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말고문
27화 말고문
공병대 이병 시절, 한 두대 구타하던 상병 보다 무서웠던 것이 옆에서 계속 말로 조지는 일병이었다.
따귀 두 대로 망신창이가 된 얼굴의 제이콥은 형수님의 잔소리에 옆에서 보기에 곧 미칠 것 같이 보였다.
“ 현주한테 악령을 빙의시키고 명호 오빠 영혼과 이어주었다는 말이 사실이야? 왜 대답을 못해? MK 그룹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이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그럴 수 있는 거야? 엄마도 당장 불러야겠다.”
폰을 들고 전화를 하려하자 함께 미란의 수다를 참고 있던 상율 선배가 나섰다.
“ 형수님, 잠깐만요. 이 사람 말도 조금 들어보시죠.”
“ MK그룹? 미란이 너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랑 유 명근 회장님이 우여곡절 끝에 일군 회사를 지금처럼 니 것인 것 마냥 행동하는 것도 웃겼지. 니 엄마도 마찬가지고”
“ 그럼 그런 게 서운하다고 얘기를 했었어야지. 팬텀에서 사람을 죽여서 영혼을 빼내는 게 죄책감과 트라우마라고? 뒤에서 자기가 불러낸 악령을 지키자고 송 대식 씨를 보호하려고 만들어낸 거짓말이잖아. 우리를 그렇게 속여 보겠다고?”
“ 팬텀 그 놈들도 그렇게 생각보다 대단한 놈들은 아냐.”
“ 그거였군요. 열등감”
“ 뭐?”
“ 명호 형과 김 회장을 악령과 연결시켜 죽게 만든 것도 그 들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 두려워서였던 거죠. 혹시 자기 뜻대로 이루어져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미래를 보게 될까봐”
“ 악마한테 미래는 없어 이 새끼야!”
내 말을 듣던 대식이 형이 또 다시 흥분해서 손을 위로 쳐들자 제이콥이 두 손으로 얼굴을 막았다.
하지만 토킥으로 조인트를 가볍게 맞자 제이콥이 고통에 다리를 감싸 쥐는 모습이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듯 했다.
“ 악령을 가지고 있는 그 여자의 진짜 영혼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상율 선배가 자기의 전공 분야에 관심을 드러냈다.
“ 악령이 빠져나가면 본래의 육체로 들어오겠지만 지금 어디 있는지는 내가 알 수는 없지”
“ 어제 밤을 새고 생각해 봤는데 이 새끼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
대식이 형이 다시 제이콥에게 다가가자 갑자기 요한이가 뒤에서 대식이 형을 안았다.
“ 형! 안돼요”
제이콥을 죽이려는 건가?
제이콥은 이미 공포에 떨고 있었다.
“ 지금 대식이 형 영혼이 완전히 검게 바뀌었어요!”
“ 뭐? 제이콥이 아니라?”
호텔에서 노트북으로 영국의 스미스와 화상채팅을 하게 되자 로날드는 심심함을 달랠 수 있게되어 기뻤다.
“ 미스터 김 장례식은 잘 갔다 왔어?”
“ 갔다 왔지. 작별인사도 했고...”
“ 어제 나도 잠깐 봤는데 심각한 얼굴로 나한테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어.”
“ 어제 나한테는 별 말 없었는데”
“ 그 회사 우리 지분은 팔 거야?”
“ 수호령 나타나기 전에는 여기서 할 일 없이 있으니까 장례식 끝나면 그 작업이나 하고 있으려고 해. 잠깐만, 제이콥 전화가 왔네”
로날드가 노트북 옆에 있던 폰을 집어 들었다.
‘ 헬로우!’
‘ 헬로우! 저는 제이콥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제시라고 합니다. 수호령 관련해서 급히 통화드릴 일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 제이콥은 어디 있죠? 수호령은 무슨 얘기고요?’
‘ 저는 사망한 박 명호 씨의 위도우이기도 하고요. 지금 제이콥은 다른 신령들과 수호령과 함께 있습니다. 신령들 중에 로날드 씨처럼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이 박 명호씨와 김 영호씨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김 영호 씨의 영혼이 남산 호텔에 있는 로날드에게 전하라는 말이 있는데 만날 수 있을까요?’
‘ 수호령이 제이콥과 함께 있습니까?’
‘ 제이콥이 수호령을 지키려 하고 있는 목적이 있습니다. 만나서 얘기 하시죠’
‘ 내일 오전 아홉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날까요? 그리고 제이콥과 통화 먼저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 잠시만요’
‘ 오케이’
‘ 로날드! 잘 있었어?’
‘ 제이콥! 그 여자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 유 오케이?’
‘ 악령을 봉인 해제 시킨 게 나야. 미안해. 수호령이 날 죽이려고 해. 여기가 어디냐 하면 MK 그룹 빌딩 아악!’
‘ 제이콥 괜찮아?’
