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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스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크리파 - Apocrypha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지나스
작품등록일 :
2020.03.23 22:18
최근연재일 :
2020.05.16 23:0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84
추천수 :
0
글자수 :
140,881

작성
20.05.1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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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Chapter 4-7. 나도 너 좋아해.

DUMMY

7


“응. 알았어.”


얼마간 말이 없던(생각에 잠겨있던?) 레비가 말했다. 화면에 뭔가를 띄울 필요는 없지만 지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해 보이지 않도록 평범한 운영체제의 화면이 떠있었다. 이게 실제 운영체제가 아니라 그림 파일이라는 것이 레비 나름의 애교라고 할까. 하지만 연구실에 있었으면 같이 웃었을 텐데 지금은 지유도 레비도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배로 가서 중계지점까지만 이 열차를 끌어달라고 부탁을 하겠다는 거잖아. 들어줄까?”

“아마··· ···안 들어줄 가능성이 훨씬 높지.”


지유의 목소리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이 섞여있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운이 나는 것은 레비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그리고 저 배가 떠나버리면 그나마도 할 수 없게 돼. 그런 거라면 시도를 해보는 게 맞잖아? 어차피···.”


···아니, 비관적인 소리는 하지 말자. 지유는 눈을 감고 마지막 한 마디를 가슴 속에 묻었다. 이렇게 사라지나 저렇게 사라지나 똑같다는 말을.


“그런 얼굴 하지 마. 네가 여기에 너무 큰 희망을 걸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던 것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모두 도와줄 테니까.”


또 위로 받아버렸다. 지유는 눈을 뜨고 화면 위의 연녹색 렌즈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예측은 가지만.”

“4번 차량의 뒤에는 주추진기관이 있어. 조종차량을 떼어냈어도 그건 그대로 있잖아. 그걸 사용하면 이 열차를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방향 계산 같은 건 물론 안 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배까지 가는 것은 가능할 거야. 문제는 제어프로그램이 조종차량하고 같이 사라졌다는 건데···.”

“그래서 날 깨운 거지?”

“응. 생각해 보면 조종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추진기관 조종 하나라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을 거야. 정확한 건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연결 시스템인 이상 조종차량에서 오는 명령을 수신하는 채널이 분명히 남아있겠지. 거기에 접속해서.”

“지금까지 명령을 내린 로그를 역으로 추적해서 주추진기관 조종프로그램을 구축하고 그걸로 이 열차를 움직인다.”

“맞아. 할 수 있지?”


레비의 말은 지유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지유의 물음에 운영체제 그림이 떠있던 레비의 화면이 지워지면서 까맣게 변했다. 사람으로 이야기하면 앉은 자세를 고쳐서 자세를 바로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접속해서 얼마나 복잡한 녀석인지 봐야 알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야. 하지만 지유야. 방금 내가 말한 작업을 하려면 최고레벨의 해석기를 사용해야 돼. 이걸 사용할 수 있는 건 최고관리자 한 사람 뿐이야. 알잖아?”

“카드는 가지고 있어.”


지유는 머펫의 지갑을 꺼내 안에 든 카드를 레비에게 보여주었다. 머펫이 마지막에 남긴 레비아탄의 최고관리자를 선언하는 키카드였다. 조금 전에 레비에게 상황 이야기를 할 때 깜박하고 빼먹었기 때문에 카드를 보이는 순간 레비의 놀라는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렸다.


“그러네. 팀장님이 가시기 전에 그걸 너한테 넘겨주셨구나. 어쩐지, 지유 네가 불가능한 계획을 세울 리가 없는데. 그럼 그것부터 바로 시작하자.”

“조금···.”

“응?”


지유는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두 손으로 잡고 들여다보았다. 테두리는 까맣고 가운데가 반투명한 카드로 카드 전체에 걸쳐 작은 글씨가 빙빙 돌아가며 가득 적혀있었다.


“이런 말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두근거려.”


레비아탄의 최고관리자는 한 번 선언하면 그 사람이 죽거나 죽은 것처럼 인정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지금 여기서 최고관리자가 되면 레비가 평생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음··· 이런 기분을 두근거린다 라고 말하는 거라면, 나도 두근거려. 가장 좋아하는 친구하고 늘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레비···.”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었다. 지유는 놀란 눈으로 레비를 쳐다보고는 곧 생긋 웃었다. 사건이 시작되고 나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지유다운 웃음이었다.


“···고마워, 레비. 나도 너 좋아해. 무척.”

“좋아. 시작하자.”


지유는 카드를 키보드 오른쪽에 있는 입력기에 대고 긁었다. 그러자 화면이 하얗게 되더니 Super Administrator라는 글자가 가운데에 커다랗게 떠올랐다. 그 아래에는 이름과 같은 신상정보를 적는 곳이 몇 개 있었는데 레비가 지유를 아는 덕분에 벌써 다 채워져 있었다. 지유는 엔터를 눌러 바로 그 화면을 빠져나왔다.


“지문인식 할게. 키보드 기본 위치에 손가락을 올려.”


키보드에 손을 대자 키보드 아래에서 빛이 새어나오면서 스캔하는 것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움직였다. 손가락 열 개를 모두 지나치자 빛은 바로 사라졌다.


“정보 입력 완료. 끝났어. ······. 지유야? 왜 그래?”

“아, 미안해. 절차가 간단한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직접 해보니까 정말 이걸로 끝인가 싶어서.”

“다음에 또 만들 일 있으면 더 거창하게 만들어. 자, 일어나야지? 우리한텐 시간이 없어.”


