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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학

웹소설 > 자유연재 > BL, 로맨스

쓰다A
작품등록일 :
2020.05.16 20:45
최근연재일 :
2020.11.10 23:35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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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수 :
11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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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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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8.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2

DUMMY

미학이 어두운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더미들을 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아-직, 아무도 안 왔지?”


“네.”


“그래-오면, 이것부터 치우라고 해.”


“네, 알겠습니....”


“아, 아니, 머리는 어디 있어?”


“예?”


성큼, 성큼 앞서가던 미학이 이불 하나를 발로 툭, 찼다.


“지금까지 뭐 했대? 치우라고 해.”


병찬이 다시 마당에 굴러다니고 있는 이불과 빨래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혼자 치우기에는 힘들 것 같은데 이번엔 또 무슨 심통으로 그러는 것인지.

아니, 애초에 이만한 양을 그 힘없어 보이는 절제에게 시킨 것부터가 무슨 심보인지.

아주,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이렇게 고약하게 벌주듯이 사람을 살살 괴롭히는 데에는 도가 텄다.


병찬이 언제나처럼 속으로 제 사장을 욕하며, 머리에게 전화를 거는데, 고요한 마당에서 또렷하게 자신의 귀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찬은 통화버튼을 누르던 손을 멈추고 몸을 빳빳하게 굳혔다.


“아-주, 화가 나셨나봐. 귀엽게.”



*



“뭐예요.”


여러 번 방문을 두드린 끝에, 좀 더 정확하게는 미학이 열 댓 번은 방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절제의 방문이 열렸다.

신경질적으로 연 것은 아니었지만, 두 눈이 확실히 평소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미학은 계속해서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내려 표정을 유지하려했다. 최대한 담담한 척 절제에게 말 했다.

처음 봤을 때도 예쁘다 생각했는데,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이제는 귀여움을 넘어서 재미있기까지 하다. 정말 재미있다. 사람이 존재 자체만으로 재밌기도 하는구나. 미학이 그런 생각을 하며 두 눈으로 찬찬히 절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집안일을 하겠다고 해서 하게 해주었는데, 아-주, 흥미롭게 일 처리를 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키가 큰 미학이 팔짱까지 끼며 절제를 내려 보는 것이, 절제에게는 조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열린 문을 닫는데, 미학이 빠르게 문을 잡았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요?”


“뭐, 뭐요?”


미학의 힘에 밀려 결국 한 뼘도 문을 당기지 못 한 절제가 당황스러워하며 말을 더듬자, 미학이 자꾸만 호선을 그리려는 입술을 억지로 잡아 내리며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으로 절제를 보았다.


“전-해달라고 했다던데. 머리가. 내가 들으려고요.”


“아.”


일단 저질러 놓았는데, 막상 닥쳐오니 당황스러운 마음이 더 커진 절제가, 멍청히 입을 벌려 소리를 내었다.

미학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고, 절제와 시선이 부딪쳤다.


“흠, 제가 지금 사육 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절제가 목과 함께 마음도 가다듬으며 천천히 물었다.


“원한다면.”


“수용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죠. 아마.”


“그런데 왜 시키는 것만 해야 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보드게임을 제외하니까 아침 체조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거야...우리 집이니까요?”


“예?”


미학이 뭘 당연한 것을 묻는 거냐는 표정으로 절제를 바라보았고 절제가 멍한 얼굴이 되어서 물음을 띄웠다.


“그리고...유급 휴가 보내고 있으니까? 집에서 보호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 몸이 좀 약한 것 같기도 하고. 이유는 많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서 설명해 주어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가만히 이유를 늘어놓는 미학을 올려보던 절제가 번쩍 떠오른 생각에 버럭, 화를 내었다.


“역시, 일부러 그런 거죠! 빨래!”


“아.”


이번에는 미학이 짧게 추임새를 붙이고는 한 쪽 입 꼬리를 당겨 올려 미소 지었다.

그 모양새가 절제에게는 조금 비열하게도 보였다.


“그 정도도 못 하면, 아무래도 집안일은 안 되겠는데. 너-무 연약하지 않습니까.”


절제가 ‘연약’이라는 단어에 눈에 띄게 반응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정도는 사장님도 힘들거라고요 ! 이불 빨래만 몇 개였는지 아세요?!”


“우리 집 빨래 스케일이 좀 큽니다.”


이불 빨래만 하루에 12개였고, 빨래 바구니에 각종 빨래들로 가득 차서, 커다란 빨래 바구니 네 통이나 나왔다.

그런데 그게 혼자 할 만한 일이라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절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의외로 고정관념이 좀 강하군요.”


