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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학

웹소설 > 자유연재 > BL, 로맨스

쓰다A
작품등록일 :
2020.05.16 20:45
최근연재일 :
2020.11.10 23:35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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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5
글자수 :
110,014

작성
20.05.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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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6.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서 잡아먹을 거냐고요.

DUMMY

탁.


절제가 큰 소리로 수저를 상 위에 내려놓았다.


“안 먹을 거예요.”


청천 벽력같은 절제의 말에 근 3일간 절제의 앞으로 옮겨지지 않은 반찬들이 언제 옮겨 갈 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열심히 밥 위에 반찬을 올려먹던 이들이 손을 멈추었다.


‘이번엔 뭐냐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입 밖으로 뱉어선 안 되는 절규를 하고 있는데 절제가 자신의 앞에 놓인 죽을 두 눈을 부릅뜨며 노려봤다.


“도대체 언제까지, 죽을 먹어야 해요? 물려서 못 먹겠어요.”


“일주일새 2번이나 체했습니다. 괜찮다고 해서 이것저것 준 게 잘못인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럼, 이번 식사까지는 드세요.”


‘그건, 네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잖아.’


절제 자신이 체하게 된 원인은 언제나 미학이었건만, 원인 제공자는 조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절제를 병약한 소년 취급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뭐해서 할 수도 없는 말을 속으로만 읊조렸다.


안 그랬다간 식탁 앞에 앉아 식사하는 내내, 절제와 미학을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저 불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이 또 단체로 체하여서 밤새 끅끅 거려야 할 것 같아서였다.

저들이 안쓰러워서라는 이유보다는,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토악질하는 소리를 밤 새 들으며, 밤잠을 설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정말 괜찮아요. 이틀이나 죽 먹었으면 됐잖아요.”


미학이 나쁜 뜻으로 이러는 것도 아니고, 친해지고 싶고, 자신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이유라는데, 게다가 죽이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을 수 있나 싶도록 돈칠을 가득한 것 같은 것들을 주기에, 절제는 지난 이틀간은 별 말 없이 잘 받아먹긴 했다.

하지만 삼일 째가 되어보니 튼튼한 절제의 이가 어서 씹을 수 있는 음식을 입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아우성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예를 들어, 고기, 아니면 고기, 아니면 고기 같은 것으로!


“다음 식사는 원하는 대로 준비 할 테니까, 먹던 건, 마저 드십시오.”


지난 열흘 간, 절제의 건강 문제에 관해서는 꽤 단호하게 반응 해 왔던 미학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세현이 눈빛으로, 제발 그냥 주는 대로 먹으라, 압박을 가해왔지만 절제에게 세현의 압박은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수용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사육까지 하세요?”


절제의 목소리는 감정이 상당부분 배제되어있었지만, 자리에 있던 모두는 절제의 감정을 꽤나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사육’이라니, 다른 사람에게 말 했다면, 재미없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며 넘어갔겠지만, 절제와 미학을 제외한 모두는 절제가 선택한 단어에 심각성을 느꼈다.

요 근래 미학이 절제를 대하는 것은, 자신들의 곁을 떠나기 직전의 멍이를 돌볼 때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고, 절제가 선택한 단어에 단어 선택이 아주 탁월하다며 칭찬마저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육....”


절제가 한 말을 조용히 곱씹은 미학이 허공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사-육이라고...그게...나쁜 건가?”


“뭐...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절제와 두 눈을 맞추며 묻는 미학에, 이번에는 절제가 미간을 좁혔다.


알면 알수록 이상한 사람이다.

대화 할 때마다 종종 핀트가 어긋난다고 생각했는데, 사람한테 사육 하는 게 나쁜 거냐니.


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그게 나쁘고 좋고의 문제인가?


“저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서 아주 잡아라도 먹게요? 아니면 같이 산책시키고 집 지키라고 하게요?”


