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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학

웹소설 > 자유연재 > BL, 로맨스

쓰다A
작품등록일 :
2020.05.16 20:45
최근연재일 :
2020.11.10 23:35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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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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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수 :
110,014

작성
20.05.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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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2. 미안합니다.

DUMMY

“야! 절제야!”


절대 뒤 돌아 보지 않는다.

저건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저 놈은 친구새끼가 아니다.


막, 알바 중인 빵집을 나온 절제는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삼십분이나 자신을 기다린, 필시 불쌍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그런 것이 빤한, 상윤을 지나치며 걸음을 빠르게 했다.

사실 잘못을 따지자면 상윤의 잘못은 아니었고, 자신이 괜스레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동안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자꾸만 8년 전 사건의 잔상이 떠오르고 겹쳐져서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 한절...!”


폭. 하고 누군가의 가슴에 머리를 부딪침과 동시에 뒤에서 따라붙던 상윤의 목소리도 뚝, 끊겼다.


“어...멍이....”


낯은 음성이 느릿하게 머리위에 울렸고, 그 음성을 시발점으로 절제가 몸을 펄쩍 뛰며 뒤로 두 어 걸음 떨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얼굴도 보지 않고 꾸벅 인사한 절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뒤에 서 있던 상윤이 다다다 달려와 절제의 팔을 붙들었다.


“뭐야. 야, 너 이제 그만 하지?!”


“그러지...사과-도 너무 많이 하면 안 되긴 하지.”


상윤의 말을 받아 말을 잇는 남자의 얼굴을 본 절제는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삼 일 전에 본 그 편의점 남자였다.

‘형님’하고 불러야만 할 것 같은 그 사람.


“그, 방금 전에 제가 앞을 제대로 안 보고 걸어서....”


상윤이 무슨 말이냐며 팔꿈치로 쿡 찔러올 때 서야, 절제는 미학이 한 말이 지난번, 자신이 여러 번 사과했던 것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채고, 변명하듯 말했다.

미학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절제와 계속 눈을 맞추었다.

아무 말 없이 자신과 눈을 맞추는 미학의 시선을 피하며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묘하게 다리를 붙잡고 늘어서는 그 시선에 꼴깍 침을 삼키는데 미학이 중얼거린다.


“커피 냄새랑 단 냄새.”


“아, 저, 제가 저기 빵집에서 알바를 해서요.”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이었음에도 저도 모르게 착실히 대답하고 말았다.

그에 미학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음...가게에서는 못 봤던 것 같은데....”


특유의 느린 말투로 눈을 들어 이번에는 절제 한참 뒤에 있는 빵집을 가만히 보더니 미학이 절제를 쓱 훑어본다.

절제는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에 기분이 상할 만도 하건만, 자신을 품평하는 시선이라기보다는 또 묘하게 새 친구를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시선인지라, 그리 기분이 상하지도 않아 그저 미학이 하는 냥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때문에 오히려 기분이 상한 것은 상윤 쪽이었다.


“뭐, 뭐야!”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을 위, 아래로 훑어보다니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절제의 팔을 꽉 잡으며 미학을 향해 조금 건방지다고 느낄 만한 어투를 툭 내뱉어보지만 미학도, 절제도 그에 별 반응이 없었고, 상윤은 괜스레 더 기분이 상해서 절제를 잡아끌었다.


“가자.”


“아. 아. 전-략, 절-전, 절-세. 전-세, 절-수, 절....”


미학이 갑작스레 미간을 좁히며 천천히 무언가를 읇더니, ‘절수’ 이후에 ‘절’만을 반복하다가 확, 얼굴을 피고는 정확하게 절제의 이름을 불렀다.


“절제. 한 절제.”


그에 상윤도 절제도 화들짝 놀라며 ‘넌 누구냐!’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학은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멍멍이가 이 멍멍이였네.”


알 수 없는 말도 중얼거리면서.


절제의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네?”


“인센소(incènso)에, 한 절제씨 맞습니까.”


절제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심히 툭, 절제가 깜짝 놀라도록 절제의 이름을 정확히 내뱉은 미학은 무덤덤했다.

알바 하는 곳이야, 절제 자신이 알려 주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명찰을 달고 근무했던 것도 아니고 통성명한 사이도 아닌데.


입을 떡 벌리고 자신의 알바 처와 미학을 번갈아 본 절제가 어째서라는 중얼거림을 내뱉자 미학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김-미-학이. 제 이름 입니다.”


“예?”


“가게 인계받은 새 사장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 합니까?”

“어...에...미학....”


절제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미학이 고개를 전 보다 더 경쾌하게 끄덕였다.


“근데...그 때 뵌 분은 다른....”


“제 누-나-입니다. 저는 아마 내일 만나게 되었을 거예요.”


“아...하...하....”


