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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학

웹소설 > 자유연재 > BL, 로맨스

쓰다A
작품등록일 :
2020.05.16 20:45
최근연재일 :
2020.11.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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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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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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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관심과 스토킹의 차이를 설명해주지. 1

DUMMY

17. 관심과 스토킹의 차이를 설명해주지. 1



미학이 절제의 침대 앞에 앉은 채로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웬만해서는 참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불가했다.


“그, 만. 그으-만.”


미학은 절제의 손을 잡아 쥐고서 절제의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돌아 앉아 절제와 마주보았다.


“우-리, 빙구가 이렇게 손아귀 힘이 거센지 몰랐어.”


절제가 미학의 눈을 피하며 어깨를 움찔 거렸다.

왜 하필이면 어깨를 주물러주겠다는 약속 따위를 해서는 저 스토커 같은 김미학을 위해서, 이 근육덩어리에 딱딱한 어깨를 주무르는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절제는 지난날의 자신이 미워졌다.


왜, 사진기를 들고 그렇게 신이 나서는.

왜, 미끄러져서는.

왜, 저 김미학 위에 엎어져서는.

왜, 고가의 카메라 렌즈를, 그것도 김미학의 것을 망가트려서는.

왜, 렌즈 값을 어떻게든 몸으로라도 떼우겠다는 소리를 지껄여서는.


이, 눈치는 고속도로위를 나뒹구는 작은 먼지 덩이들만큼도 없는 인간.

종종 미묘하게 눈치가 빠른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좀 체 속을 알 수 없는 미학에게 마음의 소리가 들릴세라, 절제는 빠르게 안마를 마치려했다.

물론, 안마하는 순간까지도 ‘우리 빙구’라며 온 몸에 소름이 가시질 않게 하는 미학 때문인 부분이 가장 크긴 했다.

소심한 복수의 일환으로 양 손 가득 온 힘을 다해 누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절제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미학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절제의 어깨를 잡아챘다.


“이제는 내 차례지. 그치? 힘들었을 텐데, 우리 빙구가.”


미소 짓는 미학의 얼굴이 악마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절제는 슬금슬금 엉덩이 걸음을 해, 침대 안쪽으로 도망갔지만 금세 자리에 돌처럼 굳어야했다.


“아...전신 마사지라도 해 주어?”


미학의 손짓과는 자꾸만 반대로 향하는 절제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덧그린 미학이, 긴 다리로 한 걸음에 절제의 앞에 섰다.

절제를 잡아당기는 손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더욱 부드러웠다.


“어, 하나도 안 힘든데! 그, 이, 제, 안마는 렌즈 값이었잖...악!”


미학의 팔 힘을 이기지 못 한 절제는, 미학에게 발목이 잡힌 채로 주르륵, 미끄러지며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하, 하, 하...정말 괜찮은데...!”


“아니, 내가 마-음-이 쓰여서. 가르쳐 줘야 할 것도 있는 것 같고.”


“하, 하, 당연히 받을 걸 받았는데, 뭐가 마음이 쓰이십니까아....”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 절제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다시 세워 등으로 기어 올라가려했지만 다시금 발목이 잡혀, 훅 아래로 끌려갔다.


절제의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림자가 더욱 크게 자신을 덮어오는 순간, 절제는 꼴깍 침을 삼키며 미학의 어깨를 있는 힘껏 밀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젠가 상윤과 보았던 퀴어 영화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미학이 절제 자신을 이전에 키웠던 강아지와 동등한 선상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난 번 잡아먹겠다고 했던, 그 묘한 선전포고에서 분명 동물에게 주는 애정과는 다른 무언가를 절제는 느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했다.

때문에,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자꾸만 오버 랩 되는 것이었다.


침대 앞에 늠름한 자태로 서서 미학의 양 어깨를 꾹 누르는 절제의 붉은 얼굴을 본 미학이, 조금 전까지 얼굴 가득했던 장난스러운 움음기를 지웠다.

그 때문에 절제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아,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제가 병천형님...아, 아니, 머리랑 빨래를 같이 걷기로 했던 것 같아요.”