“뭐...!”


불합리한 처사에 대한 항의를, 고정관념이 가득한 사람의 불평으로 변모시킨 미학이 기가 찬 절제가 차마 뭐라 말 하지 못 하고, 어버버 거리자 미학이 큰 손을 들어 절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요, 화나요?”


장난 같은 그 말투에 절제가 두 눈을 매섭게 올려 뜨자, 미학이 고개를 쓱, 아래로 내렸다.


“아, 화났구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나한테만. 맞습니까? 귀엽게.”


마지막 단어는 더 작게 속삭이며 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는 미학을 향해, 절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사람가지고 장난해요?!”


“설마요.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진심인데.”


“뭐요?!”


“진심으로 귀엽습니다. 저번에도 말 했던 것 같은데....”


미학이 어깨를 으쓱하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제를 진정시키려는 의도 같아보였지만, 그에 더욱 화가 끌어 오른 절제였다.

오전부터 하루 종일 빨래를 돌려서 오후에야 겨우 빨래를 널기 시작했는데, 그게 전부 미학의 술수였다는 것에 눈이 뒤집혀서 평정심을 잃고 마당에 그 난장을 해 놓았다.

그나마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다잡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속에서 불이 끌게 만드는 것인지, 장난 같은데 장난 같지 않은 부분이 더욱 더 절제의 평정심을 무너뜨렸다.


분명 처음 이미지는 이렇지가 않았던 것 같은데...사람은 첫인상이 전부가 아니라더니. 얼마 전부터 배신감 아닌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절제였다.


“사람한테 감시 붙이고,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던져놓고, 화내는 게 귀엽네, 뭐네 하는 게 장난하고 놀리는 거지 아니면 뭐예요?!”


“아...그-게, 저한테 할 말이었습니까? 그런 거면, 우선 감시가 아니라 보호차원....”


절제가 미학을 확 밀고서 쾅, 문을 닫았다.


“제가 무슨 종이인형입니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노에 찬 절제의 목소리가 복도로 빠져나와 울렸다.

갑작스럽게 몸에 절제의 손이 닿은 탓에, 평소 같으면 밀려나지 않았을 미학이 뒤로 밀려나며 두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이내, 미학의 입가에 잔잔하게 미소를 걸렸다.


“저번부터, 아플 것 같으니까, 뭘 하지 말아라, 뭘 해라, 가라, 마라, 나중에는 아주, 온 몸에 칭칭 붕대로 감고 안고 다니시겠네요?! 저 사장님 종이인형도, 환자도, 반려동물도 아니니까 이쯤 안 하시면 확!”


문고리를 꽉 잡아놓고 나오는 데로 소리를 지르던, 평소라면 절대 그럴 리 없는 절제가 이를 악물며 두 눈을 깜박였다.


뭘 어떻게 해야 사장에게 압박감이 갈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얹혀살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고, 그러면서 월급도 충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사장이랑 딱히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보내서 개인적인 약점을 아는 것도 아니었고, 지난 번의 잡아먹겠다는 발언 이후로는 꺼림칙해서 애써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던 중이기까지 했다.

‘확’ 다음에 와야 할 협박성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하, 씨....”


절제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문 건너편에 서 있을 미학을 떠올려 문만 가만히 노려보았다.


“확?”


문 밖에서 미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사람 성미 긁어대는 데에는 천재인 것이 분명했다. 이 상황에 뒤에 올 말이 정말 너무도 궁금하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질 만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따라하다니....


“...물어버릴 겁니다!”


미학이 한 번 더 ‘확?’ 하고 물어오는 통에 입 밖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리고 곧 후회하게 되었지만 이미 내뱉어진 말 이었다.


문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절제는 그것이 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저 이상한 사장이 도대체 어떤 얼굴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짐작조차가지 않아, 굉장히 불안했다.


“그거 참...기대됩니다.”


그리고 그 불안한 예상은 적중했다.


“저...미친....”


비꼬는 어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기대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절제가 멍하니 문에 대고 중얼거리는데, 문 건너에서 미학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근데, 그것도 나만 무는 겁니까? 아무나 물면 안 될 텐데. 예뻐서.”


그 소리에 벌컥, 절제가 다시 문을 열었고 미학이 한쪽 팔짱을 끼고서 한 손으로 목의 언저리를 쓰다듬는 자세를 해, 굉장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지 두 눈을 아래에 떨어트리고 있었다.


“진짜 붕대로 감아 놓아야 하나....”


‘그래, 내 입이 문제다. 입이. 역시, 분을 내면 입이 생긴다 생겨.’


