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미지의 영혼
13화 미지의 영혼
명호는 사진에 있는 대식의 눈빛으로 다시 들어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밖을 향해 도망쳐 달리는 대식이 형과 옆에서 대식이 형을 보호하며 같이 달리고 있는 트레이너들과 수 많은 관중들.
뒤로는 경기장 건물의 콘크리트들이 도미노 블록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달리고 있는 중에 앞에서 히잡을 쓴 여자가 넘어지자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그녀를 도와주려는 대식이 형.
“ 안돼! 위험해. 대식아”
커다란 돌이 머리위로 날아 왔지만 간신히 대식이 형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고 그녀를 안아 고개를 숙인 대식이 형은 다시 그녀를 번쩍 안고 일어나 뛰기 시작하여 건물 밖 멀리까지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자가 수크란을 연신 외치며 대식이 형이 마치 그녀의 히어로인 것처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발 밑을 바라보니 아까 보았던 경기장 밖 땅에 떨어진 날짜가 적힌 포스터가 보였다.
“ 대식이 형이 테러가 있었던 경기장에서 빠져나와서 살았어요”
“ 다행이야. 오빠”
너무 기쁜 나머지 명호는 함께 기뻐하는 미란을 꼭 안아주었다.
인연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진리지만 인연이 바뀌면 나의 영혼과 수호령의 운명이 바뀐다는 증명 작업은 명호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상율과 정규가 부산의 해운 홈쇼핑 사옥에 도착한 건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이틀 전, 상율이 방문했던 회장실로 들어가니 할아버지 한 명과 비서로 보이는 듯한 안경을 쓰고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양복을 입고 서서 두 명을 반겼다.
“ 또 뵙네요. 김상율 씨. 이 분이 이번에 같이 봉변을 당했던 전정규 씨라는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고 나서 김 회장이라는 할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는 사이비 종교 교주의 말과 다름없이 들렸다.
“ 사고 얘기에 앞서서 두 분이 서로 이승에서 만나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은 아시나요?”
“ 네?”
“ 두 분의 영혼은 같은 영혼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영혼이라 이승에서 때가 되면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들 그러니까 귀신의 세계에서도 계급이 있거든요. 지구에서도 몇 만 광년이 떨어진 우주에서 오신 절대자의 영혼, 그 미지의 영혼을 지구 안에 있는 저 같은 미천한 영혼들은 신령이라고 부르고요. 두 분이 그 신령의 영혼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순진한 대학생들한테 뭘 팔려고 이러시나
“ 신령님이 만들어 놓은 지구의 영적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여러분들이 만든 송골매처럼 팬텀이라는 심령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생겼고 저도 그 중에 한 명입니다. 아마 그 중에 한 명 일본의 라요라는 여자가 신령님에 대한 신앙이 깊은데 신령님의 영혼을 꺼내어 확인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 여자는 잠들어 있는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서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두 분을 마취도 시켰던 거고. 연락해보니 신령님께 결례를 범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어요.”
“ 그럼 그 여자를 신고해도 되는 거죠? 회장님이 참고인도 해 주실 거고?”
“ 네. 신령님들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세요. 하지만 제가 경찰 앞에서 심령 능력, 신령, 팬덤 같은 이야기는 못 합니다.”
김 회장이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다. 우리가 신고 못 할 줄 알고?
“ 정규야. 어떻게 할까?”
“ 그 일본 여자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영혼을 꺼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건가요?”
이 새끼 김 회장 얘기에 이미 빠져있다.
“ 아니요. 팬텀에서 영혼을 볼 수 있고 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 명 있어도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필리핀 사람 로날드가 유일해요. 그는 영적 능력이 있는 팬텀 사람들이 영혼들끼리 대화할 수 있게도 해 줄 수 있죠. 왜 그게 갑자기 궁금해지신 거죠?”
“ 아닙니다. 라요 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냥 궁금해서요.”
같은 능력을 가진 로날드란 사람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엄마가 물려주신 무당 병이 아니라면 그런 능력을 어떻게 가졌는지 물어보면서 만나서 동병상련이라도 하고 싶어진 거였을까?
“ 그럼 회장님의 능력은 뭐죠?”
상율은 갑작스런 궁금증에 던진 질문이었지만 아차 싶었다.
대답하고 내 능력은 뭐냐 되물으면 이 영감한테 거짓말을 해야 할지, 진실을 얘기해야 할지 판단이 서 있기 전이었다.
“ 저는 별자리나 구름 모양을 보고 미래의 명운을 읽을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요”
“ 그럼 저희는 신고를 할지 어떻게 할 지 같이 고민하면서 돌아가 보고 결정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상율은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선수 쳤다.
“ 멀리까지 오셨는데 저녁 식사 전이시면 식사라도 같이 하고 서울로 올라가시죠.”
“ 아닙니다. 저는 내일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요.”