‘ 들었죠? 제이콥이 악령을 불러서 박 명호씨와 김 영호씨의 영혼을 연결시켜 죽게 했습니다. 혼란스럽겠지만 저희가 내일 오전 아홉시 로비로 가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제이콥은 무사 할테니 염려마세요’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전화에 로날드는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무슨 일이야? 로날드!”
화상채팅을 하던 스미스가 물었다.
“ 내일 신령들을 만나기로 했어. 그리고 제이콥이 자기가 악령을 봉인 해제했다고 하네”
“ 뭐?”
“ 내가 통화할 때 허튼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소파에 앉아서 전화를 하던 제이콥의 양 쪽 귀를 잡고 뒤에서 나무뿌리 뽑듯 번쩍 들어버린 대식이 형이 또 한 번 제이콥을 협박했다.
영어를 못 하는 대식이 형도 MK그룹 빌딩 정도는 알아들은 것이다.
“ 내일 아침에 저랑 정규씨가 다녀올 게요. 그런데 제이콥은 어떻게 하죠? 여기 묶어놓을 수도 없고”
상율 선배 얼굴을 바라보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벗기시죠. 대식이 형 도와줘요. 요한이 너는 방에서 의자하나 가져와.”
우리가 감금 되었을 때처럼 제이콥의 옷을 벗겨 팬티만 남기고 의자에 묶어 옆으로 넘어뜨려 놓았다.
우리처럼 발버둥을 치고 소리쳐 보았지만 이내 소용없는 것을 알고 잠잠해졌다.
“ 내일 그럼 대식이 형이랑 제가 여기서 제이콥 지키고 있을게요.”
대식이 형을 걱정하는 요한이가 모두에게 공표하듯 선수를 쳤다.
“ 정규 씨랑 둘이 가도 될 거 에요.”
“ 정규는 운전이 서툴러서 제가 운전해서 같이 가겠습니다.”
“ 아니에요. 운전은 제가 하면 되죠.”
상율 선배가 집에 갇혀 있기가 싫은 지 함께 나가려고 했다.
“ 내가 같이 간다. 팬텀에서 원하는 건 난데 정규나 제수씨를 해칠 수 있으니까”
“ 안돼요. 대식이 형. 그건 제가 허락 못해요. 아직도 영혼이 검은 색이라 위험해요.”
“ 막내 비롯해서 모두들 이렇게 합숙까지 하면서 내 걱정 해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내가 정면 돌파하고 이 상황을 끝내는 게 맞다고 밤을 새워 생각했다. 알고 있겠지만 김 회장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북으로 다시 끌려가서 죽은 목숨이야.”
“ 안돼! 쟤네들은 송 대식이 여기 있는 거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지금 밖으로 나간다는 건 자살 행위야.”
“ 저 새끼 입 좀 막아줘라. 상율아”
상율 선배가 제이콥의 입에 박스테이프를 붙여 놓았다.
“ 명호와 김 회장 죽인 저 놈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는 더더욱 없고 너희들 만나서 죽으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 된다는 것도 깨달았으니까 미리 유언을 남기자면 참 고마운 인생이었다.”
대식이 형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모두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 아이고! 대식이 형.”
상율 선배는 대식이 형이 이미 죽은 사람처럼 아예 통곡을 했다.
모두 벌어지지도 않은 상황을 가지고 십 여분의 감정 소모를 마쳤을 때 형수님이 옆으로 쓰러져 있는 제이콥에게 다가가 제이콥의 입에 붙어 있는 박스 테이프를 떼어냈다.
“ 현주가 명호 오빠를 어떻게 죽인 거야?”
“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냐. 테이프 그냥 다시 붙여줘”
“ 삼촌! 이건 내가 꼭 알고 넘어가야 되겠어. 둘이 무슨 일 있었어?”
“ 너는 회장님 살리려고 내가 박 명호와 인연을 만든 거지. 줄리아랑 박 명호가 원래 인연이었어.”
“ 진짜? 그래서 줄리아랑 만나서 어떻게 했는데?”
“ 야! 거기 누가 내 입에 테이프 좀 다시 붙여줘.”
말고문에 절규하는 제이콥을 뒤로 하고 우리는 하나 둘 모르는 척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형수님에게 밤새 시달릴 제이콥이 조금 불쌍했다.
다음날 아침, 지하에서 잠을 깬 우리는 얼마나 시달렸는지 거실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제이콥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 한 번 대식이 형과 번갈아가며 눈물의 포옹을 했다.
“ 요한아! 대식이 형 아직이지?”
“ 네 아직 검은 색이요. 밖으로 안 나가도 되요. 형. 지금이라도 다시 판단해서 마음 바뀌시면 언제든 얘기해 주세요.”
“ 상율이랑 여기 잘 지키고 있어라. 형이 그래도 대한민국 격투기 선수인데 쪽팔리면 안 되잖아. 요한아.”
문이 열리며 미란이 지하 5층 아지트로 들어왔다.
“ 그럼 출발 하시죠.”
흡사 사형수에게 교도관이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 별 일 없을 거고 요한이가 틀릴 수도 있을 거야. 이따가 보자 얘들아.”
짧은 인사였지만 대식이 형과 인간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모두 직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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