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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학

웹소설 > 자유연재 > BL, 로맨스

쓰다A
작품등록일 :
2020.05.16 20:45
최근연재일 :
2020.11.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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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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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수 :
11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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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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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4. 우리 이리 온, 빙구. 미미가 부르잖아.

DUMMY

"정말, 여기 그냥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요?"


"그럼요. 내가 말 했잖아. 괜찮아. 우리 같이 빅 엿을 줘보자고."


"예?"


태남이 말미를 흐리며 '빅 엿'을 작게 중얼거리자 모텔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은 절제가 두 눈을 깜박이며 태남을 보았다.


"뭐...더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더 재밌을 것도 같은데...내가 그렇게까지...음...그래,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아서?"


"네?"


"이건 뭐 신경 쓰실 거 없고,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절제씨. 이 일이 끝나면 아마 자유의 몸이 되실 거예요."


태남의 미소가 얼굴 가득 진하게 번졌다.

멀리서 그 악마같이 웃는 얼굴을 보던 지운이 인상을 구겼고, 천천히 핸드폰을 들어 귓가에 가져갔다.


"계장님, 저...서울 올라가면 당장 담당 검사님 바꿀 수는...없는 거겠죠."


핸드폰 건너편에서 허허, 하는 난감함이 가득 담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옆에 섰던 찬혁도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전생에 아주 큰 죄악을 저질렀지. 저질렀어...."


"자, 우리는 다른 준비를 좀 해볼까요?!"


두 사람의 앞으로 짝, 하고 큰 소리로 박수를 치며 태남이 다가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운과 찬혁이 작게 한숨을 쉬며 탐탁지 않은 태남의 작전대로 몸을 움직였다.

이 황당무게한 상황에, 절제를 힐끗 본 찬혁이 끌끌 혀를 찼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참...."


절제가 모텔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않아서 세 사람이 흩어지는 것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미학과 통화를 한 것을 보면 정말 아는 사이가 맞는 것도 같았고, 미학이 뭘 잘못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사가 쫒을 만큼의 잘못은 했다는 것인데, 그 사건에 의도치 않게 끼어버린 절제를 구해주겠다는 박태남이라는 검사가 미심쩍었다.


태남이 구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미학이 태남에게서 절제 자신을 구하러 오는 것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협박 아닌 협박으로 미학과 있는 것이 맞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미학과 있었을 적에, 딱히 절제에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조금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황이 있기는 했고, 그래서 바로 그제 밤 까지만 하더라도 도망가려고 했지만, 막상 벗어나게 해준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아니, 그래서라기보다는 박태남이라는 저 검사와 같이 있으면 같이 있을수록 묘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박태남의 아이디어에 미학이 반응한 것을 보면, 분명 효과가 있는 아이디어인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라는 것이, 절제가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이상했다.

모텔 중앙에 절제가 앉아있는 사진 하나를 보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니, 처음에는 태남을 전혀 믿지 못 했다. 그러나 그에 미학이 넘어왔다.


최근 미학의 태도를 떠올려 보자면, 애매하게 대답을 하고, 수상한 것이, 어쩐지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싶기도 했다. 하지만 미학이 일부러 절제의 사진을 흘렸다는 것도 완벽하게 믿기 어려웠고, 그렇기 때문에 태남이 미학을 잡아야 절제가 완전 해방된다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어쩐지 태남이 완벽히 악역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절제의 사진을 보내면, 잠적하러 도망중인 미학이 알아서 태남을 찾아 올 거라는 것도 상당히 의아했다. 태남에게서 풍겨지는 분위기나 절제 자신이 느끼는 묘한 거부감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상황은 그러했다.


게다가 미학은 어떻든 간에,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먹여주고 재워주던 사람이었고, 자신이 그런 미학의 뒤통수를 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괜히 한다고 했나, 절제의 심장이 쿵쿵 거렸다.


일이 일어난 순차나 현재 상황, 여러 가지 입장을 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절제 자신을 배신자라고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정확히는 몰라도 어딘가가 확실히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절제에게로 죄책감 비슷한 것들이 마구 몰려왔다.


“저기, 근데, 검사님.”


“네, 네, 절제씨는 그대로만 있으면 되요.”


“그, 정말 사장님한테는 불이익 같은 거 생기는 건 아닌 거죠? 조사만 받는 거 맞죠? 조사 안 받으면 더 위험해서 그러는 거 맞죠?”


“어...이쿠. 그걸 몇 번이나 묻는 거예요. 괜찮다니까요.”


태남이 절제의 물음에 단번에 미간을 구기고선 뜸을 들였다. 곧 씨익, 누가보아도 만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절제를 다독거렸지만 절제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하긴 했지만, 한 명은 검사였고, 한 명은 신원이 애매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공직자를 믿어보는 것이 좋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남이 그런 절제에게로 다가와 어깨를 잡아 눌러, 다시 의자에 앉힐 때였다.