미학이 무언가 이해가가지 않는 모양인지, 목을 긁적이며 아리송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수저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 어쩐지 오늘은 조용히 밥 잘 먹는다 했어. 좀, 그냥 먹게 하면 안 돼?!’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속으로 절규했고, 세현이 내일은 꼭, 사장님에게 절제와 단 둘이 식사를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되나?”


이 사람은 이상한 정도가 아니다.

어쩌면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절제는 자신의 평화와 평정심이 와장창 깨지는 기분을 느꼈다.


“뭐라고요?”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우면 안 되는 겁니까.”


“뭐....”


“같이 사책하고, 집 보는 건,...예정에 없었지만...앞으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절제가 입을 떡 벌리며 미학을 보았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멍이와 같은 선상에서 본 것이었다니! 한절제 = 멍이2 였다니!’


절제와 사장의 사이를 보며, 절제를 부럽게 바라보던 머리가 처음으로 절제를 측은히 여겼다.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니, 그래서였다니.


입을 힘껏 벌린 채,, 두 눈을 깜박거리는 절제가 미학에겐 멍이 정도로는 퍽 귀엽게 보이는 것이어서, 그 상황가운데서 미학만이 안정감을 갖추고 있었다.

미학이 평의한 어조로 ‘이것 봐, 이렇게 예쁜데. 안 못나지게 잘 먹이고, 잘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야지.’하는, 절제가 기함할 소리를 했다.

절제를 포함한 모두가 팔에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에 양 팔을 문질렀다.


“제가...무슨...이 집, 개에요?”


넋 나간 표정으로 묻는 절제의 물음에, 미학이 왜 그러냐는 듯 의문을 가득 담아 절제를 바라보았다.

절제가 그 어처구니 없는 미학의 낯짝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그것도 안 되면...잡아먹게요?”


“...글쎄요....”


절제의 작은 물음에 미학이 불안하리만치, 매우 고심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에 여기저기서 헉, 하고 숨을 크게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장님이 어쩐지 여자를 안 만난다했더니, 저런 취향이었구나.’


하필, 저 속 모를 사장에게 걸린 절제를 불쌍해해야할 지, 드디어 사람을 사귀는 사장님을 축하해야 할 지, 자리에 모인 모두가 속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별안간 하얗게 얼굴이 질린 절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육 먹으면 병 걸려 죽어요!”


세현이 속으로 쌍시옷 욕을 중얼거렸다.


어쩐지 저 이상한 것으로 치면 전 우주에서 손에 꼽을 것 같은 사장이 평범한 사람한테 잘도 마음이 갔다고 했다.

그래, 집에 있으란다고 나갈 시도도 안 하고 얌전히 집에 있을 때부터 저 한 절제를 알아봤어야 했다.


아니, 그 김상윤인지 뭔지, 지랄 맞은 친구랑 같이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직 숨어있을 날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앞으로 저, 이상한 것 둘이 얼마나 난리 법석을 떨까.


세현은 지난 날 자신이 절제의 명복을 빌어주며, 목숨만은 살기를 바랐던 것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그렇게....필사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아는데. 귀엽게.”


아니, 저 사장을 만난 것 자체가 후회이다.


세현은, 아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두 손을 불끈 쥐며, 목으로 넘어갔던 것들이 다시 입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그리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온 몸의 핏기가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무 깊이있게 체험했다.


'귀엽다고 했어, 지금, 저걸? 저 사장이?'


어미 소가 아기 소를 낳는 장면을 보면서 귀엽다고 했던, 그 취향 독특하다 못해 이상한 사장이 지금 저 멀쩡한 남자를 보고 귀엽다고 했다고?!


만약 절제가 그 사실을 안다면, 미학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그 놀라운 스펙트럼 안에 자신이 속한다는 것을 상당히 기분나빠하겠지만,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런 것을 알려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목숨이 더 소중하긴 했다. 밥줄도, 더불어 평안한 휴식시간도.