걱정되는 것은 레인지와 하나였다. 지유는 잠들어있는 하나에게 외투를 다시 덮어주고 옆좌석의 중년부인에게 금방 돌아오겠다며 두 사람을 맡겼다. 그리고는 하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다음 레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멈춰있던 열차 안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8


뜨거운 물이 쏟아지면서 샤워실 안에 하얀 김이 가득 차있었다. 베르타는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에 몸을 맡기고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물이 긴 금발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따뜻하고 몸이 부드럽게 풀리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임무를 끝내고 들어오면 샤워를 하는 것은 베르타만이 아니라 아포크리파의 다른 대원들 대부분의 습관이었다.


아포크리파의 샤워실은 8개의 샤워기를 칸막이로 나눈 구조로 되어있었다. 아포크리파가 만들어진 직후에는 언제든지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것 말고는 특징 없는 샤워실이었지만 대원의 대부분이 여성이다보니 이런저런 건의에 수정이 이뤄져서 지금은 욕조만 없을 뿐 다른 부분에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곳이 되어있었다.


베르타는 샤워기를 잠그고 옆의 밸브를 열었다. 그러자 물이 나오던 곳에서 이번에는 하얀 거품액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 아니면 잠수함···?”


두 손에 받은 거품을 천천히 문지르면서 생각했다. 카나타는 잠깐이라도 쉬라는 의미로 베르타의 말을 얼버무렸겠지만 그래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창고 아래에 감춰져있던 이상한 공간의 의미를.


분명히 배나 잠수함을 만들기 위한, 아니 정정, 만든다기보다는 테스트를 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도구나 장비는 그곳에 없었으니까. 가로 50미터, 세로 100미터, 깊이 30미터. 대략적인 크기는 이정도지만 이걸로 거기에 있었던 뭔가의 크기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공간단층이 그렇게 많이 발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본체는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니까 차원의 벽을 넘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 공간의 크기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필요한 부분만 가져온다거나 빼내면 되니까.


“···대체 누가···.”


생각은 여기에서 멈췄다. 그 공간에 있던 무언가가 움직였을 때의 대책은 카나타와 유카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을 것이다. 베르타가 생각하는 것은 대체 누가 그런 것을 만들었느냐는 것이었다. 네이가 그 창고에 대한 기록을 조사하고 있겠지만 뭔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이렇게 큰일을 실행하면서 그런 부분에 흔적을 남길 리가 없었다.


차원의 벽을 넘어서는 초공간항행기술. 그걸 어렵잖게 다뤄낼 수 있으며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초공간항행함을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긴 한 걸까.


“······.”


있다.


베르타는 다시 물을 틀고 더운 물을 맞으면서 앞의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건에 맞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것은 4년 전에 실종된 한 남자의 이름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 다음과 다음과 다음이 머릿속에 차례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현실감 없이 느껴질 정도였다.


베르타는 물을 잠그고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메인브리지로 가서 지금 생각한 것을 카나타에게 말해야 한다. 그때 샤워실 천장의 스피커에서 방송을 알리는 벨소리가 나더니 네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베르타 언니? 샤워실에 있어? 이거 들으면 바로 메인브리지로 와줘.”


뭔가 일어난 것 같다. 베르타는 급히 칸막이 문을 밀고 나와 수건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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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pilogue. 잘 부탁해. (1권 끝) +1 20.05.16 16 0 15쪽
29 Chapter 5-16. 아포크리파. 20.05.16 17 0 14쪽
28 Chapter 5-15. 오빠. 20.05.16 15 0 11쪽
27 Chapter 5-14. 재밌었어. 20.05.16 14 0 11쪽
26 Chapter 5-11. 됐니, 명탐정? 20.05.16 15 0 11쪽
25 Chapter 5-10. 빚 갚으러 왔다. 20.05.16 28 0 13쪽
24 Chapter 5-9. 끝까지 바보네. 20.05.16 16 0 9쪽
23 Chapter 5-7. 정말 대단해. 20.05.16 13 0 14쪽
22 Chapter 5-5. 부탁할 게 있어. 20.05.16 33 0 6쪽
21 Chapter 5-1. 전투 개시. 20.05.16 16 0 10쪽
20 Chapter 4-9. 구해줄게. 20.05.16 16 0 18쪽
» Chapter 4-7. 나도 너 좋아해. 20.05.16 13 0 9쪽
18 Chapter 4-5. 프로토 타입. 20.05.16 13 0 13쪽
17 Chapter 4-4. Leviathan Ver 7.02 20.04.19 16 0 8쪽
16 Chapter 4-3. 반한 거 아니야? 20.04.19 14 0 5쪽
15 Chapter 4-2. 건강해서 좋네. 20.04.19 19 0 10쪽
14 Chapter 4-1.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20.04.19 11 0 7쪽
13 Chapter 3-6. 그 녀석을 깨워. 20.04.19 18 0 9쪽
12 Chapter 3-5. 뭐가 들었죠? 20.04.19 14 0 9쪽
11 Chapter 3-4. 모시러 왔습니다. 20.04.08 16 0 14쪽
10 Chapter 3-3. 흥미 없어. 20.04.08 18 0 10쪽
9 Chapter 3-1. Breath of Earth. 20.04.08 15 0 13쪽
8 Chapter 2-5. 버려진 성서. 20.04.08 13 0 8쪽
7 Chapter 2-4. Extreme Charge 20.04.08 11 0 10쪽
6 Chapter 2-3. Build Up 20.04.08 18 0 7쪽
5 Chapter 2-2. 기다릴게. 20.04.03 24 0 12쪽
4 Chapter 2-1. 어웨이크닝. +1 20.04.03 42 0 13쪽
3 Chapter 1-2. 신경쓰지 마세요. 20.04.03 20 0 11쪽
2 Chapter 1-1. 오랜만이야. 20.04.03 26 0 12쪽
1 Prologue. 준비 됐나요? 20.03.23 65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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