쾅, 소리를 내며 모텔 문이 부셔져라 강한 힘에 못 이겨 열렸다.


“뭐 하는 거야!”


방 안이 울리도록 커다란 소리로 외친 미학이, 절제와 태남을 동시에 노려보았다. 특히 태남의 손을 찢을 듯이 노려보며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뭘...하는 것 같은데?”


자신을 노려보는 미학을 보고는 크게 놀란 사람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던 태남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여유를 찾아 웃으며 절제가 앉아있는 의자 팔걸이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절제와 가까이 앉았다.


충동적인 도발 같은 것이었다.

태남은 필요 이상으로 미학에게 미움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름만큼 절제된 생각을 하는지, 저 맹한 녀석이 미학을 걱정하는 것과 미학이 부주의하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텔에서 소란을 피우는 이 상황이 조금 기분이 상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쌍방으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서 배가 아파왔다.

자신이 이런 도발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리와.”


“뭐?”


미학이 여전히 매서운 눈을 한 채로 절제를 보며 손짓했다. 태남이 그런 미학을 보며 얼굴을 구기며 절제 대신 물음으로 대답했지만, 미학은 태남에게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절제만을 보고 있었다.


그 매섭고 집요한 눈빛에 절제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잔뜩 인상을 쓴 태남과 미학을 번갈아 보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절제는 이런 상황에 낄 일이 전혀 없었다. 태남이 미학을 붙잡아 두고, 자신은 방을 빠져나가야 했다. 상황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마치, 절제 자신이 미끼가 된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없는 미끼.

그게 사실이었지만, 미학과 태남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는 모르는 절제였기에, 당장 미학, 태남과 마주하는 상황이 오게 되어서야 태남이 자신을 미학을 만날 구실, 그런 의미의 미끼인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이-리이-와. 우리 빙-구.”


미학 특유의 말투가 절제의 귀에 확 꽂혀 들려왔다. ‘빙구’에 유난히 힘을 실어 말 하는 미학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절제가 미학에게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정하지 못 하고 태남을 힐끗 보았다. 태남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자신을 보지 않는 미학만을 보았다.

그런 절제를 보며 미학이 다시 한 번 더,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이이-리-오라고. 미-미가. 부르잖아.”


당장이라도 자신을 손으로 잡아 일그러트릴 것 같은, 처음 보는 미학의 모습에 놀란 절제가 오히려 움직이지를 못 한 채로 멍하니 미학만을 바라보았다. 태남이 씨익 웃으며 ‘그게...애칭이었어?’ 하고 중얼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절제가 앉은 의자를 발로 차 넘어트렸다.

그 때문에 바닥에 우스꽝스럽게 엎어질 뻔한 절제를 미학이 간발의 차로 잡아주었다.

갑작스러운 태남의 태도에 절제가 어리벙벙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자, 태남이 성난 얼굴로 와-악, 소리를 질렀다.


“하, 웃기지도 않네. 뭐? 미미? 미이-미이?! 빙구?!”


태남이 자신의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고서 발을 들어 의자 뒤에 있던 더블베드 침대를 신경질적으로 찼다. 그러나 미학은 그런 태남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절제를 안아 든 채로,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놀란 것은 절제뿐이었다.


지운은 태남을 보고 ‘저것도 검사라고....’태남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계획대로 문 앞을 막아섰다.

곧이어 찬혁이 핸드폰을 들어 찰칵, 태남을 제외 한 모텔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재빠르게 달렸다.

뒤 늦게 들어온 머리와 세현이 찬혁을 붙잡기 위해 그 뒤를 쫓아가는 것을 보며 미학이 ‘아-아.’하고 감탄사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뭐, 원하던 그림은 이게 아니긴 했는데...그래도 이것도 재미있겠네. 그지?”


미학의 뒤에 남겨졌던 태남이 어느새 옆에 다가와 삐딱하게 섰다.

그제야 절제는 미학에게 안겨 있던 자신을 인식하며 버둥거렸고, 겨우 미학의 품에서 빠져나와 태남과 미학의 사이에 섰다.


“이게 뭐예요?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절제가 들은 계획안에 사진은 없었다.

무엇 때문에, 왜 그 사진이 필요 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굉장히 꺼림칙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미학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사진에 찍혔다. 무려, 안겨 있기까지 한 그 민망한 사진을 태남이 어떻게,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알 수 없어, 절제는 굉장히 불안 했다.


“사진은 뭔데요. 초상권 침해시거든요? 어제부터 계속 법을 어기시네. 검사님이.”


“그러는. 절제씨는 어제부터 계속 맹하시네. 괴롭히고 싶게.”


태남이 절제의 말을 맞받아치며 절제의 머리에 손을 올리자, 절제 자신보다 먼저 미학이 태남의 손을 세차게 쳐 치웠다.