“음, 빨래.”


“그죠. 빨래.”


“그-래. 빨-래.”


묘하게 느려지는 미학의 대답에 절제는 목이 말라왔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한다.’


“그, 그럼 이만...아! 왜요! 뭐야!”


다급히 침대에서 벗어나는 절제의 다리에 미학이 팔을 감아 매달렸다.

황당한 것을 넘어서, 평소 미학의 이미지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원숭이가 사람 팔이나, 다리나, 나무에 매달리는 것만 같은, 그 요상한 포즈로 절제의 다리에 자신의 체중을 실은 미학을 보며 절제가 다시금 소리를 내질렀다.


짧은 순간 절제는 자신의 부끄럽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야했다.

이 어디로 튈지 예상이 불가한 사람과는 계속 같이 있다간, 평정이고 뭐고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이 터져 죽거나, 화를 너무 많이 내서 과로사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최후의 장면은 새빨갛게 수치사한 모습일 것이다. 아마.


“나도 빨아야지. 그럼. 자, 어서. 이제 잘 빨아봐.”


“뭐, 뭐요?!”


이상한 자세에 해괴한 소리를 하는 미학을 내려 보며 절제가 당황스러워 말을 더듬거렸다.


“새벽에 그러던데. 잠꼬대로. 김미학 새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아다가 태양 볕 아래에 오래토록 말려서 새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며.”


“....”


절제가 단번에 떠오르는 경악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한 주제에 태연작약하게 자신을 올려보는 미학의 눈과 눈을 맞추었다.


"뭐...요?"


"김미학 새-끼-를 빨래 통에 빨아다, 지글지글 끓는 태양 아래에...."


"아, 아, 아니, 그, 그만!"


절제가 '새끼'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하는 미학의 입을 막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간밤부터 새벽 사이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인지, 이 스토커가 정말 스토킹을 하고 있나, 방 어디에 도청장치 같은 거라도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매우 김미학스러운 일을 걱정하던 절제가 머리를 마구 흔들며 미학의 어깨를 와락 붙잡았다.


"그런 건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예요!"


"아까도 말 했던 것 같지만 내가 널 모르는 게 뭐가 있겠어."


그놈의 내가 널 모르는 게 뭐가 있겠냐는 김미학 치트키인가, 아까부터 뭘 그렇게 반복하는거야, 속으로 툴툴거린 절제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스토킹하세요, 저?"


"스토킹...보다는 관-심인거지."


"...그게...스토킹하긴 한다는 거잖아요."


"당연히 우리 빙구를 향한 내 관심...."


"집에서 키우는 동물 취급에 유리 취급도 모자라서 이제 스토킹까지 하냐고요!"


절제가 미학에게 붙들린 다리에 힘을 주고 흔들려고 애를 썼지만 미학은 끄떡하지 않았다.

외려 반동으로 인해 절제 자신이 털썩 침대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우와악. 정말 미쳤나!"


자리에 주저앉아 거의 울부짖듯이 소리를 지른 절제는 미학을 모로 뜬 눈으로 노려봤다.

무서우라고 노려 본 것이었으나, 미학은 얼굴가득 낯선 미소를 지은채로 절제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마치, 정말 키우던 동물을 대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미학의 그와 같은 태도는 절제의 혈압을 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화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절제가 미학의 손을 머리에서 떼어내려는데 벌컥, 절제의 방 문이 열렸다.


“사장님! 큰....”


세현이었다

다급하게 미학을 부르며 방 안에 들어선 세현은 침대 위에 앉아 미학과 붙어있는 빨갛게 익은 절제를 보곤 말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도무지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세현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예사롭지 않았던 둘의 대화와 본인의 상상이 더해진 것들이 뒤엉켜 눈앞에서 영상이 이미 재현되고 있었다.


“큰?”


그 당황스러움 가득한 세현의 침묵을 깬 것은, 여전히 절제의 다리에 매달린 미학이었다.


“아, 아, 큰...큰! 큰 집에서 온 것 같습니다!”


