3-6. 그 녀석을 깨워. 20.04.19 18 0 9쪽
12 Chapter 3-5. 뭐가 들었죠? 20.04.19 14 0 9쪽
11 Chapter 3-4. 모시러 왔습니다. 20.04.08 14 0 14쪽
10 Chapter 3-3. 흥미 없어. 20.04.08 16 0 10쪽
9 Chapter 3-1. Breath of Earth. 20.04.08 14 0 13쪽
8 Chapter 2-5. 버려진 성서. 20.04.08 13 0 8쪽
7 Chapter 2-4. Extreme Charge 20.04.08 11 0 10쪽
6 Chapter 2-3. Build Up 20.04.08 18 0 7쪽
» Chapter 2-2. 기다릴게. 20.04.03 23 0 12쪽
4 Chapter 2-1. 어웨이크닝. +1 20.04.03 42 0 13쪽
3 Chapter 1-2. 신경쓰지 마세요. 20.04.03 20 0 11쪽
2 Chapter 1-1. 오랜만이야. 20.04.03 24 0 12쪽
1 Prologue. 준비 됐나요? 20.03.23 62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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