“그러게. 재미있는 그림이겠어. 박태남. 나도 재밌는 그림 하나 준비했는데.”


미학의 말과 동시에 바깥에서 쾅, 하는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모텔 방의 창을 통해 들려왔다.

그 커다란 소음에 태남은 인상을 찌푸리기보다는 환하게 웃었고, ‘왜, 뭐, 우리 차라도 폭발시켰어?’하는 물음을 소름끼치도록 들뜬 목소리로 물어왔다. 태남의 그런 비상식적인 반응에 절제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뒷걸음질 쳤다.


“내-가. 그렇게나...너그러워보였나?”


“검사님...검사님 이름으로 배달 된 퀵에서...자료가 아니라 메뚜기 때가 나와서 사무실이 지금 통제 불능하게 난장판이 되어서 당장 인터넷 사용이 어렵다고 하는데요.”


“서프라이즈 선물인가?”


바로 등 뒤, 머리 위에서 크게 울리듯이 들려오는 미학의 낮은 목소리와 문을 막을 때부터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 대고 있던 지운의 말이 맞물려 들려왔다.

일반적이지 않은 그 상황에, 태남이 밝은 목소리로 ‘서프라이즈 선물’을 운운하자, 절제는 온몸을 딱딱하게 굳힐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있는 공간에 제정신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듯 했다.


‘미친...미친 것들...!’


“검사님께서...! 그러시면...! 공무 집행 방해에 공직자 사칭에 공공기물 파손으로 잡아,,,,”


지운이 짜증스럽게 태남을 부르며 말하던 중에, 미학이 굳어있는 절제를 잡아끌었다. 그리곤 지운이 문 앞을 떡하니 막고 있음에도, 나름 탄탄하다고 자부 할 수 있는 지운의 다리를 단번에 밀며 문을 넘어갔다.


“그렇게 좋아하는 증거를 좀 만들어 보고자 했나봐? 사진으로 장난 좀 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유감이네. 됐어도 원하는 그림은 안 나왔겠지만.”


미학이 중얼거리며 지운을 스쳐지나갔다. 지운이 자신을 스치는 미학을 본능적으로 붙잡았지만, 미학은 어떠한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운을 내려 보면서, 여전히 경악해 굳어있는 절제를 자신의 뒤로 숨기곤 천천히 지운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댈 뿐이었다.

그에 오히려 위압감을 느끼게 된 것은 지운이었다.


“아저씨, 검사라서 이정도로 봐 준거야.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미학의 ‘무섭다.’는 말이 자신을 빈정거리는 것만 같아서, 지운은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지운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미학은 주머니에 있던 커터 칼을 바닥에 던져, 그대로 내리 꽂아 넣음으로써 지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미학은 방 안에서 미친 듯이 웃는 태남을 한 번 노려봐 주고서 유유히 모텔 복도를 떠났고, 절제는 자신을 들쳐 매는 미학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얌전히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미학이 자신의 완력만으로 바닥에 커터 칼을 꽂아 넣은 장면은 여간 충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소리치는 태남의 목소리가 절제의 귀에 내리꽂혔지만, 절제는 그 목소리에 대답을 했다가는 위험하겠구나, 다시 저 사람과 만났다가는 미학에게 무슨짓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미안해. 절제씨! 내가 다음번에는 꼭 구해 줄라니까.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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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관심과 스토킹의 차이를 설명해주지. 1 20.11.10 19 0 19쪽
16 16. 내가 모르는 네가 어디 있는데? 20.07.02 48 0 14쪽
15 15. 미미의 빙구는 너무 보고 싶은데?! 20.06.21 14 0 16쪽
» 14. 우리 이리 온, 빙구. 미미가 부르잖아. +1 20.06.15 25 2 13쪽
13 13. 파티 원 모집은 아찔하게. 20.06.13 37 1 14쪽
12 12. 휴게소에서 광란의 파티를. 20.05.31 29 0 15쪽
11 11. 빙구와 미미의 죽음의 레이스. 20.05.29 28 1 14쪽
10 10. 오구오구오구 = 오, 우리 빙구(×3). 20.05.27 23 0 14쪽
9 09. 납치 아니고, 야반도주. 20.05.24 25 1 16쪽
8 08.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2 20.05.22 25 0 13쪽
7 07.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1 20.05.17 27 0 15쪽
6 06.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서 잡아먹을 거냐고요. 20.05.17 30 1 11쪽
5 05. 친근해지려고. 20.05.16 41 0 12쪽
4 04. 사람은 오래 만나봐야 아는 거라더니. 20.05.16 60 0 15쪽
3 03. 일 하느라 그랬다고요? 20.05.16 46 0 14쪽
2 02. 미안합니다. 20.05.16 31 1 13쪽
1 01. 만남과 만남. +1 20.05.16 90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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