올라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돈까스를 먹는 게 할아버지랑 어색한 식사 자리보다는 낫다는 정규의 먹부심에 의한 판단.
상율 선배가 사준 명품 양복을 입고 상율 선배가 운전하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
빈부 격차가 이렇게 큰 같은 대학의 같은 영혼이라니
“ 팬텀이라는 데서 신령님을 믿고 추종한다는 소리고 그게 우리라는 말인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어서야 상율 선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김 회장의 말을 생각으로 정리하고 있었는 듯하다.
“ 선배는 그래서 그 교주가 하고 싶어요?”
“ 내가 하고 싶을 거 같아? ”
“ 아니지. 형이 돈이 아쉽겠어. 명성이 아쉽겠어. 뭘 위해서?”
“ 어디서 우리가 들은 얘기 하면 사이비로 은팔찌 차기 딱이야. 그런데 송골매 다른 사람들도 다 운명으로 만났다는 거지?”
“ 그 영적 세계를 누가 알겠어요. 입으로 만들어 내면 그만 인거고 육체로는 느낄 수도 없는건데.. 컨테이너에 갇혀 있었던 일은 그냥 넘어가는 거죠?”
“ 조금 더 생각해보자.”
상율은 영혼의 세계에 대해 같이 웃어넘기고 정규와 헤어졌지만 김 회장의 말을 들으며 유체이탈을 하여 육체를 빠져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높은 계급의 영혼이었구나 생각해 보게 된 날이었다.
다음 날 저녁, 상율을 만난 대식은 여름이 지나 쌀쌀해진 날씨에도 짧은 팔 티셔츠를 입고 나와 울퉁불퉁한 근육질 상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상율은 정규와 자신이 납치 되었었던 상황과 어제 김 회장을 만나 들었던 얘기를 대식에게 전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듣고 있는 대식
“ 이제 내가 형한테 물어봐야 되는 거죠? ”
“ 아니야. 내가 다 얘기할게. 나에 대해서 너한테 깊이 얘기 안 했는데 사실 난 탈북자야.”
“ 네? 형님 뭐야? 운동 하면서 노가다하고 세신사하고 가끔씩 일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간첩이었어?”
“ 응 그건 진짜 해. 운동 하면서 돈 필요할 때.. 넌 모르겠지만 전국에 공사판이랑 사우나는 많다.”
“ 그런데 어떻게 김 회장 알아요? ”
“ 나 탈북할 때 도와주신 분이야.”
“ 네?”
송 대식의 어린 시절 추억의 아버지는 노동당 행정부 출신으로 여느 북한의 당 간부의 집이 그렇듯 평양의 도심 한복판의 집에서 남부럽지 않은 환경으로 살아왔었다.
10살이 채 안 되었던 어린 대식은 어느 날 마당 한 가운데에 서서 건너편 집의 마당에서 담장에 두 발을 걸치고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개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개와 자신과의 거리는 10미터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 그 10미터 안의 공간이 양 쪽으로 조금씩 휘어지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 파동을 나를 도발하는 저 개한테 날리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어깨와 팔에 힘을 주고 눈으로 저 파동을 앞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힘을 줄수록 그 파동은 오히려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곧 빠른 속도로 그 파동이 일직선의 빛으로 바뀌더니 내 몸 전체로 그 파동을 흡수했다.
그러자 건너편 담장에 앉아 나를 노려보던 개가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꼬리를 내리고 자기 집 마당으로 도망갔다.
그 때가 이 세상이라는 공간에 에너지와 기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고 나는 그 에너지와 기를 빨아들이고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 그런데요? 김 회장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기껏 어렸을 때 능력을 가지게 된 무용담을 들려주었더니 리액션이 미지근한 상율을 잠깐 바라보다가 대식은 탈북할 때의 무용담을 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
“ 그 때 비가 온 다음날이라 압록강 강물이 거셌지. 나와 브로커는 그 물살을 뚫고 뒤에서는 총 소리가 들리는데... ”
“ 브로커를 김 회장이 보내준 거에요?”
“ 아니 한국에 먼저 와 있었던 친구가.. 그 친구와는 북에 있을 때 어렸을 때부터 레슬링을 했었는데 함께 세계 대회 나가는 게 꿈이었지. 그래서 남에 오자마자 그 친구가 있는 체육관으로 가서...”
“ 그래서 김 회장은 어떻게 만난 건데요”
다른 얘기는 듣기 싫어하고 궁금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아 상율이 에게는 김 회장 얘기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같은 시기에 탈북 했던 사람이 세 명 있었는데 중국에서 태국으로 가니까 김 회장이 전세기를 띄워서 나만 남한으로 데려왔어”
“ 왜요?”
“ 그 때 들었던 얘기가 상율이 니가 어제 들은 얘기야. 팬텀, 영혼의 계급, 그리고 내가 한반도에 오신 신령을 지켜야 하는 수호령을 가진 사람이라는 허무맹랑한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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