절제는 좀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뱉었고, 상윤은 절제가 알바 하는 빵집과 그 새 사장이라는 미학, 그리고 절제를 번갈아보며 조용히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단 말이지.

근데 그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상윤은 미학을 경계하며 좀 더 찰싹 절제 옆에 붙어 섰다.


“우-산 가져다 두지 않아도 됐었는데 다음날 바로 주었다고요.”


미학이 어색하게 웃는 절제와 다시 눈을 맞추었다.


“물건도 주인 잘 찾아 주는 게 진짜 닮았는데....”


“무슨....”


“성실하고 착실한 거 좋죠. 내일 봅시다.”


미학은 좀 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말을 내뱉고서 긴 다리를 쑥 쑥 뻗어서 걸음을 옮겼다.


절제는 한 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 ‘우산은 또 뭐야.’하는 상윤의 보챔을 들어야 했다.

세상이 참 좁긴 좁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계략을 꾸민 것이 분명했다.

새 사장님께는 어찌 되었든 좋은 첫 인상을 심어준 것 같긴 했지만, 참으로 찝찝했다.



*



“그만 좀 와 줄래.”


절제가 폭 한숨을 쉬면서 제 친구이자 원수인 상윤을 가만 보았다.


“왜, 손님도 많이 없는 시간이잖아.”


빵 집 한켠에 마련된 작은 카페테리아 구석에 홀로 앉아 4시간을 죽치고 있는 상윤 앞에 절제가 두 번째 주문인 딸기 스무디를 탁 소리 나도록 내려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온톤 신경은 딴 곳인지 제법 놀랄 법도 하건만 여전히 같은 곳에 시선이 가 있는 상윤을 내려 보며 절제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가 정말 뚫어지겠다.”


“사람이 어떻게 눈빛만으로 뚫어져.”


“마음은 뚫어지겠지.”


“오, 제발. 그랬으면.”


빈정거린 절제의 말에 두 눈을 반짝 빛낸 상윤이 입 꼬리를 씩 올린다.

새 사장님과 같이 일 한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놈의 친구, 행태이다.


첫 만남에는 그렇게도 탐탁지 않아 하더니 몇 번 사장님이 계시는 시간에 놀러 온 후로부터는 이렇게 쭉 부담스럽게 사장님을 눈으로 쫓는다.


처음에는 훑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문신이 마음에 안 든다, 도대체 사람이 그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살아서, 여지까지 편의점에서 알바 하다가 자기 가게라고 차린 게 누나한테 인계받은 빵 집이냐면서, 집에 돈 많은 놈들은 좋겠다고 씹어대던 것이 어디의 누군지 모르겠다.


“정말. 너무 멋지다. 어떻게 저렇게 듬직하고 성실하고 친절한데 잘생기기까지 할 수 있지?”


고개를 흔들며 쯧쯧, 제 친구를 향해 혀를 찬 절제가 시계를 흘끗 보며 대충 시간을 확인하곤 곧 있을 교대를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카운터로 향했다.


확실히 사장이 성실하고 친절하게 일을 잘 하긴 하는데...도대체 어느 부분에 꽂혀서 저러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지난번에 상윤이 제 옷에 순전히 자기 실수로 음료를 쏟아 내었을 때, 버벅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자 사장인 미학이 괜찮으냐며 다가가서 옷을 털어주고,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근무용 셔츠를 빌려 준 이후로 저런다.


손님과 가게 사장의 관계로 보자면 그런 행동이 굉장히 친절하고 다정한, 그래서 어떤 마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유발할 만한 행위이기는 했지만, 사장의 성 정체성을 알지 못 하는 상황이었고, 그 전에 우선 둘 다 남자였다.

상윤이 가게 파트타이머직원의 친구라는 점에서 볼 때는 그저 아, 친절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일인데다가, 평소 상윤이 만나는 스타일과는 굉장히 상반되는 사장의 외모인데 저렇게까지 하니 도대체 뭐 때문인지 알 수 없음이다.


“셔츠 가져다 줄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절제가 중얼거리며 다시 테이블에 앉아있는 상윤과 이번 시즌 메뉴 홍보지를 부착하고 있는 사장을 돌아보자 사장, 미학과 딱, 눈이 마주쳤다.

전에는 눈이 마주쳐도 고개만 살짝 숙이던 이가 이제는 제법 친해졌다고 입술을 살짝 올려 웃기도 한다.


그에 절제도 마주 미소 짓자 사장이 언제나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태를 보곤 언제나처럼 획, 소리가 날 것 마냥 고개를 빠르게 돌려 절제를 노려본 상윤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누구든 보면 알아볼 수 있게 입을 크게 벌리며 입모양으로 말 했다.


‘내 꺼야.’


“하....”


그러니까 왜 그렇게 쉽게 반하냐고. 그리고 사장님 정체성도 확인하고 네꺼 내꺼 하라고.