절제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미학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곧 미학과 시선이 맞닿자마자 탕,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못 있을 곳에 온 것 같다.

앞으로 정말 한 달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정말...도망이라도 가 버려...?”


왠지 미학이 문 앞에서 서 있을 것 같기만 해서 똑딱, 문을 잠그고 침대로 가서 누워 문만 노려보던 절제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굳이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있을 필요까지야 있을까싶었다.

저번에 가게로 들이닥쳤던 그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렇게 확실히 기억할 것 같지도 않았다.


지난번에 처음 집에 왔을 때에는 하도 경황이 없고, 느껴지던 위압감과 집 전체에 풍겨지는 강렬하고 고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런 저항감 없이, ‘알겠습니다, 알겠어요.’만 하다가 결국 이렇게 되었는데, 집에서 지내다보니 처음 느꼈던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뭐가 크게 위험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집 안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분위기도 그러했고,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왜인지, 나가서도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게로 쳐들어 왔던 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게 큰일이겠어?’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한 절제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곧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다가 몸을 움직였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가방도 필요하다고 할 걸 그랬네.”


가게에서 도망쳐 나올 때 가지고 있던 가방에 늘어난 소지품들을 주워 담은 절제가 중얼거렸다.

마음 한 켠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를 차지하고는, 절제를 말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 하는 이 상황에 계속해서 놓이고, 저 제정신 아닌 사장과 함께 한 달을 버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한 절제, 정신 차려. 네가 평정심을 잃을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잊었어?’


이미 미학을 만난 첫 날 평정심을 잃었었고, 그 일을 계기로 일이 이렇게 까지 발전해 버리긴 했지만 더 이상 무언가가 잃어나는 것은 사양이었다.


살금, 살금 도둑마냥 조용히 복도를 지나 제발 문소리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절제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으악!”


“악!”


그리고 한 뼘 정도 문이 열렸을까,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뭐, 뭐야! 아, 한절제?!”


문의 반대편에서 안으로 들어오려던 세현이 어둠속으로 발을 뻗다가 조용히 기어 나오던 절제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질렀다.


세현과 절제 모두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절제를 보던 세현이 번쩍 눈을 빛내며 재빠르게 몸을 숙여 절제의 어깨를 잡았다.


“뭐야! 드디어 튈 생각을 한 거야?!”


“뭐, 뭐?!”


공기가 많이 섞인 세현의 목소리, 자기 딴에는 작은 소리로 한 것이었지만 고요한 밤 속에서 굉장히 크게 들려왔다. 그에 당황한 절제가 양 손으로 세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라는 거야! 좀 조용히 해!”


최대한 작게 속삭이는 절제의 손을 거칠게 떼어낸 세현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끌어당겨 입을 북북 문질러 닦곤 끌끌 혀를 찼다.


“왜 그걸 이제야 생각한 거야. 이 멍청아.”


“뭐?”


“이미 늦었잖아.”


세현이 두 눈을 굴려 뒤를 가리켰고, 절제의 두 눈 또한 그 눈짓을 따라 세현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점점 다가오는 어떠한 물체, 아니 인영이 있었다. 이제 제법 매우 익숙해진 인형이.


“깜찍하기까지 하네요.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미학이었다.


세현이 자신의 두 입을 틀어막으며 올라오는 구토를 참아내었고, 절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온 몸에 돋아나는 소름에 두 손으로 양 팔을 부볐다.


‘타이밍 한 번 거지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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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관심과 스토킹의 차이를 설명해주지. 1 20.11.10 2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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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파티 원 모집은 아찔하게. 20.06.13 37 1 14쪽
12 12. 휴게소에서 광란의 파티를. 20.05.31 30 0 15쪽
11 11. 빙구와 미미의 죽음의 레이스. 20.05.29 29 1 14쪽
10 10. 오구오구오구 = 오, 우리 빙구(×3). 20.05.27 24 0 14쪽
9 09. 납치 아니고, 야반도주. 20.05.24 26 1 16쪽
» 08.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2 20.05.22 26 0 13쪽
7 07.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1 20.05.17 28 0 15쪽
6 06.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서 잡아먹을 거냐고요. 20.05.17 31 1 11쪽
5 05. 친근해지려고. 20.05.16 42 0 12쪽
4 04. 사람은 오래 만나봐야 아는 거라더니. 20.05.16 61 0 15쪽
3 03. 일 하느라 그랬다고요? 20.05.16 46 0 14쪽
2 02. 미안합니다. 20.05.16 32 1 13쪽
1 01. 만남과 만남. +1 20.05.16 92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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