눈만은 날카롭게 빛나는 미학과 눈이 마주치자 번쩍, 정신을 차린 세현은 다급한 상황을 알려왔다.

세현의 그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미학이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않으며 스르륵 절제의 다리에서 몸을 떼고 일어섰다.


“온 거야, 아니야. 온 것 같은 건 뭐야.”


미학이 긴 다리로 척, 척 걸어 세현의 앞으로 다가서니 확연하게 두 사람의 덩치 차이가 절제의 눈에 들어왔다.


“저, 장을 보러 갔던 광진 형님이 큰 집 차를 발견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아, 예, 그 우선 그 쪽은 광진 형님을 못 봤다는데...아무래도 여기 발견 되는 건 금방일 것 같아서 급히 준비를....”


“금방은 무슨.”


“예?”


미학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현의 어깨를 잡아, 조금 거칠게 방 문 옆으로 밀쳐내었다.

그리곤 그대로 방문을 나서다, 별안간 걸음을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까지 왔으면 이미 알고 온 거겠지. 넌, 빙구 좀 챙겨. 난 마중 준비 좀 하게.”


두 눈을 매섭게 치 뜬 미학의 눈이, 세현 자신을 향해 절제에게 문제가 생기면 너를 족치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잠시 잠깐 절제를 스칠 때엔 온화한 빛을 담아냈던지라,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세현은 멍하니 자신을 보는 절제에게로 원망의 눈초리를 쏘았다.


‘왜, 어째서 널, 내가, 왜!’


*



“박태남한테 들었어?”


시골집의 정문에 검은 세단을 세우곤 그 앞에 서 있는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턱으로 가리킨 미학이, 다소 건방진 어투로 물었다.

그러나 미학에게 지목당한 남자는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지, 어깨를 한 번 으쓱 하고서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희가 능력 있는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뭐 하나. 목적완수는 못 할 걸.”


미학의 말에 턱으로 지목되었던 남자, 김실장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미학과 눈을 맞추었다.


“가시죠.”


“뭐랬어? 목적완수는 못 한다했잖아.”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김실장이 목을 까딱 거리며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뒤에 있던 검은 정장들이 미학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미학에게 크게 위협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학은 심드렁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실례긴 실례네.”


김실장을 똑바로 바라보던 미학이 대문을 열었고, 미학의 행동을 주시하며 다가가고 있던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무언가가 있을거라는 직감에서였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지만, 그 긴장감 감도는 정적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긴장을 풀고 다시금 미학에게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검은 정장 무리들의 뒤에서 한 차가 빠르게 달려왔다.

과속을 하는 차 시동 소리가 조용한 시골 마을을 울려왔다.


이번에는 미학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린애들 데려와서 뭐하는 거야. 실례되게.”


쾅.

미학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 끼리 충돌하는 소음이 주변을 울렸고, 검은색 세단을 향해 돌진했던 회색 SUV에서 광진이 내렸다.

그 자리에서 김실장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악!”


물론, 미학의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여우 꼴이었지만.

마치 영화에 나오는 조폭들 대화 마냥 덤덤하고 멋있는 척, 미학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깔던 김실장은, 미학의 뒤편에 고양이와 함께 몸을 웅크리고 있던 머리가 달려들자마자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헤헤헤! 고양이 털 알러지인 걸 나는 알고 있었지! 냥이야, 발톱으로 할퀴어 버려!”


“으아, 아악! 치워! 치워! 저리 치워!”


두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기괴스럽던지, 잔뜩 긴장한 채 천천히 각목을 들고 걸어오는 광진을 주시하던 김실장 쪽의 두 패거리가 김실장과 광진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찾지 못하며 김실장에게로 시선을 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곧 빠르게 달려온 광진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광진은 각목으로 검은 정장들의 세단 창문을 깨었고, 차 키를 뽑아들었다.


“뭐, 뭐야!”


“악, 잡아! 그냥 잡아!”


두 사람이 차키를 빼든 광진을 잡기위해 허둥 거렸지만, 김실장은 둘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미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양이를 피해 펄펄 날뛸 뿐이었다.