무엇보다 지난 주, 브루마블에서 절제를 파산시켰다가 그 사장에게 정직하고 올바른 금전 관계와 측은지심에 대해 두 시간 동안의 교육을 빙자한, 혹독한 얼차려를 받지 않았던가.


그것으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혹독한 얼차려 후에, 쉬지도 못하고 바깥일을 처리하러 나갔어야만했다.

그 후에는 또 어떠 했던가 녹초로 돌아와 자려하는데, 다시 한 번 더 불려가 갑작스런 업무 보고와 2차 얼차려가 시작되었었다.


그 결과, 브루마블에서 절대 한 절제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까지 돌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서, 저 사장이 한절제를 그냥 멍이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이 최악의 상황에서, 절제가 사장의 '귀여움'의 취향을 알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사장을 변태 보듯 보기라도 한다면, 그 날 그 시로 그 일에 대해 분 사람은 아마, 두 눈 앞에서 어미 소의 순산을 관람하며 얼마나 아름답고 귀여웠는지 A4용지 3장에 10포인트로 빽빽한 소감문을 작성해 제출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이거 여간 큰 일이 아니었다.

가장 고참, 병찬이 불안감에 이를 악물었다.

쌍시옷 욕이 절로 중얼거려졌다.


그 동안 은근히 절제를 협박했던 것을, 저 사장에게 절제가 말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주 난리가 날 것이다.

어쩌면 마당을 온 몸으로 구르며, 절제에게 간절히 사과를 빙자한 구조요청을 해야 할 판이었다.



*



고요한 밤, 그 적막한 어둠 속에서 절제가 어둠에 덮쳐져 잘 보이지 않는 천장을 바라보며 두 눈을 깜박였다.


오늘 아침식사 때, 미학이 던진 폭탄은 그 식사 시간 이후로 회자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절제를 볼 때마다 고장 난 로보트처럼 멈칫 한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고, 이상했지만, 그것 빼고는 언제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굉장히 멍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개 취급한다는 것도 놀랄 일이었다.

그런데 ‘인육을 먹을 생각이 없으면서 잡아먹겠다는 것은 역시, 그런 뜻인 거지?’ 하는 생각까지 드니 머릿속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고백을 받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마치, 괴도의 범죄 예고장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어서.

당황스럽고 싱숭생숭한 것이, 두근거리는 그런 설렘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매우 두려운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정말로 이제는 평정심을 찾아 살기는 글렀나보다.

아니, 애 저녁에 김상윤을 만나고부터 그른 일이긴 했지만.

어쩐지 그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은 불안감이 절제를 덮쳐왔다.


앞으로 한 달 더라고 했는데.


‘한 달을 어떻게 지내야하지....’


갑자기 이는 두통에 절제가 한 손으로 머리를 집었다.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바보 같다고 해야 할지, 사람이 참 느슨하다고 생각해야 할 지, 세현의 생각대로 자기가 먼저 나가거나, 외부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어쨌든 다른 차 선택은 하지 않는 절제는, 제 고민의 절반이 상황에 대한 자신의 무비판적 수용으로 일어나는 일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결국, 괜한 고민만 하며 밤을 지새우는 절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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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오구오구오구 = 오, 우리 빙구(×3). 20.05.27 23 0 14쪽
9 09. 납치 아니고, 야반도주. 20.05.24 26 1 16쪽
8 08.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2 20.05.22 25 0 13쪽
7 07.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1 20.05.17 27 0 15쪽
» 06.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서 잡아먹을 거냐고요. 20.05.17 31 1 11쪽
5 05. 친근해지려고. 20.05.16 41 0 12쪽
4 04. 사람은 오래 만나봐야 아는 거라더니. 20.05.16 61 0 15쪽
3 03. 일 하느라 그랬다고요? 20.05.16 4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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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1. 만남과 만남. +1 20.05.16 92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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