작년, 졸졸 쫓아다니는 상윤에게 분개해 길 한복판에서 난동을 피우던 그 개차반을 떠올리며 절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헛숨을 내뱉으며 카운터에 섰다.

그러자 홍보물을 다 부착한 사장이 전화를 받으며 들어왔다.


“그-럼...어쩔 수 없겠네요. 알겠습니다. 예.”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걸음을 옮긴 사장이 매장 안을 휘 둘러보고는 목을 긁적였다.


“아...절-제-씨.”


“네.”


이제는 제법 익숙해 진 사장의 느릿한 말투와 낮은 목소리에, 덤덤히 대꾸하자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 하실 시간이네요. 하시죠.”


“어? 아직....”


“세현씨가 지금 몸이 아파서 못 나온답니다.”


“예? 그럼....”


“어쩔 수 없죠. 오늘 손님도 많지 않고....”


“어...지금 없는 거지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에요?”


“그-만 퇴근 하시는 것이 절제씨의 평정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예...에?”


그걸 이 사람이 어떻게 아는 건가. 저 친구이자 원수인 김상윤에게도 말 하지 않은 걸.

절제는 두 눈을 깜박였다.


“어-서 퇴근하십시오.”


미학이 steff-only라고 적힌 문 앞으로 절제의 등을 떠밀었다.

절제가 어, 어, 하며 문에 신발 끝을 부딪쳤고, 사장이 절제의 등 뒤에 서서 고리를 막 돌리려는 찰나, 딸랑거리는 종이 울리면서 덩치가 제법 좋아 보이는 남자 둘이 들어섰다.


“뒷문으로 가시죠.”


절제의 귓가에 낮은 음성이 울렸다.

절제가 그대로 스탭룸에 밀려들어가자마자 탕, 빠르게 문이 닫혔다.


도대체가 무슨 일인건지. 요즈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거나 평정심을 애써 유지하려고 해야 할 상황들이 생겨난다.


절제는 뭐라고 반박할 틈도 없이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손을 들어 미학의 숨이 닿았던 목덜미를 쓸었다.

전혀 그럴 만한 상황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묘하게 보호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서였다.


문을 다시 열려는데 탕, 하고 문에 진동이 느껴졌다.

멈칫한 절제가 의아함을 느끼며 다시 문을 열려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당황스러움에 문고리를 다시 돌리며 밀어보는데 아무리해도 열리지 않는 문에 헛숨을 뱉었다.


“하, 뭐....”


투닥투닥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문에 귀를 대고 바깥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몇 번인가 사람들 발소리가 울리고 딸랑 거리는 문소리 뒤에 정적이 흘렀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당황스러움에 흐트러지는 평정심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사장의 말 대로 가방을 챙겨 스탭룸 사물함 옆, 구석에 자리한 뒷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절제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사람에게 달랑 낚아채져 어깨에 매달렸다.

한 순간 이었다.


너무 놀라 헉 하고 숨을 들이키곤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 한 절제의 시야에, 미친 듯이 자신을, 아니 자신들을 쫓고 있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멍해지는 그런 기분에 ‘하하’하고 헛웃음이 다 나오는 상황이었다.


“꿈인가....”


“그럴 리가.”


멍청히 내뱉은 절제의 말에 단호한 대꾸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답변에, 현실감을 잃었던 절제가 상황을 상기하며 정신을 현실로 붙잡아와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미학이 절제를 고쳐 안으며 절제의 등을 꾹 눌렀다.


“자, 착하지.”


“뭐....”


어린아이 달래는 것만 같은 미학의 말에 절제가 뭐라 대꾸하려 했지만, 미학이 거리 끝에서 급하게 커버를 돌았고, 그 앞에 바로 서 있는 차 뒷 자석에 절제를 던지다시피 밀어 넣었기 때문에 절제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검은 세단은 미학이 문을 닫기도 전에 붕- 하고 빠르게 출발하였다.


“미안합니다.”


평소와 다르게 느리지 않은 말투로 절제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미학을 본 절제는, 이것이 정말 꿈이 아닌지를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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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오구오구오구 = 오, 우리 빙구(×3). 20.05.27 23 0 14쪽
9 09. 납치 아니고, 야반도주. 20.05.24 26 1 16쪽
8 08.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2 20.05.22 25 0 13쪽
7 07. 그러니까, 위험하게, 누가 그렇게 사랑스러우래요? 1 20.05.17 27 0 15쪽
6 06. 먹이고, 재우고, 포동포동 살찌워서 잡아먹을 거냐고요. 20.05.17 30 1 11쪽
5 05. 친근해지려고. 20.05.16 4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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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3. 일 하느라 그랬다고요? 20.05.16 46 0 14쪽
» 02. 미안합니다. 20.05.16 32 1 13쪽
1 01. 만남과 만남. +1 20.05.16 92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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