때문에 전투력이 더욱 상승한 머리가 후라이팬을 집어 들곤 다시금 김실장에게 달려들었고, 광진은 손에 든 세단키를 산 속으로 내어 던지고서는 각목을 고쳐 잡았다.


그 아수라장에서 미학만이 마치 산책 하는 모양새로 자신의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김실장을 비롯한 정장 둘이 뒤늦게 미학을 뒤 쫓으려 했지만, 부엌에서 회를 뜨다가 달려나온 병찬이 회칼을 들고 길을 막았기에 미학을 잡지 못 하였다.


“병찬 형님, 이건 큰형님을 위한 일입니다. 한 번만 봐 주십쇼.”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든 한 정장이 병찬에게 다가가 협박 같은 사정을 했지만 병찬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검은 정장들이 가장 위협이 되고, 심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오직 세현뿐이었다.

심각해 보이는 그들의 대치 상황에서 이 맹한 녀석을 데리고 빠져나가야만 하다니.

두 눈 앞이 깜깜해져 온 세현은 이를 악물고서 절제를 잡고 마구 내달렸다.


절제는 의외로 세현을 잘 따라 갔다.

이제는 비일상적인 상황에 나름 적응을 한 것인지, 해탈을 한 것인지, 온 몸에 힘을 빼고, 자기 단출한 짐이 담긴 백팩을 매고서 미학의 차를 향해 달린 것이다.


“잡아! 쟤! 쟤라도 잡아! 으악! 아!”


그러나 그 때였다.

절제가 무슨 자신들의 마지막 잎새라도 되는 것 마냥, 김실장이 간절한 목소리로 외치며 절제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곧 머리의 후라이팬에 손을 맞고, 손가락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긴 했지만.


“아! 아오! 큰형님! 아니 큰형님한테 한 게 아니고! 악! 큰형님! 그만 좀 합시다! 그냥 가서 좀 알겠습니다, 한 마디면 다 끝나지 않습니까?!”


김실장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악을 썼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상당히 안쓰런 자세로 바닥에 뒹구는 김실장을 신경쓰는 것은 그나마 그 옆에 서서 어디 형수님께 손들대려 하냐며 씩씩 거리는 머리뿐이었다.

아니, 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광진을 피해 절제를 쫒던 두 사람은 미처 광진과 독도를 피하지 못해 셋에게 둘러싸인 채였다.


그 사이 끽 소리를 낸 검은 세단 하나가 더 집 앞에 도착했다.

1174 세현에게 익숙한 번호였다.


“씨부엉.”


낮은 소리로 욕을 읊조린 세현은 더욱 다급히 달렸다.

하지만 빌런인 절제가 문제였다.

일반인이, 그것도 평소 볼 수 없는 무서운 광경을 보고 거의 넋이 나간 절제가 멍하니 달리기만 하다가 울퉁불퉁한 시골 길의 돌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만 것이다.

그 탓에 앞서 달리던 세현도 함께 한 바퀴를 구르며 철퍼덕, 큰 소리로 넘어졌다.


“아오! 야!”


세현이 급한 마음에, 아픈 몸을 신경 쓸 겨를 없이 벌떡 몸을 일으켜 절제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새로 온 세단에서 나온 다른 정장 무리들 넷이 더 빨랐다.


“어이, 한세현아, 임마야, 그만하자잉?”


오른 쪽 볼에 큰 상처를 단 남자가 세현과 아는 채를 하며, 세현의 무릎 앞으로 구두 앞코를 내밀었다.


“아오! 야! 이, 빙구가! 빨리!”


세현이 겨우 일어난 절제를 질질 잡아끌며 그를 밀치고 다시 달리려했지만, 턱, 남자가 절제의 가방을 붙잡았고, 둘은 네 사람에게 완전히 둘러싸여졌다.


“아가, 힘 빼지 말고 가자, 응? 같이 가자잉. 응?”


남자가 절제의 가방을 한 손으로 우왁스레 잡아당겼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절제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가방 밑바닥을 적시며 자신의 손을 붉게 물들이는 액체에, 어깨를 움찔거리며 천천히 냄새를 맡았다.


“이거시, 뭐시다냐.”


“술 아닙니까. 형님. 와인 같은데요.”


절제를 잡은 남자의 옆에서 세현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남자가 고개 숙여 킁킁 거리며 대답했다.


“와, 따, 이 자식, 뭐냐. 가방에 술은 왜 챙겨 썼냐.”


“술....”


묘한 표정을 지으며 절제를 비웃던 두 사람의 대화에, 지금까지 인형처럼 붙잡혀 있던 절제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곧 다급히 가방을 풀어 헤쳤고, 이내,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절제의 그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상태를 본 네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양 손에 깨진 카메라 렌즈를 들고 서서 제정신 아닌 사람마냥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 탓에 네 사람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그건 세현도 마찬가지였다.

절제는 빙구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었다.


“뭐 하냐, 아가야. 가자. 어, 미학 형님! 아가 여기 있어요이! 그냥 나오...! 뭐, 뭐 임마, 뭐야!”


“야...이...어쩔꺼야! 내 안마권! 카메라! 내 노동의 댓가! 내, 내! 내 인격을 억누른 댓가가! 내가 왜 빙구가 됐는데!”


절규에 가까운 절제의 외침과 웃는 듯, 우는 듯, 괴기한 표정으로 날카롭게 깨진 렌드를 꽉 붙잡아 들고 휘, 휘, 휘두르는 절제의 행동에 주위에 있던 정장들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야, 이! 못 된 것들아! 나한테 왜 그러냐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우어어엉. 내가! 서러워서 진짜! 이 못돼먹은 것들! 렌즈가 빨개졌어! 빨갛게 피를 흘린다고, 내 렌즈가!”


급기야, 엉엉 울기까지 하면서 양 팔에 힘을 주어 날붙이를 흔드는 절제를, 네 사람이 다시 다시 잡지 못하고 서서 머뭇거렸다.


“그러니까요! 큰 형님! 그냥 큰 형님이! 집 가서 알겠다고만 하라고요!”


“절제님! 아니! 형, 형수님!”


“뭐, 뭐냐, 미쳤냐?!”


절제의 울음소리에 김실장의 외침과 머리의 외침까지 뒤섞여 소란스러워진 상황에, 넋을 놓고 절제를 보던 세현은 문득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저 멀리서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미학을 보곤 정신을 차렸다.

세현은 곧,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을 세게 물어뜯었고,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하며 ‘내 인생에서 이제 꺼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절제의 목덜미를 잡아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신 타지 않겠다던 미학의 차로 달렸다.


‘그래, 제발 내 인생에서도 사라지면 좋을 것 같다. 빙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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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관심과 스토킹의 차이를 설명해주지. 1 20.11.10 20 0 19쪽
16 16. 내가 모르는 네가 어디 있는데? 20.07.02 49 0 14쪽
15 15. 미미의 빙구는 너무 보고 싶은데?! 20.06.21 14 0 16쪽
14 14. 우리 이리 온, 빙구. 미미가 부르잖아. +1 20.06.15 25 2 13쪽
13 13. 파티 원 모집은 아찔하게. 20.06.13 37 1 14쪽
12 12. 휴게소에서 광란의 파티를. 20.05.31 30 0 15쪽
11 11. 빙구와 미미의 죽음의 레이스. 20.05.29 29 1 14쪽
10 10. 오구오구오구 = 오, 우리 빙구(×3). 20.05.27 24 0 14쪽
9 09. 납치 아니고, 야반도주. 20.05.24 26 1 16쪽
8 08.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2 20.05.22 25 0 13쪽
7 07.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1 20.05.17 27 0 15쪽
6 06.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서 잡아먹을 거냐고요. 20.05.17 31 1 11쪽
5 05. 친근해지려고. 20.05.16 42 0 12쪽
4 04. 사람은 오래 만나봐야 아는 거라더니. 20.05.16 61 0 15쪽
3 03. 일 하느라 그랬다고요? 20.05.16 46 0 14쪽
2 02. 미안합니다. 20.05.16 32 1 13쪽
1 01. 만남과 만남. +1 20.05.16 92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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